I. 서론
2016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수술실에서 일어난 故 권대희 군의 사망 사건(이하 권대희 사건)이 언론에 상세히 보도되었고 시민들은 경악했다. 수술 도중 담당의는 자리를 떠났으며 환자가 누워있는 상태에서 유일한 직원이었던 간호조무사는 태연히 화장을 고쳤고 과다출혈로 위급해진 환자는 적절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한 채 이송되었는데 그 전 과정이 CCTV를 통해 생생히 공개되었다.1) 그보다 앞선 2014년 성형외과 수술실에서 환자가 누워있는 상황에서 촬영된 생일파티 기 념사진을 한 간호조무사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에 올렸다. 이 사진은 웹과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일반적인 생각 과는 달리 의료인들이 진지한 자세로 환자를 대하고 수술에 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수술실과 의료 전반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2) 비슷한 시기에 2016년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일어난 신생아 낙상사고를 의료진3)과 병원이 조직적으로 은폐했던 사실이 2019년 4월 제보에 의해 알려지며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환자단체는 CCTV가 있었다면 이러한 담합과 은폐는 불가능했을 것이라 주장하며 수술실 CCTV 설치를 강력히 주장했다.4)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과 관련하여 수술실 CCTV 설치 주장에 힘이 실렸고 과거에 폐기되었던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다시 발의되었다<부록 2>. 이후 여러 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가 열리고 방송과 언론 지상을 통한 찬반 논쟁이 이루어졌다. 찬성의 근거는 명확하다.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일 탈 행위는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고 이를 방지할 대책이 시급한 상태로 CCTV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찬반 논쟁이 한창이던 2021년 5월 인천의 한 척추-관절 전문병원에서 벌어진 비의료인의 대리수술 사건이 보도되었다. 행정직원, 의료기 영업사원에 의한 대리수 술이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음이 알려지며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5) 결국 의사들이 제시한 CCTV 반대의 주장과 논리는 여론을 돌리는 데 실패하였고 수술실 CCTV 설치를 강제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2023년 9월 25일 그 시행을 앞두고 있다[1].
뒤돌아보면 수술실에서 벌어진 비윤리적 의료 행위가 한국 사회에 준 충격과 불신은 엄청난 것이어서 시민의 분노와 여론을 돌이켜 세우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한 것이었다[2]. 공청회와 언론을 통한 찬반 논쟁은 결과적으로 입법을 위한 절차에 지나지 않았으며 의사단체는 그저 CCTV의 부작용에 대해 경고할 기회를 갖는데 그쳤다. 종합해 보면 한국 사회는 현재로선 의료계의 자정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며 수술실의 의료행 위는 감시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수 술실 CCTV는 ‘의사들의 도덕성에 가해진 사회적 메스’이며 자율성에 기반한 전문직업성이 의사 사회에 깊이 스며있지 못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미 설치가 결정된 상황에서 수술실 CCTV의 적절 성 문제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지만 수술실의 영상 관리 문제를 다시 살펴보는 것이 하위법령을 준비해야 하는 2022년 현재 시점에서 특히 필요하다. 시행령, 시행규칙 등의 하위법령에는 카메라의 설치와 영상의 관리에 대한 세부 사항을 규정하게 된다. 이 작업이 세밀히 이루어져야 영상감시로 비롯되는 인권 침해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환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향후 진료 공간에 대한 영상감시는 수술실을 넘어 병원의 여러 장소로 확대될 수 있으며 이미 감시를 둘러싼 갈등과 충돌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에 그동안 제기된 수술실 CCTV의 우려되는지 점과 근거들을 현장의 시각에서 하나하나 살펴보려 한다.
II. 본론
수술실 CCTV 설치를 강제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2021년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성 형외과 사망 사건으로 급하게 입법이 추진된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CCTV 관련 조항이 처음 발의된 이후 6년 7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경과했다. CCTV 설치내용을 담고 있는 ‘의료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권대희 사건(2016년 9월)보다 앞선 2015년 19대 국회 기간 최동익 의원에 의해 처음 발의되었으나 임기종료와 함께 폐기되었다. 최초 법안은 수술과 관련된 의료소송에서 환자 측을 보호할 목적으로 수술 전 환자 측의 동의하에 촬영 하고 환자 측의 요청에 따라 공개한다는 내용으로 무면허 수술이 빈발하고 있는 상황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이 개정안은 모든 전신마취 수술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환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 촬영하도록 하였다.6) 이후 20대 국회의 안규백 의원의 개정안이 있었는데 성남의 대형병원에서 발생한 신생아 낙상사고와 의료진의 은폐를 개정안의 이유로 제시하였고 경기도에서 시행한 CCTV 설치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했음을 근거로 삼았다.7)
21대 국회에서 김남국, 안규백, 신현영 의원의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었다. 안규백 의원이 다시 발의한 개정안은 촬영과 녹음을 모두 가능하게 했고 저장된 영상의 열람에 관한 사항을 분명히 하였다. 신현영 의원의 개정안은 수술실 내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를 의료법에 삽입하였으며 운영비용에 관한 사항을 처음 제기하였다. 또한 환자·보호자의 요구로 촬영하는 경우 의료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였다.8) 세 의원이 각기 발의한 법안을 통합 조정하여 보건복지위원 장이 제안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상 임위원회에 상정되었다.9) 보건복지위원장의 대안은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근거를 삽입하였고, 촬영 시 녹음은 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CCTV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법안 통과 후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도록 조정되었다[3,4]. 의료법 개정안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2021년 8월 25일 여야합의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였으며 8월 31일 결국 본회의를 거쳐 최종 입법되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CCTV 의무화 법안이 발의되자 사태를 파악하고 의사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대응할 여유도 없이 우선 법안 저지를 위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CCTV 의무화 법안의 통과는 리베이트 쌍벌제에 더하여 의사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는데 리베이트 쌍벌제 법안 이 전체 의사들에게 적용되는 반면 CCTV 의무화는 외과의사에 한정하지만 의사들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이 영상감시의 요구로 나타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압도적인 찬성은 의료계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수 치로 반증하고 있으며 사회가 의사들에게 보다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리베이트 쌍벌제가 형벌의 적용범위를 넓히는 규범적 감시를 확대한 조치라면 CCTV 법안은 카메라 장비를 이용한 직접적, 일상적 감시라는 면에서 근로 현장의 직접적인 압박이다. 향후 외래, 병실, 중환자실 및 각종 검사실 등 병원의 다른 공간으로 확장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의료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해 의협은 정책연구 등을 바탕으로 헌법상 기본권 침해를 포함한 다양한 논리의 반대 의견을 개진하고 여러 대안을 제시하였다. 의료를 둘러싼 이전의 다른 갈등 상황에서와 마찬가지로 의협의 주장은 독백에 가까워서 국민은 의사나 의협의 말에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의사들의 주장에 여론이 반응하지 않으니 정치권 역시 크게 관심을 주지 않고 이러한 상황에서 의협의 주장은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소수의 정치인에게만 전달되다 보니 의회 내 반대 여론을 조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대 중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법안이 마련되었고 이 과정에서 의협은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기초한 징벌적 입법이며 정치적 포퓰리즘, 법 만능주의 등의 용어를 동원해 법안을 발의한 정치권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였다[5,6,7]. 하지만 정치는 기본적으로 시민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오히려 이를 반대하는 정치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으며 특히 가장 고비였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통과과정에서는 여야 합의를 바탕으로 하였다.10) 법안이 통과되는 2021년 시점은 ‘의사 증원과 관련된 파업’으로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특히 나쁜 시기였다. COVID-19 대유행이 한창이던 때로 의료진들은 코로나 방역의 영웅으로 칭송되며 실로 오랜만에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유행 중 벌어진 파업으로 의사들은 국민의 눈에 이전의 이기적 이익 집단으로 회귀했다.11) 이러한 상황에서 반대 의견을 표명하던 일부 정치권도 반대 의사를 끝까지 지속하지 못했다.
법률적으로 ‘과잉금지의 원칙’12)을 충족하기 위해 다른 대안을 충분히 검토하였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시민사회가 수용할 만한 만족스러운 대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논란이 되는 헌법상의 기본권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침해는 중요한 인권 문제이지만 입법을 위한 여론 수렴과 정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는 못하였다.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비교하여 어느 곳에 더 무게를 싣는가 하는 가치판단의 문제는 합의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사한 가치들이 어린이집 CCTV 설치를 의무화한 ‘영유아보육법’의 개정과정에서 먼저 논의되었으며,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은 이후 제기된 헌법소원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거쳤다[8]. 헌법재판소 결론의 요지는 어린이집 CCTV 강제 설치가 보육교사의 기본권을 일부 제한하지만 사회적 약자인 영유아의 안전이라는 공익이 우선시되며 CCTV 외에 적절한 대안이 없으므로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료법 개정안과 관련하여 헌법소원이 제기되는 경우 유사한 법리적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보여진다[9]. 이 두 법안은 CCTV 설치를 법으로 강제하는, 드물지만 유사한 경우이다. 양 법안은 ‘감 시에 의한 약자의 보호와 인권’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보육교사와 의료진의 인권보다 사회적 약자인 영유아와 환자의 보호가 우선되는 상황이라 판단한다. 영유아보육법 개정과 이후의 헌법소원 과정에서 두 가치에 대한 사회적, 법적 판단은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 과정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크므로 이 두 법안의 입법과정과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부록 3>.
두 법안은 공통적으로 기본권 침해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현대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는 측면이 크다. 사회적 담론이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초점사건(focusing event)’ 혹은 ‘격발사건(triggering event)’ 발생과 여러 우호적인 상황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의 경우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2015)’이, 의료법 개 정안의 경우 ‘故 권대희 사망사건(2016)’이 초점사건으로 작용했고 법안 통과 당시 이에 대한 우호적인 국민 정서가 형성되었다.13) 의료법 개정의 경우 한 가지 단일 사건에 의해 촉발되기보다는 앞서 <부록 2>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결과이다. 그중 권대희 사건이 언론의 보도량으로 판단하건대 사회적 여론을 제도화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14) 의회 입법과정에서 차이점은 영유아보육법의 경우 입법부가 미온적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현장 방문과 의견 피력으로 입법 논의가 촉발되었으나 의료법 개정안의 경우 입법부 주도로 추진된 면이 있다.15) 어린이집 CCTV의 경우 초기에 보호자가 영상을 확인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 TV로 추진되었으나 최종적으로 폐쇄회로 TV로 결정되었고 수술실의 경우는 영상의 성격상 처음부터 CCTV로 논의되었다. 수술실 영상과 어린이집의 영상은 유출 시 환자와 어린이에 대한 인권의 침해 정도가 매우 다른 면이 있어 영상의 저장과 관리상 수술실의 경우가 보다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영상의 의무 보관기간이 어린이집의 경우 60일 수술실의 경우 30일로 차이가 있는데 이는 영상의 데이터 용량과 영상 유출 시의 위험도를 고려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수술실은 어린이집의 경우와 달리 법안 통과 후 CCTV 설치까지 2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었는데 이 역시 수술실 영상의 저장과 관리가 예민한 사항이므로 시행령, 시행규칙에 세부사항을 세밀히 규정해야 하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진료권이 존중받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환자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주장을 펴왔으나 의사를 제외하고는 이에 동의하지 않거나 진료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중에서도 이미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는 응급실의 CCTV와의 비교 논리는 결정적으로 의사들의 주장에 모순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폭력으로부터의 의료인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응급실 CCTV 설치의 경우 의사 대부분이 찬성하였다. 그 외에도 2018년 정신과 외래에서 벌어진 의사 피살 사건16)은 의료인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어서 보안 장치의 설치는 사회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의료인 보호를 위해서는 설치를 주장하고 환자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을 외면하는 의사들의 이중적 태도에 언론과 대중은 이의를 제기하였고 이후 의사들의 반대 주장을 더욱 어렵게 했다.17)
의협의 의료정책연구소는 2019년 정책현안분 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수술실 CCTV 반대 이유를 내놓았다. 1) 환자의 진료 정보 유출 우려, 2)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직업수행의 자유, 프라이버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 3) 위축 진료로 인한 의료질 하락 및 소극 진료 초래, 4) 의료분쟁 확대 소지, 5) 전공의 교육 차질로 인한 의학발전 저해, 6)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음, 7) 비용, 관리 어려움에 비해 상응하는 효과 적음.
그리고 수술실 내 CCTV 설치에 대한 찬성 여 론이 강해지자 입법 과정에서 다음의 조치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요약하면 1) 대리수술 근절을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 및 적극적인 고발 조치, 2) 윤리교육 강화, 3) CCTV를 수술실 입구에 설치하여 출입에 대한 규제 강화, 4) 전문가평가제 활성화 및 자율규제기구 설립 등이다[5]. 이러한의 협의 제안에 시민단체는 이전에도 비슷한 조치들 이 제시되었으나 효과가 불투명하며 수술실 입구 CCTV 설치는 의료분쟁 발생 시 증거자료를 확보 하는데 미흡한 점을 들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 다[10]. 의협의 반대 이유 중 일부는 법안 저지를 위해 명분상 제시된 것으로 보이고 설득력도 약하지만 ‘안전을 위한 감시와 인권의 충돌’ 문제는 명쾌한 해답을 찾기 어려운 주제들로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외 반대의 논거로 제시되지 않았지만, 한국 의료의 특성과 관련된 근본적인 사항들이 있는데 이를 몇 가지로 추려 살펴보고자 한다. 1) 절개에서 봉합까지(skin to skin): 대리수술에 대한 규정과 사회적 합의, 2) 불완전한 의료의 한계와 노출 - 의료의 불완벽성(imperfection of medicine)과 인간의 불완전성(human fallibility), 3) 저수가와 수술실 안전의 수준, 4) 징벌적 감시와 감시 대상의 설정, 5) 누가 마취를 하는가? -대리마취의 문제 등이다.
감시는 현대사회의 주요 논쟁 대상이다. 제레미 벤덤(Jeremy Bentham)에 의해 소개되어 알려진 ‘파놉티콘(Panopticon)’으로 상징되기도 하며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사회통제의 주요 수단으로 감시체계의 원리가 확산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근대 이전에는 주로 통제의 목적으로 국가 혹은 권력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근대사회로 진입하며 시민 자유의 요구가 강해짐에 따라 감시와 인권 사이의 충돌이 잦아지게 된다. 이후 현대사회로 진행하며 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핵심적인 책무로 인식되면서 감시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정당성을 갖게 되었고 감시의 목적이 통제에서 시민의 보호로 옮겨 감에 따라 범위와 방법도 변화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감시와 인권’의 대립이 ‘시민 자유의 요구와 시민 안전의 보호’ 사이의 충돌로 변모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충돌하는 두 가치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맞닥뜨리게 되었다.
감시의 방법도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던 과학 기술을 이용한 감시체계가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18) 과거 사람에 의해 주로 이루어지던 인적 감 시는 대부분이 기술감시(high technology surveil-lance)의 형태로 전환되었다. 현재는 CCTV, 네트 워크 카메라, 자동차 블랙박스, 전자신분증, GPS 위치추적장치, 이메일과 메신저, 스마트폰 등 일 상의 도구들이 모두 감시에 사용될 수 있다[11].
노동감시는 사유재산 제도에 기반하여 사업자의 경영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조업 중심의 산업 현장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영유아보육시설, 노인요양기관, 수술실 등에서 이루어지는 서비스업에서의 감시는 약자의 안전을 보호하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시행되며 제조업에서의 감시와는 목적을 달리한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카메라를 감시운영자가 본래의 목적과 달리 노동감시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 시 관리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수술실 CCTV가 의료진으로 하여금 업무를 근 면히 수행하게 하여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동감시 기능을 담당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공 공장소나 노동현장의 감시장치와는 인권과 감시 담론에서 충돌하는 지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며, 수술실 CCTV를 반대하는 논리로 제조업 노동감시 에서의 인권침해 담론을 차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노동감시에 대한 경계심이 노동계의 관심과 주의를 끌 수는 있으나 잘못 차용된 논리는 사회의 합의를 끌어내고 접점을 찾는데 오히려 장해 요인이 될 수 있다. 근본적으로 보육, 의료 서비스 업에서의 감시와 산업 현장의 노동감시는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직업수행의 자유는 직업을 영위하는 데 있어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말한다. 헌법 제15조에 근거한 직업의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자유로이 선택하고 이를 영위하며, 언제든지 전환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데 크게 직업결정의 자유와 직업 수행의 자유 두 가지 권리를 담고 있다.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범하는 법안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은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하는가이다. 독일 연방헌법에서는 직업의 자유 침범 사례의 합법성을 보다 정교히 판단하기 위해 ‘삼단계 기준’이라는 단계이론을 적용하기도 한다. 우리 헌법재판소의 경우 일부 삼단계 기준을 차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과잉금지의 원칙’을 가장 주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12].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르면 그 법안이 공익을 목적으로 하고 수단이 정당하며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으면 합헌이라 판단한다.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 합법임을 유추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에 대한 헌법소원의 사례를 보아 의료법 개정안 역시 추구하는 공익과 비교하여 수단이 부적절하고 기본권 제한이 과도하다는 판단이 내려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술실의 CCTV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과도하게 침범하는가? 이 문제는 수술실 감시를 둘러싼 인권 담론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하고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부분이다. 우선 프라이버시라는 권리가 매우 복잡하고 우리 생활에서 통신기술이 차지하는 영역이 빠르게 확대되어감에 따라 개인 영역의 경계가 점점 불분명해지고 개인이 자기 정보를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 개념은 시대마다, 사회환경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고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시대에 따라 일관된 원칙을 따라 발전되었다기보 다는 그때그때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며 변천하는 과정을 거쳤다. 시대에 따라 다른 가치를 담고 있으므로 프라이버시 용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도 마땅치 않으며, 오히려 ‘프라이버시’를 그대로 쓰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13].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정의는 “프라이버시란 언제, 어떻게, 어느 범위까지 타인에게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전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개인, 단체의 권리”이다. 이는 특히 개인정보의 유통 문제가 심각한 현시대의 상황과 맞닿아 있다[14]. 프라이버시 담론에서는 우선 공간의 문제가 중요하다. 초창기 프라이버시 개념은 공간을 기준으로 사적 영역 (privatheit)과 공적 영역(?ffentlichkeit)을 경계로 설정하였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SNS의 등장은 이런 공간적 경계를 무너뜨려 장소를 경계로 프라이버시를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사적 영역의 의미는 장소를 넘어 신체적, 공간적, 사회적 커뮤 니케이션 연결 등으로 확대되어 가정 등 사적 장 소에서 뿐만이 아니라 거리와 같은 공적 장소에서도 개인의 사적 영역은 존재한다고 해석된다. 한국 사회에서 근로 현장의 프라이버시를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고 합의를 시도한 경험이 적다[15].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저항감은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있는 데 이 역시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며 외국의 담론을 단순히 차용하여서는 안된다. 그 예로 COVID-19 팬데믹 상황에서 확진자의 동선을 효과적으로 추적하기 위해 신용카드, 스마트폰 위치 추적 등을 사용했는데 여기에 우리 국민은 그다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이 숨기고 잘못한 게 없으면 동선추적이 왜 불편하겠는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해 사생활 침해 문제에 대한 동시대 한국인의 인식이 유럽의 그것과는 조금 다름을 느끼게 한다.19) 한국인이 팬데믹 상황을 더 심각하게 인식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며 개인의 프라이버시보다 사회의 안전을 우선하는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20)
어린이집 CCTV 설치와 관련하여 영유아보육법의 입법과 헌법소원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검토되었다. 어린이집과 수술실의 CCTV는 어린이나 마취상태의 환자 등 취약한 상태의 이용자를 영상감시를 통해 보호한다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며 법은 과잉금지의 원칙을 기준으로 일정한 범위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허락하였다. 하지만 입법이 완료된 후에도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는 세밀 히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입법과정에서는 수술실에서 벌어진 사건의 충격으로 CCTV의 필요성은 강하게 부각된 반면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진 측면이 있다. 영상감시를 넘어서서 다양한 도구를 이용한 기술감시의 영역은 급격히 확대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문제는 인권 담론의 핵심적인 측면을 담고 있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 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 정보 주체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다.21) 헌재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헌법상의 기본권에 속한다고 보는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승인하는 것은 현대의 정보 통신기술의 발달에 내 재된 위험으로부터 개인정보를 보호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결정의 자유를 보호하고, 나아가 자유민주 체제의 근간이 총체적으로 훼손될 가능성을 차단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헌법적 보장 장치라고 할 수 있다.”22) 이를 근거로 의협은 의료인의 동의 없이 환자의 동의만으로 의료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제38조의 2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료인의 동의를 필수요건으로 한다면 CCTV에 의한 감시를 의무화하는 법안 자체의 효력이 무력화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헌법소원이 제기된다면 영유아보육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보육자의 동의없이 촬영이 가능하도록 결정한 예에서 보듯이 같은 법리로 합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16]. 서비스업 종사자들에 내려지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법적 제한은 추후 병원의 외래, 내시경실, 중환자실 등 다른 장소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며 병원 외 다른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술실 CCTV는 환자 안전이라는 공익을 목적으로 하며 수술실의 일탈행위로부터 환자를 보호 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동시에 의료진의 직업수행의 자유, 프라이버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일부 제한하고 침범한다. 대립되는 두 가치 사이에서 정책적 선택이 필요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 우리 사회는 이를 법적 판단에 의지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영유아보육법의 입법과 헌법소 원심판의 결과로 볼 때 법은 수술실 CCTV를 적법한 수단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영상정보의 유출은 앞서 논한 프라이버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심각히 훼손한다. 역으로 영 상 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지면 치명적인 인권 훼 손을 막을 수 있다. 실행이 예정된 상황에서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영상의 관리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CCTV 의무화 조항인 의료법 제38조의 2가 2023년 9월 25일부터 시행되기 위해서는 CCTV 설치와 운영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의료 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의 초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카메라를 어떻게 설치하며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관리를 맡기고 운영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 시행령·시행규 칙에 담길 내용이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용역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개정된 의료법 제38조의2에 구 체적인 사항이 담기지 않아 하위법령 준비 작업은 더욱 중요하다. 의료법에 명시되어 있으나 구체적으로 하위법령에 규정해야 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의료법 제38조의2 제1항에 따른 폐쇄회로 텔레비전의 설치 기준, 2) 제2항에 따른 촬영의 범위 및 촬영 요청의 절차, 3) 제2항 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규정에 따른 촬영 거부 사유의 구체적인 기준, 4) 제5항에 따른 열람·제공의 절차, 5) 제9항에 따른 보관 기준 및 보관 기간의 연장 사유 등과 관련된 사항 등이다. 그 외에도 내부 관리계획과 그에 따른 기록 보관과 시설의 출입 관리방안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한다[17].
수술실 영상은 환자와 의료진 양측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며, 특히 노출된 신체 영상이 유출되고 인터넷을 따라 확산되면 환자의 인격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네트워크 세계에서 정보의 통제는 불가능하며 한국 사회는 심각한 영상 유출 사건을 지속해서 겪고 있다.23) 우선 30일간 저장하도록 규정된 영상이 유출되지 않도록 관리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상 관리에는 많은 비용이 요구되는데 규모가 작으나 전신마취를 시행 하는 병원이 비용과 관리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38조의2 ①항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폐쇄회로 텔레비전의 설치 등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비용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리는 병원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 일면 합리적으로 보이나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관리를 외부 단체나 기업에 맡기는 방법이 제시되기도 하였는데 고려해 볼 사항이다. 그다음 중요한 문제는 의료소송과 관련하여 저장된 영상을 열람하고 법원, 변호법인 등 소송준비를 위해 영상을 이동할 경우의 보안 문제이다. 책임의 소재가 우선 분명해야 하며 소송 후 영상의 삭제를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정보 홍수의 환경에서 환자 영상의 관리는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중요하고 본질적인 내용이지만 CCTV 설치 논의 과정에서 전혀 다루어지지 않거나 소홀히 다루 어진 것들이 있다. 이 문제들은 인권담론이나 영상정보의 관리 문제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담고 있으며 동시대 한국 의료에 내재 된 미결 과제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다.
환자와 보호자는 집도의가 수술의 절개에서 봉합까지 전 과정을 직접 시행하기를 원하고 당연히 그러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집도의가 수술의 과정 모두를 직접 수행하지는 않는데 이는 어느 국가, 어느 병원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문제는 도덕적 해이와 관련된 문제는 아니며 수술의 전 과정을 집도의가 직접 수행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며 후학(後學)과 전공의 교육목적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비의료인에 의한 불법적인 수술과는 다른 문제이며 동의받은 의사가 아닌 다른 전문의에 의한 대리수술과도 다르다. 집도의가 수술의 주요 부분을 시행하고, 그 외의 과정은 집도의의 지도하에 보조의가 시행함으로써 경험 많은 외과 의사의 피로를 덜고 보다 많은 수술을 수행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합리적이다. 실제로 보조전 문의24)와 전공의가 수술에 참여하는 병원의 경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수술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러한 관행을 논의해 본 경험이 우리 사회에는 없다.25)
이러한 상태에서 수술실 영상을 통해 전공의나 보조의가 수술의 일부를 수행하는 것을 보는 것은 환자 입장에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소송과 관련하여 증거자료로 녹화된 영상을 살펴볼 때 오해와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집도의가 받을 수 있는 수술보조의 범위에 관해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수술실 CCTV 설치가 먼저 결정되었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대리수술 여부에 대한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지금이라도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26)
의학 자체가 완벽한 학문이 아니며 수술 역시 불완전한 인간의 작업 중 하나이다. 일상적으로 시행되는 시술에도 소수의 합병증 발생은 항상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일반 대중과 의료진 사이의 시각차는 작지 않다. 일반 대중들에게 병원 수술실은 여전히 베일에 싸인 밀실이며 균형 잡힌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환자는 늘 정보약 자(情報弱者)에 해당한다. 수술실 CCTV에 의해 가려졌던 은밀한 공간이 갑작스럽게 노출될 때 의료의 완벽성에 대한 시각차는 갈등의 근본적인 원 인이 될 수 있다. 의사들이 염려하는 본질적인 부 분의 하나이다. 의사의 시각에서는 정상적이고 적절한 조치도 환자의 눈에는 부족해 보일 수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할 수 있다. 의료소송에서 변호인이 과실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데 환자를 대변하는 변호인은 수술행위의 약점을 파고들 수 밖에 없다. 많은 의료소송이 의료진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하며 이때 발생한 불신은 실제의 그것보 다 더 많은 오해를 만들어 내곤 한다. 의학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과 가족의 수술 장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동시대 의료의 한계와 의사의 과실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수술 중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상황이 빈번히 발생하는데 수술 조작과 관련된 상황(surgical event)과 마취와 관련된 상황(anesthesia event)으로 나눌 수 있다.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의료진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환자 상태를 호전시키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시행한다. 하지만 실제 의료소송에서는 선한 의도에서 한 의료진의 시도들이 환자 상태를 불안정하게 관리한 불리한 증거로 오인될 수 있다. 이 부분 역시 처음으로 카메라에 노출되는 의사들이 불안해하는 지점이다. 특히 우려되는 상황 중 하나는 카메라 설 치 이후 돌발상황 발생 시의 대응 방식이 나쁜 방향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행동 수칙의 우선이 환자 안전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의료소송에서 불리한 증거로 작동하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 감시가 처치과정을 왜곡시켜 CCTV 본래 목적인 환자 안전이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 영상자료를 증거로 사용하는 재판에서 이에 대한 일 관된 판결이 정착되기까지 의료계는 일정 기간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의료환경에서 낮은 의료수가의 문제는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실제 그렇기도 하다. 의료계에서 벌어진 여러 비윤리적 사건에서 의사들은 명백한 도덕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저수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음을 주장한다. CCTV 설치 이후 수술실에서 발생하는 과실의 원인으로 저수가가 더 자주 지목되고 의료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의사들은 수가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수가체계로 어느 수준의 수술실을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인가?’하는 비용과 기대에 관한 물음이다. 수가가 낮다고 의료과실이 양해받을 수 없음은 물론이지만 과한 노동, 극심한 스트레스, 부실한 병원 시스템과 더불어 저수가는 수술실을 위험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다. 열악한 의료환경에 둘러싸여 궁지에 몰린 외과의들에게 CCTV는 다시 한번 큰 상처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은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판례에서 나타나는 수술실의 비윤리적 사건의 대다수는 공 장식 성형외과병원과 관절-척추 전문병원에서 발생한다.27) 의사나 병원의 영리 추구 성향이 클수록 윤리적 원칙이 무시되기 때문이다. 2014년 이후 수술실을 중심으로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의 중심에 이들 병원이 있으며 의료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파괴하고 의료법을 개정하게 만든 주요 요인 임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수술실에서의 비행과 일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우선 이들 병원의 관리가 중요하다. 논의 과정에서 이들 병원을 우선적으로 감시하는 방안은 의협을 포함한 누구로부터도 제시되지 않았는데, 특정 영역이 편중된 일부 회원만을 감시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전체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긴다는 성토에는 이러한 불만이 숨어 있다. 개 정된 의료법상 CCTV 설치는 전신마취를 시행하는 수술실이 대상인데, 오히려 문제를 일으킨 병원들은 국소마취 위주로 수술을 재편하여 감시를 피해 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18].
대형병원 수술실도 비윤리적 의료행위에서 자유 롭지 못하나 구성원이 다양한 병원일수록 사건에 대하여 은폐하거나 의료진에 유리하게 입을 맞추는 담합이 일어나기 어렵다. 간호사, 마취의사, 전 공의, 학생 등 다양한 관찰자가 있고 대형병원의 노동조합은 이러한 일탈행위의 주요 감시자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환자단체의 의견은 이와는 사뭇 달라 일관되게 대형병원 수술실도 감시에 포함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 근거로 의료진에 의해 담합과 은폐가 일어난 신생아 낙상 사건과 해외에 있는 의사 명의로 시행된 대리수술 사건이 주로 제시된다.28) 이 두 사건은 모두 수도권의 대형 대학 병원에서 일어났고 내부고발자에 의하여 뒤늦게 밝혀진 특징이 있는데 역설적으로 대형병원에서 구성원들의 상호감시 기능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환자단체들이 대형병원에도 CCTV 설치를 주장하는 보다 큰 이유는 수술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형병원에서 많은 의료소송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환자 측은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최근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의사 회원 내부에서도 무자격자의 대리수술 등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서 형사처벌과 면허취소를 포함한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9]. 과거에 비해 강도 높은 처벌을 원하는 의견에는 소 수의 일탈로 인해 전체 의사들이 받는 사회적 낙인에 대해 분하고 답답한 심정이 강하게 담겨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윤 동기의 유혹에 저항하며 의료적 양심을 지키려는 의사들이 많이 있으며 이들이 이번 사안의 실질적인 피해자임은 분명하다.
실제 CCTV 감시가 시행될 때 오히려 혼란을 겪는 의사는 수술의가 아니라 마취의일 가능성이 있다. 의료법 제24조의2에 따르면 환자가 수술에 대해 동의할 때 마취의사의 성명을 동의 과정에서 밝혀야 한다.29) 특히 대형병원, 대학병원의 경우 마취의 시작과 마무리는 마취의사에 의해서 직접 수행되지만, 중간 과정은 전공의나 간호사에 의해서 유지 관리되는 경우가 많다. CCTV 감시가 시작될 경우 마취의 주요 과정은 반드시 동의한 마 취의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소송과정에서 대리마취로 판정될 수 있다. 마취의 유지 관리 역시 소송에서 영상이 증거로 채택될 때 갈등의 쟁점이 될 수 있다. 수술 중 환자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 동의 된 마취의사가 어느 수준으로 입회하고 참여했는지에 따라 책임의 소재가 변할 수 있다. 수술 중 환자 상태가 나빠질 때 수술의사의 심각한 외과적 과실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취의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정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처럼 한 명의 마취의가 전공의와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여러 수술실을 동시에 관리하는 방식을 지속하기는 어려우며 이에 관한 규정과 합의가 필요하다.
Ⅲ. 결론
연이어 벌어진 수술실의 사건들이 의료계에 대한 누적된 불신을 수면 밖으로 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입법 당시의 상황은 의사들에게 불리한 여론과 정서가 두텁게 형성되어 정치적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촉발사건과 두터운 여론, 그리고 정치적 상황이 약속이나 한 듯 수술실 감시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일련의 과정을 돌아보면 몇몇 사건에 의해 움직였다기보다는 오랜 기간 쌓여온 사건들, 국민 정서, 환자단체의 운동이 입법을 통해 합쳐진 결과였다.
CCTV 문제를 논하기 전에 환자와 국민께 의사들이 먼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그 이후에 제도가 불러올 부작용에 대해 논의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해야 멀어져가는 국민과의 거리를 좁히고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감시와 인권’에 관한 유사한 담론이 어린이집 CCTV 설치 과정에서 먼저 논의됐다. 두 장소의 공통점은 취약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서비스업(보육서비스와 의료서비스)의 공간에 설치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점은 수술실은 신체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수술실 감시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여 부작용의 종류와 심각성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이제 시행을 앞두고 구체적인 사항들을 마련해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담아야 하는 시기이다. 카메라의 설치, 녹화, 관리의 적절성이 개인의 인권과 환자의 안전을 결정하게 된다.
수술실 CCTV 설치만으로 우리 수술실은 안전한 곳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음을 모두 알고 있다. 한국의 의료에는 너무도 복잡하여 누구도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거기에 더해 고령화, 신종 전염 질환 등 의료를 둘 러싼 사회환경의 변화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현재를 유지하기도 버겁게 느껴진다. 이러한 본질적 문제를 광장으로 끌고 나와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완벽한 의료는 없으며 아직 어느 나라도해 법을 찾지 못했다. 많은 오해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외면에서 비롯된다. 의료에 대한 시민의 이해가 높을수록 의사들의 윤리적 성찰이 깊어질수록 자연스럽게 불신의 감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환자들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선량한 의사들이 여전히 건재함을 시민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