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사회체계와 원헬스 커뮤니케이션: 사회는 어째서 환경 위험을 인식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최은주 1 , * https://orcid.org/0000-0001-6397-0811
Eunjoo CHOI 1 , * https://orcid.org/0000-0001-6397-0811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1Research Professor, Institute of Body & Culture, Konkuk University.

ⓒ Copyright 2023 The Korean Society for Medical Ethic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Feb 10, 2023; Revised: Feb 14, 2023; Accepted: Mar 13, 2023

Published Online: Mar 31, 2023

요약

본고는 사회체계 내부에서 건강을 최적화하기 위한 원헬스 접근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에 대한 질문을 고찰하고 원헬스 실천을 위해 생태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환경적 관점에서 인간과 비인간 생물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공존하지만, 사회체계는 인간, 동물, 환경을 별개의 실체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은 생태적 문제가 경제적 과오나 불충분한 윤리적 책임감에만 있지 않고 사회체계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경제, 법, 학문, 정치, 교육과 같은 사회체계는 각각 폐쇄적이다. 그러나 원헬스가 소음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으로 가능할 때 각 체계는 서로에 대해 개방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회체계 내부에서 원헬스가 작동하려면 인간의 몸이 물질세계, 즉 생물학적 생명체, 생태계, 생체이물질 그리고 인간이 만든 물질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생태적 사유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

ABSTRACT

This article considers the question of why it is difficult to adopt a One Health approach to optimizing health despite its importance and argues that ecological thinking is necessary for the practice of One Health. Although from an environmental perspective humans and non-humans co-exist in a complex set of relationships, social systems tend to treat humans, animals, and the environment as distinct entities. Accordingly, Niklas Luhmann attributes ecological problems, at least in part, to society itself and not merely to political or economic failures or moral shortcomings. However, while social systems such as the economy, science, politics, and education, are in an important sense closed, they can also be responsive to each other through One Health communication. Above all, in order for One Health to operate within these social systems there is a social need for ecological thinking that the human body is inseparable from the material world, biological life, ecosystems, biomaterials, and human-made materials.

Keywords: 원헬스; 사회체계; 커뮤니케이션; 횡단-신체성; 생동하는 물질; 생태적 사유
Keywords: One Health; social system; communication; trans-corporeality; vibrant matter; ecological thinking

I. 서론: 연구 배경과 목적

원헬스(One Health)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분리해 온 인간, 환경, 동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를 포함한 국제기구들이 2000년에 제도적으로 확보한 개념이다. 인간-환경-동물을 잇는 생태계 전체의 건강을 강조하는 전략으로, 다학제적 · 초국가적 차원의 전 지구적 개념인 것이다. 잇따라 유럽과 미국 등의 국가기관, 민간기구, 학계가 원헬스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그러나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원헬스는 그 실천적 가치와 목적에 있어 핵심이 없는 추상적이고 단편적인 접근에만 그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1) 사실 “식량생산 방식에서 자연의 순환과 자본의 순환 간에 어떠한 방식으로 균열이 발생하고 확산하는가?”[1] 하는 질문이 원헬스를 둘러싸고 여전히 발생하며, 자본주의적 사회 환경을 놔둔 채 생태계와 사회 사이의 모순을 극복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자본주의는 “자연과 사람 등을 지배하고 변형하는 현대 국가의 정부와 떼어놓을 수 없는”[2] 거대 문제이다. 무엇보다 추진 방법과 실천에 있어 우리 사회를 조직하고 있는 체계의 특성상 원헬스가 실현 불가능하거나 어렵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사스코로나바이러스-2감염증(SARS-CoV-2; COVID-19; 코로나19, 이하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은 분명 국가마다 처해있는 정치, 경제, 사회, 공중보건의 상황에 맞는 개별 대응을 취했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에 있어 더 큰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렸다. 원헬스가 추구하는 통합적인 내용과 방법이 감염병 대응에 최선의 효과라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였음에도 정작 국제 사회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 국제적으로 필요성을 널리 알리긴 하였으나 포괄적인 환경 시스템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수의학적 접근으로만 한정된 측면이 있다. 그 이유로 특히 기능이 분화된 사회체계의 특징을 손꼽을 수 있다. 사회체계의 폐쇄적인 특성 때문에 통합을 지향하는 원헬스가 기존 사회에서 쉽게 실행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동안의 원헬스에 대한 연구와 다학제적 협업, 고민은 경계 지어진 인간, 동물, 환경을 아우르는 것이 체계적으로 어렵다는 것에 더하여, 환경 문제는 미국, 중국과 같은 대국 간의 이권, 패권 싸움에서 언제나 간과되거나 축소되어 왔다는 문제점이 있다. 인간, 환경, 동물을 경계 짓는 범주에서 인간(물론 그 인간 또한 인종 · 민족 · 젠더 · 계층으로 구분되지만)의 중요성을 항상 우위에 두었던 것인데, 생태권 전체는 인간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필연적이다.

코로나19에서 보았듯이, 바이러스의 감염 증가는 인간종과 자연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종들 간의 관계와 관련이 있다. 인수공통전염병(zoonosis)과 기후변화, 항균제 내성은 상호 작용한다. 이러한 지식에 근거하여 ‘기후변화경감’(climate change mitigation, CCM)은 과학적 합의(거짓에 대한 진실)로부터 파생되었지만 다른 시스템으로 확산되면서 도덕적 공명으로 빠르게 분열되었다[3]. 이렇게 된 이유는 인간역사와 깊게 연루된다. 인간역사는 정신-의미-커뮤니케이션2)의 공진화 과정에 다름 아니며, 그 과정은 상호작용 중심의 분절적 분화, 상호작용과 조직의 대립으로서의 계층적 분화, 조직과 기능 체계들의 약진으로 두드러지는 기능적 분화의 발전으로 이루어졌다[4]. 특히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지역적으로는 세계사회로 확장되면서 그때까지 계층적으로 차별적인 사회[적] 질서(social order)에 따라 사회[의] 문제들(societal problems)을 처리하던 원리가, 문제해결 전문적인 기능들에 의해 처리되는 사회로 바뀌었으며, 근대사회는 사회체계의 기능 체계들로의 분화와 조직체계의 확산이 서로를 진작하며 발전되어 왔으므로 조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현상은 자기기능에만 전념한 결과들의 총합으로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근대사회의 다양한 의미영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조직체계와 근대사회의 기능 체계들이 서로 각축하는 데서 갈등이 비롯되었다는 점이다[4].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이와 같은 사회체계에 대한 이론은 원헬스 실행의 어려움을 이해하는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고는 원헬스에 관한 필자의 두 논문에 이은 후속 연구로, 자연적 개념의 원헬스(one health)와 실천 전략 개념의 원헬스(One Health) 간에 간격을 좁히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그 이유를 근대 이후 분화된 사회체계의 폐쇄성에서 찾고자 한다. 과거 연구에서 그 점에 관해 일부 논하였으나 중복적이더라도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연구 방법으로 루만이 사회체계이론으로 분석한 환경 문제를 토대로 하며, 미국문학자이자 생태주의자 스테이시 앨러이모(Stacy Alaimo)의 횡단-신체성(transcorporeality), 정치철학자 제인 베넷(Jane Bennett)의 생동하는 물질(vibrant matter) 개념을 통해 원헬스의 핵심에 다가가고자 한다.

복잡한 생태계를 인간, 환경, 동물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연결하여 하나의 ‘건강’이라는 목표에 수렴시키는 원헬스는 그 자체로 분명해 보이는 것과 달리, 방법론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건강을 정의하는 차원조차 다를 수 있다. 역사학자 린다 내시(Linda Nash)는 19세기 캘리포니아 주 정착민들을 예로 들어 그들이 생각한 건강 개념을 소개한 바 있다. 정착민들은 건강을 “현지 환경을 이해하는 훌륭한 방식으로 이용했으며,” “장소의 독기와 풍토병을 얘기하면서 그들의 환경 개입으로 발생하는 결과와 그들 몸에 나타날 결과들을 통제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5]. 즉 몸은 “투과성(permeability), 즉 내부와 외부 사이의 지속적인 교환으로, 유출과 유입으로,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밀접한 의존성으로 특징지어지는”[5] 것이다. 과거의 건강 개념은 인간, 환경, 동물의 분리가 아니라 ‘얽혀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Ⅱ. 본론

1. 생태적 위험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생태적 위험이란 사회라는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구조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환경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해수면 상승과 같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이것이 문제라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관찰된다. 사회는 작동적으로 폐쇄적인 체계이므로 커뮤니케이션의 혼란이나 교란에 의해서만 비로소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인데, 루만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의 의식, 인간의 삶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불가결한 전제 조건에 속하지만 이것은 생각에 의한 생각의 생산으로서 의식의 과정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은 아니라는 사실을 바꾸지 못하며, 의식에서 생태적 의식과 관련해 경험적으로 무엇이 일어나든 거기서부터 사회적으로 작용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멀다[6]. 사회적으로 커뮤니케이션 가능한 것의 명확한 경계가 의미하는 바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냐, 아니면 소음이냐’ 하는 것인데, 의식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발생할 때 여기에 적합한 구조에 순응하거나, 아니면 단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에 따라 제거되거나, 또는 커뮤니케이션 가능한 것으로 전환되는 소음만을 생성하므로 더 많은 환경 의식을 가지라는 경고와 호소는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태적 의식은 근심과 저항이나 자신의 환경을 적절히 취급하지 못하는 사회비판으로 쉽게 기운다. 즉 생태적 의식은 인간 활동에 의한 토지개발, 산림파괴, 에너지 사용, 오염 방출, 쓰레기 문제 등에 노출되어 있다는 식의 부정의 형태로서만 일반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루만의 주장이다. 교육을 통한 인간 개조도 도덕에 대한 호소도 그것이 사회적 문제로 전환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한 환경 문제는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코로나19가 증명하듯이, 선제적 대응을 둘러싼 판단과 선택, 결정이 초래한 인명 피해, 경제적 손실, 사회적 혼란을 겪은 다음에야 비로소 사회가 환경에 반응하는 것도 부정의 형태이다. 부정의 형태가 항상 나쁘지는 않더라도 토지개발, 산림파괴, 에너지 사용, 오염 방출, 쓰레기 문제 등과 같은 인간 활동이 원인이라는 점은 근심과 두려움, 나아가 무관심과 회피 등을 일반화 시킬 수 있다.

앨러이모가 주장한대로 “우리는 모든 생명체들이 몸과 장소의 고유한 신체적 교차로들의 일부로 존재한다고 상상할 수 있고” 이 ‘사실’이 “생명체들과 서식지들에 대한 배려의 윤리를 촉구한다”[7]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원헬스의 물질적 실재는 무시된다. 사회는 지난 70년 동안 모든 것이 변한 ‘대가속’(great acceleration)에 대해 여전히 인정하지 않거나 아니면 어떻게 다룰지 모르는 무력한 상태에 놓인 것 같다. 만약 ‘생산 회로의 한 쪽 끝에서는 숲의 복잡성이 야생 병원균을 억눌러준다. 그런데 벌목과 채굴과 집약적 농업은 복잡한 자연을 급격히 단순화시킨다’라고 했을 때 이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다 하더라도 방향을 제시할 수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원헬스는 각 기능 분화된 사회체계들이 다루고자 할 때 관찰되지도 않고 건드려지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의미의 세계에서는 누구도 원헬스의 실재와 접촉할 수 없다. 단지 해석될 뿐이다. 인간-환경-동물의 생태계는 각각이 이어진(‘-’), 또는 상호 얽힌 지구 환경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 외에, 각각의 원리를 세분화된 학문에서 별개의 지식으로 수용한다는 점에서 통합적으로 관찰되기 어렵다. 체계와 환경은 서로에 의해 상대화된 조건에서 생성되며, 모든 작동의 순간에 체계 분화를 실행한다[4].

그런데 생태의학(ecological medicine)을 “생태계, 인구, 공동체, 그리고 개인들의 보살핌과 건강을 조화시키기 위한 조사와 행동의 새로운 분야”로 정의하며, “지구 생태계의 건강이 모든 건강의 토대”[8]라고 할 때, 이것은 원헬스 개념과 다르지 않다. 갈래가 복잡한 전체에서 인간, 환경, 동물이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 ‘관계’에 핵심이 있다는 것이 이미 강조되고 있다. 기능이 분화된 폐쇄적인 각 체계가 자기준거적3)이라고 해도 환경과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며, 따라서 소음으로 작용하는데, 만약 이 소음이 코드에 의해 체계 내적으로 전환되면, 비로소 그것은 그 체계의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다[6]. 환경은 체계 내에서만 구성되며, 따라서 체계는 폐쇄적이면서도 개방적인 체계로서 간주된다. 작동적으로는 폐쇄적이지만 인지적으로는 개방적이라는 것이다. 즉 생태의학이 최근에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환경보건은 개인의 결정과 공공정책 · 규제 · 법집행 양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학 이외의 많은 전문가들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7].

그렇다 해도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과 동물, 환경의 인터페이스가 문제가 되는 만큼 학문간, 부처 간 커뮤니케이션과 공조가 핵심 작동 기제라고 했으나, 원헬스는 한 사회의 내적 문제만이 아니다. 폭넓은 환경 시스템을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국제적, 국가적 차원에서 최우선 과제이지만 어떤 이유로든 중요성은 축소될 수 있다. 인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데, 20세기 인간의 감염병 60%가 동물에서 유래하고, 신종 감염병 75%가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이지만 그동안 감염병 대비책이 거의 불가능했다는 사실은 어째서 은폐되는 것일까. 이는 여러모로 좌절할 상황이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인간은 겨우 ‘사실’에서 이어지는 ‘당위’조차도 폐쇄적인 작동원리를 갖는 경제, 법, 정치와 같은 사회체계의 목표에 좌지우지 되며, 국제 정세의 거대한 영향에 따라 우선순위를 얼마든지 바꾸는 손쉬운 존재다.

2. 기능 분화된 체계의 구조적 차원

에볼라(Ebola Virus), 지카 바이러스(Zika Virus), 신종 플루(Influenza A Virus Subtype H1N1),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CoV), 코로나19처럼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 균열에 원인이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사회적으로 점차 문제가 되어감에 따라 인간이 깊이 개입되어 있는 습식시장, 야생동물거래, 공장식 축산 시스템, 야생동물과 인간 또는 가축과의 접촉 등으로 인한 인과관계는 불분명한 지식으로 혼동을 겪고 있다.4) 최근 몇 년 사이에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에 대해 멧돼지가 매개체라는 지식정보는 정부가 전국의 멧돼지를 살처분하는 명목이 되었다. 멧돼지가 돈사의 돼지에게 이 질병을 옮긴다는 증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생명다양성재단의 주장과는 상위(相違)한다. 멧돼지가 집돼지를 감염시킨 것으로 의심되는 거의 유일한 국가인 러시아에서도 이는 전체 발병의 1.4%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은 운송 및 오염된 사료가 그 원인이었다는 것이다[10]. 이렇게 엇갈리는 주장이 지속된다면, 궁극적인 효력을 위해 정부가 수집하는 지식 정보 또한 시점마다 면밀한 재확인이 필요하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는 “어떤 분할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혼합물임을 알아야 한다”[11]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인간이 분별 가능한 범위에서 인간, 환경, 동물 세 개의 카테고리는 먼저 자기 작동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그렇게 식별된다. 포괄적인 생태계의 문제를 공동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는 것은 생물학적 체계, 심리적 체계, 사회적 체계 그리고 경제, 정치, 법, 학문, 종교, 교육과 같은 부분 체계를 통해야 한다. ‘정보’가 있고 ‘통보’를 선택하는 사건들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각각 하나의 기능만을 목표로 삼고 있는 사회의 한 부분 체계를 통해 다루어질 수 있다. 경제 내부에서 생산 비용, 즉 세금 또는 재화 선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생태적으로 바람직한 의미에서 변화가 불가능하다[6]. 생태적 계몽, 인과관계의 더 나은 명료성 및 ‘의식 변화’ 또는 ‘가치 변화’를 계산하고 행동하는 것과 같은 변화가 경제에서 얼마나 작용할지, 그리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어떤 부수 결과를 유발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치 또한 경제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한 부분 체계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사회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 따라서 법은 입법이 전형적으로 정치적 사전 타협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치와 깊은 관계에 놓여 있다 해도 법 특성에 근거해서만 법을, 규범에 근거해서만 규범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재판 기관에서 자신의 자기생산 조건이 엄수되는 것을 감시하는 자기준거적으로 폐쇄적인 체계인 것이다. 따라서 법 역시 자체의 고유하고 체계 특수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환경에 의해 초래된 사회의 위험에 반응하며, 어떤 것도 위험의 관점에서 적절한 균형이나 반응의 인과적 성공을 사전에 보장하지 않는다[6]. 생태적 문제들을 다룰 때에도 법은 자신의 고유 기능에, 무엇보다도 자신의 편에서 복잡성과의 이러한 관계를 프로그램화하는 고유의 구분에 속박되어 있는데, 환경법의 경우 새로운 종류의 문제 제기를 가지고 공간질서법, 관할법, 영업법 등과 같은 세분화된 법의 영역으로 파고들어가지만 그와 같은 편입이 성공하지 않는 한 새롭게 바뀐 것은 추상적인 채로, 단순한 문제의식인 채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6].

과학이 환경의 심각성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힘은 없어 보인다. 사회체계 각각은 관점주의적이고 해석의 방식들이 다르다. 심지어 과학에서만 하더라도 물리학자와 화학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생태적 문제에 대해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은 사회적 반응이지만 문제성 자체의 본질은 타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체계/환경-관계에 있다. 그러나 또한 생태적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게, 너무나 상호 의존적으로, 너무나 상황 의존적으로, 너무나 예측 불가능하게 급작스러운 대참사 같은 형태 변화에 의해 결정된다[6].

학문 분야들은, 루만에 따르면[6], 좀 더 느슨하고 확장 가능하며 이론적으로 통합할 수 없는 결합으로 협력하는데, 이 결합은 필요할 경우 분열, 세분화 또는 개조를 통해 계속 넓혀질 수 있다. 또한 학문적 분석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증폭하는 데 사용되며, 해결된 문제 또는 해결 전망이 있는 문제에 근거하면서 계속 질문하는 것이다. 학문 자체도 마찬가지로 고유한 구조에 의존하는 관찰하는 체계일 뿐인 것이다. 환경이라는 주제를 얻기 위해, 학문체계도 체계의 개방성과 학습 능력을 자신의 자기생산적 폐쇄성에 신세지고 있으며, 스스로 구조화된 반향을 향해 축소되어 있다고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학문체계는 정보를 학문적으로 관련된 것으로서 인식할 수 없고, 정보를 참 또는 거짓으로서 분류할 수 없으며, 이론 관계를 정리함으로써 정보에 자기 스스로를 넘어 뜻할 수 있는 관련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식이다[6]. 요약하면, 어떤 기능 체계도 다른 것을 대리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떤 기능 체계도 다른 것을 대체하거나 부담을 줄이기만 할 수도 없다. 환경적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어떠한 조종 중심도, 따라서 어떠한 중심 기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파악 가능해진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는 정점도 중심도 없이 작동한다. 반향은 쪼개져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너무 적을 수 밖에 없다[12].

기능 분화된 체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예로, 분리의 학문인 의학에서 질병을 행하는 절차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인간 건강을 취급하는 의학만 해도 개별적인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일반화를 용인하기 어렵다[13]. 네덜란드의 인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과학기술학자 아네마리 몰(Annemarie Mol)은 문제, 용어, 목표들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무엇이 바뀌는지를 추적한다. 나의 몸은 하나지만 경계 지어진 장기에 따라 하나의 전문 분과에서 관찰되는 동시에 그 경계 너머에서 의심될만한 것이 관찰되면 다른 전문 분과로 보내진다.5) 즉 신체의 개별적인 다양성을 다루기 위해 신체 기관에 따라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진료, 진단, 치료를 이행하는 것이다. 신체 기관 간 분리 체계는 해당 질병을 나누어 집중하면서도 인과적 효과들을 통과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환자는 의사를 찾기 전에 아직 ‘이’ 병을 갖지 않지만, 질병/병의 구분 없이 의사와 환자가 진찰실에서 함께 ‘일’할 때, 그들은 공동으로 환자의 통증 부위라는 실재에 형체를 부여한다. 외래진료실에서 혈관외과의들은 환자들과 상호작용하며, 질병은 현미경을 통해 가시화된다. 그러나 외래진료실과 병리학과에서 질병은 다르게 행해진다. 즉 다리를 절단한 환자나 수술 받은 환자의 신체에서 작은 부분이 병리학과로 보내지면 현미경으로 관찰 받는 환자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다. 현미경에 의한 시각화된 ‘사실’은 비로소 ‘객관성’을 가질 수 있다. 이때 병원의 분과가 질병을 행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환자 몸의 감수성을 파악하는 임상과 시각화된 검사 간의 우열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분과 간의 상호작용임에는 분명하다.6)

또 다른 예로, 몰은 트랜스섹슈얼 신체에 대해 다른 젠더인 사람과 다른 젠더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 의해 신체는 변경되며, 변경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14]. 새로운 정체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뿐만 아니라 의학 전문가들에 의해 변경되어야만 하는데, ‘다른 젠더’는 곧 정신과 의사가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잘못된 신체’는 재분비학적으로 ‘다른 정상’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일관성 있는 정체성을 가지려면 올바른 성을 가진 몸이 필요한데, 신체는 사회적 수행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다. 수행들은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물질적이기도 하다. 트랜스섹슈얼 신체가 개별적인 몸의 주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즉 몸은 구성(construction)된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신체는 하나가 아니며, 분화된 체계 각각(정신건강의학과, 성형외과, 비뇨의학과, 산부인과, 내분비내과, 가정의학과)7)의 긴밀한 개입에 의해 구성이 된다. 분화된 체계는 각 분과의 집중과 몰두를 끌어낸다는 점이 인정되지만 체계 간 상호작용, 상호의존이 절실한 이유다.

3. 원헬스와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기능 체계의 대체 불가능성은 상호의존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 루만의 주장이다. 경계는 “가능성을 배제하거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부여하고 지지하며 보호하는 장치”[6]라는 점에서 기능 분화된 체계는 폐쇄성만 있지 않다. 각 체계의 기능 대체 불가능성이 오히려 증대하는 상호의존으로 상쇄된다는 것이다. 기능 체계들이 서로를 대체할 수 없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한 체계의 문제는 다른 체계로 지속해서 이동하며, 이렇게 하여 독립성과 상호의존성, 독자성과 의존성이 동시에 증가하며 이러한 증가의 작동적이고 구조적인 균형이 개별적인 체계를 기대하고 통제할 수 없는 고유 복잡성으로 팽창시킨다[6]. 기능 체계가 고유의 자기 생산, 고유의 코드 및 고유의 프로그램의 토대에서 분화독립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자기 환경과의 관계에서 사회 자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교란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체계가 각각의 고유의 코드에 따라 처리된다 하더라도-아니 그렇기 때문에-한 체계의 소란이 다른 체계로 전달될 개연성은 높다. 동일한 것을 정치와 법의 관계에, 학문과 의학의 관계에 그리고 다수의 다른 예들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루만의 생각이다. 한 체계에 있어서 조그마한 변화는 반향에 의해 다른 체계에서 막대한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위험을 이해한다는 것은 울리히 벡(Ulrich Beck)에 따르면[15], 가설과 실험, 측정 장치와 같은 과학의 ‘감각기관’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기관을 통해서만이 가시화되고, 또 위험요인으로 분류도 가능하다. 또한 다르면서 실현되지 못한 선택은 ‘잠재화되고,’ 단순히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전환하며, 바로 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으로 재활성화하기 위해 준비한다[6].

프로그램은 체계의 개방성을 위한 개념으로, 체계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환경에 반응한다. 프로그램은 한편으로는 한 기능 체계에 배정된 요구를 어느 정도 ‘구체화하는 것’(또는 ‘조작하는 것’)을 가능케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 때문에 일정한 범위 안에서 변경 가능하다. 프로그램의 차원에서 한 체계는 자신의 코드에 의해 확정된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6]. 경제체계는 수익성 유무(코드)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을 경제 특화적인 것으로 만들지만, 제품과 상품이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환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사회적 욕구에 반응하고, 정치체계는 권력을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코드)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을 정치 특화적으로 만들지만, 다양한 정책들이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시민들의 정치적 욕구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 개인들도 위험을 판단하기 위해, 또 자아의 정체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지식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7]. 먼저, 환경의 위험을 익숙한 방식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자연’으로 표현하는 오류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명백한 자연재해가 일으킨 대혼란이 얼마나 참혹한지에 상관없이 오직 인간의 자만심, 탐욕, 나태가 드러날 수 있는 곳에서만 ‘자연의 복수’는 등장한다[13]. 즉 인간이 재해에 가담하지 않는 한 자연재해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에게 즉각적인 ‘나쁜’ 영향이 있다고 판단될 때 환경의 위험을 각성하고 행동하는데 대한 제대로 된 사유 역시 필요하다. 인간의 건강이 비인간 생명체들을 희생해서 구입할 수 있다는 앨러이모의 통찰이 절실한 이유다. 한국처럼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사계절을 잠식하는 곳에서 가정용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으로 비칠 것이다. 반대로, 가정용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는 것이 식물과 동물, 서식지, 생태계를 손상시키는 전지구적 기후변화를 가속화 한다는 점에서 이기적인 행위라고 앨러이모는 말한다. 우리 자신만을 구하려는 방공호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7]. 베넷이 예로 든 슬로푸드(slow food) 운동8) 또한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의 홈페이지(https://www.slowfood.or.kr/)는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을 모든 이에게,” “다양하고 지속가능한 푸드시스템의 복원,”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기후위기를 막아내는 정의로운 활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환경보호주의라는 기치 아래 맛있는 음식, 낭비 없는 에너지 사용, 지구에 대한 사랑 같은 것들이 슬로푸드의 관심사들이었다[16]. 그러나 슬로푸드는 인간의 의도만이 유일한 행위자라거나 언제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제한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17]. 슬로푸드 프로그램은 음식을 준비하고 음미하기 위한 시간만이 아니라, 음식이 “시장에 도달하기 이전에 선행하는 경제, 노동, 농업, 문화, 배송과 관련된 사건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며,” 음식이 “자기 스스로 변화하며 소산하는 물질성으로,” “우리가 되어가는 것에 진입하는 중요한 참여자”[16]라는 인식으로도 나아가게끔 한다. 어떤 존재하는 것, 즉 생명체, 생태계, 기후학적 패턴, 해류 등이 단순히 저기 바깥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7]. 이와 같은 사고의 전환이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유된 개인의 욕구가 정치를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정치가 생태적 관심사의 첫 수신처가 될 것이라는 개연성은 매우 높은데, 정치 체계가 여기에서 직접적으로는 어떤 것도 달성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생태적 주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이곳에서 깃들고 퍼져나갈 개연성은 그만큼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6]. 그러나 라투르의 지적대로 우리가 놀라울 정도로 전례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 시대 정치의 공허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18]. 다시 말해, 생태적 문제를 정치로 가져오면 정치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적은 것만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정치체계는 정부를 바꾸어, 정당을 바꾸어, 경우에 따라 헌법을 개정해 시험해보려는 지속적인 유혹에 자기 자신을 빠뜨리지만, 이러한 관찰과 더불어 이미 정치의 특수한 반향 능력과 그 한계에 대한 분석의 한가운데에 있다[6].

이와 같은 해석은 인간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공공의료와 동물보건 분야의 협력 강화를 통한 감염병 조기경보 및 대응 시스템 개발의 시급함을 강조하지만, 궁극적으로 이것은 인간중심주의, 즉 인간의 협치 정치, 의사소통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과학의 가설을 따르지 않는 비인간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19]. 따라서 베넷은 인간, 비인간 모두를 생동하는 물질로 해석하며, 앨러이모는 횡단-신체성을 이야기한다. 환경보호의 담론 보다 인간문화의 토대로서 환경이 정의된다면, 물질성은 인간, 생물군, 무생물군 사이의 관계들이 수평화하는 경향을 가질 수 있다[16]. 즉 인간과 비인간의 복잡한 얽힘 그 자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되는 것이 선행된다.

전략과 프로그램으로 원헬스가 사회의 각 체계 내부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유와 인식이 필요하다. ‘횡단-신체성’과 ‘생동하는 물질’과 같은 신개념은 언어가 바로 세계를 규명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새로운 사유의 방법이 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성향, 기분, 그리고 문화의 총체에도 깊이 관여한다.9) 생태적 사유(ecological thinking)는 “자연과 인간 본성을 상호적으로 연관되고 내부 작용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데”[20], 이에 대해 앨러이모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는’ 세계에서 인간 몸은 물질세계, 즉 생물학적 생명체, 생태계, 생체이물질, 그리고 인간이 만든 물질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덧붙인다[7]. 마주하는 모든 장소, 모든 공기, 모든 음식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통과하는 횡단-신체성은 문화와 자연의 뒤얽힘의 현상으로, 이를 드러내는 개념적 어휘를 가져옴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은 자극될 것이고, 이와 발맞춰 “새로운 미시정치적이고 미시사회적인 실천, 새로운 연대, 새로운 우아함이 무의식 구성체들에 대한 새로운 분석적 실천 및 미적 실천과 결합하여 조직되는 것”[16]으로써 원헬스는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Ⅲ. 결론

원헬스는 그 방식에 있어 국제기구로부터 국가, 그리고 자국 기관 순의 톱다운 방식으로 설치를 권고했다는 점에서 사회체계의 특성상 작동이 어렵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개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커뮤니케이션 할 기회가 되었다. 국내 언론 매체만도 2019년 이후로 원헬스에 관한 담론을 대량 생산하였다. 다만, 지금까지 이런저런 환경의 위험이 강조되면서 (원헬스와 같은) 특정 계획이 국제적으로 가동되고 각국으로 통보, 설치까지는 되었으나 국내에서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목적이 각기 다른 것처럼 이 모든 조직체계를 아우르는 정부의 생태적 사유는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없다. 정부가 생태적 사유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데, 이는 정치를 포함한 각 체계가 고유한 지식을 활용할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 체계는 다른 체계와 언어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앞서 보았듯이, 각 체계의 고유성 때문에 다른 체계와의 상호의존이 발생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으나, 그것은 각 체계 자체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원헬스 개념이 실질적인 활동, 다시 말해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환경의 위험으로부터 두려움에서 발족된 것이라면, 이것은 사회에 소음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또 다른 개념, 형태의 과잉은 아닐까? 원헬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환경에 대한 다른 수많은 수사적 표현들과는 달리, 인간, 동물, 환경이 인간에 의해 경계 지어져 있었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인식시킨다. 그리고 인간, 동물, 환경이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투과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앨러이모의 횡단-신체성이나 베넷의 생동하는 물질 개념보다 현실 감각으로도 누구에게나 인식 가능하며, 따로따로 분리되어 있는 체계를 하나로 모으면 된다는 접근을 용이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다음 절차는 일반 개인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원헬스가 체계 내적으로 자리잡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환경적 지식, 즉 다른 종, 군 또는 생태계에 대한 상관관계를 이미 알고 있는 연구자들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중복적인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반복과 중복, 중첩은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문제를 다른 쪽으로 돌려서 원헬스가 효과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다고 결론짓고 그 원인을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수렴시키는 사회과학자들의 목소리는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지구가 물질의 총량으로 보나 토지 사용으로 보나 하나의 거대한 산업적 농장”[21]이라고 모든 관심을 자본의 문제만으로 이동시킬 때 원헬스는 소규모 운동으로 그칠 가능성이 더 크다. 비록 원헬스 개념이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지침”[22]이라고 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제한적으로라도 정보 공유, 접근성 개방, 공중 보건에 대한 인식 제고, 교육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효력을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10)

물론 방법론에 있어서는 앞서 본 것처럼 복잡하거나 핵심을 가린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 원헬스의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건강’은 상당히 보건의료적으로 느껴지며, 질병 없는 상태로 조명된다. 그러나 그만큼 또 추상적이다. 인간의 행위성이 동물, 식물,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역으로 동물, 식물이 먹거리가 되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인간과 동물, 식물이 생태계 안에서 오염된 공기와 화학 물질들의 순환 속에서 병들었다는 사실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생태적 사유를 ‘숙명적으로’ 임해야 하는 이유다. 생태적 사유는 순수한 생태계의 건강을 전제하면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까?’ 또는 ‘누군가에 의해, 아니면 시스템에 의해 되돌려질까?’ 하는 질문에 이어 결국 인간이 해결할 것이라는 희망에서 출발하여 일방적인 인간 활동을 재강조하는 것에 머물 수도 있다. ‘나의 행위를 명확하게 제어하는 것으로 해결은 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나의 의식을 방해한다. 결국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생태계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19세기 의학에서 “몸과 땅은 서로 내밀하게 엮여 있었”[7]던 반면, 근대 의학의 몸에 대한 인식은 이러한 연결들을 절단했다는 사실은 결국 인간과 환경, 동물이 상호 작용한다는 지식 정보를 의학 분야가 외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횡단-신체적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환경 질병은 몸과 땅의 내밀한 연결들을 절단한다고 해서 절단되지 않는 몸의 투과성을 보여준다. 경제가, 법이, 학문이, 정치가, 종교가, 교육이 각각의 체계 내 언어가 다르다 하더라도, 따라서 폐쇄적이라 해도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계몽만이 답이다. 다른 체계와의 상호작용, 상호의존은 결국 “주체성으로 경직되는 경향이 없는 힘의 장을 형성하는” 정동(affect)11)의 문제이자 윤리의 문제이다. 지식과 권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무관할 수 없는 의학 분야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가 특히 필요한 이유다.

Notes

* 이 논문은 2020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입니다(NRF-2020S1A5B8097404).

*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NRF-2020S1A5B8097404).

1)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선행된 연구 논문, 인간-동물-환경의 인터페이스 증가에 따른 각 학문 분과의 윤리와 소통의 필요성. 한국의료윤리학회지 2021;24(1):31-43과 보건의료에서 원헬스에 대한 인식 및 적용의 필요성. 한국의료윤리학회지 2022;25(1):43-57을 참고할 것.

2) 이철은 ‘소통’으로 번역하였으나 ‘소통’은 ‘막히지 않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Communication은 완전하지 않고 다만 잠정적인 ‘상호 이해’(소통, 상호 이해, 통신, 전언, 전달, 전갈 등)라는 점을 고려하여 본고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표기하겠다.

3) 자기준거 개념은 자신의 작동을 통해 자기 자신과 관련되는 체계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컫는다. 자기준거적 체계들은 체계의 서로 다른 상태에 따라 동일한 투입이 완전히 다른 결과들을 초래할 수 있다[9].

4) 자세한 내용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멧돼지 이슈, 생명다양성재단 뉴스레터 하늘다람쥐 28집(2022)을 참고할 것. https://www.diversityinlife.org/news/newsletter28

5) 몰이 의학이 신체에 대해 다루는 방식을 분석한 바디 멀티플(The Body Multiple, 2003)에서 혈관외과의는 환자의 보행거리와 신체검진의 결과를 책상 위 파일에 기록했다. 둘 다 심각해 보인다. 임상 진단은 긍정적이다(긍정적: 질병이 있음, 부정적: 질병이 발견되지 않음). 환자는 걸을 때 통증이 있다고 말했고, 외과의는 여러 동맥에서 좋지 않은 맥박을 찾아냈다. Z병원의 일반적인 진행과정에서 이제 진단 기술이 등장한다. 외과의는 혈관검사실이 근무 중인지 전화로 확인하고, 테크니션에게 양 다리의 팔과 발목 혈압을 체크하도록 요청하는 메모를 적어서 이를 환자에게 건네고 말한다. “자, 끝나면 여기로 다시 돌아오세요.” 이 환자를 따라가 보면 혈관 질병을 진단하고 설명하는 다른 방식을 보게 된다[14].

6) 이 시각화된 사실조차 ‘훈련받은 판단’에 의해 가능하다. 질병의 패턴을 해석하고 여기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낼 수 있는 훈련된 감각이 통합되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로레인 대스턴(Lorraine Daston)은 과학의 객관성을 다룬 객관성(Objectivity, 2007)에서 19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기계적 객관성’(mechanical objectivity)을 소개한다. 기계적 객관성은 과학자가 자신 특유의 개인적인 성향과 주관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마치 기계와 같이 일정하고 규칙적인 방식으로 연구를 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기계적 객관성의 등장이 과학자가 화가와 협업해 자연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18세기 전통이 새롭게 등장한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술로 대체되면서 더 강화되었다는 것이다[13]. 이로서 과학자의 개인적인 흔적은 모두 지워졌다. 그러나 막상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등장한 것은 기계적 객관성의 전통과 자연의 패턴을 해석하고 여기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낼 수 있는 훈련된 감각을 통합한 ‘훈련받은 판단’이었다.

7)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운영 중인 젠더 클리닉의 다학제적 젠더 팀에 포함된 의학 분과이다.

8)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타났다.

9) ‘인간의 성향, 기분, 그리고 문화적 총체’는 동일선상의 맥락은 아니지만 베넷의 생동하는 물질에서 빌려온 어휘임을 밝힌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경제의 녹색화, 부의 재분배, 권리의 강화와 확장은 그것들의 효과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인간의 성향, 기분, 그리고 문화의 총체(ensemble)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16].

10) 원헬스 교육에 대해서는 미국을 사례로 한 로레인 도허티(Lorraine Docherty)와 패트리샤 폴리(Patricia L. Foley)의 연구 논문, Survey of One Health programs in U.S. medical schools and development of a novel one health elective for medical students. One Health 2021;12:100231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논문, 보건의료에서 원헬스에 대한 인식 및 적용의 필요성. 한국의료윤리학회지 2022;25(1):43-57을 참고할 것.

11) 데이비드 콜(David Cole)의 정동 개념(Affective literacy. ALEA/AATE National Conference, 2005)은 제인 베넷의 다음 인용[16]을 참조하였다. “정동은 하나의 신체가 다른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묘사하는 입자-힘들의 충돌을 수반한다. 이것은 주관적인 감정 이전에(또는 주관적인 감정 없이) 힘을 느끼는 능력으로 설명될 수 있다. (…) 정동은 주체성으로 경직되는 경향이 없는 힘의 장을 형성한다.”

Conflict of Interest

There are no potential conflicts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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