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022년 6월 15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이 발의되었다.1) 개정 안의 골자는 ‘조력존엄사’에 대한 항목을 추가하는 것이다. 의안 원문에 따르면, 최근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임종 과정의 환자가 아니라도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다면 본인 의사 로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기에 ‘조력존엄사’ 도입을 통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환자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증진하기 위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제안 이유이다.
한국 사회에서 ‘조력존엄사’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는 개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개정안의 내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개정안에 대해 “의사조력을 통한 자살이라는 용어를 조력 존엄사라는 용어로 순화시켰을 뿐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살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질 높은 생애말기 돌봄이 선행” 되어야 한다고 입장문을 발표하였다.2) 또한 대한 의사협회도 조력존엄사의 법제화는 시기상조임을 지적하였다.3)
개정안에 대해서는 상술한 의견 이외에도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개정안에서 인용된 ‘대다 수 한국인은 안락사 법제화에 찬성한다’라는 여론 조사결과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안락사 법제화에 찬성하는 이유는 ‘남은 삶 이 무의미(30.8%)’, ‘가족 고통과 부담(14.8%)’, ‘의료비 및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부담(4.6%)’ 등 인데,4) 이는 “조력자살 또는 안락사에 찬성한 것이 아니라, 노화나 질병(또는 장애) 상태에서 그저 자살하고 싶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읽어야 한 다”는 것이다.5) 또한, 안락사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반대 의견, 의사가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의사의 역할과 배치된다는 비판의견도 제기되었다.
과연 현재 한국 사회에서 안락사 합법화가 필요한 것일까? 필요하다면 법제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가? 안락사의 법제화가 시기상조이거나 혹은 필요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 인가?
본 연구는 개정안 내용을 중심으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안락사 법제화가 갖는 함의에 대해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안락사라는 개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 안락사를 법제화한 국가나 지역의 사례에 대해 검토한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기존의 안락사 논의에 대해 개괄한 후 이번 개정안의 특징을 분석한다. 이러한 논의를 기반으로 현재 한국에서 안락사 법제화의 필요성에 대해 고찰한다.
Ⅱ. 본 논문에서 사용하는 안락사의 의미
안락사(安樂死)는 문자 그대로 안락한 죽음, 편 안한 죽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안락사에 대응되는 영어 단어 euthanasia도 좋은 죽음이라는 의미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천수를 누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병과 고통 없이 잠들 듯 죽는 것을 좋은 죽음, 편안한 죽음이라고 하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편안한 죽음, 좋은 죽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안락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죽음과 다르다. 현실에서 개선이 매우 어려운 질병으로 고통에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는 환자가 그 병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기 위한 최후 수단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고통의 제거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소생할 가망이 없는 사람을 마취약 주사 등 고통이 없는 방법으로 사망하게 하는”6) 안락사는 최종적으로 치사약을 누가 투여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치사약을 투여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환자 스스로 투약하여 사망하는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 PAS)’7)이다. 이미 안락사를 법제화한 국가들에서 허용하고 있는 형태도 이 두 가지이다. 본 논문은 안락사를 합법화한 해외의 사례를 통해 한국의 개정안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두 가지 패턴에만 집중해서 논의를 진행한다. 특히 이번 개정안의 대상인 의사조력자살에 한정해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Ⅲ. 해외의 안락사 합법화 사례
이 장에서는 안락사를 법제화한 국가 혹은 지역의 안락사 법의 특징을 개괄한다.
오리건주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의사조력자살 이 합법화된 주이다. 그런데 법률명에는 의사조력 자살 대신 존엄사(death with dignity)라는 단어가 쓰였다. 오리건주 이외에 메인주, 워싱턴주의 법률에서 존엄사라는 명칭을 쓴다. 이외에 뉴저지주는 ‘말기환자의 죽음에 대한 의료적 지원(Medical Aid in Dying for the Terminally Ill Act)’, 캘리포 니아주와 콜로라도주는 ‘말기 선택(End of Life Option Ac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표현은 각기 다르지만 지칭하는 것은, 여명이 6개월 가량이라는 진단을 받은 말기(terminal) 성인 환자 본인이 죽음을 요청하면, 법이 정한 절차 거쳐 환자가 치사약을 제공받고 사망에 이르는 행위이다.
오리건주의 경우 적격환자의 요건은 오리건주에 거주하는9) 성인으로, 진찰의와 상담의의 합리적인 의학적 판단에서 볼 때 6개월 내 사망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는 불치병을 앓고 있어야 한다. 환자는 의사에게 구두로 치사약을 처방해달라고 요청하고 최소 15일 후 다시 정해진 양식에 따라 서면으로 요청해야 한다. 환자가 요청서에 서명하고 날짜를 기입할 때는 최소 2명의 증인이 입회해서 환자가 의사소통능력이 있고 의료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강요 때문에 서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서면 요청 후 최소 48시간 이 경과해야 의사는 처방전을 작성할 수 있다.
의사는 환자에게 질병에 대한 의학적 진단과 예 후, 처방될 치사약 복용과 관련된 잠재적 위험, 처방될 치사약을 복용했을 때 예상되는 결과, 호스피스·완화의료 등의 다른 대안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또한, 환자가 처방을 요청한 것을 친 족에게 알릴 것을 권고하고, 약을 복용할 때 누군가가 지켜보아야 하며 공공장소에서는 복용하지 말 것을 지시한다.
환자가 판단 장애를 유발하는 정신의학적 또는 심리적 장애나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주치의는 상담을 의뢰해야 하며, 환자가 그러한 상태가 아니라는 상담자의 판단이 있을 때까지 약물을 처방해서는 안 된다. 환자는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신의 요청을 철회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의사조력 자살 프로세스에 대한 상세한 규정이 있다.
이하 서술할 각국의 안락사법 허용조항도 오리 건주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므로 특징적인 부분만 서술하도록 하겠다.
네덜란드에서는 1971년 포스트마 사건을 계기 로 안락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포스트마 사건은 의사인 딸[Geertruida Postma]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모르핀 등을 주사하여 사망하게 한 사건이다. 뇌출혈로 쓰러진 후 부분적인 마비, 언어장애, 우울증 등을 가지고 있었던 78세의 어머니가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였고 누차 딸에게 죽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결국, 딸은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준 후 스스로 경찰에 자수하였다. 기소된 포스트마를 구하기 위해 서명운동이 일어났고 결과적으로 포스트마는 1주일 징역에 집행 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네덜란드 사회는 법령과 제도를 정비하였고 1984년부터는 안락사의 비범죄화 즉 안락사를 시행한 의사의 행위에 대한 불기소처분을 해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2001년 조력자살법이 제정되어 2002년부터 시행되었다.
적격환자의 요건 중 앞서 언급한 미국 오리건 및 뉴저지, 캘리포니아 등에는 보이지 않는 조항은, 환자에게 ‘지속적이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2004년에는 적격환자 요건에 대한 법률개정을 통해 의사의 판단이 있으면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12세 이하 어린이의 안락사도 가능하도록 범위를 넓혔다.
2002년부터 시행된 벨기에의 안락사법은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한 안락사도 허용한다. 또한, 2014년 개정을 통해 18 세 이하 미성년자도 본인 요청과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으면 안락사가 가능하도록 요건이 확대되었다.
2014년에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범죄자에게 안락사를 허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강간과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50대 남성이 “견딜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라며 안락사를 신청했는데,11)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졌다. 안락사 가능 여부는 의학적인 판단과 본인의 요청이 필요할 뿐, 대상자 본인이 범죄자인지 여부는 판단기준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캐나다에서는 2018년, 스위스에서는 2020년부터 재소자에 대한 안락사가 허용되었다.
스위스는 안락사가 가능한 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외국인의 안락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안락사를 합법화하고 있는 국가나 미국의 주의 경우 해당 국가나 지역의 주 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스위스의 경우는 외 국인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스위스는 외국인도 ‘합법적으로’ 안락사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스위스에는 안락사를 규정한 법률은 없다.
안락사 합법화의 중요한 목적은 안락사를 시행한 의사를 형법의 살인죄(적극적 안락사) 혹은 자살방조죄(의사조력자살)로 기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스위스는 안락사의 법제화가 아닌 형법 조 항의 해석을 통해 안락사를 시행한 의사를 기소하지 않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스위스 형법 115조는 ‘이기적인 동기’에 의한 자살조력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이기적이지 않은 동기에 의한 자살조력이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사가 의학적인 판단 및 환자를 돕겠다는 이타적인 동기를 가지고, 환자 스스로가 죽음을 원한다는 증거가 있으면, 죽음을 원한 환자를 도운 의사는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12)
하지만 이타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어떻게 입증 하는가? 실제로 스위스의 조력자살 민간단체 중 가장 잘 알려진 디그니타스(Dignitas)는 전 세계 89개국 9천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로 매년 200여 명이 이 단체를 통해 의사조력 자살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단체는 조력자살의 대가로 환자에게 비용을 받는다. 이 점이 이기적인 목적이라고 해서 단체의 창설자가 기소된 사 건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앞서 서술했듯이 스위스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의사조력자살도 허용하고 있는데 주로 독일 등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은 인접 국민이 이용한다고 알 려졌다. 2019년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스위스의 단체를 통해 조력자살을 택한 것이 보도되며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13)
2018년에는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David Goodall)이 ‘고령’을 이유로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삶을 마감했는데, 이는 스위스에서 2006년부터 신체적 질병뿐 아니라 우울, 무기력, 고령 등을 이유로 한 안락사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시행된 캐나다의 죽음에 대한 의료 지원법은 극히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또한 의사가 아닌 임상간호사(nurse practitioner)도 환자의 죽음에 조력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2020년에는 관련 규정의 완화로 장기이식을 전제로 하는 조력자살도 허용이 되었고 2023년부터는 질병에 의해 죽음이 임박한 환자라는 조건도 폐지되고 만성적 질환이나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이나 미성년자도 조력자 살의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이상 살펴본 해외 사례들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먼저 각기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벨기에를 비롯해 룩셈부르크(Law on euthanasia and assisted suicide), 스페인(Organic Law for the regulation of euthanasia)의 경우 안락사(euthanasia)라는 용어를, 네덜란드는 조력자살(assisted suicide), 오리건주 등 미국의 일부 주는 존엄사(death with dignity), 캐나다는 죽음에 대한 의료지원(medical assistance in dying)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벨기에의 경우는 직접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 둘 다 허용하고 있기에 이 둘을 포괄하는 안락사라는 용어를 쓴 것으로 추정 된다. 네덜란드는 허용조건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한편 미국의 존엄사라는 표현은 존엄이라는 긍정적인 가치판단이 개입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캐나다는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자살이나 존엄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극히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국가별로 사용한 용어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각 용어가 지칭하고 있는 행위는 동일하며 최종적으로 투약하는 주체가 의료인인지 환자인지의 차이가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의사조력자살을 요청할 수 있는 적격환자의 요건에 대한 미묘한 차이이다. 오리건주 등 미국의 주들의 경우는 여명이 6개월 이내 남은 말기환자라는 조건을 달고 있는데 비해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경우는 지속적이고 극심한 고통이 있는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해결책이 없을 때라는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주들의 경우는 ‘여명’, 네덜란드나 벨기에는 ‘고통’이 중요한 판단 요소인 것이다. 즉 미국 주들의 경우는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 경우도 적격환자의 요건을 갖추는 반면 네덜란드나 벨기에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이 필수요건이라는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는 합법화 후 개 정을 거치며 안락사가 가능한 환자의 범위가 확장 되었다는 점이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경우 당초 성인만 대상으로 했던 것을 개정을 통해 미성년자에게까지 확대하였다. 또 스위스는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불치병 환자에 한정하던 것을 정신적인 고통이나 무기력, 고령까지 허용하였다. 또한 비 교적 최근에 안락사가 입법화된 캐나다는 의사 이외에도 임상간호사도 안락사를 시행할 수 있게 규 정하였고, 개정을 통해 안락사 대상 환자의 범위를 확장해가고 있다. 안락사를 합법화한 국가들이 법률개정을 통해 더 많은 환자가 의료의 힘을 빌려 스스로 생명을 끊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현실은 안락사 합법화 논의를 시작한 한국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Ⅳ. 한국에서의 안락사 논의와 이번 개정 안의 특징
여기서는 한국에서 안락사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알려진 계기에 대해 서술하고 안락사에 대한 관심 속에 등장한 이번 개정안의 특징에 대해 살펴본다. 특히 전 절에서 언급한 해외의 안락사 합법화 사례의 특징에 주목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한국의 신문 지상에 ‘안락사’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5년 카렌 퀸란(Karen Quinlan) 사건의 보도를 통해서이다.14) 이전에도 나치의 안락사, 동물의 안락사 등과 같은 보도에서 안락사라는 용어가 등장하였지만, 소생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를 적극적 혹은 소극적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에서의 안락사라는 용어 사용이 증가하게 된 계기는 카렌 퀸란 사건에 대한 보도를 통해서였다.15) 이외에도 네덜란드의 포스트 마 사건, 1976년 도쿄에서 열린 안락사 국제회의 등에 대해서도 보도되었다.16)
그러던 중 1981년 한국에서 최초의 ‘안락사’ 사 건이 발생한다. 말기 간암 환자로 당시로서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던 남편을 의사인 부인 이 수면제, 진정제 등 약물을 주입하여 사망하게 한 사건이다. 일부 언론은 “간암 선고받은 박희범 씨(충남대 전 총장) 부인 남편 안락사 시키고 자살”(조선일보 1981. 9. 25.), “안락사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박사 부부”(경향신문 1981. 9. 26.)라는 제목을 달며 ‘안락사’라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은 불치의 환자의 상태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의사가 환자의 동의하에 환자에게 치사약을 주입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춘 다면 안락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락사 법제화를 이룬 국가에서 합법적인 안락사를 규정하는 상세조항에 해당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예를 들어 주치의 및 다른 전문의, 안락사 경험 의사 등 3명 이상의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등 적합한 안락사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이 그러하다. 무엇보다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당시에는 의료 종사자가 그러한 행위를 하였을 경우 살인죄 혹은 살인방조죄에 해당되었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을 ‘동반자살’17)로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
이 사건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안락사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사건 이외에 적어도 언론에 ‘안락사’라고 보도된 사건은 없었고, 일반 대중과 미 디어가 크게 주목하는 안락사 사건도 드물다. 이는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사회적인 논의가 충분히 진행될 계기가 한국에서는 부족했다고도 할 수 있다.18),19)
한국 사회에 존엄한 죽음, 죽을 권리, 존엄사, 안락사와 같은 용어들이 빈번하게 등장하게 된 계 기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과 2008년 김할머니 사건이 사회적인 관심을 크게 끌면서이다.20) 특히 김할머니 사건은 결과적으로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한된 상황에서의 연명의료중단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의견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2019년 서울신문의 취재로 스위스의 조력자살단체를 통해 한국인 2명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21) 이러한 취재 결과에 더하여 안락사 논의를 모은 책도 발간 되며 안락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2]. 2020년에는 스위스에서 의사조력자살로 죽음을 맞은 일본인을 밀착 취재한 논픽션도 번역되어 출판된바 있고[3], 2022년에는 스위스의 조력자살단체를 통해 죽음을 맞은 한국인과 동행한 작가의 수기도 출판되어[4] 외국인 대상 의사조력자살도 가능한 스위스의 단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와 같이 존엄한 죽음, 죽을 권리,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흐름 속에서 연명의료결정법 내 ‘조력존엄사’ 조항 신설 개정안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개정안의 특징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개정안은 ‘조력존엄사’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조력존엄사 란 “조력존엄사대상자가 본인의 의사로 담당의사의 조력을 통해 스스로 삶을 종결하는 것”(개정안 제2조 제11호)이다. 말기환자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고 환자 본인이 죽음을 희망할 경우 위 원회의 심사를 거쳐 조력존엄사대상자가 될 수 있다. ‘조력존엄사’의 정의와 조건을 보았을 때 이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의사조력자살을 의미한다. 안락사가 아닌 존엄사를 사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두 번째 특징은 조력존엄사를 신청할 수 있는 환자의 요건이다(개정안 제20조의 3). ① 말기환자에 해당하고, ②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으며, ③ 본인의 의사에 따라 조력존엄사를 희망한다는 세 요건을 모두 충족하여야 한다. 안락사 혹은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한 국가나 지역의 경우 신청인의 요건이 각각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오리건주, 캘리포니아주 등의 경우는 합리적인 의학적인 판단으로 여명이 6개월 이내인 말기환자 (①)로 규정하고 있고, 캐나다의 경우 말기환자이며 심각한 육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이 있는 경우, 벨기에나 네덜란드 등도 심각한 고통이 수반되는(②) 말기질환일 경우(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환자들은 물론 의사결정능력이 있고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의사조력자살을 요청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안락사는 고통을 수반하는 불치병일 경우에 시행된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는 법률의 적격환자 요건에 환자가 심각한 고통을 받고있다는 것이 포함되어있지 않다. 반면 캐나다, 벨기에, 네덜란드는 환자가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 필수요건 중의 하나이고, 한국의 개정안 또한 이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세 번째 특징으로 조력존엄사 신청 프로세스이다. 의사로부터 말기환자이고 참을 수 없는 고통 이 있다고 진단받은 환자 본인이 조력존엄사 요청을 한다.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의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승인을 받은 후 1개월이 경과한 후에 환자가 재요청을 할 경우 조력자살이 이행된다. 즉, 말기환자라는 의사의 판단이 선행되어야하고, 환자는 2회 죽음 요청을 하면 의사의 도움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앞서 꼽았던 개정안의 특징을 중심으로 개정안의 논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용어의 문제이다. 개정안은 의사조력 자살을 합법화하고자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사조력자살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자살’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조력 존엄사’라는 순화시킨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낸 듯이 보인다.
하지만 조력존엄사라는 용어의 사용은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존엄사와 안락사/의사조력자살이라는 두 용어에 대한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전후해서 연명의료중단과 안락사, 존엄사가 함께 거론되며 이를 혼동하는 경우도 많았다.22) 또 연명의료결정법이 흔히 언론에 ‘존엄사법’으로 소개가 되었는 데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반을 둔 존엄사와 의학적 판단을 전제로 제한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연명의료중단을 한국에서는 구별하고 있다.23) 한국에서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는 연명의료결정, 존엄사, 안락사를 같은 법안에 섞어놓음으로써 연명의료중단=존엄사=안락사라는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또한 개정안이 합법화하려고 하는 의사조력자살은 의사의 의학적인 판단과 환자 본인의 의사표시가 필수적이고, 일련의 절차나 방법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스스로 생명을 종결시키는 행위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의 함의에 대한 법적, 윤리적, 종교적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를 존엄한 죽음이라는 긍정적인 용어 로 표현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또한 이를 법제화하여 의료체제 안에서 정상적인 의료행위 중 하나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또한 일정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면 스스로 약물을 투여해 죽을 수 있게 하는 것, 환언하자면 합법적인 자살을 허용하는 것이 윤리적이고 합리적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적격환자의 요건이다. 한국의 개정안의 경우 말기환자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동반할 때 스스로 판단에 의해 조력자살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런데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육체적 고통인지 정신적 고통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벨기에, 네덜란드는 애초 육체적인 고통에 국한하던 것의 개정을 통해 정신적 고통까지 넓혔다. 또한 2016년에 안락사를 합법화한 캐나다의 경우는 애초부터 육체적 고통과 함께 정신적 고통도 명기하였다. 즉 최근의 경향으로 볼 때 육체적인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까지도 안락사의 허용 요 건으로 확장되고 있다. 개정안에서 말하는 고통이 육체적 고통인지 아니면 정신적 고통까지 포함하는지에 따라 의사조력자살의 요건에 해당하는 환자의 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다.
실제 법제화 과정에서 환자의 극심한 고통이 필 수요건으로 되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처럼 고통의 유무와 관계없이 회복될 수 없는 질환으로 여명이 6개월가량 남은 말기환자라는 것만으로 요 건이 충족될 수도 있다. 고통을 동반하지 않거나 고통이 약물 등으로 조절 가능한 말기환자의 의사 조력자살은 그저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다. 이럴 경우는 죽음의 시기를 환자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점에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보다 강조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충분히 삶을 더 누릴 수 있는 환자를 죽게 하는 것이 윤리적이냐는 문제는 남는다.
세 번째로 프로세스에 대한 문제이다. 환자는 최초 요청을 하고 위원회 승인 후 재요청을 한 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환자는 결국 죽음을 2회 요청하는 것인데 횟수로 단순화하기는 어렵지만 이것이 충분한가 하는 문제가 있다. 또한 환자의 요청, 위원회의 결정, 조력자살 이행까지의 기간 중에 환자나 환자 가족에 대한 어드바이스나 심리적 보살핌에 대한 부분은 미비하다. 물론 이는 만에 하나 개정안이 통과되어 법제화가 되면 상세히 논의될 것이다.
앞으로 개정안의 향방에 대해서는 미지수이지만,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번 개정안은 용어, 범위, 규정 등에 대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무엇보다도,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한국 사회에서 좋은 죽음,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않을 뿐 아니라 이를 도와주는 제도 개선과 보 완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고 있다.
Ⅴ. 안락사 합법화의 효과 및 윤리적 쟁점
개정안에 대한 논의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의사조력자살의 합법화가 필요한 지에 대한 것으로 귀결된다.
안락사 합법화를 이룬 국가의 사례에 대해 전술하였는데,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나 지역이 늘어 나는 추세는 안락사 법제화를 통한 사회적 이익이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입법 후 안락사가 가능한 조건이 완화되는 것을 보면 쉽사리 법제화라는 한 발을 떼기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다. 이 절에서는 안락사 특히 개정안에서 허용하려고 하는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했을 경우의 긍 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고찰해보기로 하겠다.
사람이 타인을 살해했을 때는 형법의 살인죄로 처벌받는다. 이는 형법의 보호법익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경우 생명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형법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 번째로, 개인의 생명을 스스로 처분 가능한 개인적 법익으로 보아 자살을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다수의 두 번째 견해는 “자살 역시 기본적으로 생명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실질적인 범죄행위이되 단지 형법상 구성요건 해당성이 없는 행위”로 보는 것이다[5].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왜 형법에 자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해석이 되지 않는다. 형법해석에 있어서 자살은 생명 침해행위이므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벌 규정이 없는 이유 는, 실제 처벌할 대상(자살자=사망자)이 없고 처 벌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 다, 이러한 법 해석에 따라 한국에서는 자살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24) 하지만 자살에 대한 조력은 처벌 대상이다.
의사조력자살은 의사의 치사약 처방과 환자가 이를 투여해 목숨을 끊는 두 행위로 구성된다. 이를 각각의 행위로 나누어서 살펴본다. 먼저 자살 혹은 자살 미수는 현행 한국 형법하에서 처벌 할 수 있는 근거규정이 없다. 자살이라는 행위가 범죄로 성립하지 않는다면 의사조력자살이 범죄가 되는 것은 의사조력이라는 부분이다. 환자나 환자보호자의 촉탁으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을 경우 의사는 자살방조죄로 기소되어 처벌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의사조력자살의 합법화는 환자의 자살을 도운 의사의 처벌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개정안 제20조의 7(「형법」 적용의 일부 배제)에도 “조력존엄사대 상자의 조력존엄사를 도운 담당의사에 대해서는 「형법」 제252조제2항25)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안락사 합법화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고 주장되지만, 법제화가 1차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환자의 자살에 조력한 의사의 행위에 대한 불기소처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의사조력자살 입법은 환자의 자살에 조력한 의사의 행위가 형법의 자살방조죄에 저촉되지 않게 하여, 의사가 합법적인 의료행위의 일환으로 환자에게 치사약을 처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26)
이는 PAS를 합법화한 국가들에서도 보이는 점인데, 캐나다의 ‘죽음에 대한 의료지원’은 형법 (criminal code)의 일부로 해당 조항에 명시된 조건과 보호장치에 따라 죽음에 대한 의료지원을 행한 사람을 형법상 무죄로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27) 네덜란드도 환자가 개선될 가망이 없는 병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담당의사가 적절한 기준에 따라 생명을 종결시킨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형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28)
그렇다면 법제화를 통해 환자가 얻게 되는 이 익은 무엇인가? 약물 치료나 호스피스 이외에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의사조력자살이 있다면 환자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더욱 보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의사조력자살도 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안심감을 느끼는 환자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죽을 권리 협회 세계 연합(The World Federation of Right to Die Societies)’의 네덜란드 관계자도 “안락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안심하고 최종적으로는 [안락 사를] 이용하지 않고 자연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요컨대 의사조력자살의 합법화는 환자의 복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고 개개인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은 본인 이외에는 직접 동일하게 체험할 수 없다. 근원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이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동반할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강인한 정신력과 주위의도 움, 의료 지원을 통해 감내하는 환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어서 할 수 있는 의료적 처치도 점점 없어진다면, 병의 고통과 미래에 대한 절망감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하는 환자도 있을 수 있다. 아무리 괴로워도 삶을 계속 살라고 하는 것이 환자를 위하는 것일지 의문이다. 안락사를 통해 환자는 고통에서 해방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환자 본인도 괴롭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간병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나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것을 봐야 하는 정신적 고통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간병으로 인해 경제활동에 제약이 생기거나 의료비 지출로 인해 경제적인 곤란을 겪는 일도 있다. 최근에는 장기간의 간병으로 인해 지친 간병인(주로 가족)이 환자를 살해하는 사건도 이슈가 되고 있다.29) 환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벼랑 끝에 몰리는 극단적인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의사조력자살의 합법화가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효과가 있다. 의료재정 및 의료자원의 절감이라는 문제이다.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고령인구의 건강보험 지출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8].
또 전체 병원 방문 외래환자 중 약 30.5%가 노인환자이며, 노인 입원환자는 약 49.1%를 넘어서 면서 고령자에게 소요되는 의료비가 전체 의료비의 39%를 상회하고 있다[9]. 고액의 의료비는 본인 및 가족에게 부담이 될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한정된 의료자원의 공정한 분배라는 문제와 연관된다. 의료종사자나 병상, 의료기기, 의료보험재정 등은 한정된 의료자원이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한정된 의료자원을 더 많은 수의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다. 소생 가망성이 거의 없거나 병의 근원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 상태의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의 환자들의 케어를 위해서 한정된 의료자원이 소모되어 다른 시급한 곳에 쓰일 수 없는 경우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안락사가 합법화되면 저소득층, 노인, 장 애인 등 취약계층이 소외될 수 있다는 안락사 반대론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통계에 의하면 안락사의 합법화로 인해 약자가 주로 대상이 된다는 명백한 근거가 없다. 미국 오리건주와 네덜란 드를 대상으로 한 Battin MP et al.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PAS로 사망한 사람은 비교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이라고 나타났다[10].
이상을 종합하면 안락사의 합법화는 다음과 같은 이익이 있다. 의사는 처벌 위험 없이 합법적인 의료행위의 일환으로 환자의 고통 제거를 위해 치사약을 처방할 수 있고, 환자는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료적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다. 또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한정된 의료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던 네덜란드, 벨기에의 안락사법 개정에서 특징적인 것은 안락사가 가능한 환자의 범위가 법 제정 당시보다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법 제정 당시에는 이들 법률은 참을 수 없는 육체적인 고통을 가진 불치의 성인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하지만 개정 후에는 육체적 고통이 아닌 정신적 고통, 더 나아가서는 단순히 고령을 이유로 하는 안락사까지 가능하게 되었고, 성인뿐 아니라 미성년자, 어린이까지 연령층이 확대되었다. 현재의 의료기술로는 완치가 불가능하며 참기 어려운 고통이 수반되어 환자의 삶의 질이 현저하게 낮을 때 최종적으로 삶을 종결하는 방법이었던 것이, 가능 범위가 확장되며 의료의 힘을 빌린 자살 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의사조력 ‘자살’이라는 용어에 충실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이 미끄러운 경사 길 논변(slippery slope argument)이다. 한 사안을 허용하게 되면 다른 것을 허용하게 되고 경사 길을 내려가듯이 진행되어 결과적으로 당초에 수용할 수 없었던 것까지 허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논변은 처음 허용한 사안과 이후 허용하는 사안들 간의 인과관계가 없기에 논리적인 오류라고 보는 것이 논리학의 일반적인 해석이며 이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다[11,12]. 하지만 적어도 안락사 합법화 및 허용 추세를 보면 심각히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말기질환이 아닌 질병이나 장애만을 이유로 한 안락사도 허용한 캐 나다의 파격적인 개정안은 나치가 장애인을 다룬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30)
나치의 전쟁범죄를 심판하기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의료고문으로 나치의 의료범죄를 고발 하였으며 뉘른베르크 강령 작성에 기여한 레오 알 렉산더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런 범죄가 최종적으로 얼마만한 규모였는지 관계없이 그것을 조사한 자 모두에게 명백 해진 것은, 그것 [나치스의 의학범죄]들이 작은 발단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발단이라 함은 의사의 기본적인 태도에서 아주 사소하게 강조점이 변경된 것이다. 그것은 안락사 운동의 기본이 된 태도, 즉 세상에는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초기 단계에서는 오직 중증이고 만성적인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에 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점점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영역이 퍼져갔고, 사회적으로 비생 산적인 사람들이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 민족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모든 비게 르만 민족을 포함하는 것이 되어갔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결말에까지 이르게 된] 나치스 시대의 정신 조류의 전체가 그 추진력 얻은 것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던 무한히 작은 지렛대, 즉 회복 불능한 병자에 대한 이러한 태도에서부터였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13]
안락사 합법화에 반대하는 논거로 미끄러운 경사길 논변을 드는 것은 논리적 오류일 뿐 아니라 기우에 불과하며, 촘촘한 법 제정과 엄격한 시행을 통해 의사조력자살의 부작용을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상기 인용문의 내용과 현재 안락사를 허용한 국가들의 사례는 그것이 절대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의사조력자살을 고려하는 사람은 더 이상 병세의 호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말기환자나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불치병을 가진 환자이다. 하지만 이들은 돌봄이 절실한 대상이기도 하다. 안락사 합법화 국가에서 법 개정을 통해 새로이 의사조력 자살 허용 대상에 포함된 고령자, 정신질환자 역시 환자인 동시에 돌봄이 필요한 약자이다. 이러한 대상들에 대해 현재 의학 수준에서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고 본인도 죽음을 원한다는 이유로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죽음의 권리 보장이라는 말로만 포장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또한 스위스에서 고령을 이유로 한 조력자살이 시행된 것, 벨기에에서도 초고령자는 치명적인 질병이나 우울증이 없더라도 안락사를 신청할 수 있는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보는 것[14], 즉 안락사 허용 가능 대상에 고령자가 포함된 것은 고령 사회에서 악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일 한국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되고 허용대상 이 확대되어 고령을 이유로 한 안락사까지 허용된다면 어떨까? 한국은 외국과 비교했을 때 전 연령대의 자살률이 높지만, 압도적으로 노인 자살률이 높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2021 자살예방백서』[15]에 따르면 OECD 주요 회원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 평균이 인구 10만 명당 17.2명인데 비해 한국은 46.6명으로 평균의 2배를 훌쩍 상회하는 수치이다. 고령자의 자살 원인은 경제적인 문제, 신체적 정신적 질환, 외 로움이나 고독 등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으로 고립이 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으며 이는 신체적 또는 정신적인 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보다는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삶을 끊게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자기 삶과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락사의 합법화가 환자, 장애인,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반론도 있다. Emanuel EJ et al.[16]에 따르면 미국에서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고학력인 백인으로 의료보험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 들이었다. 안락사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으므로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여 프로세스에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한데, 이 때문에 현재에는 교육 수준이 높은 중산층 백인이 많이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락사가 대중적으로 더 잘 알려지고, 허용하는 국가나 지역이 확 산되고 안락사 허용 대상 또한 확대된다면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경제적 약자가 이러한 선택에 내몰릴 가능성 이 크다는 것은 배제하기 어렵다.
안락사의 합법화가 약자를 죽음에 내몰 수 있다는 것은 아직은 기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안락사의 합법화는 전체 사망자 중 안락사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을 증가시킨다는 통계는 있다. Chambaere K. et al.[17]의 벨기에 안락사 경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2007년 전체 사망 중 1.9%를 차지했던 안락사 비율이 2013년에는 4.6%로 증가하였다. 또한 Groenewoud AS. et al.[18]은 네덜란드에서 전체 사망자 중 안락사로 사망한 사람의 비율이 1990년 1.9%에서 2017년 4.4%로 증가했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안락사 발생률은 완화의료의 가용성과 접근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완화의료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완화의료체 제의 부족으로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미국의 경우 또한 PAS를 허용한 주에서는 PAS를 허용하지 않은 주보다 전체 자살률 (의사조력자살+일반자살)이 증가하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19].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안락사의 합법화는 안락사의 증가를 가져오고, 안락사가 삶을 마치는 하나의 옵션으로 작용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사례는 안락사 허용이 안락사 증가를 가져온다는 단순한 해석을 주저하게 한다. 네덜란드는 2002년 안락사법을 제정했지만 이미 1985년부터 실질적으로 안락사가 시행되었다. 가장 오랜 기간 합법적인 안락사를 시행해 온 국가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완화의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 의료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증가한다는 점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환자에게 안락사가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안락사가 법제화되고 정착이 되면 시행 초기의 혼란은 다소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법이 규정하는 조건을 충족할 때는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하는 것이 ‘안락’하고 ‘존엄’한 죽음이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고, 이러한 인식이 고착화되면 오히려 개개인의 선택지가 제한될 우려도 있다. 즉, 특정 상황에서 안락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지속하고 삶에 대한의 지를 놓지 않을 경우 오히려 사회적인 압력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특히 고령화 문제와 함께 거론되는 의료비의 증가, 의료재정의 핍박, 의료자 원의 효율적인 분배라는 경제적 문제가 얽힌다면,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닌 죽어야 할 의무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환자가 있다고 하자. 치료를 지속할 경우 막대한 의료비가 들지만 안락사를 선택할 경우 더 이상 치료비가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안락사 과정에 드는 비용은 보험이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과연 환자는 스스로 죽을 권리로서 안락사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에 내몰 린 것인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안락사 법제화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안락사 합법화가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는 논 거를 든다.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서도 [말기환자]“자신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를 도입함으로써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증진하려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의사조력자살을 법제화하지 않는다면 말기환자가 자신의 삶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 환언하면 삶을 어떻게 종결할지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일까? 안락사가 합법화되기만하면 말기환자들의 죽을 권리가 보장되는 것일까?
의사조력자살 논의에서 말하는 죽을 권리는 단지자기결정하에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의료제도 안에서 의료/의료인의 도움으로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조력자살이 실행되는 데 필요한 것은 의사의 판단과 행위이고, 실제로 이러한 행위가 일어나기 위한 선제조건은 환자에게 치사약을 건네는 행위의 비범죄화이다.
이러한 점에서 의사조력자살의 합법화는 엄밀한 의미의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미국의 정신과의사인 Thomas Szasz는 환자가 조력자살의 대상이 되는 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약물을 처방하는 것은 의사이므로, 의사조력자살에서 의사는 조력자가 아닌 주역이라고 주장한다[20,21]. 의사조력자살이 환자의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보장이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기는 하지만, 환자가 조력자살의 대 상인지 판단하는 것도 의사이며 치사약을 주는 것도 의사이다. 환자는 요청자이며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의사이다. 물론 말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조력자살을 결정하는 것도 환자이고 치사약을 받고 난 후 복용 여부도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의사의 존재, 의사의 진단 및 의료시스템 등의 지원 없이 환자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고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의사조력자살의 법제화가 환자의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는 찬성 논거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안락사를 합법화한다고 해서 환자가 오로지 자기 의사만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안락사 합법화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확보를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의미이다.31)
Ⅵ. 결론
초고령사회로 진입을 목전에 둔 한국 사회에서 아름답게 늙어가며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모두의 화두일 것이다. 삶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과정에서 병이나 고통이 없길 누구나 바라지만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렇기에 좋은 죽음, 존엄한 죽 음,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종결하는 방법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고통스 러운 삶을 ‘종결’할 방법도 중요하지만 ‘고통스러 운 삶’을 해결해 줄 방법 모색이 선결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말기의료에 대한 지원과 관심의 부족은 전문가가 입을 모아 지적하는 부분이다.
나이 들어 병이 들고 죽어가는 생명의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사회적·경제적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힘든 것 자체가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죽음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미명하에 의료체제 안에서 합법적으로 죽게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안락사 비판론에는 현재의 안락사 합법화 논의와 나치의 안락사 및 그것의 사상적 기반인 우생 사상과의 유사성에 주목하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안락사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법률과 의학적 판단하에 개개인이 스스로 결정한 죽음을 나치의 안락사와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본인의 이성적 판단에 기초한 의사 표현이 전제되어 있고 개개인의 자기결정권에 의한 선택이, 열등한 생명을 말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국가적 레벨에서 진행되었던 나치의 집단살인과 다르다는 것이다.32)
안락사의 법제화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법제화가 되면 혜택을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교법적으로 분석해보았을 때 특정 요건을 충족한 환자의 죽음에 대한 합법화에 뒤 따르는 것은 허용범위의 확대이다. 해외 사례에 서도 볼 수 있듯이 허용범위의 확대를 막을 뚜렷한 장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허용범위 확대가 가장 쉬운 영역 중 하나가 고령층에 대한 안락사 허용인데,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의 합법화 파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인구의 1/3이 65세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2040년의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합법적인 의료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 또한 현재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