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프랑스의 대표적인 영화감독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는 2022년 9월 13일 자신이 살고 있던 스위스에서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고다르는 병들지 않았고 다만 지쳤을 뿐”이었으며, 지친 그가 선택한 삶의 마지막 방식은 ‘조력 자살’이었다[1]. 고다르의 죽음이 프랑스 언론에 보도되기 몇 시간 전, 프랑스의 대통령 엠마뉴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은 자신의 트위터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올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는 이 날 “국보를 잃었고, 천재의 안목을 잃었다.”[2]. 그리고 같은 날, 마크롱 대통령은 “삶의 마지막”을 논의하기 위한 “시민 공회(convention citoyenne)”를 개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고다르의 조력 자살과 마크롱의 시민 공회 개최 선언 사이에 어떤 인과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프랑스의 한 언론은 고다르의 자살과 마크롱의 선언 사이의 일치를 “우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3]. 사실 마크롱이 시민 공회의 개최를 선언하기 전에 고려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고다르의 자살이 아니라, 프랑스 보건생명과학윤리 국가자문위원회(Comité Consultatif National d’Éthique pour les sciences de la vie et de la santé, CCNE)의 “의견서(avis) 139, 삶의 마지막 상황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들: 자율성과 연대”[4]일 것이다. 고다르가 자살한 바로 그날 대중에게 공표된 이 보고서에서 CCNE는 30년 넘게 고수해 온 자신의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죽음을 위한 적극적 도움(aide active à mourir)”1)[5]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동시에,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새로운 입법 개혁을 추진하기 이전에, 이 문제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4]. CCNE는 “주제의 극단적인 복잡성”과 “분석된 각각의 가능성 뒤에 실존하는 뉘앙스의 중요성” 때문에 국민투표보다는 공개 토론이 더 선호할 만한 문제 해결 방식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4].
결국 고다르가 자살을 하고, 마크롱이 시민 공회를 개최할 것을 선언했으며, CCNE가 안락사 도입에 대한 자신의 전향적 태도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밝힌 2022년 9월 13일 이후, 프랑스에서는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대중 토론이 두 갈래로 나뉘어서 조직되었고 진행되었다. 하나는 CCNE와 ‘지역의 윤리적 성찰 공간(espaces de réflexion éthique régionaux)’이 연계하여 진행한 “삶의 마지막: 의견 형성을 돕기 위한 정보 제공과 대화를 위한 지역 공간”으로서, 이 전국 단위의 토론회는 2023년 4월까지 프랑스의 전 지역에서 140회 이상 개최되었다[6].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크롱이 개최할 것을 선언한 “시민 공회”로서, 프랑스 경제, 사회 및 환경위원회(Conseil économique, social et environnemental, CESE)가 주관한 이 시민 토론회에서 추첨을 통해 선발된 186명의 시민들은 2022년 12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총 아홉 번의 회기를 통해 “삶의 마지막을 지원하는 현재의 틀이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 적합한가? 아니면 잠재적인 변화가 도입되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시민 공회의 모든 과정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었고, 지금도 그 전 과정을 관련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7].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토론을 통해 어떤 획기적인 결론이 도출되기를 기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여론이 명백하게 확인되어 있는 사안에 대해 토론회를 개최할 때, 그 목적은 여론을 재확인하고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발언권을 주어 토론함으로써 민주적 절차를 보다 공고히 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가야할 방향은 정해져 있고, 문제는 보다 높은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실제로 지난 4월 3일 종료된 시민 공회의 최종 보고서에서 “죽음을 위한 적극적 도움”의 합법화에 찬성하는 비율은 75.6%로서 나타났으며[8], 이 수치는 2022년 10월 프랑스 여론 연구소(Institut français d’opinion publique, IFOP)가 시민 공회에 바라는 프랑스인들의 기대를 조사한 연구조사에서 확인했던 찬성 비율 78%와 큰 차이가 없다[9]. 그 구체적인 내용이 어떻게 결정되는가의 문제만 남았을 뿐, 프랑스에서 안락사의 합법화는 이미 실현된 미래이다.
안락사의 합법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연명의료의 중단 허용, 깊고 지속적인 진정(sédation profonde et continue) 요법의 도입, 그리고 마침내 안락사를 허용하기에 이른 프랑스의 이러한 행보는 미끄러운 비탈길 논증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사례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안락사의 합법화를 찬성하는 입장에서 프랑스의 이러한 행보는 “고통 없이 죽을 권리”를 쟁취하려고 노력했던 오랜 투쟁의 역사이자 승리의 기록이다. 2022년 7월 안규백 의원이 소위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한 이래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안락사와 관련된 논의에,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듯 진행된 프랑스의 사례는 적지 않은 영감을 줄 것이다.
II. 본론
일반적으로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프랑스 최초의 법률로 평가받는 법률은 “완화의료(soins palliatifs)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려는 1999년 6월 9일 법률 99-477호”이다. 일명 “쿠쉬네 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률은 완화의료를 “통증을 줄이고 정신적 고통을 진정시키며 환자의 존엄성을 보전하고 주변사람들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시설이나 가정에서 다양한 전공으로 구성된 팀에 의해 실행되는 능동적이고 지속적인 치료”라고 정의하고, 그 상태가 요구하는 모든 환자는 이 완화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10]. 그러나 완화의료가 쿠쉬네 법에 의해 처음 도입된 것은 아니다. 이미 “병원 개혁과 관련한 1991년 7월 31일 법률 91-748호”는 그 상태가 요구하는 환자에 대한 완화의료의 실행을 사설 기관을 포함한 모든 의료시설의 임무(mission) 중 하나로 규정해 두고 있다[11]. 따라서 쿠쉬네 법의 의미는 완화의료를 법률로서 도입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병원의 임무로 규정되어 있던 완화의료의 실행을 환자의 권리로 바꾸고, 이러한 권리가 행사될 수 있는 시설의 확충 및 제반의 문제에 대한 조치를 법률로 규정했다는 점에 있다. 물론 이러한 임무로부터 권한으로의 전환이 사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무엇보다 이러한 전환이 중요하다. 환자의 권리, 특히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환자의 권리가 법률로 인정되고 보장받기 시작한 것은 쿠쉬네 법에 의해서이며, 이러한 권리는 이후 계속해서 확장되고 강화될 것이다.
실제로 흔히 “쿠쉬네 법2”라고 불리는 “보건의료 체계의 질과 환자의 권리에 관한 2002년 3월 4일 법률 2002-303호”는 본인의 건강 상태에 대한 환자의 알 권리와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 등 보건의료 체계와 관련된 환자의 전반적인 권리를 규정하면서, 쿠쉬네 법에서 인정한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환자의 권리를 보다 더 강화하고 확장하고 있다. 우선 법률은 공공보건법 L.1110-5조에서 “모든 사람은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함으로써 쿠쉬네 법이 인정한 완화의료에 대한 환자의 권리를 재확인하고, “모든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한다”고 명시함으로써 보건의료 전문가에게 환자의 고통을 완화시킬 의무를 부가하고 있다[12]. 또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관련하여서도, 쿠쉬네 법은 단순히 “환자는 모든 조사나 치료에 반대할 수 있다”[10]고 규정함으로써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소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 쿠쉬네 법2는 공공보건법 L.1111-4조를 통해 모든 사람은 자신의 건강과 관련된 결정을 할 수 있으며, “어떠한 의료 행위나 치료도 당사자의 자유롭고 충분한 정보에 의한 동의 없이는 수행될 수 없고, 이 동의는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12] 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은 쿠쉬네 법2에서는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환자들에게까지 인정된다. 즉 쿠쉬네 법2에 따르면, 환자가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없는 경우, 어떠한 의료적 개입이나 조사도 위급한 상황이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임의로 실행될 수 없고, 오직 법률이 규정한 환자의 대리인이나 가족과 상의한 후에, 혹은 가족이 없다면, 적어도 환자의 측근들 가운데 누군가와 상의한 후에야 실행될 수 있다[12].
이제 쿠쉬네 법2에 의해 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적극적으로 인정됨으로써 프랑스에서 존엄사, 즉 연명의료의 유보 및 중단이 법률적으로 가능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었는데, 치료의 범위에 대한 부정확한 정의와 연명의료의 유보 및 중단 절차에 대한 규정의 부재, 그리고 무엇보다 쿠쉬네 법2가 수정한 공공보건법 L.1111-4조의 2항이 문제였다. 두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조항의 첫 문장, 즉 “의사는 환자에게 그의 선택의 결과에 대해 알린 후, 환자의 의지를 존중해야만 한다”는 규정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조항은 곧바로 “치료를 거부하거나 중단하려는 환자의 의지가 그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 경우, 의사는 그가 필수적인 치료를 받도록 모든 수단을 다하여 설득하여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12]. 이 두 번째 문장은 그 자체로 애매하고 첫 번째 문장과 배치되며 모든 해석의 가능성에 열려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가 거부하거나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치료의 범위가 자신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까지 포괄한다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의사의 입장에서는 생명을 위험하게 만드는 환자의 결정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무시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프랑스의 법률은 완화의료를 환자의 권리로 만들고, 치료와 관련된 결정권을 환자 자신에게 부여하는 방향으로 개정됨으로써 연명의료의 유보 및 중단을 허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법률의 애매함 때문에 현실에서 의사들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완화의료를 실행할 때에도 동반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한 의사들은 강력한 진통제의 사용 같은 적극적인 개입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비록 쿠쉬네 법2가 환자의 사망시까지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모든 수단”이 어디까지 인정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따라서 프랑스 형법 122-4조, 즉 “법률 또는 규제 조항에 의해 규정되거나 승인된 행위를 수행한 사람은 형사 책임을 지지 않는다”[13]는 규정에 자신의 행위가 적용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의사들로서는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조항에 적용되지 않는다면, 연명의료를 중단한 의사나 완화의료를 수행하기 위해 강력한 진통제를 처방하여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는 프랑스 형법에 따라 살인죄로 처벌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삶의 마지막과 관련하여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모든 논의들과, 이 논의들로부터 귀결된 입법 행위들이 목표하는 바와 정확히 반대되는 결과이다. 완화의료에 대한 논의가 치료의 자기 결정권에 앞서 이루어지고 법률로 제정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삶의 마지막과 관련하여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논의들의 핵심은 다름 아닌 고통의 제거에 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유보 혹은 중단에 대한 결정권을 환자에게 부여할 수 있다면, 이는 이 연명의료가 고통스러운 것이고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자유와 권리가 환자에게 있기 때문이지, 스스로 자신이 받을 치료를 결정하거나, 더 나아가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는 일이 그 자체로 존엄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CCNE가 1991년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유지해오고 있는 입장이다. 1991년 4월 25일 유럽의회에서 채택된 안락사 관련 결의안에 대해 CCNE는 명백하게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유럽의회가 인간의 존엄성을 인간의 자율성과 의식의 정도로만 측정했다”고 비판한다[14]. 그러나 존엄성은 인간의 자율성이나 의식 수준이 아니라 “인간성 그 자체와 관련된 것”으로서[14], CCNE가 의견서 129에서 말했듯이 “모든 인간은 그의 위치가 어떠하든, 그의 조건과 독립성의 정도가 어떠하든, 모두 존엄하다.”[15] “존엄성은 인간 존재 자체에 내재”하며, 다만 “우리는 고통으로 인해 그 존엄성의 감정을 잃을 뿐이다.”[4] 따라서 문제는 죽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이며, “완화의료의 실천을 개선하고 확대하는 일”이 중요하다[14]2). 결국 CCNE는 의견서 139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적으로 선언한다. “삶의 마지막이라는 상황의 복잡성을 특징짓는 윤리적 딜레마는 존엄성의 문제와 관련이 없다.”[4]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는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권리의 문제이자 자유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권리를 훼손하는 법률의 애매함은 수정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존 법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단순하고 빠르며 가능한 고통 없는 죽음”[16]을 원하는 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하고자 제안된 법률이 바로 프랑스의 존엄사법이라고 불리는 “레오네티 법”, 즉 “삶의 마지막과 환자들의 권리에 관한 2005년 4월 22일 법률 2005-370호”이다[17]. 이 법안은 “환자의 권리 강화”와 “말기 환자의 특별한 권리에 대한 인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 아래, “비이성적인 고집에 의한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제정”하고 “치료를 중단하는 절차를 정의”하고 있으며, “완화의료의 조직과 관련해서 보건의료 시설에 의무를 부과”하는 한 편, “의식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치료 거부권”을 인정하고, 의식이 없는 환자의 치료 거부권을 보장하기 위해 “대리인의 역할을 강화”하고 “사전 지시서(directives anticipées)”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고 있다[16].
이제 레오네티 법에 의해 의사는 “무의미하고, 부적합하며 오직 삶을 인위적으로 유지시킬 뿐인 치료들”을 규정된 절차에 따라 중단하거나 유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원인이 무엇이든, 심각하고 치료할 수 없는 질병에 걸린 말기(en phase avancée ou terminale) 환자”는 의식이 있는 경우라면 직접적으로, 의식이 없는 경우라면 자신이 미리 작성해 놓은 사전 지시서나 지정해 놓은 대리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에게 실행되는 모든 치료에 대해 중단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17]. 그리고 이렇게 치료를 중단한 상태에서 환자는 완화의료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의사는 “삶을 단축시키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치료”라고 할지라도,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그 사실을 환자와 대리인이나 가족, 혹은 가족이 없다면 환자의 측근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알린다는 조건 하에서 그 치료법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17].
레오네티 법에 의해 연명의료의 중단 및 유보가 공식적으로 허용되었지만,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여러 문제들이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레오네티 법이 사실상 말기 환자의 치료 거부권만을 인정하는 법률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뱅상 랑베르(Vincent Lambert) 사건은 이러한 레오네티 법의 한계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간호사였던 뱅상은 2008년 10월 29일 교통사고를 당해 뇌에 심각한 상해를 입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다. 그의 아내는 뱅상을 간호하며 여러 의료적 조치를 취했지만 성과가 없었고, 그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지 5년이 지난 2013년 4월 10일 뱅상의 담당 의사였던 에릭 카리거(Éric Kariger)는 뱅상의 아내와 협의하여 뱅상의 치료 중단을 선언하고 영양과 수분의 인위적인 공급을 중단한다. 리오네티 법에 의해 수정된 공공보건법 L.1111-13조에 따른 결정이었지만, 결정에 반대한 뱅상의 부모와 일부 가족들이 법원에 제소하여 승리함으로써, 뱅상에 대한 영양과 수분의 인위적 공급은 중단된 지 31일 만에 재개된다. 공공보건법 L.1111-13조는 분명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무의미한 치료를 “의사가 제한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대리인이나 가족, 가족이 없다면 측근 가운에 누군가와 상의한 이후에 그러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17]. 따라서 사전 지시서를 남기지도 않았고, 따로 대리인을 지정하지도 않았던 뱅상의 경우, 아내 이외의 가족과 협의가 없었다는 점이 병원 측이 패소한 이유가 되었다. 이후 병원과 뱅상의 부모 간의 법정 다툼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인권법원까지 오가며 6년간 계속되다가, 마침내 2019년 4월 24일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Conseil d’État)가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2019년 5월 20일 아침 뱅상에 대한 인위적인 영약과 수분 공급이 다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 파리 항소법원(Cour d’appel de Paris)의 명령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영양과 수분을 공급하기 위한 관이 뱅상에게 다시 삽입되는데, 뱅상의 부모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에 제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연명의료의 중단조치를 유보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 때문이었다. 결국 프랑스 최고재판소 파기원(Cour de Cassation)은 2019년 6월 28일 파리 항소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무효화했고, 2019년 7월 3일 뱅상에 대한 영양과 수분의 인위적인 공급이 세 번째로 다시 중단된다. 그리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지 11년만인 2019년 7월 11일 뱅상은 마침내 숨을 거둔다.
뱅상 사건의 쟁점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법률적-의료적인 문제와 정서적인 문제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우선 법률적-의료적인 문제로는 뱅상의 상태를 과연 말기로 판단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흔히 말기 상태는 6개월 내로 사망이 예상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뱅상의 경우 첫 번째 연명의료 중단을 시도했을 때 이미 5년이나 생존해 있었고, 그 이후로도 6년이나 더 살아있었다. 비록 오랜 법정 다툼 과정에서 뱅상에게 실행된 연명의료가 “비이성적인 고집”에 의한 치료로 판결되어 중단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당장 사망에 이를 만큼 위중했던 것도 아니고 퇴행성 질병에 걸려있던 것도 아닌 뱅상의 상태에 대한 의료적 판단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뱅상에게 이루어지는 의료적 행위가 비이성적인 고집에 의한 치료로 판정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리오네티 법은 “비이성적인 고집에 의한 치료를 해서는 안된다”(L.1110-5)고 규정하는 동시에, 의사가 대리인 혹은 가족 등과 협의하여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경우를 “그 원인이 무엇이든, 심각하고 치료할 수 없는 질병에 걸린 말기 환자가 자신의 의지를 표시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때”(L.1111-13)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17]. 뱅상의 부모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뱅상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뱅상의 부모의 입장에서 뱅상은 질병에 걸린 말기 환자가 아니라 다만 의식 장애를 앓고 있는 장애인일 뿐이었으며, 장애인에 대한 치료를 중단하는 조치는 장애인 학대에 해당한다.
그런데 뱅상을 심각하고 치료할 수 없는 질병에 걸린 말기 환자로 볼 수 없다면, 그에게 영양과 수분 공급을 중단하는 일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위이다. 영양과 수분의 인위적인 공급이 치료에 해당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법률적 판단 이전에, 영양과 수분을 계속해서 공급해 주기만 한다면 계속해서 살아있을 수 있는 사람에게 영양과 수분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말은 결국 그를 굶어죽이겠다는 말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뱅상에게 행해지고 있는 연명의료를 비이성적인 고집에 의한 치료로 판단하고, 그러한 치료로 인해 뱅상이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뱅상의 삶을 종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영양과 수분 공급을 중단하는 것뿐인 상황이라면 이러한 중단 조치에 충분히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연명의료의 중단이 뱅상을 더 이상 고통 받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 아니라 다른 고통으로 인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다른 방법, 다른 죽음의 방식이 필요하다.
2014년 6월 14일 프랑스의 총리 마뉴엘 발(Manuel Valls)은 좌파와 우파의 두 정치인, 알랭 클레이(Alain Claeys)와 장 레오네티에게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법안의 제정 임무를 위임했고, 그렇게 제정된 법률이 바로 현행 “클레이-레오네티 법”, 소위 “숙면법(loi de sédation)”이라고 불리는 “임종기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권리를 창설하는 2016년 2월 2일 법률 2016-87호”이다[18]. 그러나 이 법이 오직 뱅상 사건의 결과인 것은 아니다. 이미 프랑스에는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새로운 요구,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을 위한 적극적 도움”을 합법화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정치권은 이러한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주목을 받았던 뱅상 사건은 이 법률 제정에 어떤 촉진제 역할을 했을 뿐,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사실 이 클레이-레오네티 법은 뱅상 사건에 큰 도움이 되지도 못한다.
클레이-레오네티 법 제정의 실제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프랑스와 올랑드(François Hollande)의 21번째 대선 공약이었다. 2012년 사회당의 대선 후보였던 올랑드는 자신이 제시한 총 60개의 대선 공약 가운데 21번째 공약으로 “견딜 수 없고 완화되지 않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불치병의 말기 단계에 있는 모든 성인은 존엄하게 자신의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엄격한 조건 하에서, 의료적 지원의 혜택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19].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 “의료적 지원의 혜택”을 의사조력 자살이나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안락사로 이해했지만, 실제 클레이-레오네티 법이 제시한 의료적 지원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는 진정(sédation) 요법이었다.
사회당의 현역 의원들을 포함해서, 안락사 도입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지만[20], 올랑드로서는 할 말이 있었다. 사실 발이 클레이와 레오네티에게 제정 임무를 위임할 때, 그는 두 정치인에게 1) “보건의료 전문가의 초기 교육을 포함하는 완화의료의 발전”과 2) “구속력을 갖춘, 사전 지시서의 수집 및 고려에 대한 개선”, 그리고 3) “환자의 자율성에 대한 존중 속에서 수명 단축의 우려가 있는 고통 완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정확한 조건과 상황에 대한 정의”라는 세 가지 법의 제정 방향을 제시하였는데[19], 이것들은 모두 법률의 제정을 위해 정부가 의뢰했던 연구 보고서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다. 즉 올랑드는 취임 후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공약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고, 전문가들의 입장을 반영한 결과가 클레이-레오네티 법이라는 것이다.
먼저 올랑드는 취임한 직후인 2012년 7월 17일 CCNE의 위원장이었던 디디에 시카르(Didier Sicard)에게 삶의 마지막에 대한 연구 임무를 부여한다[21]. 그리고 시카르로부터 연구 보고서를 받은 직후 올랑드는 다시 CCNE에 1) “건강하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이 작성한 자신의 임종과 관련된 사전 지시서를 수집하고 적용할 수 있는 방법과 조건은 무엇인가?” 2) “환자 본인이나 환자의 가족, 혹은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요청으로 치료가 중단된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보다 더 존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3) “심각하고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을 앓고 있는 의식이 있고 자율적인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끝내고자 할 때, 그 의지를 지원하고 도와줄 수 있는 엄격한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제시하고 의견서 제출을 요청했다[22].
시카르 보고서와 CCNE의 의견서 121이 공통으로 말하고 있는 바는 분명하다. 기존의 법이 허용해 놓은 연명의료나 사전 지시서 등과 같은 제도들이 홍보의 부족이나 자원의 부족 등을 이유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조력자살이나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안락사 도입은 성급하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시카르 보고서는 수십 년 전에 도입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연명의료 시설의 지역적 불균형과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연명의료가 정상적으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상세히 밝히는 한편, 레오네티 법이 도입한 사전 지시서가 홍보 부족과 작성의 복잡함 등으로 노인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현실을 분석하여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끊임없이 새로운 법을 상상하기 보다는 현행법을 단호하게 적용하려는 요구”가 중요하다고 시카르 보고서는 말한다[21]. CCNE의 의견서도 시카르의 보고서와 동일하게 현실을 판단하고 있으며, 연명의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모두에게 주어질 필요와 사전 지시서가 강제성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22]. 그리고 시카르의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조력자살을 포함한 안락사 허용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한 편, 시카르 보고서보다 훨씬 더 명시적으로 “환자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진정요법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도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22].
결국 클레이-레오네티 법은 시카르의 보고서와 CCNE의 의견서가 공통으로 지적한 사안들을 법률 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전제한 채 만들어진 법이며, 실제로 클레이와 레오네티 스스로도 이 보고서를 법안 제정에 중요 참조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19]. 따라서 안락사 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처음부터 클레이-레오네티 법을 통해 조력자살이나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안락사가 도입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클레이-레오네티 법이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문제들과 관련하여 어떠한 의미 있는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것은 아니다. 이 법은 발이 지적한 세 가지 사안들 가운데 연명의료 발전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한다면, 환자의 권한을 강화하고 의료 종사자의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 속에서 뚜렷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사전 지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작성 대상자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으며, 의사에 대한 사전 지시서의 구속력을 규정하는 한편, 사전 지시서 작성과 관련된 정보를 의사가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뱅상의 사건에서 문제가 되었던 영양과 수분의 인위적인 공급이 치료 행위에 해당함을 분명하게 밝혀 두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클레이-레오네티 법의 핵심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시행하는 “깊고 지속적인 진정(sédation profonde et continue)”의 도입에 있다. 비록 이 진정요법의 도입이 안락사 도입을 갈망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겠지만, 안락사의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실상의 안락사 도입이라고 인식될 정도의 적지 않은 변화인 것도 사실이다.
클레이-레오네티 법은 우선 “고통을 피하고 비이성적인 고집에 의한 치료를 받지 않기를 환자가 요구할 때, 연명을 위한 모든 치료의 중단과 진통제 사용과 더불어, 사망에 이를 때까지 유지되는 의식의 손상(altération de la conscience)을 야기하는 깊고 지속적인 진정을 수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18]. 그리고 법률로 그 대상을 한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진정요법은 환자가 의식이 있는 경우에는 1) “심각하고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예상 수명이 단기(court terme)에 불과한 환자가 치료가 듣지 않는 고통을 겪을 때”와 2) “심각하고 치료할 수 없는 환자의 치료 중단에 대한 요구가 그의 예상 수명을 단기에 이르게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발생시킬 수 있을 때” 적용할 수 있다. 물론 의식이 없는 환자도 진정 요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환자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고, L.1110-5-1조에 언급된 비이성적인 고집에 의한 치료 거부에 해당하여 의사가 연명 치료를 중단했을 때, 의사는 진통제 사용과 더불어 사망에 이를 때까지 유지되는 의식의 손상을 야기하는 깊고 지속적인 진정을 실행할 수 있다.”[18].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러한 진정요법의 도입은 사실상의 안락사의 도입이라고 비판 받기도 하였다. 이에 프랑스 고등보건청(Haute Autorité de Aanté, HAS)은 이들의 차이를 의도, 방법, 과정, 결과, 시간, 합법 여부의 6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Table 1>로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다[23].
이제 클레이-레오네티 법을 뱅상의 경우에 적용해보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말한 것처럼 클레이-레오네티 법은 뱅상의 경우에 거의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레오네티 법이 사실상 말기 환자의 치료 거부권만을 인정하는 법률이었다면, 클레이-레오네티 법은 예상 수명이 단기3)에 도달한 환자들의 편안한 죽음을 위한 법률이다.
CCNE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의견서를 작성한 바 있는 삶의 마지막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를 자체적으로 다시 주제로 선정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의견서 139를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의 법률 체계에서는 다룰 수 없는 삶의 마지막 국면이 있고, 사람들이 있다. 심각하고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렸지만 아직 죽음이 임박하지 않은 사람들, 그럼에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도 그 고통을 완화시킬 수 없는 그런 상태들이 법률의 바깥에 있는 죽음의 모습들이다. 이건 현행법의 적용범위를 넓힌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CCNE의 의견서 139가 논의하는 바처럼,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는 며칠 이상 지속되는 깊고 지속적인 진정은 빠른 내성(tachyphylaxis) 효과로 인해 환자를 각성시키고, 환자는 투입된 약물로 인해 저하된 신체 상태로 좀처럼 죽음에 이르지 못한 채 계속해서 악화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4]. “모든 깊고 지속적인 진정 전략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시간적 제약은 죽음을 위한 적극적 도움에 대한 반성으로 우리를 초대한다.”[4]. CCNE는 1991년부터 유지해오던 기존의 입장을 바꾸어 죽음을 위한 적극적 도움의 도입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다만, 조력자살만을 도입할 것인지,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안락사까지 도입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 책임을 입법자들에게 남겨둘 뿐이다.
시민 공회에 모인 186명의 시민들이 내린 결정도 CCNE의 의견과 유사하다. 그들은 “삶의 마지막을 지원하는 현재의 틀이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 적합한가? 아니면 잠재적인 변화가 도입되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약 82%가 적합하지 않다고 답했고, 약 76%가 죽음을 위한 적극적 도움을 합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대답했다[8]. 그들은 연명의료 시설의 지역적 편중 등으로 인해 삶의 마지막에 대한 지원이 평등하지 않다고 느끼고, 현재의 법률은 삶의 마지막의 특정한 상황들, 특히 통제되지 않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경우에 대해 만족할 만한 답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은 CCNE처럼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안락사에 대해 그 도입에 대한 결정 책임을 입법자들에게 넘기지 않는다. 그들의 40%는 죽음을 위한 적극적 도움의 방식으로 조력자살과 선택에 의한 안락사를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28%는 조력자살과 예외적 경우로 한정된 안락사를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조력자살만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그들 가운데 10%에 불과했다[8].
시민 공회가 제시한 죽음을 위한 적극적 도움을 도입해야 하는 7가지 이유 중 하나에 “위선의 종식”이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 스위스나 벨기에와 인접한 지역에 사는 프랑스인들에게는 국가 간의 공동 의료시스템에 의해 이미 안락사가 허용되어 있다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사실, 안락사는 2021년에 “이미” 프랑스에 도입되었다. 올리비에 팔로르니(Olivier Falorni)가 제출한 안락사 법안은 하원을 통과했지만, 5명의 의원이 제출한 2,000건이 넘는 수정안을 검토하지 못해 끝내 폐기되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안락사가 프랑스에서 불법인 상황, 그 상황 자체가 위선일 수 있다.
III. 결론
20년 넘게 진행되어 온 프랑스의 안락사 도입의 역사는 고통 없이 죽을 자유와 그 권리의 점층적인 확대라는 뚜렷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완화의료를 도입함으로써 이 역사는 시작되었고, 환자가 강박적인 치료로 인해 고통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으며, 환자가 진정요법으로 인도된 깊은 잠 속에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고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완화의료의 확대와 개선에 대한 강조는 언제나 함께 이루어졌다. 이렇게 프랑스에서의 안락사 도입이 단순히 죽을 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 없이” 죽을 권리를 위해 추진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죽을 권리에 대한 요구와 생명권의 충돌은 프랑스의 안락사 도입의 역사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사안이며, 이러한 대립에서 프랑스의 사람들이 죽을 권리에 무게를 두는 이유는 그들이 무엇보다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를 갈망했기 때문이다.4) 가령 생명권을 규정하는 “유럽 인권 조약”의 2조와 자율권을 규정하는 8조가 서로 상충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CCNE의 의견서 139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명권에 대한 존중은 견딜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살아야 할 의무는 없다.”[4] 실제로 환자의 고통 여부를 따질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위한 적극적 도움”을 아무런 조건 없이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시민 공회에 참석한 인원들 가운데 단지 22%에 불과했다[8].
문제는 이 “견딜 수 없다”는 판단이 무엇에 대해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 판단은 당연하다는 듯이 오직 신체적 고통에 한정되어 이루어졌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것은 다만 신체적 고통뿐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흐름은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 20년 동안 프랑스에서 수없이 시도되었던 안락사를 도입하려는 노력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 흐름은 이제 거대한 흐름이 되어 돌아왔고 이번에는 틀림없이 목표한 바에 닿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방향을 고려할 때, 이 흐름은 이후 정신적 고통까지 고려할 것을 요구할 것이며, 급기야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위한 적극적 도움”을 아무런 조건 없이 허용하려는 노력으로 전환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안락사에 대한 논의와 향후 진행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적 관심과 토론 속에서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진행될 프랑스의 안락사 허용의 역사는 이제 막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한국의 상황에 많은 논점과 시사점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