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metacognition)가 최근 화제이다. 이것은 인지에 대한 인지[1]를 의미하는데 학습을 하고 있는 본인의 상태를 자각하면 전략적인 학습이 가능하다는 개념이다. 이를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아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평에서는 이 메타인지,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점검하고, 모르는 부분에 실질적 지식을 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죽음 관련 의료와 법 제도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본 논평은 주요한 질문들에 대한 실증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제정 논의가 이루어졌 으며 이로 인해 사회적 합의 측면에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들은 현재까지 생애말기 돌봄과 관련하여 진행된 연구와 한계를 명시하고 미국의 대표적 연구를 예시로 하여 관련 주제에 대한 통찰을 줄 수 있는 연구에 사회적 투자가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보라매병원 사건을 기점으로 20여 년간 죽음 가까이에서의 치료 선택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이 논의의 결과로 법제화[2]라는 성과를 맺었다고 볼 수 있으나 우리 사회의 죽음 관행에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고는 보기는 어렵다. 당시 사회적 합의의 부재로 인해, 입법화 논의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던 대법원판결 [3]이 가지고 있던 규정의 틀을 그대로 이어받은 법률이 탄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3-10].1) 이 때문에 필자들은 특집 논문이 지적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11]에 적극 동의한다. 합의만이 사법적 판 단 이상(以上)으로 우리를 도달시켜 줄 수 있다. 또한 사법적 판단 이상으로 가지 않는 한, 죽음 관련 법제가 아무리 개정을 거듭하여도 현재의 연명 의료결정법이 그러한 것처럼 죽음 관행의 빙산의 일각만을 대상으로 하고 나머지 부분들에 침묵하게 될 것이다.
이때 사회적 합의는 정보에 기반하여 숙고된 판단의 주고받음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바로 여기에 ‘사회적’ 메타인지가 필요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집단으로서, 개인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 다고 믿던 것이 무엇이었으며 그중에 검토하지 않았던 전제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유독 죽음 관련 제도에 대해서 메타인지를 강조하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 죽음과 생애말기 돌봄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문제이므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정책 논의의 당사자가 된다. 물론 이 분야에도 전문가는 존재한다. 하지만 각각의 전문가는 의료 및 간호, 복지, 철학, 종교, 법학, 인구, 경제 등 죽음 이라는 총체의 일부만을 담당한다. 우리는 전문가들이 생애말기와 죽음의 연속적이고 복잡한 과정에서 분절화된 특정 실무에 한정된 경험을 갖는다는 점에 주의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명의 의료 전문직은 외래, 일반병동, 중환자실, 응급실, 호스피스, 요양병원, 가정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집, 요 양원 등 다양한 의료기관 및 돌봄 환경을 경유하는 환자의 총체적 경험의 일부만을 분절적으로 담당한다. 이들 각각의 날카로운 통찰은 귀중하다. 그러나 이러한 통찰은 보다 통합적인 실증연구로 이어져야 한다. 실증연구들은 사회가 사회 전체로서 알아야만 하는 질문 종종 이러한 질문은 단 일 학문 분야의 방법론과 범위를 뛰어넘곤 하는 데에 답하도록 기획되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환류를 통해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 모두에게 전달되고, 이들이 문제에 대하여 충분한 지식을 얻도록 일조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죽음이라는 총체를 사회구성원들이 더욱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합의에 선행되어야만 한다.
실제로 연명의료결정법의 제정 과정은 몇 가지 전제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전제 중 일부는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었다.2) 아래의 질문들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검토의 대상이 되지 않은 채 특정한 답변을 상정하여 제정 논의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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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기와 임종과정에 관하여, 충분한 정보와 이해에 기반했을 때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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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기와 임종과정에서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들은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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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은 생애말기 의사결정의 기본 단위가 되어야 하는가? 가족이 없는 이는 누가 돌봐야3) 마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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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적’ 사고 방식과 돌봄의 방식은 생애말기 자기결정과 상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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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료거부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각각의 사례에서 치료의 이익과 부담의 비율에 따라 치료 중단과 보류의 합리성을 검토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치료를 중단하거나 보류할 수 있는 특정 시기와 치료의 종류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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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할 여력이 되는 상 급종합병원을 패러다임으로 삼아 말기와 임종 과정을 법제화하는 접근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물론 법적 규범이 조속히 요청되었던 제정 당시로서는 충분한 실증자료들 없이 사회적으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질 만한 전제들에 의존하여 합의에 도달해야만 했다. 그러나 제정 후 6년이 넘게 시 간이 흘렀고, 대법원판결[3]과 헌법소원[12]으로부터 13년이 흐른 이 시점까지 별다른 실증자료는 생성되지 않았다[13-18].4) 전체 사회가 무엇을 알 아야 하는지를 검토하고 이를 대규모 국가 연구로 기획하지 못하였으므로 현재 개정 논의에서도 우리는 단단한 기반 위에서 있지 못하다.
정책 대상의 요구와 필요에 대한 충분한 검토,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한 생애말기 돌봄 시스템의 발전을 위해서는 해당 주제에 관한 양질의 1차 데이터를 꾸준히 수집하고 축적하는 대규모 국가 연구가 필요하다. 이 과정은 절대 쉽지 않으며 지속적인 재정 지원, 공공 목표 실천에 대한 합의와 끈기,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에 필자들은 개정 논의를 위하여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실증연구 주제들을 아래와 같이 나열 하고 이에 대한 통찰을 줄 수 있는 국외 사례를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5)
실증연구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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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기에서 임종과정까지의 삶의 질 혹은 죽음 경험의 질에 관한 연구. 단순히 질병의 의과 학적 예후만이 아니라 한 사람이 말기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거치는 의료적 처치, 돌봄의 장소 및 돌봄제공자의 변화, 재정적 부담 등에 주안점을 둔 추적(trajectory)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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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각의 선택지에 따른 질병과 돌봄의 예상 경 과를 환자와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교육학적 연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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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법 체제에 한정되지 않는 현황 조사7) 및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개인의 선호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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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증연구를 통하여 사전에 면밀히 설정된 지 표에 의거한 정책 효과의 지속적 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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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진 외 돌봄제공자들의 경험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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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내 돌보는 이가 없는 이들의 경험과 기대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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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인구구조를 고려한 의사결정구조 및 사회적 지지 시스템에 대한 연구
환자와 가족의 의견을 적극 활용한 말기돌봄 경험의 질에 대한 해외 연구 사례를 살펴보자면 미국에서는 1999년부터 약 5년 동안 말기돌봄의 질을 측정하는 도구 개발이 이루어졌다[19,20]. 이 연구는 생애말기 돌봄의 개선을 위해서는 환자와 돌봄제공자의 경험에 대한 이해와 측정 도구 개발 부터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식에서 시작되었다. 양 질의 생애말기 돌봄의 구성요소를 개념화하기 위하여 문헌조사와 전문가 자문, 그리고 사망자의 생애말기를 함께 경험한 42명의 가족과 최측근 (가족 및 친구 포함)을 대상으로 포커스그룹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양질의 생애말기 돌봄을 결정 짓는 핵심 개념들에 관한 프레임워크8)가 정립되 었으며 해당 개념에 상응하는 설문 문항과 지표 들이 개발되었다[19]. 이 연구는 후에 미 공공보 험 기관이 2015년 ‘호스피스 보건의료종사자 및 시스템 소비자 평가 조사’를 만드는데 기초가 되었으며, 이 설문조사는 전국 호스피스 기관 서비스 질을 평가하고 대중들에게 호스피스 시설에 관 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오늘날까지 활용되고 있다[21,22]. 또한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 도출된 개념틀과 설문문항들은 미국립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ging)의 지원 하에 2011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국민 건강 및 고령화 동향 연구(National Health and Aging Trends Study)’에 일부 포 함되어, 생애 마지막 한 달 돌봄의 질에 관한 설문 조사 자료를 축적하는 데에 쓰이고 많은 연구자는 생애말기 돌봄에 관한 다양한 연구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이 데이터를 활용한다[23]. 이는 전문가와 환자, 가족의 의견을 바탕으로 구성된 개념틀과 설문도구가 꾸준한 데이터 축적으로 이어져 정책, 연구, 소비자들의 의사결정에 활용되는 예를 보여 준다.
한편 미국립노화연구소가 지원하는 ‘건강과 은퇴연구’는 건강의 사회결정적 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관점을 밑바탕으로 하는 설문으로, 1992년부터 지금까지 약 4만 명을 대상으로 소득, 일, 자산, 연금, 건강보험, 신체 및 인지 기능, 의료서비스 이용과 비용지출 등에 대한 자료를 축적해오고 있다. 여기에는 유가족 설문이 포함되어 생애말기 의료서비스 이용과 지출이 가족의 자산에 따라 어떻게 상이해지는지를 실증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한다[24]. ‘건강과 은퇴연구’의 가장 대표적인 연구 결과 및 기여는 건강과 자 산의 강한 상관관계가 실증적으로 증명하였다는 것이다[25].
마지막으로 미국립의학원(National Academy of Medicine)9)의 『미국에서 죽는다는 것: 생애말 기질 향상과 개인 선호의 존중』 보고서는 생애말 기 보건의료시스템의 실태에 관한 연구이며, 환자 중심의 돌봄을 지향하기 위해 변화해야 하는 정 책 분야를 제시한 총체적 연구 결과물이다[26]. 보고서는 2015년 의료진이 사전돌봄계획(advance care planning)에 사용하는 시간에 대한 수가 정책이 도입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보건의료종 사자들이 말기 돌봄시스템 개선의 시급함을 인지하고 사전돌봄계획 문화 정착에 노력을 더 기울이도록 장려하는 기점이 되었다.
미국의 예는 단지 한 사례에 불과하며 유일한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Koh[11]의 주장과 같이 의사조력자살의 법제화를 고려하기 전에 다양한 완화의료 및 말기돌봄에 관한 양질의 사회적 지원이 잘 구축되어 있는지를 평가하고 시스템 실패로 인해 환자와 가족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1차 데이터의 축적, 충분한 시간에 걸쳐 여러 관점의 의견을 수렴하는 연구활동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고령 환자 인구와 가족의 경험을 조사하고 임상적 사실 외에 사회경제적 요인을 총괄적으로 수집하여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만 특정 임상 분야 구분이나 돌봄 환경의 구분, 혹은 법 제의 구분 연명의료인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인가를 반드시 따르지는 않는 개개인의 생애 말기와 죽음의 실제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Koh[11]의 타당한 지적과 같이 우리에게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관점의 교환 이전에 맹점의 점검이 필요하다. 생애말기와 죽음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연관되는 주제인 만큼, 사회적 자원을 투자하여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르는 바를 탐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