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한 글로벌 보건 위기 속에서 의학 분야의 연구는 과정보다 결과의 긴급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연구윤리 태세를 점검하고 연구부정의 근절에 힘써야 한다.1) 한국은 논문 철회율과 연구부정 발생률이 세 계 최상위 수준에 달해 있으면서도2) 연구부정의 전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 ‘연구부정 위험국’이기 때문이다.3) 2021년 1월부터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이 시행됨에 따라 연구윤리의 관심과 저변이 확대 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연구 당사자의 인식과 효용성 있는 정책 추진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적으로 유사한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와 정책은 자연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겠지만, 지금까지 그 실태에 관해 연구된 바가 거의 없다.4)
2021년 11월 현재 논문 철회 감시 사이트인 “리트랙션 워치(Retraction Watch)”에 따르면, 세 계에서 가장 많은 논문이 철회된 연구자 5명 가운데 일본인이 3명이나 포함되어 있다[5]. 후지이 요시타카(藤井善隆)가 183편으로 1위, 사토 요시히로(佐藤能啓)가 106편으로 3위, 이와모토 준(岩本 潤)이 82편으로 5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모두 연구부정으로 인하여 논문이 철회되었다. 2018년 Science는 “거짓말의 파도(Tide of Lies)”라는 제 목의 기사에서 수년간 다수의 논문을 조작하고 거짓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골절 관련 연구와 진료에 해악을 끼친 사토 요시히로의 사례를 소개하였고[6], 2019년에 Nature도 이를 다루며 일본의 안일한 대응을 질타하였다[7]. 이처럼 일본의 연구부정은 세계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부터 연구부정이 속속 발각되어 연구윤리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관심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연구부정에 대한 국가적 대 응을 개시하는 한편으로 연구자 간의 극심한 경쟁을 초래하는 과학기술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2010년대에 들어서는 연구윤리의 ‘암흑기’ 라 평가될 정도로 악질적이고 대형화된 연구부정이 속출하며 위기의식을 증대시켰다.5) 2012년도 호대학(東邦大?)의 후지이 요시타카 사례, 2013년 도쿄대학(東京大?)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의 가토 시게아키(加藤茂明) 사례, 2012∼2013년 노바티스(Novartis)사와 연관된 “디오반(Diovan, 일반명 발사르탄 valsartan)” 사건, 2014년 이화학연구소 (理 化究所, RIKEN)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晴 子)의 “STAP세포” 사건 등 초대형 연구부정이 잇달아 터지며 일본 기초의학 및 임상의학의 연구진 실성을 뿌리째 뒤흔든 것이다. 특히 Nature에 2편이나 실린 “STAP세포” 연구의 진위 논란은 커다 란 파문을 일으켰고, “STAP세포”의 존재 여부에 집착한 이화학연구소의 대응 또한 많은 비판을 받으며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애국주의적 열광과 여론에 휘둘려 연구부정을 적시에 올바로 처리하지 못한 이 사건은 여러모로 황우석 사건과 닮아 있으며, 이와 같은 의생명과 학 분야의 연구부정을 계기로 국가의 연구윤리 정책이 일신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한일 양국은 유사성을 띤다. 일본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22 명(외국 국적자를 포함하면 25명) 배출한 과학 연구의 선진국이지만, 2006년에야 연구윤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연구윤리 후발국이라는 점에서는 2007년에 지침을 제정한 한국과 사정이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양국은 19세기 말 이후 교류와 병탄을 거치며 위계적인 연구실 문화와 경쟁이 치열한 연구 환경을 공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연구부정 사례 및 정책에 관한 경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21세기 일본의 연구윤리 동향을 연구부정 사례와 정책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그 함의를 고찰함으로써 한국의 정책적 방향 설정에 기여하고자 한다.
Ⅱ. 2000년대 일본의 연구부정 사례와 대응
2000년대는 저명한 연구기관에서의 연구부정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가 차원에서 처음으로 연구윤리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시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2010년대에 잇달아 터진 초대형 연구부정을 배태 한 시기이기도 하였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본 장에서는 2000년대의 연구부정 사례와 그 배경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학계 및 국가의 대응을 분석할 것이다.
아마추어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에 의한 희대의 구석기 유물 위조 사건6)으로 2000년 대를 맞이한 일본에서는 국내 유수의 연구기관에서 연구부정이 자행됨으로써 아카데미즘에 대한 사회적인 위기감이 조성되었다. 2004년 8월, 일 본 유일의 자연과학 분야 종합연구소로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이화학연구소의 연구원이 1998 ∼2003년에 발표한 논문 3편에서 변조가 드러났거나 강하게 의심되어[9] 해당 논문이 철회되고 책임저자 2명이 사직하였다. 2005년 4월에는 일본 RNA학회에 의하여 다이라 가즈나리(多比良和誠) 교수 등이 관여한 논문 12편의 재현성 의혹이 제기되어 그의 소속인 도쿄대학이 조사한 결과[10], 연구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재실험을 통해 서도 재현되지 않아 연구 부정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11]. 같은해 5월, 오사카대학(大阪 大?) 의학부 학부생에 의한 데이터 위조 및 변조가 드러나 해당 논문[12]이 철회되었는데, 교신저자의 지도 및 감독 태만과 금품 수수가 얽힌 것으로 밝혀졌다[9]. 이러한 대표적인 연구부정은 모두 의생명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영향으로 해당 분야의 폭발적인 성장이 시작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Slingsby et al.[13]에 따르면, 2000년대 일본의 연구부정은 대학의 임용 형태와 연구비 경쟁이 치열한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이 있다. 종합과학기술 회의가 2001년 12월에 발표한 새로운 정책에 따라 2004년부터 일본의 89개 국립대학과 4곳의 대학 협력 연구기관은 독립행정법인이 되었고, 재무와 인적 자원 배분 관리의 자유가 주어짐으로써 소속 연구자의 연구 성과에 기초하여 임용과 연구비 할당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평가 시스템은 일본의 과학 및 학술 공동체 내의 경쟁을 매우 치열하게 만들었다. 이전 시스템의 대학에서는 일단 조교수가 되면 성과에 관계없이 정년까지 승진과 급여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2000년대에 발생한 부 정행위는 거의 모두 독립행정법인이 된 이화학연 구소, 오사카대학, 도쿄대학 등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2000년대 들어 경쟁적 연구비가 증가하면서 연구자들 간의 경쟁이 더욱 심화되었다. 2001 년에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이 통합되어 탄생한 문 부과학성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교육 거점을 형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21세기 우수 센터 프로그램(21st Century Center of Excellence Program)을 개시함으로써 “대학 간의 경쟁이 보다 활 발히 이루어지”도록 하였다[14]. 이 프로그램은 특히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연구비 지원 정책의 전반적인 개혁이 반영된 것으로서 효율성 및 생 산성 증대를 꾀한 것이었지만, 경쟁의 과열로 인해 나타날 윤리적 파급 효과는 고려되지 않았다. 연구부정을 다루고 감독하는 국가 기관이 전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쟁을 치열하게 부추기는 환 경만 조성되었을 뿐 페어플레이를 담보하는 시스템은 동반되지 못한 것이다. Slingsby et al.[13]은 2006년 당시 한국에서 불거진 복제 스캔들의 영향을 고려할 때 일본의 연구부정은 세계 과학 공 동체 전체의 진실성을 위협한다고 지적하면서 위조(fabrication), 변조(falsification), 표절(plagiarism)의 감독을 위한 체계적인 정책을 신속하게 수립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1949년 1월에 내각총리 관할 ‘특별 기관’으로서 과학 분야의 진흥 및 향상을 목적으로 설립된 일 본학술회의7)는 2003년 6월 24일, 보고서 「과학에서의 부정행위와 그 방지에 관하여」[16]를 발표함으로써 공식적으로는 일본 최초로 연구부정행위를 정의하고 그 방지를 위한 제안을 하였다. 보고서는 특히 일본에서 연구부정 문제가 해결되기 힘든 이유로 연구 및 연구자 양성 시스템의 문제를 든다. “출신 대학에서 대학원생, 포스트닥터, 조수, 조교수로 승진하는 ‘순수배양’, ‘동종 번식’ 시스템”에서는 교수에 대한 충성과 해당 연구실의 관례밖에 모르는 연구자가 양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학회의 동료 의식이 더해져 학계 내부로부터의 비판이나 제보가 어려워지고 학회에서 투명 한 심사가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서 “신진 연구자가 연구 과정에서 ‘다른 곳의 공기를 마시는’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 유동적인 인재 양성 기구를 구축”할 것, 나아가과 학자 커뮤니티가 동료 평가와 재현 실험 등의 자 정 작용을 가질 것과 학회 및 연구기관이 조직 차원에서 윤리 규정과 행동 규범을 정비하여 구성원의 교육에 힘쓸 것을 제시하였다.
일본학술회의는 2003년에 이어 2005년 7월 21 일에 「과학에서의 미스컨덕트 현상과 대책: 과학 자 커뮤니티의 자율을 향하여」[17]를 발표하였다. 사회 규범에서 벗어난 과학자의 ‘미스컨덕트(mis-conduct)’8)를 특정 과학자 집단 내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에 널리 공개하여 ‘사회 일반의 감시’ 하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당시 대다수의 학회에서 윤리 규정이나 행동 규범을 갖추지 않았고, 부정행위나 의심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는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이에 일본학술회의는 학회와 연구기관에 대하여 윤리 강령과 행동 규범을 제정하고 회원들에게 보급할 것을 요청하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의 연구진실성관리국(Office of Research Integrity)을 모델로 하는 연구부정 심리재정기관의 조속한 설치를 제안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 조사위원회를 임시로 설치하는 경우가 많아 서 중립성 및 공정성의 보장이 담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직 내 세력 다툼에 이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독자적인 전문 심사기관을 공적으로 설치하여 연구자 및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공정한 연구활동을 감시·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연구부정이 계속되는 데 위기감을 느 낀 일본학술회의는 2006년 10월 3일, 「과학자의 행동 규범에 관하여」[18]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과학의 건전한 발전과 사회와의 건전한 관계 수립을 위하여 모든 학술 분야에 공통되는 기본적인 과학자의 행동 규범을 직접 제시함으로써 그간 일 본 학계에 부재하였던 윤리 규정 및 행동 강령의 제정을 위한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학문의 자유 아래 자신의 전문적인 판단에 따라 진리를 탐구할 권리”에는 “전문가로서 사회의 신탁에 부응하는 중대한 책무”가 따른다는 인식 하에 필요한 최소한의 행동 규범을 기술함으로써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의 윤리를 강조함과 동 시에 넓은 의미의 연구윤리 규범을 제시하였다.
이 시기 일본학술회의가 내놓은 일련의 제언은 연구자 단체가 솔선하여 연구부정에 관한 문제의 식을 바탕으로 연구윤리 규범을 제시하고 대책을 강구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연구자 양성 체계를 문제시하는 등 어느 정도 구조적인 원인을 분석한 점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연구부정의 억제를 주로 연구자 개인의 행동 규율과 연구자 집단의 자정 작용에 의존하고 연구자 감시 체계의 확립을 촉구하는 등 연구부정의 원인과 책임을 연구 집단 내부에 한정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연구 당사자의 인식 제고와 행동 규제도 중요하지만, 연구부정을 유발하는 보다 근본적인 요인과 그 대책에 대하여 심도 있게 고찰하지 않으면 연구부정의 궁극적인 해결은 요원하다. 그럼에도 연구부정을 둘러싼 시스템과 환경 차원의 접근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내재 하고 있었다.
일본학술회의의 권고에 따라 문부과학성에서는 2006년 8월, 「연구활동 부정행위에의 대응 가이드라인에 관하여: 연구활동의 부정행위에 관한 특 별위원회 보고서」[19]를 발표하였다. 이 가이드라인은 정부 차원에서 최초로 연구부정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며,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연구부정행위를 “연구비의 액수와 출처를 불문하고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과학 자체에 대한 배신행위”이자 “연구자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 파괴” 행위로 규정한다.9) 연구부정의 대응은 연구자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의 문제이므로 연구자 자신의 규율과 연구자 커뮤 니티 및 연구기관의 자정작용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연구책임자 등의 지도자가 이러한 자율 및 자기규율을 젊은 연구자와 학생에게 교육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경쟁적 자금의 비약적인 증가와 연구자의 유동성 확대로 연구 수준이 향상되고 연구조직이 활성화되었다고 평가함과 동시에 이에 따른 경쟁의 격화와 압박으로 인하여 부정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연구부정의 원인으로 무엇보다 연구자의 사명감 부재, 지도자의 교육 태만, 연구조직의 자정작용 미비 등을 집중적으로 지적하였다.
제2부는 연구부정에 대응하기 위하여 문부과학성, 배분기관,10) 연구기관이 정비해야 하는 체계와 규칙의 기본 방향을 확립한 것으로서, 대상 연구부정행위를 위조·변조·표절로 한정하였고, 고의성이 없으면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다만 연구부정의 조사 과정에서 의혹을 해소하려는 피제보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기본적인 연구 기록 및 자료의 부재로 인하여 증거를 내놓지 못하는 경우는 부정행위로 간주하였다. 부정 행위에 관여한 연구자는 물론이고 부정행위에 관여하지 않았어도 해당 논문 등의 내용에 책임이 있다고 인정된 연구자에 대해서도 관련 연구비의 지원을 중단 및 환수하고, 이후 일정기간 동안 경쟁적 자금의 신청을 제한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일본학술회의의 제언에 화답한 문부 과학성은 과도한 경쟁과 압박이 연구부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연구부정을 연구자의 윤리 및 사회적 책임의 문제로 축소하고 연구윤리 위반에 대한 제재 조치를 마련하는 데 그치며 과학기술 정책을 기존의 방침대로 추진하려는 정부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였다. 또한 입증하기 까다로운 고의성을 연구부정의 전제 조건으로 간주하였는데, 이는 이후 수많은 연구부 정 사례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나서야 2014년의 가이드라인 개정판(‘신 가이드라인’)에서 번복하게 된다. 결국 2000년대 일본학술회의와 문부과학성의 대응은 연구자의 행위라는 표면적인 측면에만 주목함으로써 이후 드러나게 될 일련의 대형 연구부정을 예방하는 데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Ⅲ. 2010년대 전반 일본의 연구부정 사례와 대응
앞서 살펴보았듯이 2000년대부터 일본학술회 의와 문부과학성을 필두로 연구부정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이 시작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부정행 위는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2010년대에 대형 연구부정 사건이 연이어 폭로되며 일본의 과학계 및 의료계에 큰 오점을 남기는 사태를 빚었다. 본 장에서는 먼저 네 가지 주요 연구부정 사건을 개관하고 일본학술회의 및 문부과학성의 대응에 관하여 논의할 것이다.
2011년 7월, 해외 학술지에서 도호대학 의학부 마취과 준교수 후지이 요시타카의 논문에 대하여 위조 의혹을 제기하고 도호대학에 조사를 의뢰하였다.11) 도호대학은 조사를 통하여 그의 논문 8편 이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았음을 밝히고 해당 논문을 철회시킴과 동시에 그를 퇴직 처분하는 것으로 결말을 지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 이후 Anaesthesia 등의 학술지에서 그의 논문 168편의 데이터에 의문이 제기됨에 따라 일본마취과학회가 2012년 3월에 조사특별위원회를 조직하여 원저 논문 212편을 조사한 결과[21], 위조되지 않은 논문은 초기에 작성된 단 3편에 불과하였고, 172편에서 위조가 확인되었으며, 나머지 37편은 정보 부족으로 판단이 불가한 상황 이었다.
조사특별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후지이는 연구 자체를 전혀 실시하지 않고 “마치 소설을 쓰 듯이” 대부분의 논문을 작성하였으며, 의심을 피하기 위하여 공저자를 끌어들인 것이었다. 일본 마취과학회는 재발 방지를 위하여 본 사건의 전 모를 일본어 및 영어로 공표할 것, 연구 윤리규정을 학회나 세미나를 통하여 매년 주지시킬 것, 의학 연구자의 책무에 관하여 가이드라인을 작성할 것, 부정 의혹 논문의 접수 및 조사 체제를 학회 내에 마련할 것을 제시하였다. 본 사건은 같은해 Nature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22], 이후 철 회된 논문 수는 183편으로 늘어나 현재까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년 동안 이러한 연구부정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은 일본의 대학 및 학계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하며, 본 사건을 통하여 자율과 자정작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연구 및 행정의 풍토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2012년 1월, 호르몬 핵내 수용체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도쿄대학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가 토시게아키 교수의 연구실에서 작성한 논문 24편의 이미지 데이터 68항목에 위조 및 변조의 의혹 이 제기되었다. 연구소의 예비조사위원회가 1996년부터 2012년까지 가토 연구실 구성원이 펴낸 논문 165편 가운데 60편에서 부정행위가 의심된 다고 판단함에 따라 도쿄대학 과학연구행동규범 위원회는 2013년 9월부터 본조사를 개시하여 51 편의 논문에서 부적절한 이미지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하고 12월에 중간보고서[23]를 제출하였다. 이후의 조사에서 연구실 책임자인 가토 외에도 당시 지도적 입장에 있었던 조교수 야나기사와 준( 澤純), 특임강사 기타가와 히로치카(北川浩史), 준 교수 다케야마 겐이치(武山健一)가 연구부정행위에 가담하였음을 확인하여 2014년 8월에 공표하였다[24]. 이어진 조사를 통하여 위 4명의 교원 외에도 추가로 김미선(金美善) 등 7명이 제1저자로서 위조 및 변조 등의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 으며, 명백한 부정행위가 인정된 논문은 총 33편 이었다. 교원 4명은 각자의 대학에서 사직하였고, 학위논문에 부정 데이터를 사용한 대학원생은 학 위가 취소되었다.
최종 조사보고서는 이처럼 상습적이고 조직적인 연구부정이 일어난 원인 및 배경으로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잡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을 과도하게 중시하여 스토리에 맞는 실험결과를 요구하는” 가토의 연구실 운영을 들었다. 교원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조장하며 미리 짜놓은 실험 결과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데 대하여, 대학원생 시절부터가 토의 지도를 받아온 부정행위 가담자들은 관행에 따라 그것을 “거부하기는커녕 무리를 해서라도 부 응할 수밖에 없다는 의식”을 갖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연구부정이 개입된 과거 연구 프로젝트의 평가보고서에서 “지극히 수준 높은 연구가 이루어져 성과의 질과 양에서 보기 드문 성공 사례”이자 “연구 성과 및 인재 육성 양 측면에서 탁월한 수준”을 보였다며 종합평가 ‘A+’ 등급을 받은[25,26] 가토 연구실의 몰락은 과학자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12년 12월, 일본순환기학회는 이전부터 연구 부정의 의혹을 받고 있던 교토부립의과대학 순환기내과 마쓰바라 히로아키(松原弘明) 교수 등의 논문 2편을 철회하였다. 임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노바티스(Novartis)사의 혈압강하제 “디오반(발사르 탄”이 혈압강하뿐만 아니라 협심증, 급성심근경색, 뇌졸중 등 심혈관 이벤트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해당 논문의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교토부립의과대학은 단순한 입력 오류일 뿐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결국 제3자 기관을 통하여 심혈관 이벤트의 해석용 데이터가 위조되었음이 밝혀졌다[27]. 이러한 위조는 마찬가지로 “디오반”의 임상연구를 실시한 도쿄지케이 카이의과대학(東京慈 科大) 순환기내과 모치즈키 세이부(望月正武) 교수 등의 논문에서도 발 견되었는데, 본 사례들은 교토부립의과대학, 도쿄 지케이카이의과대학, 지바대학(千葉大 ), 나고야 대학(名古屋大 ), 시가의과대학(滋賀 科大 )의 순 환기내과가 약 10년에 걸쳐 참가한 대형 임상연구의 일부였다. 이 5개 대학은 노바티스로부터 11년 간 총 11억 3290만엔에 달하는 기부금을 받았고[28], 모두 관련 프로젝트의 논문이 철회되는 결말을 맞이하였다.
해석용 데이터를 위조한 인물은 10년간 오사카 시립대학 비상근 강사로 잠입하여 5개 대학의 모 든 관련 연구에 참가한 노바티스 사원 시라하시 노부오(白橋伸雄)였다. 그에게 강사 자리를 제공한 오사카시립대학의 연구실은 400만엔의 기부금을 받고 매년 계약을 갱신하여 주었다. 도쿄지케이 카이의과대학과 교토부립의과대학의 논문이 발표 된 이후 “디오반”의 매출액은 연 1400억엔에 달하였다[29]. 본 사건은 기업의 이윤 추구와 연구자의 무책임이 불러온 심각한 연구부정행위로, 임상시 험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일본 의학계의 근간을 뒤 흔들 뿐만 아니라 환자와 국민 전체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악질적인 것이었다. 2013년 7월, 일본의학회는 재발 방지를 위하여 의사 주도 임상시험 실시 규칙 제정, 금전관계의 투명화, 이해충돌의 관리 등의 확보를 천명하였고[30], 국가 차원에서는 2017년에 “임상연구법”이 제정됨으로써 제약회사가 개입하는 임상연구는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되었다.
2014년 1월 말,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 종합연구센터는 기자회견을 열어 세포리프로그래 밍연구유닛 리더 오보카타 하루코가 “자극 야기 성 다능성 획득(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 세포”, 일명 “STAP세포”를 만들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하였다. 실험용 마우스의 세 포가 산성 용액을 비롯한 강한 외부 자극을 받으면 배아줄기세포처럼 다능성을 획득한다는, 기존의 생물학적 상식을 뒤엎는 획기적인 것으로, Nature에 관련 논문 2편이 게재되었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후인 2월 초부터 온라인 논문 검증 사이트 인 “PubPeer” 등에서 논문의 위조 및 변조 의혹이 제기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재현이 안 된다는 보고도 잇따랐다. 이화학연구소는 2월 13일에 예비 조사를 실시하여 6가지 의혹 중 2가지에 위조 및 변조가 인정된다는 조사 결과를 3월 31일에 공표하였고[31], 7월 2일, 저자들의 요청에 따라 논문 2편 모두 철회되었다[32]. 또한 2011년에 집필된 오보카타의 박사학위 논문에도 부정행위의 의혹 이 제기되어 와세다대학(早?田大?)이 조사한 결과, 표절 등 고의에 의한 부정행위가 인정되어 10월 7일, 박사학위의 취소가 결정되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개혁위원회는 6월 12일에 「연구부정 재발 방지를 위한 제언서」[33]를 제 출하여 문제의 배경에 조직의 구조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고, 연구부정의 재발 방지책으로서 발생·재생과학종합연구센터의 해체, “STAP 현상”의 유무 확인, 거버넌스 체제 변경,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개혁감시위원회 설치 등의 엄격한 조치를 제언하였다. 다만 “STAP 현상”의 재현을 주문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대중과 영합하여 이화학연구소에 윤리적 책임의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비상식적인 처사였다. 이화학연구소는 “STAP 세포”의 재현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부정행위 당사자인 오보카타를 개혁추진본부 검증실험팀에 편입시켜 ‘재현 실험’에 참여시켜 논문에 기재된 것과 다른 방법을 쓰도록 허용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12월 25일에 공표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STAP세포”의 만능성은 허구였고, 실험 기록 및 원본 데이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실험 방법과 데이터 취급에 초보적인 과실이 매우 많았고, 이러한 수많은 문제에 공동연구자는 침묵하였다. 이처럼 “STAP세포” 사건은 오보카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연구자, 이화학연구소, 개혁위원회 또한 윤리성과 전문성 양 측면에서 바닥을 드 러낸 하나의 현상이었다. 게다가 매스컴과 대중은 시종일관 젊은 여성 연구자인 오보카타의 외모와 “STAP세포”의 존재 여부에만 집착하며 진실 규명을 방해하였고, 논문 작성에 깊이 관여한 공동연구자로서 책임이 막중하였던 사사이 요시키(笹井 芳樹)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본 사건은 문부과학성이 연구부정 대응 지침을 개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34].
이러한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한 일본학술회의는 2013년에 「과학자의 행동 규범: 개정판」[35]의 성 명을 발하였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일본학술회 의는 2000년대 초부터 연구부정행위가 높은 빈도로 보고됨에 따라 「과학자의 행동 규범에 관하여」 (2006)을 발표한 바 있었지만, 위와 같은 심각한 연구부정이 잇따라 적발되자 개정판을 낸 것이었다 .12) 개정된 행동 규범에서는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특히 강조되었다. 과학자는 진리의 해명과 다양한 과제의 달성이라는 사회적 기대에 부응할 책무가 있고, 과학자의 발언이 여론 및 정책 형성에 대하여 미칠 영향의 중대성과 책임을 자각해야 하며, 연구 성과가 자신의 파괴적 행위에 악용될 가능성을 인식하여 적절한 수단과 방법을 선택할 것이 권고되었다.
일본학술회의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13) 과학 연구의 건전성 향상에 관한 검토위원회를 발족시켜 2013년 12월 26일 「연구활동에 서의 부정 방지책과 사후 조치: 과학의 건전성 향상을 위하여」[36]라는 제언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보다 구체화된 제안이 강경한 어조로 서술되어 있다. 연구자 및 연구기관 측에서 연구부정의 사전 방지를 위한 활동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체제 확 립을 추진할 것을 요청하고, 일본학술회의 측에 서도 각 기관과 제휴하여 연구부정 퇴치에 진지하게 임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연구부정의 사 전 방지를 위하여 연구자 개인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계자가 총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였다. 아울러 사후 대응책으로서 위원회 및 공익 통보 조직 설치 등 연구기관의 대응 조치 강화, 제3 자 기관의 개입, 연구부정 사안의 공표 등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제언은 문부 과학성이 2014년에 개정한 가이드라인에도 반영 되었다.
이는 2003년 및 2006년의 제언보다 한 단계 발전된 것으로, 연구부정에 대하여 기관 차원의 관리 책임을 묻도록 문부과학성 가이드라인 개정을 이끌어 낸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국가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에게 연구부정 방지 노력을 촉구할지언정 여전히 규범과 제재를 앞세워 연구자 개인의 부정행위를 적발하고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진 인력을 중심으로 연구자가 처해 있는 과도하게 경쟁적이고 불안정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보다는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전제한채 연구부정의 예방 및 대응에 몰두하려는 다 소 피상적인 발안이 우선시되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14)
2006년의 가이드라인 (“구 가이드라인”으로 표 기) 작성 이후에도 중대한 연구부정이 끊이지 않자 문부과학성은 “STAP세포” 사건의 후폭풍이 한 창이던 2014년 8월, 「연구활동에서의 부정행위에의 대응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이하 “신 가이드라인”으로 표기)」[37]을 공표하였다(적용일은 2015 년 4월 1일이다). 신 가이드라인은 서문에서부터 구 가이드라인에 비해 더욱 명료하고 강경한 어 조로 연구부정행위를 단죄한다.15) 또한 고의적인 경우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 변별해야 할 기본적인 주의 의무를 현저하게 게을리한” 경우도 부정행위로 간주되었다. 기존에는 의도적이지 않았다는 부정행위자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라 부정행 위가 아닌 것으로 인정받는 사례가 많았다. 예컨대 “STAP세포” 사건은 구 가이드라인에 기초하여 조사되었기 때문에 오보카타의 여러 혐의에 대해 초보적인 실수와 미숙함을 들어 면죄부를 주었고[31,32], 오보카타 자신도 부정행위라 판단된 것까지 고의성이 없었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였다[38]. 그러나 신 가이드라인의 등장으로 중대한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변명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신 가이드라인의 가장 큰 특징은 문부과학성의 지도 및 감독 하에 연구기관으로 하여금 연구윤리 확립과 연구부정행위 예방을 위한 관리 책임을 지도록 하는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연구부정행위가 일어나는 배경으로 “경쟁적 환경의 급속한 진전, 연구 분야의 세분화 및 전문성의 심화, 연구활동 체제의 복잡화·다양화”를 꼽으며 “부정행위 방지에 관한 대응이 오로지 개개 연구자의 자기 규율과 책임에만 맡겨진” 결과 과학 커뮤니티의 자정 작용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다고 진단하고, 연구환경과 연구비를 제공하는 연구기관 및 배분기 관에 더 큰 역할을 부과하게 되었다[37]. 체제 정비에 불비가 있거나 개선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연구기관에 대하여 문부과학성은 해당 연구기관에 개선 사항 및 기한이 명시된 ‘관리조건’을 부여 하고 배분기관은 간접경비를 삭감하며, ‘관리조건’ 이 착실히 이행되지 않을 경우 경쟁적 자금의 배분은 정지된다.
연구부정행위로 인정된 사안에 관하여 2006년의 구 가이드라인에서는 연구기관이 조사보고서 등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지만, 신 가이드라인에서는 문부과학성이 직접 사안의 개요와 연구기관 및 배분기관의 대응을 정리하여 공개하게 되었다. 열람을 통하여 부정행위를 사전에 억제하고 부정행위가 발각되었을 경우의 대응에 활용할 것을 기대 한 조치였다. 미국 연구진실성관리국은 부정행위자의 실명까지 공개하지만, 문부과학성은 해당 연구자의 소속 연구기관과 직위만을 공개하고 조사 보고서에 기재된 발생요인과 재발방지책을 덧붙여 기재한다. 이는 실명 공개를 통하여 부정행위 자 개인을 제재하려는 미국 연구진실성관리국과 달리, 문부과학성의 목적은 부정행위의 예방과 연구기관의 관리 책임을 명확히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16)
신 가이드라인은 연구부정에 대하여 고의성 조건을 삭제하고 연구자 개인뿐만 아니라 정부, 연구기관, 분배기관 각각의 역할과 의무를 명시함으로써 보다 포괄적이고 조직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이 낳은 연구부정의 구조적인 배경을 인식하면서도 여전히 그 책임을 연구자와 기관에 돌렸다는 점에서 구 가이드라인의 기조를 답습하는 것이었다. 과학기술 정책과 관계없이 연구부정의 예방 및 대응 기구를 조직하고 상설화할 것을 언명한 것은 진일보한 대처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연구자를 극심한 경쟁 체제로 내몬 상황에서 연구윤리의 강요 수위를 높이는 이 중 압박 정책이 연구부정의 근절에 얼마나 효과적 일지는 미지수이다.
Ⅳ. 2010년대 후반의 연구진실성 체제 확립
2021년 4~5월에 문부과학성은 「공정한 연구 활동 추진을 위한 대처」라는 문건을 영어와 일본 어로 각각 발표하였다[40]. 이 문서에 따르면, 현 일본의 연구진실성 체제는 2014년에 제정한 신 가이드라인을 골자로 하여 성립된 것이다. 신 가이드라인의 실천을 위한 후속 조치로서 문부과학 성은 2015년 4월, 성내 과학기술·학술정책국 인 재정책과에 연구진실성추진실을 두고 “공정한 연구활동 추진에 관한 유식자 회의”17)를 설치하였다. 배분기관도 보조를 맞추어 같은 달에 과학기술진흥기구(JST, Japan Science and Technology Agency)가 연구진실성과를,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AMED, Japan Agency for Medical Research and Development)가 연구진실성·법무과를 신 설하고 2018년 4월에는 일본학술진흥회(JSPS, Japan Society for the Promotion of Science)가 감사·연구진실성실을 조직함으로써 연구윤리 교육, 연구윤리 관련 정보 제공, 관계자 네트워크 구축, 연구부정 관련 상담·조언·조치 등 연구윤리 전반에 관한 폭넓고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문부과학성은 신 가이드라인에 따라 연구윤리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고, 실질적인 업무는 배분기관이 맡았다. 먼저 일본학술진흥회는 일본학술회의와 협력하여 2015년 2월에 연구윤리 교재 『과학의 건전한 발전을 위하여: 성실한 과학자의 마음가짐』[41]을 개발하였고, 이에 기초하여 2016년에 연구윤리 e러닝코스를 개발하여 운용하고 있다[42]. 과학기술진흥기구는 2015년 6월부터 미국 연구진실성관리국의 연구윤리 교육 영상교재 “The Lab”의 일본어판을 제공하고[43] 2017년부터 매년 “공정연구추진워크샵”을 개최하고 있다.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는 2017 년 3월에 의료 분야 연구부정행위 사례집 『사례에서 배우는 공정한 연구 활동: 깨닫고 배우기 위한 사례집』[44]을 펴내고18) 2020년 3월에는 부정행 위에 이를 뻔한 사례를 모은 『연구진실성에 관한 오싹 깜짝 사례집』[45]을 발간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문부과학성 “대학간연휴공동교육추진사업”의 일환으로 국제적으로 통용될 것을 목표로 한 연구 윤리 교육 e러닝 교재가 개발되고 공정연구추진 협회(APRIN, Association for the Promotion of Research Integrity)19)에 인계되어 2017년도부터 “APRIN e러닝프로그램(eAPRIN)”으로서 운용 및 개정이 이루어지고 있다.20)
한편, 신 가이드라인에서 폭넓은 연구윤리 교육을 실시하고 책임자를 둘 것이 연구기관에 요구된 만큼, 연구윤리 교육을 전담할 인재의 양성과 정보 교환이 중요하고 급한 과제로 부상하였다.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에서는 전국적으로 효율적인 연구진실성 활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2017 년에 “RIO네트워크”를 설립하였다[48]. 일본의료 연구개발기구의 연구자금을 분배받은 연구기관의 “연구진실성 관리 책임자(RIO, Research Integrity Office)” 및 “연구진실성 담당자”뿐만 아니라 기타 기관에서 연구활동의 부정 방지 또는 연구비의 부정 사용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자들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업무 관련 일상적인 정보 교환, 연례회, 분과회 등에 참여한다. 이처럼 문부과학성의 지도 아래 배분기관과 연구윤리 관련 단체가 연구부 정의 방지 및 대응을 위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상의 활동은 ‘가이드라인’에 입각한 대처였지만, 2018년 12월 14일, 「연구개발 시스템 개혁의 추진 등에 의한 연구개발 능력의 강화 및 연구 개발 등의 효율적 추진 등에 관한 법률」이 「과학기술·이노베이션 창출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로 개칭됨과 동시에 일부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일본 최초로 연구진실성 관련 사항이 법률 조항으로서 규정되었다(2019년 1월 17일 시행)[49]. 연구자, 연구기관, 국가의 연구진실성 노력 의무를 명시한 제24조의 2(“연구개발 등의 공정성 확보 등”)에 따르면, “연구자 등은 연구개발 등의 공정성 확보 및 연구개발 등에 관한 자금의 적정한 사용에 관 하여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연구기관은 연구자의 연구윤리 교육과 연구부정행위에 대하여 적절히 대처하여야 하며, 국가는 연구부정행위 방지를 위하여 체제를 강화하고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50]. 이처럼 2010년대 후반 이후 신 가이드라인의 지침이 구현되고 법적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체계적인 연구진실성 체제가 확립되었다. 이는 고무적인 일이지만, 여전히 국가 주도의 일방적이고 하향적인 정책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효과적인 결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Ⅴ. 연구부정과 정책에 관한 고찰
일본이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국가적 대응 체계를 처음으로 구축한 것은 문부과학성이 구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2006년이다. 그 이후에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대형 연구부정행위가 끊이지 않자 2014년에 신 가이드라인을 작성하여 연구자, 연구기관 및 배분기관, 국가(문부과학성) 각각에 연구부정행위의 방지를 위한 노력과 사후 관리를 주문하고 이를 위한 광범위하고 세밀한 체제를 확립하였다.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사안을 공개하고 연구비 반환 및 간접비 삭감 등의 제재를 부과하는 등 사실상의 강제력을 동원함으로써 연구부정 행위의 억제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2010년 대 중반 이후 문부과학성 웹페이지에 게재되는 특정부정행위 건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악질적인 연구부정행위가 잇따라 발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도쿄대학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 교수였던 와타 나베 요시노리(渡 嘉典)는 2015년까지 8년간 최소 5편의 논문에서 실험 데이터를 위조 및 변조하였고,21) 오사카대학 의학부 부속병원 및 국립순 환기병연구센터 소속 의사였던 노지리 다카시(野 尻崇)는 2015년 이후 폐암 임상연구와 관련된 최소 5편의 논문에서 실험 데이터를 위조 및 변조 함으로써 이에 기초하여 환자 총 335명이 참여한 임상시험에서 최소 10건의 이상 반응이 나타났다 [52,53,54].
이처럼 연구부정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정책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효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신중히 지켜볼 필요도 있다. 다 만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교토대학 iPS세포연 구소 소장 야마나카 신야(山中伸 ) 교수가 연구부 정의 배경으로 연구자가 받는 심리적 압박을 지목 하였듯이[55], 연구자 간에 극심한 경쟁을 유발하는 고용 및 연구비 배분 정책이 유지되는 한, 연구 부정 방지 정책이 주효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연구자의 ‘생존 경쟁’을 부추겨 연구부정의 원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연구부정을 억제하려는 소모적이고 지속 불가능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연구부정의 근절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이며, 지금까지 많은 사례가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연구부정의 발생은 과학기술 정책과 관계가 깊다. 연구윤리 전문가 마쓰자와 다카아키(松 澤孝明)는 일본의 연구부정 추정 발생 건수의 경향 <Figure 1>이 과학기술 정책의 변천과 비교적 잘 일치한다고 분석하였다[56]. 1990년대에 들어 일 본 정부는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 육성을 위하여 대학원 중점화 및 대학원생 확충을 도모하였고, 그 결과 1991년에 98,650명이었던 대학원생이 2000년에는 205,311명이 되어 9년만에 약 2.1배로 급증하였다[57]. 하지만 이들에 대한 내실 있는 교육이 뒷받침되지 못하여 연구 수준의 저하 및 미취업 문제가 발생하였고,22) 이러한 상황에서 1995년에 제정된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5년 단위의 과학기술기본계획이 추진되었다. 1990 년대 중반에 연구부정 추정 발생 건수가 증가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경쟁적 자금의 대폭 증가와 ‘포 스트닥터 1만 명 계획’으로 대표되는 제1기 계획 (1996~2000년도)에 기초하여 과학기술에 대한 자원의 양적 투입이 증대된 시기와 겹치며, 연구 부정 추정 발생 건수가 급증하는 2000년대 전반은 경쟁적 자금이 “중점 4분야(생명과학, 정보, 환 경, 나노·재료)”로 집중되고 임기제의 보급 및 연구평가의 강화 등으로 경쟁적 환경이 한층 심화된 제2기(2001~2005년도)와 일치하는 것이다[56]. 추정 발생 건수가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한 2005년 이후는 과학기술의 질적인 측면이 중시된 제3기(2006~2010년도)와 중첩되며, 2004년 이후 국립대학의 법인화가 실시되면서 대학 운영 보 조금의 감소에 따른 연구자 간 경쟁의 격화 및 격 차의 확대가 초래된 시기였다[59]. 당시 도쿄대학을 위시한 저명한 국립대학에서 연구부정행위가 발생하여 사회적 관심이 커진 것도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제4기(2011~2015년도)에는 기 존의 분야별 중점화 방침이 과제 달성형으로 전환 되며 지원 과제의 ‘선택과 집중’이 심화되었고, 제5기(2016~2020년도)에 이르러서는 산업 경쟁력 강화와 ‘출구 전략’이 강조되어 기초과학의 경시 경향이 두드러졌다. 결국 25년에 걸친 과학기술기 본계획의 결과는 연구부정의 끊임없는 발생과 더불어 연구의 질적 저하로 나타났다.24)
이처럼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과학기술 정책은 양적 팽창, 성과주의, 경쟁원리, 고용 불안정, 연구비 편중 및 불균등한 분배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절박한 상황에 처한 연구인력이 부정행위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정부도 연구부정이 증가하는 배 경으로 이러한 환경을 지적하고 있지만, 과학기술 정책의 방향 전환보다도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사명감과 자정노력만을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 컨대 일본의 과학기술 정책은 연구부정 방지 정책과 양립될 수 없으며,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특히 의생명과학 분야에 연구부정이 집중되는 현상은 눈앞의 결과에 급급하고 일부 ‘주연급’ 연구에 연구비를 몰아주는 관행, 그리고 신진 연구자의 불안정한 고용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결국 기초의학의 위기로도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이다. 지금 우리는 백신 주 권이 국가 안보 및 국민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
일본에서 연구부정 사례가 많은 이유를 문화에서 찾는 논의도 설득력이 있다. 맹목적으로 과학적 진보가 옳고 좋은 것으로 인식하는 문화와 가장 뛰어난 연구성과에 대한 압박이 연구자를 부정 행위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59]. 비슷한 맥락에서 교수와 과학자에 대한 일본 사회의 과도한 신뢰가 연구부정을 제대로 감시할 수 없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6]. 이와 더불어 집단주의적 문화와 조직의 위계적 질서도 연구부정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교수나 연구책임자는 소속 연구자들의 자금 지원, 학위 취득뿐만 아니라 장래 및 진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따라서 연구자는 이들로부터 연구 성과에 관한 무리한 요구를 강요받아도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젊은 연구자들에게 기초적인 연구 방법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작된 데이터를 제출해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 이 자리잡을 수 있다. 세계적 수준의 업적을 자랑하던 도쿄대학 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 가토 연구실의 연구부정이 이러한 연구실 문화를 여실히 드러낸다. 따라서 개개 연구자를 대상으로 연구부정을 억제하기 위한 연구윤리 교육만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억압적인 연구 문화를 철폐하고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연구 문화를 조성 함으로써 바람직한 연구로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일본의 연구윤리 동향은, 연구 생태계와 연구 문화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연구윤리 교육의 강화나 연구부정의 사후 처리에만 매달려서는 연구윤리의 확보가 요원하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연구 역량 강화라는 명목 아래 비정규직 연구자를 급증시켜 고용 불안 상황을 조성하고 ‘성과’ 중심의 치열한 연구비 수 주 경쟁을 부추기는 연구생태계에는 연구자로 하여금 ‘생존’을 위하여 연구부정의 유혹에 끌리게 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며, 여기에 수직적 위계 질서가 지배하는 연구실 문화가 더해지면 연구 부정에의 압력은 더욱 증폭된다. 이러한 상황을 방치한 채 모든 책임을 연구자에게 돌리며 처벌의 수위만을 높이는 하향식 정책으로는 연구윤리에의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벌만 피하면 되는, 즉 중대한 연구부정행위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바람직하지는 않은 연구 행위로의 유인 이라는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이처럼 기존의 단 선적인 정책은 연구부정의 억제는커녕 국가 연구 역량의 잠식을 초래한다는 것을 일본의 사례가 입증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연구 윤리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첫째, 연구 인력의 계획적인 양성과 안정적인 연구자 고용 창출이 주요 과제로 논의되어야 한다. 연구자 과포화 시 대와 인구 절벽 시대를 동시에 맞이한 한국의 현 상황에서 이는 비단 연구부정 문제에 그치지 않고 미래 국가경쟁력의 명암까지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둘째, 소수의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편중시키는 승자 독식 체제, 단기간의 연구 성 과가 연구팀의 생존을 좌우하는 과열 경쟁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연구부정을 유도하는 직접적인 추동력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연구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황우석 사태 이후 줄기세포 연구의 주도권을 상실한 경험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연구윤리의 문제가 곧 연구정책의 문제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셋째, 일선의 연구자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상향식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 주도의 하향식 정책과 일방적 통제 일변도로는 연구윤리를 거추장스러워 하는 연구자 자신의 의식을 바꾸기 어렵다. 넷째, 바람직 한 연구 문화의 조성을 꾀하여야 한다.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에 그치지 말고 책임 있는 연구에 대한 보상과 장려 정책을 마련하여 이를 연구 성과 평가에 활용한다면 보다 자율적이고 건전한 연구 문화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통합적인 접근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연구윤리의 확보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Ⅵ. 결론
일본은 과학기술 선진국이지만, 연구윤리 분야에서는 후발국이다. 연구부정행위가 빈발하여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자 2006년에야 문부과학성은 가이드라인 작성을 통하여 연구부정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축하였다. 2006년의 구 가이드라인은 기본적으로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자율과 자정작용에 기댄 것이었지만, 연구부정행위는 갈수록 심각한 양상을 보였다. 이에 2014년의 신 가이드라인에서는 연구자, 연구·배분기관, 국가의 책무를 명시하여 강제성을 띠는 정책이 채용됨으로써 위반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연구윤리 교육이 의무화되는 등 연구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광범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구부정행위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위반자와 소속 기관에 가해지는 불이익은 분명 어느 정도 부정행위의 억제 효과를 가져올 수 있겠지만, 집단 전체로 보면 부정행위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발각으로 인한 불이익과 그 확률의 곱이 더 클 때 부정행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정부와 학계와 언론은 연구부정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이 과학기술 정책에 따라 극심한 경쟁을 초래하는 연구환경과 연구자의 불안정한 고용 상황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문부과학성의 가이드라인에도 이러한 인식이 반영되어 있지만, 정책적 전환을 단행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꾀하기보다는 연구 당사자들의 예방 및 대응 체제를 구축하려는 데 그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연구부 정을 일으키는 성과주의적 압력은 박사학위 취득자의 공급 과다를 발생시킨 정부 정책의 결과이므로 고용 불안 없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61]. 마찬가지로 연구부정행위의 대책을 관계자 처벌과 교육에만 의존하는 것은 부족하며, 성과 중심의 평가를 조장하고 최고만을 추구하는 정부 정책을 재검토하고 순위로 평가될 수 없는 창의적이고 기초적인 연구를 지원함으로써 연구 생태계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59]. 또한 연구실 내의 위압적인 분위기와 부실한 교육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윤리 전문가 후다노 준(札野順)은 의무와 금지 사항만을 제시하는 “예방윤리(preventive ethics)”에 머무르지 말고 뛰어난 의사결정과 행동을 촉진 하는 “지향윤리(aspirational ethics)”를 교육의 방 침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62]. 이는 연구부 정행위 및 바람직하지 않은 연구행위의 예방에서 바람직한 연구행위의 지향으로 이행되어야 하는 연구윤리 교육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은 인구당 연구자 수와 GDP 대비 연구개발비의 규모의 측면에서는 선진국이지만, 연구윤리 분야에서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후발국이다. 하지만 논문의 철회율이 세계 최상위 수준이고 연구 부정행위 사례는 제대로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본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대형 바이오사이드(biocide) 참사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연구부정과 그에 대한 부실한 후속 조치는 한국 연구윤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 2021년 1월에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이 시행됨으로써 연구개발 체제와 연구진실성 체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발전 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지만, 향후 연구 진실성 확보를 위하여 노력해야 할 과제와 도전이 상당하다. 문화적·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의 연구부정 사례와 정책에 대한 고찰을, 한국의 연구 윤리 상황을 성찰하고 정책을 효과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극심한 경쟁과 고용 불안정을 조장하는 과학기술 정책,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연구부정의 책임을 연구자와 관련 기관에 돌리는 연구윤리 정책, 그리고 위압적인 연구 문화로 상징되는 일본의 부조리를 거울 삼아 이미 그 전철을 밟고 있는 우리의 궤도를 수정할 것이 시급히 요청된다. 이에 본고는 연구 인력을 계획적으로 양성하고 안정적인 연구자 고용 창출을 이룰 것, 소수의 연구자가 연구비를 독식하고 단기간의 연구 성과가 생존을 좌우하는 과열 경쟁 체제를 철폐할 것, 연구윤리 정책에 일선 연구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것, 바람직한 연구 문화를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