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019년 겨울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 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은 의료 현장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연구수행에도 상당 한 장애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 유행이 증가함에 따라 임상시험의 연구대상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결과 연구 진행을 미루고 있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1]. 이런 장 애는 연구의 윤리적 측면에 대해서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과거 중증급성호흡기증 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과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 유행을 경험하였다. 이들 경험 이 방역과 질병 관리라는 측면에서는 훌륭한 선례가 되었으나 연구의 윤리적 측면에 대한 논의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최근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의 IRB 심의와 주요 쟁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으나, 재난 상황에서의 연구 윤리의 원칙 정립과 전반적인 거버넌스에 대한 검토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2].
신종감염병의 대유행은 인명의 손실과 큰 인간적 고통을 야기할 뿐 아니라 각종 자원의 소모 및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초래한다. 이런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연구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연구로 얻은 정확한 지식이 인명의 손실,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 사회적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범유행병으로 여러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과학적으로 건전하지 않은 연구를 시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비윤리적이며, 연구 대상자와 사회 전반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치료제 나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연구윤리 체제와 관리가 필요하다. 현재 연구의 과학적이고 윤리적인 수행을 보장하는 최선의 체계는 연구윤리심의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 IRB)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신종감염병 연구를 적절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도 IRB를 효과적이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 연구의 윤리적 측면을 논할 때 IRB 심의 체계가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연구윤리의 주요 이해당사자는 IRB나 그 소속 위원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연구자, 의뢰자, IRB 위원, 연구윤리 전문가, 연구윤리 진작을 위해 활동하는 공공기관 종사자 등 모두가 연구윤리를 진작시켜야 하는 이해당사자들이다. 또한, 연구윤리는 연구의 계획 단계에서 연구의 수행, 연구결과의 출판과 보급 단계에 모두 적용되고 실현되어야 한다. 만약 연구윤리의 적용이 IRB를 통한 연구계획의 사전 심의에만 국한된다면 -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그러하겠지만 - 특히 범유행 상황에서는 대단히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범유행병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연구대상자에게 노출되는 위험이 실시간으로 변화할 수 있고, 어떤 치료 책이 효과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동료심사의 어려움과 출판 압박으로 인해 근거가 부족한 연구결과의 출판이 늘어남에 따라 출판윤리상의 혼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4]. 따라서, 범유행 상황에서 바람직한 연구 윤리의 실현과 진작을 고려할 때 IRB 체계는 그중 일부에 해당할 것이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재난 상황에서의 연구윤리의 특성, 이때 고려해야 할 연구윤리 가치와 원칙, 심의 체계와 방법론 및 주요 윤리적 쟁점, 그리고 국내 코로나19 관련 연구윤리 현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II. 본론
코로나19와 같은 신종감염병이 범유행 하는 재난 상황에서는 관련 연구의 긴급한 수행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IRB의 통상적인 심의와 승인 절차는 이러한 요구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정상’ 상황에서의 IRB의 심의와 승인은 보통 수 주에서 수개월 걸리는 과정이며, 다수의 절차와 서류작업을 필요로 한다. 재난 상황에서는 이러한 시간적 소요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2004년 SARS가 유행할 때 치료제 연구를 수행하였던 일부 연구자들은 IRB 심의 과정이 연구수행에 상당한 장애가 되었다고 토 로하였다[5]. 2009년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기술자문워크샵에서 지적되 었듯이, 대부분 연구윤리지침은 평상시의 임상연 구를 기준으로 수립되었으며, 공중보건연구나 재난 상황에서의 연구를 고려하여 수립된 것은 아니다[6].
재난 상황에서는 일반 시민의 위험과 이익에 대한 이해와 인식도 정상 상황과 비교하여 다를 수 있다. 홍콩 병원 근로자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신종플루 유행 시 백신을 접종받을 의사가 있는지 조사하였을 때 3단계 주의경보가 발효되었던 H5N1 유행 때에는 28.4%가 접종받을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5단계 주의경보가 발효되었던 H1N1 유행 때에는 47.9%가 접종 의사를 밝 혔다[7]. 때로는 정상 상황에서는 허용되지 않았을 연구 설계나 수행 방식 - 전임상 생략, 의도적인 인체 바이러스 주입 연구, 오버래핑 모델, 클러스터 임상시험 등 -을 고려하기도 한다[8].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는 연구와 조사 또는 감시 활동 (surveillance)의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있을 뿐 아니라 연구와 치료의 구분이 모호한 경우도 발생한다. 또한, 재난 구조에 참여한 자원봉사자가 연구 수행의 일원이 되어 연구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연구와 치료, 조사, 감시 활동을 어떻게 구분할지, 연구자의 역할은 누가 수행하며, 그 역할과 책무는 무엇인지, 어느 수준의 위험을 이익과 비교하여 유연하게 수용할지 등의 문제를 모두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범유행병과 같은 공중보건 위기상황에 적용 가능한 연구윤리지침은 아직 그 수나 완성도에 있어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 재난 상황에서의 연구윤리지침이 국제적으로 여럿, 개발, 공표되고 있다. 캐나다는 SARS 유행을 겪은 후 2010년 연방 차원의 연구윤리지침이라 할 수 있는 삼위원 회 정책 선언(Tri-Council Policy Statement)을 개 정하면서 “연구윤리심의 거버넌스(governance of research ethics review)” 항목에 D 항목을 별도로 신설하여 “연구기관은 긴급 상황에서 연구를 수행할 것을 예상하고 시의적절한 절차의 운영, 심의위원의 가용성, 기관 간 협력 등을 담은 긴급 대비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9]. 국제 인도주의 의료구호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 MSF)는 2001년 자체적으로 연구윤리위원회를 설치, 운영하였으며, 이런 경험을 통해 재난이나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 기존의 헬싱키 선언과 벨몬트 보고서 등이 적절한 의사결정 구조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판단 하에 자체적으로 심의 체계를 개발하였다[10,11]. 한편, Tansey 등 캐나다 연구자 그룹은 삼위원회 정책 선언의 한계를 보완하여 비례적 심사(proportionate review), 특별 검토(special scrutiny), 신속심사(expedite review)를 골자로 하는 윤리성 심의 체계를 제안 하였다[12]. 그 외에 고소득 국가의 연구자나 연구집단이 재난에 처한 국가나 지역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데 고려해야 할 윤리적 고려사항을 지침으로 제시한 Working Group on Disaster Research and Ethics(WGDRE)의 지침도 있다 [13]. 이 지침은 재난에 처한 해당 공동체의 관점에서 고려해야 할 항목을 담아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들 재난 상황의 연구윤리지침이 대부분 자 원이 부족한 상황 또는 중저소득 국가나 지역에 적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발되었다는 점을 참작해 볼 때 이 지침을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아니고 중저소득 국가도 아닌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또한, 이 지침 들은 단기간 긴급하게 발생한 재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으므로 현재 코로나19와 같은 장기적 범유행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재난 상황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연구의 윤리성을 진작시키는 데 있어, 다양한 장애 요인이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참고할 만한 가치는 분명히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의 개발도상국 대상 연구윤리 체계[14], MSF의 연구윤리 체계, Tansey 등 캐나다 연구자 그룹의 지침, 그리고 인도주의 위기에서의 보건연구 제안을 위한 윤리 체계[15] 등은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의 윤리성 심의가 포함해야 할 주요 요소를 제시하고 있다. 이들 체계는 심사용 질문 위주 인지(MSF 연구윤리 체계, 인도주의 보건연구 제안을 위한 윤리 체계), 원칙과 기준(benchmark) 위주인지(NIH의 개발도상국 대상 연구윤리 체계)에 따라 차이가 나며, 제안하고 있는 주요 요소들도 상이하다. 그런데도 이들 체계가 공통으로 강조하고 있는 윤리적 가치와 원칙 중 국내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중보건 위기상황의 연구는 일반적인 연구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타당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의 연구대상자는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적으로 타당한 연구는 윤리성 담보의 첫걸음이다. WHO는 2016년 감염병 돌발 상황에서의 윤리 쟁점 지침에서 무작위 배정, 위약 대조(임상시험), 포커스 그룹 및 인터뷰(질적 연구) 등 방법론적으로 엄격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16]. 그런데도 현재 코로나19에 대한 치료제 연구에 있어 연구 설계나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낮은 수준을 보여주는 연구가 다수 수행되고 있다[17].
또한, 공중보건 위기상황에서는 연구가 실제 수행 가능한지 아닌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과학적으로 타당한 연구 설계라 할지라도 자원의 부족이나 연구대상자 모집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연구를 실질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면 그 목적한 바를 달성하기 어렵다. MSF는 연구윤리 체계에서 “해 당 연구 주제에 대해 최선의 방법을 사용하는지”, “연구대상자의 참여 조건 등 연구가 수행되는 사회적 배경은 어떠하며, 이것이 연구 설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토하도록 요구한다[11].
각종 자원이 부족할 수 있는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연구자는 해당 연구가 수행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NIH 개발도상국 대상 연구윤리 체계는 연구로부터 유래하는 이익의 수 혜자가 누구인지, 연구 질문이 연구대상자 집단의 보건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검토하도록 요구한다. 인도주의 보건연구 제안을 위한 윤리 체계는 왜 다른 상황이 아닌 현 상황에서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연구의 사회적 가치는 일반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연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는지, 그리고 연구의 결과가 연구대상자 집단에 혜택을 줄 수 있는 지를 검토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의 연구는 거시적으로는 위기 상황에 대한 전체 대응 노력의 일환으로 통합되어야 한다[16]. 2009년 WHO의 기술자문워크샵은 범 유행에서는 “책무성과 투명성(accountability and transparency)”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6]. 이를 국내 상황에 적용해보면, 범유행병에 대한 대응 노력의 일환으로 연구를 수행해야 하며, 연구결과를 투명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난 지역의 사회와 그 구성원은 보통 높은 수 준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연구가 연구대 상자에게 직접 줄 수 있는 잠재적 이익이 크거나 연구의 사회적 가치가 잠재적 위험을 크게 상회해야 한다. 연구대상자에 대한 잠재적 위험과 이익을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해당 연구대상자가 처해 있는 환경의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Emanuel 등은 연구대상자 개인뿐 아니라 연구대 상자 집단 일반에게 주어질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14]. 예를 들어,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시행하는 연구는 그 연구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개발된 의약품이나 기기에 연구대상자나 연구대상자가 속한 집단이 접근 가능 한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재난 상황에서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다른 상황에 비해 구체적이어야 하며, 연구대상자 개인과 집단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위험과 이익의 균등한 분배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취약한 집단이라는 이유로 연구로부터 배제해서는 안 되며, 잠재적 이익이 분명한 연구일수록 이들의 참여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2016년 건강 관련 인간대상연구에 대한 ‘국제윤리지침(이하 CIOMS 지침)’은 명시하고 있다[18]. 연구 참여에 따른 위험이 최소화되지 않을 때는 추가적인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재난 구조에 참여하는 보건의료인력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할 때 연구 참여로 인해 증가할 수 있는 소진을 완화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재난 상황에서는 위험 대비 이익의 관점에서 윤리성 심의의 비례성을 고려하는 것이 요구된다. 캐나다 삼위원회 정책 선언에서는 “윤리적 갈등이 가장 높은 연구를 대상으로 가장 밀도 있는 검토와 연구대상자 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윤리적 갈등이 높아서 특별한 검토가 필요한 연구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처음 시도하는 연구, 확실히 예상할 수 있는 위험을 연구의 사회적 가치에 의해서만 정당화할 수 있는 연구, 연구의 정당성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부재한 연구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되는 바이러스를 인체에 직접 주입하는 연구 등이 이에 해당한다[19]. 반면 기존 데이터를 활용한 후향적 연구와 같이 최소 위험을 포함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서는 신속심의를 통해 윤리성 심사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때 최소위험이 보편적이면서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개념인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으나, 위험 수준에 따른 심의 수준과 규제의 차등은 45 CFR 46, CIOMS 지침 등에서도 일반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긴급한 연구가 필요한 재난 상황에서도 역시 이와 같은 차등을 적용할 필요가 있으며, 차등을 결정할 위험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 또한 필요하다.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연구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는 경우 긴급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다 수의 관련 지침은 재난 상황에서 ‘시간에 민감한 심의’를 진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WHO는 국가 연구 거버넌스 체계와 국제 연구 커뮤니티가 긴급 상황에서 윤리성 심사의 신속성을 보장하는 방법과 체계를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16]. 2016년 CIOMS 지침 또한 재난 상황에 미리 대비하여 관련 연구의 윤리적 문제를 ‘미리 검토(pre-screen)’ 하고 데이터와 시료를 공유하는 협약을 사전에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18].
많은 연구자, 윤리 전문가 및 국제윤리기구는 재난 상황에서 신속한 연구수행의 요구를 반영하되 이러한 신속성이 다른 윤리적 고려사항들과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신 속심의의 활성화,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연구계획의 우선적 심의, 원격 또는 이메일 심의, 자문가에 의한 사전 윤리성 검토 등이 시간에 민감한 심의의 전략으로 제안되고 있다[20]. 개별 IRB가 공중 보건 위기상황에서 어떤 심의 방식과 운영 형태를 취할 것인지는 해당 IRB의 재량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IRB가 다국가 다기관 연구에 대해 심의를 진행할 경우 국가 내 또는 국가 간의 조율이 필요할 것이다.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는 연구윤리 준수의 근간이다. 재난 상황에서 설명 동의는 연구대상자에게 연구 참여와 인도주의적 구호를 구분할 수 있게 도와주며, 감염병 재난에서는 조사, 감시, 치료와 연구 참여를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구호단체 나 국제기구가 재난 지역에서 연구를 수행할 때에는 해당 지역의 언어, 문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여 모집 방식과 동의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연구 대상자가 속한 공동체의 연구 참여와 연구대상자 개인의 동의를 구분하는 것은 감염병 재난 연구에 서도 필요하다[14]. 예를 들어 다국가 연구가 필요한 감염병 재난의 경우 연구 시료의 적절한 취득과 공유가 중요하다. 그러나 시료를 진단 목적으로 취득할 때 연구를 위해 미리 동의를 받은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적절한 사전 동의 없이 시료나 데이터를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 나 근거가 없는 한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18]. 만약 시료나 데이터를 익명화할 경우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나 이때에도 해당 연구가 진행되는 공동체에 대한 낙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21].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낙인은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고, 위기 소통에서도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에볼라바이러스병(Ebola Virus Disease)에 대한 대응 경험을 통해 윤리적 쟁점을 확인하고 권고안을 제시했던 미국 대통령산하생명윤리 위원회(Presidential Commission for the Study of Bioethical Issues)는 “윤리 대응 준비(ethics preparedness)”를 과학기술상의 대응 준비 못지않 게 공중보건 위기대응 준비의 핵심적 요소로 제안한 바 있다[22]. 2020년 너필드생명윤리위원회 (Nuffield Council on Bioethics) 역시 인도주의 구 호기구들이 재난 대응 계획을 설계할 때에 “윤리적 고려” 단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23]. 이런 윤리 대응에는 공중보건 조치로 인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같은 보건윤리 문제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재난 상황에 적합한 연구윤리 체제와 절차 및 방식에 대한 준비 역시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 연구윤리 거버넌스의 핵심적 부분을 차 지하고 있는 IRB가 재난 상황에서 어떤 체제와 방식으로 맡은 배역을 적합하게 수행할지가 관건일 것이다.
먼저, MSF는 2001년 연구윤리위원회를 설치 하면서 재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윤리 심의 방법을 도입하였다. 그동안 MSF는 긴급한 상황에서 연구를 먼저 수행하고 후향적으로 해당 연구의 윤리성을 검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위원회가 설치된 이후에는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났다[10]. 구체적인 절차를 살펴보면, 연구자는 재난의 정확한 위치와 특성을 알기 전에 ‘기본(generic)’ 연구계획서를 위원회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은 후 연구를 개시한다. 이후 재난의 정확한 위치와 특성이 확인되면 세부적인 사항을 보완 하여 연구계획서를 다시 제출하게 되면 위원회는 신속심의를 통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또한, MSF는 재난 발생 이전에도 기본 연구계획서를 통한 사전 승인을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연구계획서의 사전 검토와 사전 승인 등의 아이디어는 2009년 WHO의 기술자문워크숍에서도 언급 되었으며, “최선의 연구계획서 저장고”, “윤리 쟁점의 사전 선별”, “주기적 재승인(rolling)” 등의 아이디어로 표현된 바 있다[6].
이와 같은 방식 외에도, 재난 상황에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특별 검토를 시행하거나 일부 지역은 국제기구에 감시 책무를 위임하는 등의 방식이 있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상 상황에서의 정규 심의 체제와 방식에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부여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24]. 그러나 이런 유연성을 부여하는 아이디 어가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지 않으며, 기본 연구계획서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표준적인 윤리성 검토를 대체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18].
감염병 상황에서 연구의 윤리성 심의를 촉진할 수 있는 좀 더 구체적인 권고안은 2018년 WHO의 국제보건윤리팀(Global Health Ethics Team)과 아프리카 유행병 연구, 대응, 훈련을 위한 연 합(African coaLition for Epidemic Research, Response and Training, ALERRT)이 공동으로 개최한 워크숍에서 도출되었다[25]. 워크숍 참석자들은 일국 단위의 위기 대응 윤리성 검토를 위한 ‘모델 표준운영절차(standard operation procedure, SOP)’를 수립하였으며, ‘사전 검토’, ‘승인’, ‘기본 연구계획’ 등 용어의 정의를 명확히 하였고, 연구 결과로 획득한 이익의 공유의 일환으로 사전 데이터 및 시료 공유 계획을 모델 SOP에 포함할 것 등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이후 모델 SOP가 구체적으로 제안되지는 않았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WHO는 긴급 연구에 대한 신속한 심의를 위해 윤리성 검토를 위한 체크리스트, 감염병 위기 연구를 위한 보완 서류 사항, 신속심의와 원격심의 등의 절차 등을 추가로 마련하여 각국의 개별 IRB를 대상으로 SOP를 변경할 것을 권고하였다[26]. 즉, 일종의 ‘모델 SOP’를 도입하는 권고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권고는 재난 상황에서 연구계획서를 모델 유형화하는 것이라기보다는 IRB 심의의 사전 스크리닝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감염병 재난의 경우에는 기본 연구계획서(generic protocol)에 대해 사전 승인하는 방식 이 주로 제안됐으나, 현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아직 이 방식이 활용되지 않고 있다. 기존의 감염병 재난의 경우 일반적인 감염 양상은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발생 지역과 특성을 알지 못하는 경우였다면, 이번 코로나19의 경우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아직 그 발생과 이환 양상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사전에 적절한 연구 설계 초안을 제시하기 어렵다. 이런 특성을 갖는 신종감염병의 경우 치료제 개발 등을 위한 임상시험을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 SARS 유행 때 이미 알려진 바 있으며, 기본 연구 계획서 방식을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점 또한 지적 되었다[27]. 그런데도 신종감염병에 대한 긴급 심의 체제와 방법론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그동안 진행되어왔던 관련 논의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주목할 만한 제안은 코로나19 관련 연구를 집중적으로 심의하기 위한 특별위 원회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WHO는 특별위원회에 참가할 위원의 사전 선발 및 관련 교육과 훈련의 시행을 권고하고 있으며[26], 범아메리카보건 기구(Pan American Health Organization, PAHO) 또한 관련 연구를 심의할 특별위원회의 설치를 제안하였다[28]. 이 제안은 해당 위원회나 소속 위원들에게 과도한 심의의 부담을 안기는 문제를야 기할 수 있으며, 감염병 전문성을 가진 한정된 인력을 연구의 심의에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꼴이므로 이것이 과연 질병의 극복이나 분배정의 차원에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26,29].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코로나19 관련 과학적, 윤리적 쟁점에 대한 교육자료나 지원 체제를 개발하거나 코로나19 관련 전문성을 기관이나 국가별로 공유하고 공동으로 심의할 수 있는 체계 등을 개발할 수 있다. 이런 문제 외에도 기존에 설치된 IRB나 관련 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또한 고려해야 할 문제다.
코로나19 범유행에서 특별히 논란이 되는 것은 미등록된 실험적 치료의 긴급 사용(monitored emergency use of unregistered and experimental inter ventions, MEURI) 또는 동정적 사용 (compassionate use)이다. 아직 임상시험을 통해 그 효능이 입증된 바가 없는 의약품이나 기기는 임상시험을 통해 그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한 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신종감염병과 같이 해당 질병에 대한 치료제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이런 실험적 치료의 긴급 사용이 윤리적으로 고려 될 수 있다[30]. WHO는 2016년 MEURI 활용이 어떤 경우에 정당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 그 원칙을 제시한 바 있는데 ① 입증된 효과적인 치료가 존재하지 않고, ② 임상연구를 즉각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며, ③ 실험적 치료의 효능과 안전성을 지지하는 초기 데이터가 존재하고, 적절한 과학 자문위원회가 위험 이익 분석을 통해 그 사용을 제안하며, ④ 관련 정부 기구와 윤리위원회가 해당 치료의 사용을 승인하고, ⑤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자원이 있으며, ⑥ 환자가 설명에 근거한 동의를 제공하고, ⑦ 실험적 치료의 사용을 모니터링하고, 연구결과를 문서로 만들어 의료계, 과학계와 적시에 공유할 때로 규정하고 있다[16].
현 코로나19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실험적 치료를 빠르게 도입하였다가 철회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가중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과 클로 로퀸(chloroquine)에 대해 효과가 주목되면서 미국 식품의약품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은 ‘긴급 사용 허가(Emergency Use Authorization)’ 용도로 이들 약제의 사용을 승인하였으나 2020년 5월 22일 의학저널 란셋 (Lancet)에 이들 약제가 심방세동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승인을 철회하였다[31]. 이 과정에서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와 프랑스의 대통령 마크롱은 클로로퀸 치료를 적극적으로 추천하면서 치료에 대한 잘못된 희망을 부추기기도 하였다[32]. 그러므로, MEURI의 무분별한 도입과 철회는 범유행병 시기에 사회적 혼란을 가중하고 의료계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다.
MEURI를 어떤 환자에게 허용할지도 문제가 된다. 마땅한 치료제가 부재한 상황에서 일부 환자에게 MEURI는 유일한 희망일 것이며, 이런 측면에서 해당 치료제는 가장 희소한 자원에 해당된다. 또한, MEURI의 적극적인 활용은 해당 치료 제의 임상시험 수행을 지연시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효과적인 치료제의 개발이 늦춰지거나 코로 나19의 조기 종식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PAHO는 WHO의 MEURI 체계를 기반으로 한 코로나19 범유 행 상황에 맞춘 MEURI 사용에 대한 권고와 우려할 만한 사항을 발표하였다[33]. 먼저, 우려할 만한 사항으로는 코로나19 범유행 상황에서 효과적인 치료책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이미 많은 관련 임상연구가 시행되고 있으므로 임상연구를 즉각적으로 시작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MEURI를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국가의 보건당국이나 윤리위원회가 MEURI의 활용을 감독해야 하는데, 아직 그 감독의 주체와 기준이 불분명하며, 감독을 적절히 시행할 구체적 방법 또한 마땅치 않다고 지적하였다. 이런 우려할 만한 사항을 감안하여 PAHO는 관련 보건당국과 연구윤리위원회(research ethics committee)의 윤리 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하며, 연구윤리위원회가 MEURI 활용 계획에 적절한 과학적 근거와 대상 집단 및 모니터링 계획이 포함되어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이에 더하여 Webb 등은 실험적 치료의 우선적 배 분은 위해의 최소화, 이익의 극대화 및 공정성의 증진이라는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4].
보건복지부와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2020년 4 월 “코로나19 치료제·백신개발 범정부 지원 계 획”에 따른 신속한 연구 심의 지원을 위해,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설치되어 있는 공용기관생명윤리 위원회(이하 ‘공용 IRB’)에서 코로나19 관련 연구 중 IRB 심의면제가 가능한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하였다고 발표하였다[35]. 이 절차에 해당하는 연구는 공중보건상 긴급한 조치가 필요 하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또는 위탁한 연구 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구데이터 개방시스템을 이용하여 익명화된 코로나19 관련 데이터를 활용하는 연구 등이며, 관련 법령이나 통상적 심의절차를 통해 심의면제가 가능한 경우들이다. 그리고 심의면제를 신청한 연구 중 면제가 곤란한 연구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임상연구 특별심의 위원회”를 통해 신속한 심의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 후 코로나19 특별심의위원회는 공용 IRB의 한 패널로 설치되어 운영 중이며, 현재까지 심의면제 신청을 포함하여 50여 건의 심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특별심의위원회는 기존에 존재하는 공용 IRB의 일부를 활용한 것이지만 WHO나 PAHO가 제안한 특별 위원회와 유사한 체제로 볼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2020년과 2021년 두차례에 걸쳐 “COVID-19 관련 임상시 험 고려사항”이라는 이름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에 적합한 임상시험 관련 연구윤리 권고사항을 발표하였다. 특히 2020년 3월 발표에서는 ① 치료제 임상시험의 우선심의, ② IRB의 공동운 영 및 심사위탁을 활용한 신속 검토, ③ IRB 심의 절차 변경 등을 제시하였다.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의 경우 우선적인 심의를 권고하였을 뿐 아니라 다기관 임상시험의 경우 기관장 간의 협의를 통해 공동심사위원회를 설치하거나, 한 기관의 심사위원회 심사와 결정을 전체 기관의 심사·결정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외부의 지정심사위윈회에 심사를 위탁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심의절차를 변경하여 운영하고자 할 경우 - 예를 들어 대면회의를 비대면회의로 변경하고자 할 경우 - 적절하게 심의하는 방법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이를 문서화하도록 안내하였다 [36]. 그리고 2021년 1월 발표에서는 이전 발표에 포함되었던 내용 외에 임상시험의약품의 치료목적 사용과 관련된 권고를 제시하였다.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치료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경우 해당 기관의 IRB 심사를 받고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긴박한 환자 상태를 고려하여 신속심의로 진행하도록 권고하였다[37].
또한 식약처는 2020년 11월 코로나19 관련 임상시험의 신속한 연구심의 촉진을 위해, 긴급심사의 대상과 절차를 안내하는 “의약품 임상시험심사위원회 긴급심사 권고사항”을 발표하였다. 긴급 심사 대상으로 현존하는 국가의 재난이나 중대한 안전 또는 생명과 관련된 임상시험, 장래의 국가의 재난이나 중대한 안전 또는 생명과 관련된 임상시험 등을 들고 있으며,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 개발 임상시험이 이에 해당한다. 긴급심사의 첫 절차는 IRB에 접수된 연구가 긴급심사 대상인 지를 판단하는 것이며, 이 판단은 해당 IRB 위원장의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긴급심사 대상 연구는 정기적인 심사 일정과 무관하게 긴급회의를 개최하여 심의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비대면회의로 변경하여 운영할 수 있고, 심의가 완료된 후에는 그 결과를 연구자에게 즉각 통보하여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특히 이번 권고사항에서 시선을 끄는 부분은 각 절차의 기한을 제시하였다는 점인데, 긴급심사 대상 여부 결정은 심사 신청으로부터 1일 이내에, 긴급회의는 이 신청으로부터 3일 이내에, 결과 통보는 회의 종료로부터 1일 이내에 진행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식약처의 이 권고사항은 법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은 아니므로 개별 IRB가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으나 이 권고사항을 통해 긴급심사의 대상과 절차를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38].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의 이런 일련의 조치는 앞에서 언급한 시간에 민감한 심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코로나19 관련 연구를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심의할 수 있는 체계와 절차를 국가 차원에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IRB와 관련 종사자들의 업무 부담을 일정 정도 덜어주고자 하는 조치로도 이해된다. 그러나 이 조치들이 심의의 신속성과 효율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다른 주요 연구윤리 가치와 원칙에 대한 언급이나 이들과의 균형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 점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신속한 심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심의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예상해 볼 때 심의의 질을 보장하는 방법의 제시나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인력이나 자원의 보충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정상 상황에서도 존재하였던 개별 IRB 간의 심의 수준의 차이가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증폭될 수 있다. 이런 차이를 줄이는 방안의 제시 또한 필요하며, 이를 보완하는 방안으로 모델 SOP를 고려해 볼 수 있다. 한편, 임상시험용의 약품의 치료목적의 사용에 대해서는 해당 기관의 IRB가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신속심의로 진행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이런 치료목적의 사용에 대한 감독과 추적관리를 IRB가 어떻게 시행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추후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식약처는 코로나19 치료제인 렘데시비르 (remdesivir)에 대한 임상시험을 나흘 만에 승인하여 통상 30일 정도 걸리는 임상시험 승인 처리기 한을 크게 단축하였으며[39], 2020년 7월에는 2차 대유행을 대비하여 해당 약제에 대해 조건부 품목 허가를 부여했다[40]. 이러한 발 빠른 대응은 재난 상황에서 연구윤리 심의 절차를 유연하게 적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임상시험 실시를 위한 규제 부담은 완화하였으나 2020년 12월까지 코로나19 관련 임상시험의 승인 건수는 총 25건이다. 전 세계에서 현재 코로나19 관련 임상시험이 총 1,700건 진행되고 있음을 감안해 볼 때 많은 수라 보기는 어렵다[41].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 KoreaMed에 등록된 코로나19와 관련된 국내의 원저 논문을 검색해 보면, 총 75건 중 49건(65.3%)만이 IRB 심의를 거쳤으며, 이 중 6건(8.0%)만이 동의를 얻은 후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이미 상당 수의 연구가 연구대상자의 동의 없이 후향적인 방식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긴박한 코로나19 상황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전향적 방식의 임상시험보다는 후향적 방식의 임상연구가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후향적 방식의 연구는 임상시험과 같이 통제된 환경에서 실시하는 것은 아니므로 양질의 연구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진정한 극복은 과학적으로 타당한 치료와 예방으로 가능하다는 견지에서 살펴보자면 어느 정도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다.
MEURI 활용, 즉 임상시험용 의약품의 치료목적 사용에서는 현재 국내에서도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제28조에 따라 이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해당 의약품을 개별 환자에게 사용하는 경우와 2인 이상의 환자에게 사용하는 경우에는 법률의 규율에 차이가 존재한다. 개별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 승인 신청을 할 때는 신청자인 의사의 지식과 경험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와 대상 환자의 의학적 소견에 대한 자료, 진단서 및 해당 환자의 동의서만을 요구지만 2인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 승인을 신청하는 경우에는 신청자인 제약사에게 해당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 자 료를 요구할 뿐 아니라 절차에 따라 의약품이 의료기관에 전달된 후 의사가 이 의약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관 IRB의 승인을 거치도록 요구하고 있다. 즉, 임상시험용 의약품의 치료목적 사용을 위한 적절한 감독 및 모니터링 체계가 일관 되지 않은 것이다. 이들 의약품에 대한 투명한 관리와 환자의 납득을 위해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으로 연구윤리와 관련된 법률의 제·개정 논의로는 약사법 개정을 통해 다 기관 임상시험의 신속한 통합 심의 등을 위한 “중앙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지정을 추진 중이며, 위 기대응 의료제품에 대한 우선심사와 동반심사 등의 제도 정비를 위한 법률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42]. 특히 중앙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지정은 현재 아일랜드가 운영 중인 “국가 연구윤리심의위 원회(National Research Ethics Committee)”와 유사한 형태의 심의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조치로 이해된다[43].
III. 결론
현재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재난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백신 접종은 시작되었으나 감염 확산에는 아직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질병에 대해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련 연구의 수행 외에 다른 방법은 없으며, 질병의 여러 측면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연구를 과학적으로 타당할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 건전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연구윤리 체계와 방법론이 필요하며,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재난 상황에서의 연구윤리 가치와 원칙에 대한 정립 또한 요구된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19 범유행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의 연구윤리의 특성, 이때 고려해야 할 연구윤리 가치와 원칙, 재난 상황에 적합한 심의 체계와 방법론, 주요 윤리적 쟁점 및 국내 코로나19 관련 연구윤리 현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재난 상황에서 어떤 연구윤리 체계와 방법론이 적절한지는 그동안 세계적 규모의 재난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조금씩 발전되어 왔다. 이렇게 개발된 다수의 문건에서 공통으로 강조하는 가치와 원칙은 과학적 타당성, 사회적 가치, 선호할 만한 위험 대비 이익 비율 및 비례성, 시간에 민감한 심의, 설명 동의 등이다.
앞으로 계속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범유행병에 대비하여 재난 상황에서의 연구윤리 지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철저하되 신속하고 시간에 민감한 윤리성 심의를 진행해야 한다. 이때 연구의 잠재적 이익, 과학적 타당성, 사회적 가치 등을 조화시켜야 하며, 연구대상자의 참여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IRB 책임자는 신속심의 및 온라인 심사 프로세스를 활성화하고 이를 표준운영 지침에 반영하거나 추가하는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 현 코로나19의 경우 효과적인 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시의적절한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유연하면서도 높은 수준의 심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별도의 심의와 모니터링을 담당할 수 있는 특별위원회의 설치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임상시험용 의약품의 치료 목적 사용은 임상시험을 실시하기 어려운 경우에 우선하여 적용하되 그 결과를 지속해서 모 니터링할 필요가 있으며, 해당 의료기관의 IRB가 이를 심의하고 감독하는 책무를 갖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시민과 정부는 코로나19에 대해 비교적 잘 대처해 오고 있으며, 감염자와 환자의 수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연구 수행에 있어 극단적인 시간 제약이나 자원의 부족을 염려하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효과적이지 않다고 평가된 의약품에 대해 여러 연구자가 임상시험을 중복으로 수행하거나, 한정된 임상시험 대상자 풀에서 다수의 연구가 우선순위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를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연구윤리 거버넌스에 대한 총체적인 검토와 계획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효과적이면서 바람직한 재난 상황에서의 연구 및 연구윤리 거버넌스를 수립,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