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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윤리, 환상과 환장 사이

유상호 1 , * https://orcid.org/0000-0002-7258-5090
Sang-Ho YOO 1 , * https://orcid.org/0000-0002-7258-5090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1Department of Medical Humanities and Ethics, Hanyang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Professor.

ⓒ Copyright 2020 The Korean Society for Medical Ethic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Dec 20, 2020; Revised: Dec 20, 2020; Accepted: Dec 22, 2020

Published Online: Dec 31, 2020

요약

임상윤리란 임상에서의 가치 관련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과 대처를 가리킨다. 임상윤리가 의료 현장에서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면 가치 관련 문제를 의학적 문제와 함께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음을 의미하므로 의료현장의 주요 당사자들 모두에게 그야말로 환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의료계 내부의 각성과 분발이 요구된다. 우리의 의료현장에 바탕을 둔 일상적인 가치 관련 문제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며, 이런 실증적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임상윤리 교육을 설계하고 시행해야 한다.

ABSTRACT

Clinical ethics can enhance medical care by addressing the value-related issues that arise in clinical practice. However, in order for clinical ethics to play this role, further research is needed on value-related issues, especially those that relate to the practice of medicine. Ethics education for clinical practice should be designed according to the empirical research results described in this article.

Keywords: 임상윤리; 가치 관련 문제; 연구; 교육
Keywords: clinical ethics; value-related issue; research; education

I. 서론

임상윤리란 임상에서의 가치 관련 문제1)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 및 대처를 가리킨다. 환자의 침대 곁에서 발생하는 가치 관련 문제에 제대로 대 처하지 못 할 경우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인 모두가 큰 괴로움을 겪는다는 것은 의료현장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주지의 사실이다. 임상윤리는 이처럼 임상에서 항상 문제시되어 왔던 것이지만 2018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 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늘어나고 있다. 합법적으로 시행할 수 없었던 연명의료의 유보와 중단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면서 연명의료를 비롯하여 임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윤리적 문제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임상윤리가 추구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임상의학과 동일한 것으로서 환자 진료의 질을 개선하고, 환자-의사 관계를 증진하며, 의료현장의 주요 당사자인 환자, 가족, 의료인의 만족도를 향상시키는 것이다[1]. 임상윤리가 의료현장에서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면 가치 관련 문제를 의학적 문제와 함께 적절하게 해결할 수 있음을 의미하므로 의료현장의 주요 당사자들 모두에게 그야말로 환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를 극 복해야 한다. 연명의료에 국한해서 살펴보더라도 다양한 문제가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환자와 의료인 모두 연명의료의 중단이나 유보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상황에서 법의 세부 규정 때문에 연명의료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의료기관별로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나 보험공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필요 불가결한 업무 외에 상담이나 교육과 같이 환자와 의료인에게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업무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법적, 재정적 문제는 수동적으로 사회의 처분을 기다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의료계가 능동적으로 사회를 설득하고 함께 논의해 나가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사회의 관심과 인식 변화도 중요하겠지만 먼저 의료계가 자신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고 대처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임상에서의 가치 관련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떤 문제가 우리의 의료 현장에서 중요할 뿐 아니라 시급히 다루어져야 할 문제인지 탐색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과 체제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 논문에서는 임상윤리가 의료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고찰해 보아야 할 문제와 가능한 해결 방향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II. 본론

임상윤리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임상의학과 동일한 것으로서 환자 진료의 질을 개선하고, 환자-의사 관계를 증진하며, 의료현장의 주요 당사자인 환자, 가족, 의료인의 만족도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의료윤리나 생명윤리 또한 그 학문적 활동을 통해 환자 진료의 질을 개선할 수도 있겠으나 궁극적으로 이들의 목적은 의료와 생명과학 자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므로 의료와 생명과학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임상윤리의 목적과는 그 초점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의료윤리학자인 Kass는 의료에 대한 윤리적 접근이 지나치게 이론적이고, 철학적이며, 과합리적이고(hyperrational),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비판 한 바 있는데[3], 이런 비판은 의료윤리의 논의가 주로 이론적인 면에 치우쳐져 있고 임상에서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임상윤리의 목적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다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임상윤리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형태는 의료인이 직접 가치 관련 문제에 접근하고 대처하는 것을 가리키며, 의료인이 수행해야 하는 진료 행위의 일부다. 두 번째 형태는 의료에서의 가치 관련 문제에 대해 전문적 지원을 제공하는 서비스나 서비스 체계를 가리키며, 임상윤리지원(clinical ethics support)이라고 부른다[4]. 예를 들어 연명의료결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임상윤리지원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형태 모두 우리의 의료현 장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이들 어려움에는 제한적인 법률이나 현실성 없는 의료정책에서부터 열악한 진료여건이나 재정 지원의 부족 등이 포함된다. 이런 외재적 요인에 더하여 임상윤리에 대한 의료계의 인식 부족이나 관련 교육의 미비함 등도 중요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서론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명시적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해당 연명의료가 환자의 삶의 질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의사의 전문적 판단이 동반된 경우라 할지라도 연명의료결정법의 세부 조항으로 인해 연명의료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판단되나, 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기관별로 설치되어 있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에 대해 국가나 보험공단의 특별한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업무가 대단히 제한적이라는 점 또한 계속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지만 이런 재정적 문제 또한 조기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위와 같은 어려움을 불평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법은 한 사회의 합의의 산물이다. 연명의료결정법과 같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첨예한 이해충돌로 인해 지난한 합의 과정을 거쳤던 법률의 경우 지나치게 엄격하다거나 비현실적이라고 불평만 토로하기에는 사회적 합의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런 합의를 의료계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례를 집중적으로 모아서 조사, 분석한 후 이런 사례들이 갖는 문제점은 무엇이며, 환자 진료의 질과 환자-의사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이 평가를 바탕으로 사회 전체와 관련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함으로써 기존의 사회적 합의를 수정 보완 하거나 새로운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 개발된 의약품을 건강보험체계 내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비용-효과 분석을 거쳐야 한다. 만약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활동이 환자 진료의 질 개선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좀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임상윤리의 중요성을 당위적으로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임상윤리가 목적하는 바를 정량적인 방법으로 정확히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관련 당사자들이 임상윤리의 기여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임상윤리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임상윤리에 대한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의료인이 의료기관윤리위원회에 참여한다면 위원회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임상윤리를 둘러싸고 있는 법적, 재정적, 사회구조적 문제는 임상윤리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와 교육을 통해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연구의 경우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먼저 임상윤리가 목적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최소 한으로라도 확인할 수 있는 연구가 우선으로 수행되어야 한다[5]. 다음으로 우리 의료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임상윤리 문제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하며, 이런 문제에 접근하고 대처하는 가장 적합한 방법과 활용 가능한 자원에 대해서도 탐색해 보아야 한다. 아울러 의료현장의 주요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도덕적 고뇌(moral distress)에 대해 살펴보고 그 원인이 제도적 차원의 문제인지, 아니면 기관이나 관계 또는 개인 차원의 문제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원인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도 확인해 보아야겠다. 이런 연구 결과는 사회를 설득하고 의료계를 변화시키는 데 활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임상윤리 교육의 설계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부분은 교육이다. 임상윤리 교육을 통해 임상윤리에 대한 의료인의 역량이 강화되고, 의료계 전체의 윤리적 역량과 체제가 개선되었을 때 이를 근거로 사회 합의의 변화를 촉구하고 재정 지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기획과 설계가 필요하다. 누가, 언제, 무엇을, 왜,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임상윤리에 대한 교육목적,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육시기, 교육방법, 교육자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가 필요하며, 기존 의학교육과 조화롭게 시행될 수 있도록 교육 환경과 교육대상의 학습 여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의료현장은 고유의 문화와 잠재적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 작동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고려 없이 교육을 설계하다가는 오히려 교육목적과 반대되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6].

임상윤리 교육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의료윤리 교육이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해야 하며, 임상윤리에 대한 실증적 연구 성과를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대상의 특성을 고려하여 교육의 형태와 내용을 결정해야 하며, 특히 임상윤리지원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은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는 달리 위원회 운영이나 문제해결 절차 등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도 교육에 포함해야 한다.

임상윤리는 근본적으로 환자 진료의 한 부분이므로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과대학 교수나 지도 전문의가 임상윤리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갖춘 다음 실제 환자 사례를 중심으로 학생과 전공의를 교육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을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므로 우선 전문학회나 학술단체를 중심으로 최소 1명 이상의 임상윤리 전문가를 양성하여 이 전문가가 해당 단체나 학회의 임상윤리 교육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임상윤리 분야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의료윤리학회가 좀 더 주도적으로 임상윤리에 대한 의료계의 관심을 촉진하고 교육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노력을 보여야 하겠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임상윤리가 의료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임상윤리를 다루는 주체가 소수의 의료인에서 전체 의료인과 의료계로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임상윤리를 교육하고 실천하는 기간이 의학교육 일부 기간에서 의료인의 교육·수련·진료 전체 기간으로 연장되어야 한다. 셋째, 임상윤리가 적용되는 공간이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공간에서 구체적인 실제 의료 현장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넷째, 임상윤리의 주된 논제는 의료윤리 이론과 원칙을 넘어서 일상의 가치 관련 문제에 대한 확인과 대처로 나아가야 한다. 다섯째, 임상윤리의 목적은 당위적 주장에서 벗어나 진정한 환자 진료의 질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여섯째, 임상윤리의 방법론은 단편적 연구와 교육을 뛰어넘어 체계적인 기초 연구와 교육 및 실천으로 심화되어야 한다.

III. 결론

임상윤리가 의료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제와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우선하여 의료계 내부의 각성과 분발이 요구된다. 이번 소고에서는 임상윤리가 의료현 장에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어려움에 대한 기본적인 대처가 연구와 교육이며, 이에 근거해야 우리 의료환경에 적합한 임상윤리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Notes

1) 가치란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대상 또는 그 대상이 가진 속성을 가리킨다. 좋거나 나쁜, 또는 바람직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대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흔히 어떤 존재를 위해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므로 가치는 관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존재의 생존, 번영, 행복, 만족 등에 기여할 경우 가치 있는 것으로, 그렇지 않을 경우 가치 있지 않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간주되는 것은 사람의 생명과 건강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논문에서 가리키는 가치 관련 문제란 사람의 생명과 건강과 관련하여 좋거나 나쁘다고 평가할 수 있는 모든 사안과 관련된 문제를 가리키며, 이런 평가의 주체는 의료의 주요 당사자인 환자, 가족, 의료인 모두가 될 수 있다[2].

Conflict of Interest

There are no potential conflicts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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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ub ahead of print. PMID: .

[6].

유상호, 주영숙, 이상형. 면허 취득 후 의료윤리교육. 대한의사협회지 2017 ; 60(1) : 2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