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우리나라는 비교적 의료접근성이 높으며 여러 지표상 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을 보인다. 건강결과(health outcomes), 보건 시스템(health systems), 질병과 위험요소, 사망률, 건강 유지를 위한 필수 서비스에 대한 접근 등을 수치화 한 보건의료지수 점수(health index score)에서 2023년 우리나라는 167개국 중 국가 보건의료순위 3위를 차지하였다[1]. OECD 보고서에서는 보건의료지출에 비해 높은 기대여명, 낮은 피할 수 있는 사망률(avoidable mortality)을 보였다[2]. 이러한 효율적 의료시스템을 소개하고 전달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은 개발도상국가 보건의료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건강보험 국제연수과정을 개최하고 있다[3].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매우 국가 중심적이며, 다른 한편으로 매우 민간 중심적이다. 보다 정확히는 과도한 정부의 의료 규제와 지나치게 편중된 민간 중심의 의료서비스 공급이 큰 틀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통해 국가의료보장체계 내부에서만 의사들이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단일 국민건강보험 기구의 의료행위 범위 심의 과정 등에서 의사의 사적 자치의 보장을 축소하고 있다[4]. 이러한 국가의 정책에 대해 Park[4]은 국가가 “공적 의료에 대한 규율을 의료 자체에 대한 규율로 혼동”한다고 표현하였다. 반면 의료 공급에 있어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보고에 따르면 2022년 공적 자본으로 설립된 병원급 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의 5.2%이며, 이들의 병상수는 전체 병상수의 9.5% 밖에 되지 않는데, 이는 대표적인 민간보험 중심의 의료체제를 가진 미국에 비해서도 훨씬 미약한 수준이다[5]. 병원의 설립과 운영이 주로 개인의 자본으로 이루어지면서, 이윤 추구를 위한 행태들 - 인건비 최소화, 노동시간 연장, 검사 중심의 의료행위 등 -이 우리나라 의료현장의 문화가 되고 있다[6].
정부의 규제와 민간 중심의 의료 공급은 어느 수준까지는 효율성을 높이며, 병원 간의 경쟁을 부추겨 의료서비스 향상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이윤 창출을 위한 방향으로 의료자원이 이동하면서 수익이 나기 어려운 의료 영역에 공백을 야기하는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응급 환자들이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여러 응급실을 돌아다니며 전전긍긍하는 상황은 최근에 등장한 현상이 아니며, 출산이나 응급 치료를 위해 다른 지역의 의사를 찾아 가야 하는 상황들은 지역의 인구 감소와 함께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모든 상황에 대비하여 의료자원을 항상 대기해 둘 수는 없기에 적절한 의료자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종종 개인적 불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만약 내재된 시스템의 오류와 모순들이 안타까운 사연의 배경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시스템 차원의 점검을 통해 불운의 요소를 줄여 나가야 할 것이다. 한정된 의료자원 배분은 국가 의료보장제도를 가진 모든 나라들과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며, 의료화와 함께 점점 더 다루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논문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특성 - 정부의 의료 규제와 민간 중심의 의료자원 공급 -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 드러나는 의료자원의 공급과 소비의 특성을 살펴본다. 이러한 특성은 의료시장 규모의 확대, 건강에 대한 기대치와 의료서비스 욕구의 다양화, 의료를 포함한 삶의 전반에 스며든 신자유주의의 영향 속에 변형되고 강화되었다. 결론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한국의 의료체계 내에 세 주체 - 정부, 의사·의료기관, 환자·시민 -는 의료자원 공급과 소비 과정에 공적 자원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 못하며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의 부재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의료보장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흐름에서 의료자원에 대한 공적 가치의 공유, 공공성의 인지가 의료 이용의 방식을 크게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각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세 주체의 소통을 위해 먼저 서로의 상황을 알아야 하고, 그 위에서 의료자원의 활용과 재배치를 위한 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의료가 개인의 건강권 보장, 사회의 안정에 기여한다고 동의한다면 현재의 의료시스템의 문제, 문제의 배경 요인들을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찾는 노력은 중요하다.
Ⅱ. 본론
절대주의 시대에 국민의 건강은 부국강병의 수단으로 여겨졌으며,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자의 건강은 사회의 불안을 감소시기고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관리 대상이었다. 사회의 발전, 인권의 향상과 함께 보건의료의 관심은 국민이나 노동자의 건강에서 개인의 건강으로 바뀌었는데, 19세기 독일의 병리학자이자 정치가인 루돌프 피르호는 건강 추구를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7], 20세기 미국 정치 철학자인 다니엘즈는 신체와 정신의 정상적 기능을 개인에게 정상적, 혹은 보통의 기회(normal opportunity)를 제공하는데 중요한 결정적 요인으로 보았다[8]. 건강, 생명, 안전, 그리고 건강을 통해 확보하고자 하는 기회의 확장은 삶에서 매우 기본적인 가치로서 우리는 보건의료가 이러한 개인적, 사회적 삶의 가치를 보장하고 지속시키는 안전망 역할을 하며[9], 질병이나 장애로 야기되는 사회적 불평등을 줄임으로써 전반적인 사회적 선의 향상에 기여하리라 기대한다. 이 글에서 의료의 공적 가치는 개인과 시민들의 건강, 질병이나 장애에 대처할 수 있는 안전, 건강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개인적·사회적 기회의 보장, 사회적 불평등 및 불안의 감소 등 중요한 개인적·사회적 가치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의 공공성은 앞서 제시한 공적 가치가 의료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보편적 의료서비스 보장을 통한 공적 가치의 실천이라는 방향성을 지닌 용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많는 나라들은 건강권, 혹은 보건의료접근권 등을 개인 권리로 여기며, 사회적 재화로서의 의료를 다룬다[10]. 이들은 사회적 연대의 원리를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강제적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의료보장제도를 통해 질병이나 장애로 야기되는 개별 구성원들의 부담과 불행을 분산시키며 사회의 위험 요소를 낮추고자 한다. 이때 의료보험을 포함한 의료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건강의 확보나 의료이용을 둘러싼 개인의 권리 보장은 분배의 문제가 된다. 즉 의료복지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회에서 어떤 대상(환자, 고위험군, 건강한 사람, 등)에게, 어느 정도(치료, 재활, 질병 예방, 건강 증진 등)의 의료서비스를, 어떤 방식(위급성, 선착순, 비용 대비 효율성 등)으로 배분하고, 제공할 것인가는 해당 사회의 의료시스템 종류와 무관하게 의료의 공공성을 전제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의료자원 분배에 관련하여 다양한 이론들 - 일반적 분배 정의에 따른 분배, 비용효과 분석 혹은 비용가치 분석에 따른 분배, 시장에 의한 분배 -이 제시되고 있다[11]. 이 중 일반적 분배정의의 원리의 하나인 다니엘즈의 공정한 기회균등 원리는 개인의 기회를 보장할 수 있도록 인간의 정상적 기능 유지에 사회적 자원이 사용될 것을 주장한다[11]. 의료서비스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건강의 확보는 개인의 사회적 기회와 사회경제적 삶의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 즉 의료분배의 정의가 사회정의와 상통한다는 점에서 보건의료영역에 일반적 분배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한정된 자원 내에서의 분배결정은 이론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최소한의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자원(혹은 건강 수준)이나 제한될 수 있는 자원의 기준을 정하고, 이를 사회적 여건에 맞게 할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의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의료자원 혹은 제한될 수 있는 의료자원의 범주는 필요 혹은 수요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10]. 필요를 평가하는 시각은 다양하여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그럼에도 보건의료설계와 운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의료의 공적 가치 실천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요청되는 최소한의 의료서비스 필요 범주를 설정하고 의료자원이 필요한 곳에 할당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Figure 1>은 필요와 수요를 모식도로 나타낸 것으로 의료필요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A+B), 의료수요의 범주를 (A+C)로 간단히 표기하였다. 여기서 수요는 이용자가 구입한 서비스로, 필요(A)와 필요 외의 범주에 있는 서비스(C)로 나뉘어진다. 필요의 범주에 해당하는 의료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것, 즉 (A+B)에 해당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은 의료의 공적가치, 공공성의 실천과 연관된다. 사회는 (A+B)의 의료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를 위해 (A+B) 영역에 적절한 자원이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필요한 서비스로 인지되었지만 실제 구입한 의료서비스로 연결되지 못한 미충족 의료 영역(B)이 A에 포섭될 수 있도록, 즉 (A+B)가 A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의료필요와 수요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개인과 사회의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9]. 의사는 감기 증상에 대해 약을 처방하기 않고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는 권고를 할 수도 있으며, 증상을 완화시켜 주는 해열제나 진해제 등을 처방할 수도 있고, 수액과 주사제, 약 처방을 함께 처방할 수도 있다. 어떤 의학적 개입이 적절한가는 해당 사회에서 통용되는 감기라는 질환에 대한 인식, 약이나 주사제 사용에 대한 정보와 접근성, 의료서비스에 기대하는 결과치와 치료 과정의 이해 및 선호도, 질병으로 야기되는 개인적·사회적 손실, 진료·약·주사 등의 행위에 대한 비용 수준 등에 따라 달라진다. 즉, 의료서비스의 범위와 내용 결정에 전제가 되는 의료의 필요성과 적정성은 해당 사회 속에 형성된 질병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 사회가 가진 자원과 건강에 대한 관심 등에 영향을 받게 된다. 또한 의료의 특성상 환자-의사의 개별 치료 사례에 있어 필요로 하는 자원은 환자의 치료 의지, 삶의 질에 대한 주관적 평가, 의사나 의료기관의 역량과 성향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달라지기도 한다. 의료서비스가 가진 특성과 의료현장의 맥락적 요인을 이해하면서 의료필요와 수요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필요한 의료서비스의 범주(A+B)를 결정하고, 이에 맞는 의료자원을 공급하기 위한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무엇을 그 범주에 넣을지 합의하고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12].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자원을 공급하고 활용하는 주체들의 상황과 이해관계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분배 논의를 하기 위한 협상의 자리에 앉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갈등하는 주체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의료에 공적 가치와 공공성이 있다는 것, 이를 위해 (A+B) 범주의 의료서비스에 적절한 의료자원이 할당되어야 하며, B의 범주가 감소되고 A의 범주 내에 사회가 요청하는 충분한 수준의 의료서비스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사회의 의료자원 공급과 이용은 이와 거리가 매우 멀게 느껴진다. 이후 이 글에서는 한국의 의료체계 내에 세 주체 - 정부, 의사·의료기관, 환자·시민 -의 의료 행태의 문제점을 나열한다. 세 주체로 구분하는 것은 의료의 공공성을 위해 우리 모두가 책임과 역할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편의상의 구분일 뿐이다. 각각의 주체와 연관해 지적한 여러 현상들은 한 주체의 문제가 아니라 세 주체 모두와 얽혀져 있으며, 단순히 제도를 고치거나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는 개선될 수 없다.
정부는 필요하다고 판단된 의료서비스 공급을 위해 제도를 계획하고 실행을 위한 정책 수립, 재원 마련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이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도입 및 정착 과정에서 정부는 강한 의지와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의료보험을 둘러싼 제도의 확장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료보험법은 제정된 것은 1963년으로 당시 우리 사회는 보험제도를 운영하고 보험료를 부담할 만큼의 경제적 수준을 갖추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던 정부는 제도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두었을 뿐 법의 시행에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 예로 법의 운영에 필요한 의료보험업무 전담 부서를 설치하지 않았고 의료보험은 임의적용 방식이었다[12]. 법 제정 이후 시범사업 수준의 의료보험조합들이 만들어졌으나 조합들은 재정난을 피할 수 없었고, 급여수준이 낮아 가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12].
실제 우리나라에서 의료보험이 시행된 것은 1977년 500인 이상의 사업장 근로자의 의료보험 강제가입이 적용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그 당시도 사회보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미약했고 이에 정부는 보험료 징수에 대한 저항을 고려하여 보험료를 낮게 산정하였다. 낮은 보험료로 의료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정부는 낮은 수가, 상당히 제한적인 항목에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정책을 선택하였다[13]. 당시 의사들의 주장에 따르면 의료보험진료수가가 기존의 의사들이 환자에게 청구하던 관행수가의 58.27%-62.27% 삭감된 수준이었다고 한다[14]. 보험급여 대상은 빠르게 확대되어 처음 의료보험이 시행되고 12년 만인 1989년에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었다. 이후 수진율과 의료수가가 점차 상향되고, 의료보험의 보장 범위 및 비보험 의료 영역이 확장되어 2021년 우리나라 의료지출은 GDP의 9.7%를 차지하게 되었다[2]. 짧은 기간에 의료접근도의 개선,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에 비약적인 향상을 이루었지만, 안타깝게도 의료보험의 근간이 되는 가치인 사회적 연대, 의료자원 분배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형성되기는 어려웠다.
우리나라의 의료체제는 민간공급자가 의료인프라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험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이다[15]. 민간 의료자원이 월등한 우리나라에서 이미 형성된 민간 부분의 보건의료인프라를 통해 필요한 의료를 공급하려는 정책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2015년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더욱 명시화되는데, 법에 따르면 정부는 민간의료기관을 공공보건의료 수행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민간의료기관이 의료취약지 거점의료기관, 공공전문진료센터, 심혈관·응급·외상·암 전문센터로 지정 받아 예산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16]. 이는 별도의 공공보건의료기관을 설립하지 않고 기존의 공공병원을 포함한 민간 병원을 활용해 지역 내 필수적 의료를 공급하고자 한 제도로, 공공의료를 기관 중심에서 기능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다[17]. 하지만 민간의료기관을 통한 정부의 사업에는 한계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이다. 2015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응급전문응급의료센터 지정이 가능해졌고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12기관이 선정되었다. 이후 센터를 확대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4년 7월 기준 실제 운영 중인 곳은 10개소이며, 강원도, 전라남도, 제주도에는 선정된 기관이 없다. 그 배경으로 병원이 지정기준에 맞추기 위한 시설 투자를 꺼리며 소아진료의 만성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 전문의 인력 확보의 어려움 등이 지적된다. 정부가 비용을 들여 지원 사업을 시행한다 하더라도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민간의료기관은 참여를 기피하게 된다[18].
결국 공공의료기관이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지만 사회에 필요한 의료서비스 제공에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기에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대표적 공공의료기관인 지방의료원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민간병원과 경쟁하며 영업수지를 맞추어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 일부 지방의료원은 도시개발을 이유로 접근성이 좋은 시내 중심가에서 외곽으로 밀려나 민간 병원보다 오히려 더 낮은 접근성을 보이기도 한다. 의료원의 운영비는 지자체의 지원에 기대는데, 이 역시 일관성이 없다[19]. 지방의료원은 이러한 불리한 입지 속에 공공성을 함께 수익성을 고려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있다.
민간의료보험은 종종 국가복지의 대체 수단으로 국가 의료재정 부담을 줄이며, 사회에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으로 활용된다. 우리나라도 역시 의료재정의 압박을 줄이고 높아진 의료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민간보험을 도입하였다. 민간보험은 정부의 민간보험 활성화를 위한 정책들(단체 가입한 고용주에 대한 세제 감면, 개인 가입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 등) 아래에서 매우 빠르게 성장, 확대되었다[20]. 하지만 과도하게 성장한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복지 향상이라는 의료보험의 의도를 넘어 비급여 진료의 확대, 과잉진료, 의료시장의 영리화를 부추기는 배경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 정부는 민간보험을 순수하게 의료보험의 보완적 역할의 도구로 여기지 않았다. 정부는 1960~70년대 산업 투자자본을 확보하기 위한 내자동원 수단으로 보험산업을 육성하였고, 1980~90년대에는 대외 개방 압력에서 국내 보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지원하였으며, 1995년 OECD 가입 이후 보험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경제적 이유로 민간보험 산업을 활용하였다[20]. 2000년대에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의료기술이 등장하면서 산업 시장으로서 의료의 활용도가 높아지며, 의료 이용에 대한 수요와 비용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의료서비스 공급과 활성화에 민간의료보험이 주된 재원으로 기여하리라 여겨져 보험시장의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2010년 대구에서 장중첩증의 4세 환아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정부가 의료서비스의 사회적 중요성, 공공성의 의미를 잘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환아는 당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포함해 종합병원, 외과전문 병원의 응급실을 방문하였으나 소아과 의사, 영상의학과 의사,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대구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구미로 이송되었고, 수술 중 사망하였다. 이 사건이 발생한 초기에 보건복지부는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 취소, 응급실에서 환자를 돌려보낸 인턴, 레지던트 징계, 2012년 응급의학과 및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 감축 등을 논의하였다. 다행히 이는 모두 철회되었고 전문의 2명에게 면허정지 15일, 몇가지 응급의료 관련 지원 사업 제외 등의 징계를 내렸다[21]. 물론 의사들의 태만이나 과실, 시스템 운영에서의 오류에 대해 의사나 의료기관이 책임져야 할 부분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합당하다. 하지만 정부의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 취소나 전공의 감축과 같은 초기 징벌적 대응은 소아 응급시스템에 발생한 오류를 수정하기 보다, 오히려 시스템의 수준을 낮추고 빈약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행히 그러한 징계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 방식의 징계와 압박을 경험한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숨기거나,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해당 의료서비스 제공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등의 부정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Figure 1>에 적용하면 의료 공공성과 관련해 정부의 부족함이 명확히 드러난다. 의료가 가진 공적 가치를 이해한다면 정부는 환자의 사회적 여건이나 지불능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의료제도를 운용하여 B의 영역, 즉 미충족 의료를 감소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성장기에 민간 자본을 동원해 빠르게 보건의료인프라를 갖추는 전략을 선택하면서, 민간의료기관이 할 수 없는 역할, 즉 필요하지만 운영을 하게 될 때 적자의 위험이 있는 영역의 의료 인프라 확충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였다. 또한 민간보험을 활용하여 의료보험의 보장성 부족 부분을 채우는 방식에 있어, 민간의료보험시장을 산업의 측면으로 바라보고 통제하지 않음으로써 A와 C의 범주, 특히 C의 범주를 확장시켰으며,1) 이는 의료보험의 재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대구에서의 환아 사망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직접적으로 A 영역의 의료를 B의 미충족 의료 영역으로 이동시키려 했던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자영업과 같이 사적 자원을 활용해 병의원을 개설하고 경영해야 하는 의료인들은 저수가를 포함한 정부의 규제들 - 요양급여 당연지정제, 요양급여에 해당하는 의료행위에 대해 추가적 비용 청구 불가 등- 속에 서로 경쟁하며 병원을 유지하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소위 3분 진료라고 일컫는 짧은 진료 시간, 의사들의 긴 노동시간은 그 결과의 일부라 할 수 있다[22]. 이에 대한 수치는 OECD 보고서에 잘 드러나는데,2)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의사수는 2.6으로 OECD 평균 3.7에 미치지 못하지만 2021년 환자 1명이 1년에 의사를 만나는 횟수가 15.7회로 OECD 통계에 참여한 국가 중 가장 많으며, 의사 1명이 환자를 만나는 횟수도 6,113회로 2위인 일본(4,288회)보다 월등히 높다[2].
또한 병원들은 비용을 창출하기 위해 요양급여에서 보장이 큰 검사나 치료 방법, 비급여 진료 선호하며, 수입을 많이 올린 고용 의사들에게 인센티브 제공, 입원 병상 확대 등의 방식을 취하였다. 병상수를 살펴보면 2021년 우리나라의 1,000명당 병상수는 12.8개로 OECD 평균 4.3개의 약 3배에 달하며,3) 10년 전과 비교하였을 때 다른 OECD 국가의 경우, 대부분 병상 수가 소폭 감소한 반면 우리나라는 매우 높은 증가폭을 보인다[2]. 병원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인테리어에 신경 쓰고, 새로운 의료장비들을 도입하여 광고한다. 이러한 투자 비용은 앞서 나열한 비용 창출을 위한 방식들 - 비급여, 많은 검사 - 을 정당화하며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여 병원 수익에도 도움을 준다. 어느 나라보다도 좋은 장비를 활용한 빠른 진단과 치료, 좋은 의료접근성, 풍부한 의료서비스의 양과 높은 질은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다수의 의사는 민간의료기관에 고용되어 있다. 그들은 병원의 생존과 유지, 수입 증가를 위해 실적의 압박을 받는다. 진료 실적 공개, 삭감된 진료비에 대한 벌점 부과, 낮은 진료 실적에 대한 경고 조치, 진료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등이 그 예이다[23-25]. 의사들은 그러한 압박을 무시하기도 하지만, 비용 산출을 기반으로 한 진료 평가가 만연해지면서 점차 외래와 입원 환자수를 늘리고, 여러 검사를 처방하기도 하는 등 과잉진료를 하게 된다[26]. 이러한 진료 현장은 병원 수입의 증가에는 기여하나, 의료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환자와의 좋은 관계 속에 소위 교과서적 진료를 하고자 하는 의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6]. 또한 실적 경쟁 과정에 동료의사와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과잉진료의 배경에는 의사들이 가진 의료사고 소송에 대한 부담감도 크게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검사의 기소를 받는 사례는 외국에 비해 매우 높아 2013-2018년 사이 기소 건수는 연평균 754.8건이었다. 이는 일본 경찰 신고 건수의 9.1배, 일본 입건송치 건수의 14.7배이며, 영국의 기소건수(연평균 1.3건)의 580.6배에 해당한다[27].4) 이 수치를 두고 우리나라 의사들이 유독 과실이 많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하였을 때 여러 지표에서 좋은 의료 결과를 보이며, 피할 수 있는 죽음의 비율도 낮기 때문이다[2]. 의학의 특성상 검사와 치료에는 위양성, 위음성의 불가피한 오류가 발생하며, 예기치 못한 부작용들이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한 해가 발생할 때 소송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의사들은 가급적 많은 검사를 통해 위양성, 위음성을 줄이고, 진단 기간을 앞당기고자 한다. 또한 의사들은 ‘환자의 치료를 하지 않는 선택지’가 향후 소송이 발생했을 때, 환자를 설득하지 않고 치료를 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다[28]. 이에 가급적 모든 치료 수단을 동원하며, 효과가 없을 것이 예견된다 하더라도 치료를 유보하기보다는 중단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나 의료기관의 의료행태 역시 의료 공공성의 차원에서 <Figure 1>을 통해 점검할 수 있다. 의사는 의료수요를 창출할 수 있기에 이들의 의료 공공성에 대한 인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들 - 저수가, 병원간의 경쟁과 진료 수입에 대한 압박, 소송에 부담감 등 -은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가치 추구보다는 자본가 혹은 고용자로서 생존을 더욱 우선시하게 하였다. 비보험, 민간의료보험을 활용해 C의 범주를 확장시키는데 의사들의 역할이 적지 않다.
의료보험의 확대, 가계 소득의 증가로 사람들이 체감하는 의료비에 대한 부담이 크게 감소하면서 의료서비스 이용률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또한 의료서비스 이용에 큰 제약이 없어 가벼운 증상에도 병원을 찾거나, 한 사람이 같은 증상이나 질병으로 여러 의사들의 진료를 받기도 한다. 실제 2001년 건강보험 중복진료 실태자료에 따르면, 같은 질병으로 하루 2곳 이상의 의료기관을 방문한 중복 진료 환자수가 연간 약 670만 명, 질병별 중복횟수로 감기환자가 267만 회에 달하며, 2010년 연간 365일 이상 외래를 이용하는 환자수도 2,039명으로 보고되었다[29].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더 자세히 알고 적절한 선택을 하기 위해 여러 전문가를 만나는 것을 합리적 행위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의료자원은 사적 자원이 아니다. 또한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에, 한 곳의 과다한 사용은 다른 적절한 영역에 의료자원이 할당될 기회를 감소시킬 수 있다. 최근 시스템적으로 중복처방을 감시할 수 있어 약물의 오남용 등의 위험이 감소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닥터쇼핑은 환자와 의료인력의 시간 낭비, 중복 진료 및 검사로 인한 비용 발생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
많은 검사를 받고 자주 의사를 방문하는 의료서비스 이용의 배경에는 민간의료보험이 있다. 사람들은 낮은 의료보험 보장성에 대비하여 민간보험을 가입하여 질병으로의 경제적 손실을 대비한다. 문제는 민간의료보험으로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에 별도의 추가 지출이 발생하지 않고, 보험에 다라 오히려 일정액을 지급받을 수 있어, 지나친 의료서비스 이용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의료보험의 본인부담금과 비급여를 보장하는 실손의료보험의 보유계약은 2022년 말 3,565만 건에 달한다[30]. 실손의료보험 아래에서 의료공급자인 의사는 비급여 진료 비중을 늘려 수익을 올리며, 의료소비자인 환자는 추가 비용 없이 만족스러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제도가 정비되어 있지 않은 시점에서 의료자원 이용의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고 있다.
경증 환자의 상급종합병원 이용 선호 역시 의료 이용에서의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30]. 1, 2, 3차 의료기관은 각각의 역량에 따라 다른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사회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2, 3차 의료기관에서는 진단을 위해 특별한 장비, 침습적인 검사가 필요한 하거나 입원 치료가 필요한 급성, 혹은 아급성의 중증 환자를 주로 진료하며, 경증이거나 만성의 주기적 관찰과 관리가 필요한 질환의 환자는 1차 의료기관이 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경증의 환자, 혹은 중증 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1차 의료기관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환자들이 계속해서 3차 의료기관에 치료받기를 선택한다. 2018년 3차 의료기관 이용의 문턱으로 작용하였던 선택진료비도 폐지되어 환자들은 거주지의 1차 의료기관으로 돌아갈 이유를 마땅히 찾지 못하며, 3차 의료기관조차 외래 수익이 중요하기에 3차 기관의 의사들이 환자가 다니던 1차 의료기관으로의 복귀를 강하게 권고하지 않고 있다. 다른 역할을 수행해야 할 1, 2, 3차 의료기관들은 경증 환자의 진료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의료 이용의 또 다른 문제로 지역 환자들의 서울 대형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도 문제가 되고 있다[31]. 소위 빅5로 불리는 일부 병원들이 거대화와 동시에 세부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면서 지역의 환자들이 거주지 근처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서울 지역으로 이동하여 치료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환자들은 진료를 받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장거리 여행을 하며, 병원 근처의 숙소에 머물기도 한다[31]. 하지만 먼거리의 이동에도 불구하고 진료 시간은 짧고, 기존 질환의 악화로 응급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정작 자신이 진료를 받았던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의학은 표준화된 학문으로 증상에서 진단까지의 경로, 진단에 대한 치료법이 가이드라인으로 상당히 체계화되어 있다. 또한 의사양성 과정이나 병원시스템 점검에 여러 국제 기준을 도입하되면서 상당한 수준의 질관리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 여러 고위험의 중증 질환에 대한 적정성 평가 결과를 보면 의료 수준에 의미 있는 차이는 없어 보인다[32-35].5) 서울 중심의 의료인 쏠림, 환자 쏠림은 지역 의료시스템의 발전에 어려움을 주며, 특별히 필요하지만 많은 자원이 소요되거나 투자 비용을 회수하기 어려운 의료서비스에 있어 지역 격차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
환자와 시민의 의료이용을 <Figure 1>을 통해 살펴보면, 의료자원의 이용방식이 공공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중복된 병원 이용, 민간보험을 활용한 추가적인 의료소비, 상급종합병원에서의 치료는 C의 범주를 확장시킬 뿐더러, A 범주 내에서 적절한 자원 분배를 저해할 수 있다. 물론 건강 추구를 위해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더 유명하고 큰 의료기관을 찾아가는 것을 단순히 의료 공공성에 대한 인식의 부재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질병을 겪는 개인에게 건강은 매우 중요한 삶의 가치이기 때문에 거시적 수준의 원칙들이 적용되기는 어려우며, 큰 의료기관의 선택이 개인적 맥락 내에서 최선의 결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더 크고 시설이 좋은 병원에서 치료받고자 하는 현상은 의료시스템 및 의료기관 신뢰와 더 연관이 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료서비스와 의료기관 이용이 의료의 공공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은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Ⅲ. 결론
3저 구조의 빈약한 의료자원으로 출발한 우리의 보건의료체제는 35년 사이 효율적이며 질 높은 의료를 구현하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높은 의료접근성, 쾌적한 병원 환경과 시설, 수준 높은 보건의료전문가들의 의료서비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지속적인 의료서비스의 발전을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 의료자원의 공급과 이용에 있어 해결하기 어려운 첨예한 갈등들이 있으며, 이는 의료수요와 의료 시장의 자본이 커지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 정책 - 민간 자본을 활용하여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의료 공급자를 통제하거나 민간의료보험을 활용하여 의료 수요를 충족하려는 정책 등 -은 어느 정도 의료보험의 안정성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정책, 의료 수요에 대한 통제를 하지 않고 시장의 논리에 따라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려는 정책 - 병상 수 증가, 비급여 시장 확대, 미약한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규제 등 -은 보건의료서비스가 지향해야 할 공적 역할을 무색하게 한다. 의료에서 무엇이 적정하고 무엇이 과잉인지 정하는 것, 어떤 의료서비스를 공적 자원으로 제공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일반적인 요통이나 두통에 MRI 촬영은 과잉이 될 수 있으나, 한편으로 환자가 질병이 없다는 사실에 안심할 수 있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의료행위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결국 어느 수준의 의료를 공적으로 제공할 것인가는 해당 사회의 적정선에 대한 합의와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회의 의지이며 역량에 달려있다.
의료보험 내에서 통제되는 의료의 상당 부분은 소위 필수 의료라고 불리는 서비스들이다. 이는 자유 시장적인 의료체계에서 결코 독립적이지 않으며, 적절한 보호가 없다면 상대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수요 범주의 의료서비스로 인해 위축될 수 있다. 다수의 사회가 지향하는 보건의료제도는 필요하고 적정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되, 한정된 의료자원 내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역량을 갖춘 제도일 것이다. 원하는 의료수요를 공적 자원으로는 모두 충족할 수는 없다. 결국 보건의료제도를 운용하며 자원을 공급하고 활용하는 이해 당사자들이 우리 사회에 공적 의료서비스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적 가치, 지향점을 공유하며 의료서비스의 수준을 합의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