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평은 2023년 특집논문 “필수의료의 위기와 의학전문직업성”에 대한 것이다. 한국의 왜곡된 의료 현실에 있어서 의학전문직업성의 중요성과 그 역할을 구체적으로 여러 차례 지적하셨던 저자의 논문에 논평을 하게 된 것 자체를 감개무량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먼저 밝힌다. 본 논평은 그 논문의 지적과 제언을 대체적으로 수용하나, 그 내용과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한다는 목표를 지니며, 마지막으로는 기존 제언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제언을 제시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논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필수의료의 위기와 의학전문직업성 확립 간의 관계가 다소 모호하다는 점에서부터 논평을 시작하려 한다. 물론 저자는 근치적 치료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모든 원인을 관통하며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명확한 정책적 대안을 다루지는 않을 것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의학전문직업성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그 대안적 적용 방법으로 긍정윤리를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필수의료 위기의 해소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논문의 내용만으로는 명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의학전문직업성이 필수의료 위기에 대한 해법이 전혀 되지 못하더라도 의사라면 준수하고 추구해야 할 이상으로 의학전문직업성을 다시 한번 제안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그것이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된다면 미약하더라도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인지 확실치 않다. 혹 어떤 이들은 이러한 논지를 지나치게 해석하여, 의대생 일부는 지방의 필수의료 영역에 종사하도록 집단적으로 독려하거나, 최소한 그러한 이상을 교육해야 한다는 뜻이라 해석할 수 있다. 물론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방식의 해석은 오독에 가깝다고 보이나, 반대로 이를 명백하게 오독이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찾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필수의료 위기에 대한 원인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는데, 일부 원인과 관련해서는 저자의 의도를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그 원인 중 의사의 자율규제 미비와 실손보험의 과도한 팽창 및 그에 따른 의료 상업주의에 대한 대책으로서 의학전문직업성의 역할과 중요성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예를 들어, 과도하게 이윤추구적인 과잉진료 및 처방과 관련된 그 어떤 자율규제나 윤리지침이 미흡한 현 상황에서 최소한의 이상향 설정은 그나마 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첫 발걸음일 수 있다. 이미 저자의 과거 논문[1]에서도 제시된 바가 있기도 하고, 근치적 치료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과잉진료와 의료 상업주의에 대항하는 의학전문직업성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또, 결론 부분에서 의사 개개인의 도덕성을 지적하는 것이 그 해법을 모색하는 데에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개별적인 의료 행위는 물론이고, 의료 제도라는 측면에도 의학전문직업성을 적용하여 최소한의 이상향 설정과 그 이상향을 공유하는 집단으로서의 의사 집단을 제언하고 있다면 필수의료 위기라는 현 상황의 일부 원인에 대한 해법으로 그 논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 논평은 이런 방식의 해석을 택하더라도 아직 명확치 않은 한 부분을 지적하려고 한다. 바로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의학전문직업성에 대한 기존 설명으로 의학전문직업성이 의료 제도 수준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저자는 의학전문직업성이 의사-환자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나 병원의 이익을 환자의 이익보다 우선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하고 있으며,1) 환자가 환자의 신체에 자칫 해가 될 수도 있는 의사의 권고에 따르게 되는 것이 바로 의사가 환자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조금 더 이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의사는 환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역할을 지니며, 그러한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는 신뢰에 기초하여 의사의 자율성과 지위가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물론 미시적인 의사-환자 관계에 있어서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나, 거시적인 의료 제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일부 모순과 혼선이 불가피하다. 특히 현재 여러 문제의 소지가 되고 있는 정책적 맥락을 들여다 보면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어, 환자가 실손보험을 통해 비급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받는다고 할 때2) 과연 담당 의사가 그 서비스를 처방하지 않는 것이 환자의 이익을 진정 대변하는 행위인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 장염과 탈수 증세가 있어 지역사회 의원에 내원한 환자의 경우, 이 환자가 실손보험 처리를 통해 수액 치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고, 탈수 증세 회복에 약간의 도움이 된다면 오히려 그 치료를 받는 것이 이 개별 환자에게는 이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경우에 물론 보건의료 전체 재정의 관점에서 그 수액 치료가 과연 비용대비효과가 높고 재정 투입이 정당한지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개별적인 환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는 과연 그 수액 치료를 해악만 주는 비윤리적인 처방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며,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기존 의학전문직업성 모델은 그 처방과 관련된 자율규제를 명확히 설정하는 데에 역부족으로 보인다.3)
물론 위와 같은 비급여 서비스가 환자에게 이득은 전혀 없이 해악만 가져다 주는 때에는 아예 처방하지 않는 것이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다. 최소한 그러한 경우, 기존 의학전문직업성 모델로도 과도한 비급여 처방 및 소위 과잉진료와 그에 따른 실손보험 팽창에 대한 해법을 일부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각보다 그러한 경우가 흔치 않을 뿐 아니라, 기존 모델은 저자가 들고 있는 필수의료 위기에 대한 여러 다른 원인을 해소하는 데에도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 중 서울 대형병원으로의 쏠림과 같은 현상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암 수술을 받으러 수도권에서 먼 지역에서 서울의 한 대형병원으로 상경하는 환자와 환자 보호자의 욕구가 과연 전혀 근거가 없으며, 그들에게 그 선택이 진정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지 확실치 않은 경우가 훨씬 흔하다. 물론 그들이 상경하는 데에 따르는 불편과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해볼 때 이를 완벽히 타산적인(rational) 선택이라고 보기도 힘들겠지만, 그것을 무조건 막거나 제한하는 것이 개별 환자들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4) 그렇다면 의사가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가고 싶어하는 환자의 욕구와 선택 앞에서 진료의뢰서를 항상 써주는 것이 의학전문직업성의 관점에서 정당한가? 만약 어떤 의사나 의사 집단이 그러한 환자들의 욕구와 선택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게 된다면 그들은 환자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의학전문직업성의 관점에서 진료의뢰서 작성은 어떤 경우에 정당하고 또 정당하지 않은 것인가?
이 문제의식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혹자는 기존 의학전문직업성 모델을 확장하여 전체 환자 집단이라는 총체적인 관점을 도입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2, 3]. 즉 의학전문직업성은 개별적인 환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만 적용되지 않고 환자 전체의 이익과 그 정의로운 분배를 추구할 수 있는 제도나 문화 등을 형성하는 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하며, 장기적인 한국 의학전문직업성의 발전 방향이라고 인정하나, 생각보다 개별적인 사안에 있어서 그 구체적인 적용은 간단치 않다. 다시 장염 환자에 대한 수액 치료를 떠올려보자. 물론 전체 보건의료재정의 효율적인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일반적인 장염 환자에게 수액 치료가 비용대비효과적인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체 환자라는 집단적인 관점에서는 수액 치료를 처방하지 않는 것이 그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적합할 수 있다.5) 그러나 여기에서 만약 담당 의사가 의학전문직업성에 따른 적절한 진료는 환자 집단 전체의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해석하여 이 환자로 하여금 수액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한다면 오히려 그 환자는 자신의 담당 의사를 자신의 이익의 대변자(advocate)로 신뢰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즉, 의사가 자신이 담당하는 개별적인 환자보다 환자 전체 혹은 더 넓게는 사회의 이익을 생각하는 순간, 담당 환자와의 신뢰에 금이 갈 수 있는 경우도 충분히 존재하며 이와 같은 경우 단순한 접근은 오히려 의사-환자 관계에 독이 될 수도 있다[5].
아직 한국에서는 위와 같이 개별적 환자의 이익 대변자로서의 의사와 전체 제도를 설계하는 역할로서의 의사 간 발생할 수 있는 미묘한 긴장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2017년 개정된 한국 의사윤리지침에서도 의료자원의 편성과 배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등 의학전문직업성이 개별적인 의사-환자 관계를 넘어서서 적용되어야 함을 설명하고 있다[6]. 하지만 그것이 실제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것인지 구체적인 보건의료제도 측면에서 다루고 있는 문헌은 찾기 어려우며, 특히 수가 인상을 대표로 하는 보건의료재정 확충을 요구하는 입장에서—그 요구가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를 떠나서—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6) 참고로 이와 관련된 논의는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의사의 처방과 진료 행위를 보험사에서 규제하려 했던 관리의료체계(managed care) 도입 시기에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물론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3, 8, 9]. 실제 이러한 흐름에 따라 미국의사협회 윤리지침을 포함하여 여러 윤리지침에서도 의사는 비용과 상관 없이 개별 환자의 최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보건의료자원의 청지기(steward)로서 비용-인식적인(cost-conscious)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주문하고 있다[10].
이 짧은 논평문에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으나, 긍정윤리를 제시하는 저자의 제안을 다시 곱씹어보며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결국 의료 제도라는 측면에까지 적용되어야 할 새로운 차원의 의학전문직업성은 특히 현재의 한국적 맥락에서는 단일한 방향의 준칙 혹은 법칙으로 환원될 수 있는 단계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제안대로, 새로운 이상향을 설정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최소한 보건의료자원의 유한함을 직시하며, 보건의료제도라는 구체적 맥락 위에 자신의 진료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방향성 위에서 의학전문직업성 버전 2.0을 고민하고 논의할 때가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