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보건의료 분야의 진료와 연구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다양한 연구사업이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빅데이터, 유 전체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정밀의료, 인공지능, 나노과학 및 유비쿼터스케어(Ubiquitous Care) 등 새로운 연구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첨단 생의학 분야에서는 연구와 그 결과의 적용 과정에 따르는 인식이나 사회관계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윤리·법·사회적 함의 연구(ethical, legal, and social implication study, 이하 ELSI 연구)는 이러한 요청에 대한 관련 학문 분야의 응답으로 이해되고 있다.1) 흔히 ELSI 연구에 대한 논의는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Health Institute)의 인간유전체연구사업(Human Genome Project, HGP)의 한 주제로 도입되었다는 점, 그리고 HGP 중 ELSI 연구에 할애되는 비중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 등이 강조된다[1].2) ELSI 연구는 이것이 처음 도입되었던 인간 유전학 연구에서 확장되어 사실상 모든 첨단 의과학 연구에 반드시 동반해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ELSI 연구의 개념과 그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과연 ELSI 연구는 어떤 종류의 연구인가? 어떤 종류의 기여를 할 수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ELSI 연구는 어떻게 수행되었으며 어떤 결과물을 생산했는가?”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국내외 문헌을 검토하고 특히 2011년 이후 정밀의료 유전체 ELSI 연구의 국내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Ⅱ. ELSI 연구
ELSI 연구란 사회적 영향을 크게 미칠 것이 예 상되는 과학기술이 개인, 가족, 공동체에 미치는 윤리적·법적·사회적 함의점을 기초와 응용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2]. 이는 미국 인간 유전체 연구소(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 NHGRI)에서 사용한 ELSI의 정의인데 지금도 널리 통용되고 있으며, ELSI 연구의 일반적인 대상과 목적 및 이에 접근하는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ELSI 정의에서 나타나는 ELSI 연구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과학기술 연구 사업과 함께 그에 관한 윤리(학)적, 법(학)적,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 지식을 생산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실천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ELSI 연구는 지식생산과 그것의 실천이라는 이중의 목표를 갖는 다학제적 연구 활동이다. 또한, 윤리학, 법학, 그리고 사회학이 독자적인 학문적 정체성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ELSI 연구는 어떤 분과 학문으로 발전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점도 짐작해볼 수 있다.
따라서, ELSI 연구는 ‘과학의 수행과 그 응용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meta-science)이며, 현 시점에서부터 장래의 활용과 사회 변화까지 시간적 범주로 삼으며, 기술적(descriptive) 지식과 규범적 (prescriptive) 지식을 연구 결과물로 하는 것’이라 개념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구 수행의 원칙인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를 연구주제로 한다면 시민들의 유전체 연구에 대한 과학 문해력에 관한 기술적 연구[3]와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의 지침[4]을 다룰 수 있고 그 활용이라고 할 수 있는 소비자 대상 직접(Direct -to-Consumer, DTC) 유전자검사를 연구주제로 하여 시민들의 태도[5]와 규범의 현황을 제시하는 연구[6]가 가능할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태도 또는 감시적 관점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상원의원이었던 정치가 월터 F. 먼데일(Walter F. Mondale)은 1960년대 과학기술에 대한 독립적인 연구감시 체계를 주장했다. 비록 과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성공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먼데일은 연구감시 체계의 법제화를 시도한 바 있다. 과학자들은 먼데 일의 의견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로 과학자들의 자율규제의 이상과 외부적 감독이 일치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월터가 제안한 외부 감독 체계 즉, 외부 시선을 반영하여 이해상충을 회피하고자 하는 윤리적 감독 체계는 오늘날 미국 연구윤리 제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연구윤리 체계에 영향을 미친 대부분의 논의는 “생명윤리 문제의 연구를 위한 대통령위원회 (~2016)(Presidential Commission for the Study of Bioethics Issues, PCSBI)”로 대표되는 위원회를 통해 수행되었다[7].
이러한 논의는 ELSI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계기를 제공하였고, 이후 1974 년 미국 의회에서 제정한 국가연구법(National Research Act)은 “생의학 및 행동과학 연구의 인간 연구대상자 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Subjects of Biomedical and Behavioral Research, NCPHS)”의 기능에 오늘날 ELSI 연구에 해당하는 기능도 포함하였다[8]. 미국 국가연구법(1974) Section 203에서는 아래와 같이 ELSI 연구 관점의 반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연구는 다음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포함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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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거, 현재 및 장래의 생명의학 및 행동 연구와 서비스의 과학 및 기술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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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러한 진보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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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상 의학에서의 기술 활용에 관한 법,도덕 및 윤리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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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러한 함의, 법률 및 원칙에 대중의 이해와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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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생명의학 및 행동 연구 및 기술의 진보와 관련하여 위원회가 수행한 결과의 공공 정책적 함의”
ELSI 연구는 1989년 미국 국립보건원이 HGP를 추진하면서 등장한 것인 만큼, 당시 ELSI 연구의 배경으로 흔히 제시된 것은 1980년대 HGP의 실패 내러티브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1980년대 유전학적 지식의 함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차별에 대한 우려가 함께 대두되었고 이러한 사회 일반의 관심에 직면하여 과학자들은 HGP의 기술이나 가능성만큼이나 HGP가 구성, 수행, 활용되는 맥락 자체에 관심을 두는(meta-HGP) 접근의 필요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간 유전체 연구의 문제를 사업 수행자들이 자신의 과제로 포함시키며 대응함으로써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대중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고, 그리고 이것이 소위 “ELSI hypothesis - 과학연구기금은 보완적으로 사회과학 연구 지원 기금을 포함해야 한다”로 다시 ELSI 연구 과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설명 이다[9]. 1989년 이와 같은 이해는 한국에서 처음 수행되었던 ELSI 연구에도 ELSI는 배려나 제스쳐가 아닌 연구 수행과정의 당연한 규범 및 체계적 대응이라는 이해와도 관련 있다.
ELSI 연구는 처음부터 HGP 연구의 주요 목표에 포함되었다. HGP의 연구 목표인 인간 유전체의 서열분석, 모델 유기체의 서열분석, 자료 수집과 분배, 윤리·법·사회적 고려, 연구자 훈련, 기 술개발, 기술이전 안에 윤리·법·사회적 고려가 처음부터 포함되었던 것이다[10]. HGP는 일차적으로 유전학적 발전을 도모하고, 이 발전의 내용을 임상적·비임상적 영역에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러한 통합 과정에서 철학, 신학, 윤리적 관점과 상호작용이 발생하게 되는데 즉 유전 학적 정보가 사회경제적 요인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발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11] ELSI 연구과제를 포함하게 되었다. 즉 과학적 탐색과 함께 유전정보의 책임 있는 활용 방식을 개발하기 위해 윤리·법·사회적 문제를 고려했는데 기획 단계에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사생활의 비밀 보호를 통해 유전정보에 의한 차별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 ELSI 연구 프로그램의 주요한 연구주제는 다음과 같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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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유전체 지도작성과 서열분석이 개인과 사회에 갖는 함의를 예측하고 대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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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유전체 지도작성과 서열분석의 윤리적, 법적 그리고 사회적 결과를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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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문제에 관한 공적 논의를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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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가 개인과 사회에 유익하게 활용되도록 보장할 정책적 대안을 개발한다.
HGP에서 수행한 초기 ELSI 연구의 가장 큰 특 징은 HGP 사업의 성공을 위해 ELSI 연구 프로 그램이 필수적 구성요소로 보고 ELSI 연구비를 HGP 사업 예산에 포함하여 편성했다[13].3) 그런데 이런 접근은 ELSI 연구가 HGP 연구의 가능한 결과의 예측을 통한 정책적 대안 마련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노출된다[14]. 결국 HGP의 첫 5년 종료 시점에 ELSI 연구 프로 그램의 재편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시점에서 연구 책임자인 Collins 등은 ELSI 연구의 목표를 수정, 제시한다.4) NHGRI ELSI 연구 프로그 램 운영 원칙을 재정립하기 위한 조직으로 구성된 “ERPEG(The ELSI Research Planning and Evaluation Group)”은 1998~2000년까지 활동하였다[15,16].5) 수정된 목표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높은 우선순위 문제해결을 위해 운영기관 주도의 특별연구비 또는 계약 기전에 일정 부분의 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 “유전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주제에는 연구비를 책정하지 않는다”는 권고안의 내용인데 ELSI 연구가 산만하게 집행되어 정책적 기여점이 부족했다는 인식에서 비롯한 것으로 HGP에서 연구비가 배정된 ELSI 연구의 범주를 한정하며, 정책적 함의점이 특별한 연구에 우선순위를 두도록 요구했던 점이다. 이는 ELSI 연구의 초점이 기본지식에서 응용할 수 있는 정책개발로 옮겨졌음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최근의 ELSI 연구는 기관에서 직접 수행하는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다. 2010년까지 ELSI 연구에서 다루어진 주요 주제인 1) 유 전학 또는 유전체학 전반(genetics or genomics generally), 2) 생명자원 저장소(biorepositories), 3) 유전학과 인종(genetics and race), 4) 유전적 증강(genetic enhancement), 5) 유전체 연구와 대 중(genomics research and the public), 6) 지적재 산권(intellectual property), 7) 개인 맞춤 건강관 리(personalized health interventions), 8) 유전체 학과 임상의학(genomics and clinical practice), 9) 인간 연구대상자 보호(human subject protection), 10) 사전 동의(informed consent)[17] 등은 연구운영 주체의 관점이 깊이 반영되었다.
한편 ELSI 연구는 단일한 방법론이나 교육체계, 연구기관 등이 존재하지 않는 논의의 장으로 존재한다. 참여하는 연구자의 학문 배경도 과학, 철학(윤리학), 법학, 사회학과 경제학 등으로 다양하며 이들 연구자들의 주된 관심사와 주요 연구 방법론도 그들의 학문 배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의 서로 다른 관심사와 접근 방법을 통합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며, 이 통합은 ELSI 연구를 요청하는 목적에 따라 규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개별 ELSI 연구 결과를 통합하기보다 일정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부합하는 윤리·법·사회학적 연구를 설계하고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17]
HGP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유전체 맞춤 의학(personalized genomic medicine, PGM), 그리고 미국 “All of Us 연구 프로그램”의 ELSI 연구 역시 이전 ELSI 연구 사업의 관점을 유지하여 PGM 관련 연구 및 임상 개발 과정에서 관련 정책의 정당성에 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했다[18,19]. 지난 30여 년간 진행된 ELSI 연구는 과학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사회적 문제를 함께 다루었다. 특히 2010년 이후 ELSI 연구 사업은 다양한 관점을 기획, 운영, 정책 개발 등 더 근본적인 차원에 반영하려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20].6)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기획, 운영하는 ELSI 연구는 연구 및 응용 환경의 변화를 특정하고 확장하며 ELSI 연구에도 다양한 관점을 추가하고 그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상 HGP의 일환으로 수행된 ELSI 연구의 특징으로 4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ELSI 연구를 규정하는 것은 특정한 과학기술의 개발 과정과 활용에 관련된 사회적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다. 둘째, ELSI 연구는 HGP를 윤리·법·사회학적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기획이지만 철학이나 법학, 사회학과 같은 단일한 분과 학문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다[21,22]. 셋째, ELSI 연구의 일관 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과학기술이라는 맥락, 그리고 일련의 연구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주체의 인식과 태도가 큰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ELSI 연구가 가진 이중적인 목표인 지식생산과 정책개발의 과정이 일관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사업 운영자들은 bottom-up 접근(연구자들의 자발적인 의제 제시)과 top-down(운영자들의 정책적 의제 제시) 접근[23] 등을 수행하고 있다.
Ⅲ. ELSI 연구를 둘러싼 논의들
ELSI 연구방식은 과학연구 관행에 분명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특정 연구주제에 한정되었지만, 과학연구에 대한 외부적 감독이 구체화 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철학적 생명윤리가 일반원칙, 개념, 논변을 주된 방법론으로 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생명윤리의 접근이 사회적 현실을 반영할 뿐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담보하도록 하려는 목적에 봉사할 수 있었다. 한편, 사회학과 법학의 방법론이 제공할 수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능력, 사실과 가치(관)의 수립, 그리고 분석능력을 목표로 하였다. ELSI 연구는 위험-편익 분석을 통한 의사결정을 위한 수단, 과학의 영향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연구, 시민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의사소통 수단,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실제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하는 문제가 ELSI 연구의 성취를 평가할 수 있는 근거라고 한다면 예를 들어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의 내용과 형식, 과학 커뮤니케이션, 연구자와 시민 교육, 과학기술 정책 등에 반영되었는지 그 근거를 바탕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ELSI 연구 사업 이전 윤리적 감독은 위원회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ELSI 연구는 지식에 근거한 참여적 거버넌스를 목표로 한 것이지만 분명한 목적과 성과를 제시하는 위원회 중심의 접근과 달리, 실제로는 지식을 중시하는 연구 구조에 집중함으로써 정책을 도출하는 차원에서 효율성이 떨어졌다. 이렇게 HGP에 연관된 ELSI 연구는 지속적인 비난과 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정책 제안으로 이어지는 연구 결과를 생산할 역량이 부족했던 ELSI 관련 연구 현실을 도외시한 연구계획은 실제로는 그 목표한 성과에 도달하지 못한 채 사업 이 윤리적으로 기획, 운영되고 있다는 변명거리를 제공하는데 불과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24]. 실제로 기능하지 못하는 ELSI 연구는, 특히 유전체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라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과학적·경제적 동기에서 수립된 과학연구의 수행과 결과 활용에 대한 정당화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는 ELSI 연구가 제시하는 목표의 모호함과 관련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ELSI 연구는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일환으로[25] ‘문제를 예측하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한 논의를 촉진하며 관련 정책개발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치가 있다. ELSI 연구는 분명히 목적 지향적이며, 이는 ELSI 연구의 정치성(political nature)을 살펴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ELSI 연구를 이끄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연구비 지원 기관의 기대가 더 큰 고려사항이라는 것이다. ELSI 연구 사업에서 지원 기관은 단순히 연구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과학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고 정당화 가능한 기술개발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분명한 목적을 갖는다. (1) 위험-편익 분석을 통한 의사결정 수단 제공, (2)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연구(meta-), 그리고 (3) 시민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의사소통 수단, 과학연 구의 거버넌스를 위한 도구 개발 등을 달성하며, 구체적으로는 설명동의 문건(informed consent forms), 교육-홍보 및 정보제공 자료 개발, 기술의 오남용 및 효율적인 운영 방안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도구적 성격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는 윤리가 ‘과학의 트로피[26]’ 즉, 과학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일 수 있다.
요약하면 ELSI 연구가 경계해야 하는 두 가지 위협은 연구의 피상성과 편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칫하면 과학연구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과시적 연구지원 사업에 그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 걸림돌이 될 만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실무적 지원 연구로 제한될 가능성 사이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을 대표하는 연구가 가능하도록 주관 기관의 관점을 반영하는 연구방식과 다양성을 반영하는 연구방식을 포괄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 주제 선정 방식 등에 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16].
한편 ELSI 연구는 과학적 사실?과학정책-시민들의 문제의식을 연계하는 것이며 ‘현재성’이 연구의 가장 큰 특징점으로 지목된다[27]. 이는 과학 연구의 실천에서 발생하는 문제 및 그 결과로 예측되는 사회적 변화와 규범적 난관을 ELSI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과연 타당하며 유지할 수 있는 문제의식인가? 현재성은 ELSI 연구자 - 철학, 법학, 사회과학 및 신학 - 들과 과학자들 사이 인식론적, 물리적, 경험적 차이 때문에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한편 현재성이란 ELSI 연구의 연구 주제가 과학연구에 의존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드러낸다. 아주 이상적인 ELSI 연구, 그리고 ELSI 연구자와 과학연구자의 협력이 가능하다면 과학연구의 주제가 역으로 도출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과학연구와 ELSI 연구의 논 리적 순서에서 우리는 ELSI 연구의 의존성으로 인해, ELSI 연구가 과학연구의 과학적/경제적 동 기를 정당화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ELSI 연구의 비판적 관점에 어떤 취약함이 있지 않은지 의심할 수 있게 된다. ELSI 연구자들이 취하는 태도는 과학자들과의 관계, ELSI 연구가 과학연구와 맺는 관계를 규정할 수 있다.
ELSI 연구는 그 목표를 매우 광범위하게 설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과학 거버넌스에서 사용되는 위험분석(risk-analysis)을 포함한 기술영향평가 (technology assessment), 그리고 대중의 과학이해 프로그램(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등의 프로그램과 비교하여 이해할 때 그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는 측면이 있다.
기술평가는 “기술 관리를 위한 체계적 접근(UN, 1991)”으로 정의하며, 어떤 기술이 사회와 환경 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이는 기술적 산업적 관점을 제공하는 방식을 취한다. 우선 영향, 결과, 그리고 위험을 평가하는 것이지만, 전략적 기획의 투입요소로서 기회와 기술개발을 전망하는 예측기능을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정보수집, 모니터링, 비판적 분석 요소를 갖는다. 궁극적으로 정책과 합의 도출과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위험분석 개념의 위험평가 기능을 강조한 접근으로 미국 의회가 행정부의 정책제안을 효과적으로 분석하는 정책분석 수단으로 1972년대 처음 도입한 예가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기술의 다양한 기능, 영향에 관심을 두고 부정적인 영향을 줄 이는 방식의 통제 수단이다. 앞선 전망의 두 번째 측면은 UN Development Account 사업에서 활용한 예가 있다. 규제적 접근의 예로 미 하원의 기술평가 담당관(Office of Technology Assessment 1972~1995)이 있는데, 이런 태도는 기술발전을 결정론적으로 인식하고 정부가 특정기술의 활용에 제한을 설정하거나 법적 장치를 둘 것을 기대는 접근이다. 즉 실제/투영된 과학기술의 영향에 반응하여 정부가 규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돕기 위한 것이다. 한편 진흥적 접근의 예로 유럽의 보건 기술평가기관(Health Technology Assessment) 이 있는데, 이 관점은 기술발전이 시장 영향력 아래 발전한다고 인식하고 기술영향평가를 통해 국가경쟁력/발전에 기여하는 기술 혁신을 진흥하는 데 적합한 정책을 제공하려 한다. 한편 ELSI 연구에서 흔히 제시되는 관점은 구성주의적(constructive) 관점인데 이 관점은 기술발전을 결정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발전을 사회적/정치적 우선순위에 대응하여 조정하려 한다. 이 태도는 국가 주도의 인센티브와 같은 정책 개입을 제안하는 데 이는 ‘구성적’으로 기술변화의 과정의 방향을 변화시키고, 기술영향평가를 기술개발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이익을 명료화하는 데 활용하려는 것이다. 한편 실험적/참여적(experimental/participative) 태도는 구성적 태도에서 발전된 형태로적 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양한 당사자들이 기술적 대안을 평가하고, 혁신 설계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실험을 수행하려 한다. 한국의과학기술기본법은 제13조, 제14조에 관련 규정을 두고 있으며 구성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술영향평가는 ① 문제정의, 연구의 범위 설정, ② 기술의 특성과 발전방향 예측을 통해 기능과 직접적인 적용점 파악, ③ 기술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심으로 사회적 맥락과 변화 예측, ④ 영향의 확인, ⑤ 분석, ⑥ 평가 그리고, ⑦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얻 어진 결과는 이른 시점에 경고를 제공하거나, 프레이밍, 선택지의 비교, 이해당사자들의 논의자료 제공 등을 통한 의사결정의 지원, 그리고 가능한 선택지의 개선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기술영향평가의 중요한 측면의 하나인 위험평가는 과학연구에서 위험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방식으로서 위험평가(risk assessment), 위험-편익분석 (risk-benefit analysis), 그리고 위험의사결정(risk decision-making)의 세 가지로 구성된다. 그중 위 험평가는 위해확인, 용량-반응평가, 노출평가, 위험의 특징확인 등의 절차를 거쳐 위험의 크기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위험에 대한 인식과 대처는 지난 수십 년간 발전한 전문가주의, 객관화와 수 량화에 영향을 깊이 받았다. 위험평가는 전적으로 객관적이며 수학적인 과정이며, 이들은 이렇게과 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위험의 영역을 분리하고 이해하는 것이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위험의 인식과 수용에는 계량화할 수 없는 요인이 작용하며 Bruce가 제시하는 위험인식의 구성요소, 즉 가치, 익숙함, 비교, 통제, 신뢰, 비전, 선택, 위험의 빈도, 위험의 크기, 위험의 즉각성, 이익, 윤곽 등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민들이 과학의 언어를 오해함으로써 정책 결정과정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음이 단순히 우려의 수준을 넘어서면서 영국에서는 1992년 이후 Durant and Thomas를 중심으로 대중의 과학이해 프로그램(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program)이 시행된다. PUS 프로그램은 ‘대 중’이 ‘기술과 의학을 포함한 과학에 대한 문해력 (scientific literacy)’을 갖추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7)
시민들은 이와 같이 과학 문해력을 갖추게 될 때 ① 과학 발전에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절차를 이해하고 현실적인 기대를 가진 대중의 지지를 통해), ② 과학기술을 생산활동에 반영할 수 있는 경제활동가를 통해, ③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시민을 통해, ④ 개인의 지적인 사회생활을 통해, ⑤ 정부의 민주적 결정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⑥ 과학적 결정을 통한 민주주의 실현을 통해, ⑦ 지적인 문화의 확산을 통해, ⑧ 미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⑨ 악습을 제거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사회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위험평가를 포함한 과학기술영향평가, 그리고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 프로그램은 과학기술 거버 넌스라는 맥락에서 ELSI 연구와 접하게 되는 활 동이다. ELSI 연구는 과학기술영향평가의 도구인 연구 전반에 관한 시나리오 구축 기법을 활용할 수 있으며, 기술영향평가를 통해 연구 진행 중이 라도 연구자들이 자기 연구의 더 넓은 사회적 측면에 대처할 수 있도록 대응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한편 시민들의 과학 문해력은 윤리적/법적 분 석을 위한 네트워크의 확충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한편 과학기술영향평가에 ELSI 관점은 자연스럽게 포함될 수 있는데, 윤리적으로 논쟁점이 있고 복잡한 것들까지 다루는 ELSI 연구의 다양성을 고려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실제로 이미 EU-netHTA는 ELSI checklist를 개발하였는데, 아직 HTA core Model과는 별개로 활용되고 있으나 ELSI 연구와 기술영향평가의 유지 가능성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과학 문해력 향상의 이슈 역시 ELSI 연구의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단순히 지식뿐 아니라 지식의 생산-소통-의미있는 지식의 선정-생산 절차-상품화-시장화 등의 과정이 포함되고 이 과정을 둘러싸고 복잡한, 동시에 도구화되고 합의된 사고의 형태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여기에는 이해당사자의 규명, 위험/이익에 대한 (임상시험을 통한) 지식 습득 등이 포함되며 이를 이해하는 ELSI 연구의 기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접근법 사이에는 시간, 공간, 활용 방향성 등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수행 중인 과학기술과의 시간적 관련성 측면에서 사전(TA)-동시대(ELSI, RRI)-사후 (PUS)와 같은 차이가, 공간적 관련성에서 공간 공유(ELSI), 배경(TA), 주체가 수행(RRI), 다른 공 간(PUS)이라는 차이가, 그리고 연구 수행 결과의 활용 방향성에서 정책입안자(TA, ELSI)-연구자 (ELSI)-시민대중(PUS, ELSI)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ELSI 연구와 관련 연구들은 상호의 존적인 활동이며 큰 의미에서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도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POST-ELSI 논쟁의 핵심에는 분야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 무질서함을 극복하고 통합된 목적의식을 개발, 유지할 필요성이 자리하고 있다. 우선 ELSI 연구의 발전을 위해 ELSI 연구가 그 연구 결과의 응용가능성이 아니라 다양성에 목적을 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를 위해서 ELSI 연구의 중요한 전제인 과학자-비과학자의 구분이 해소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Myskia 등의 주장이다. 이들은 경험주의 생명윤리학(empirical bioethics)의 방법론을 도입하려는 것으로 파악되며 구체적으로 다음 방법론을 제안한다. 1) 철학, 신학, 법학 배경을 가진 윤리학자와 인식론자(과학철학자)의 개념분석을 통해 흔히 개발되는 규 범적 분석, 2) 이해당사자 견해 연구 또는 과학과 사회적 활동에 대한 상호작용을 통한 연구로 STS과 사회학, 인류학과 역사학 등의 훈련을 받은 학자들이 수행, 3) 과학기술 배경의 학자들이 수행하는 위험연구 등 과학적 분석 등이다. 각 분야에서 방법론을 훈련받은 연구자들이 문제의 구성부터 진행과 해석에 이르는 과정 전반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연구 풍토의 개발이 다시 한번 강조된다. 연구가 과학기술 수행과 그 활용의 사회적 결과를 연구대상으로 삼았으며 이를 통해 과학의 윤리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ELSI 연구는 특히 이와 같은 목적을 ‘비과학자’들이 과학연구에 개입할 기회를 열어주며 공 동연구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달성해왔다. 그러나 ELSI 연구는 그 자체로 약점이 많으며 RRI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POST-ELSI 논쟁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책임있는 연구혁신활동(Responsible Research Innovation, RRI)이다. RRI는 “투명하며, 상호작용하는 절차로 사회적 행위자들과 혁신가들이 혁신과 시장화된 상품에 관해 상대가 가진 (윤리적) 수용가능성,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바람직함에 관한 관점에 반응하는 것”으로 정의 할 수 있으며 예측, 성찰능력, 포섭, 그리고 반응성(anticipation, reflexivity, inclusion and responsiveness)이 핵심 내용이다[28]. RRI의 주창자들은 ELSI 연구 모델에서 ‘미래 예측’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해소하는 대신 협력실험, 위험의 공유, 협력적 성찰, 공유되지 않은 목표에 대한 토론의 시작, 공유된 관심을 통한 연합 등을 강조한다.
Ⅳ. 한국 ELSI 연구의 사례
한국에서 수행된 ELSI 연구는 2000년대 “인간 유전체 연구와 인문사회과학적 연구(2002)”로 시작해서 “세포응용연구사업단(2004)”, “차세대 유 전체 사업단 ELSI 센터(2012)”, “포스트 게놈 다 부처 유전체 사업 ELSI 센터(2015)”, “정밀의료 연구자원 개발사업을 위한 사회윤리적 기반연구 (2018)”,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추진을 위한 윤리위원회 운영 및 ELSI 대응 전략 수립 (2020)”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나노과학 ELSI(2015)”, 그리고 “신경윤리(신경과학 ELSI)(2018)”, “인공지능 ELSI (2019)” 등의 영역에도 ELSI 연구가 수행되었다. 아래에서는 그 중 유전체 관련 ELSI 연구를 중심으로 그 특징과 내용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전체 연구에 ELSI 연구를 포함시킨 것은 미국 NHGRI의 경우와 같이 유전체 자원의 확보와 R&D 투자의 이론적 정당성 확보, 인간유전체 및 맞춤의료 연구결과의 예측 불가능성 감소(향후 연구가 초래할 다양한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 숙고), 사회구성원들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함으로써 불필요한 갈등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 연구로 발생 하는 혜택의 사회적 분배 유도, 맞춤의료 이용을 위한 접근성 증대, 연구로부터 파생되는 혜택을 사회구성원들에게 보다 공정하게 분배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개발하는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해당 연구는 ELSI 논의의 분석틀을 개발하고, 다양한 논의를 개진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하며, PGM 거버넌스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목적으로 수행되었으며, 구체적으로는 다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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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일반에 맞춤유전체의학(Personalized Genomic Medicine, PGM) 관련 정보를 적절하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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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일반의 PGM 관련 인식을 확인하고 대응 방안을 개발(담론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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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론의 구체화 및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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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자에게 법적 윤리적인 실천 지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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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적, 윤리적 규제 정책의 실천 확인과 이를 위한 자문과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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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PGM 관련 보건의료, 규제 정책의 정당성과 효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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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자들과 사회의 의사소통 수단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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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개발자와 사회 일반, 연구자들의 신뢰 확보를 위한 담론 공간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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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GM 관련 연구 관행의 확인과 평가
한편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이지만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달성하는 도구적인 성격을 갖고 따라서 사회적 가치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받 게 된다(사회적 함의). 따라서 가치에 관련된 논의가 필요하게 되는데(담론), ELSI 연구는 그 자체가 담론의 일종으로, 또한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담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담론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ELSI 연구는 다양한 관점을 요청하고, 관점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지원과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담론이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실질적으로 연구 수행과 응용 과정에 적용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러한 실질적인 발전 의한 형태가 법적, 윤리적 실천 지침으로 형태를 갖추게 되면 연구자-규제자에 대한 자문과 지원이 될 수 있다. 한편 PGM 관련 정책이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ELSI 연구는 그 합리성과 효과성(예를 들면 경제적 효과, 효율성 등)을 평가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의사소통과 담론 공간의 구축은 담론의 형성과 절차적 합리성을 추구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며 다양한 관점이 발언 기회를 얻고 이에 대한 평가와 실현 방안 모색 등이 이루어질 수 있는 웹사이트, 학술집담회, 시민 토론회 등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ELSI 연구자들은 PGM 연구자들의 연구 관행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법적-윤리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일종의 기술적 연구는 ELSI 연구가 PGM 연구자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추구되었다.
이들 각각의 목표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만 동시에 다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으로 제시되었는데 정보제공은 담론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 있어 핵심 요건이다. 담론이 형성되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담론이 제시되고 논의되는 공동의 논의장이 필요하며, 적절한 의사소통 수단이 필요하다. PGM에 관한 관찰과 이해는 의사소통의 개발과 자문에 있어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ELSI 연구는 다음과 같은 활동을 수행하였다. 또한 이들 활동은 각 학문 분야의 주요한 연구방법론과 관련되어 있었다. 즉 윤리학의 개념화, 이론적 분석 및 사례분 석론, 사회학의 설문, 인터뷰 및 델파이 기법, 법학의 법 해석, 판례분석 및 비교법적 연구 등이다.
각 학문은 동일한 사안에 접근하고 있으나 이들이 고려하는 대상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방법론은 연구의 대상을 규정하며 연구 결과 및 실천적 함의를 규정 하는 기능을 갖는다. 예를 들어 유전체 은행의 구 축에 관한 접근에서 윤리학은 유전체의 윤리적 함의 및 유전체 은행 구축의 관행을 윤리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개념을 찾고 개념과 관행을 일치시키는 시도를 하는 데 반해 사회학의 접근은 이와 달리 공통의 인식 흐름과 가능한 합의 가능성에 집중한다. 한편 법학적 접근은 이미 주어진 기준으로서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안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세 학문은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서로 다른(그리고 상충하는)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에서 중첩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학이나 윤리학 모두 일종의 이론화 과정을 거쳐 논의를 전개하고 있으나 이들이 제공하는 이론은 자신의 분과 내에서 유효 한 만큼 다른 분야에서 유효성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윤리학이 개념화한 유전체 차별/유전체연구의 위험과 같은 개념을 법학이나 사회학이 그대로 도입해서 쓰는 것은 어렵고, 위험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들 관점은 (물리적으로도) 밀접하게 존재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각 관점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데 활용될 수도 있으며, 새로운 탐구의 영역을 제시하기도 하고 판단과 접근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데 활용되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
실제 연구과정에서는 연구목표에 맞추어 연구방 법론과 주요한 참여 분과학문을 결정하는 것이 실 질적인 접근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각 분과 학문은 협력과 상호 비판을 통해 연구성과를 내실 있게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정보제공을 목표로 한다면 이를 위해서는 제공될 정보의 내용과 수준을 평가하고, 적절한 정보제공 수단을 개발하는 작업을 수행하도록 고안되었다. 또한 담론 형성과 구체화를 목표로 하는 경우는 사회적 인식 조사와 함께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배경으로 현실을 기술하고, 의사소통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필요하다. 법적, 윤리적 실천 지침을 제공하기 위하여 개념 규정과 이론적 구성과정에서 기존 규범에 대한 이해 및 지침 개발, 외국 사례 연구가 필요하며, 이는 최종적으로 연구자들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ELSI 연구의 방법론은 그 목표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적절하게 조합되어 실천될 수 있다. ELSI 연구의 목적과 방법론은 다음 표에 정리했다.(<Table 2>, <Figure 1> 참고)
한편, 이와 같은 분류를 맞춤의학에 적용했을 때 다음 <Table 3>과 같은 범주 설정이 가능했다. 이 범주는 PGM의 주요한 연구 방법에 수반되는 이슈들과 사회적, 법적, 윤리적 분석을 통한 원칙의 수립으로 연계된다.
바이오 빅데이터는 “빅데이터 기반 창출의 방법을 활용해 방대한 바이오 정보를 효율성 있게 정 리·해석하고 그 생물 및 의학적인 의미를 밝혀 새로운 지식 및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을 의미하며, 바이오 빅데이터 연구를 통해 유전체 정보, 진료·임상 정보, 생활습관 정보를 통합 분석하여 환자 특성에 맞는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밀의료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특히 정밀의료 코호트에 적합하게 구축된 국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임상의학적, 비임상의학적 효과가 클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정책 개발자 입장에서는 해외 국가들이 수립한 바이오 빅데이터의 경제적인 활용 목표를 고려했을 때, 한국의 정 밀의료 빅데이터도 제약산업, 건강증진산업, 유전자 검사 산업을 중심으로 국가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자산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을 위해서는 사회 문화적 요소를 고려한 윤리적 감독체계 구축이 요구되는데, 일본과 한국의 연구 결과를 보았을 때, 가족주의와 국가주의, 국가 주도 연구에 대한 신뢰 등으로 정밀의료 관련 연구에 높은 참여도를 보여주고 있다. 2018년 국내에서 실시한 정밀의료 참여 관련 인식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94.5%가 참여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2016년 미국의 설문조사에서 83.5%가 참여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것보다 15.5% 높은 수치이며, 한국인의 국가 주도 생명과학 연구에 대한 신뢰와 최첨단 기술에 대한 친숙함이 국가 연구에 대한 지지로 이 어진다는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그러나 동일한 조사에서 연구참여자들은 국가 산하기관 및 대학 연구기관 등 외에 민간산업기관에서의 활용 등에는 부정적인 인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한국의 특별한 상황을 반영한 연구를 고려하여 연구를 기획하였다.
이 연구과제는 바이오 빅데이터에 포함된 광범 위한 정보로 인해 발생가능한 다양한 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사업의 윤리적이고 책임있는 운영을 위한 윤리위원회 운영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선제적 대응을 위해 ELSI 연구 과제 도출 및 중 장기 로드맵을 수립하기 위해 국내·외 윤리위원회 사례를 조사하고 이를 참고하여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사업에서 윤리위원회 및 자문단의 역할을 정립하고 운영하는 것이 연구의 주요 내용이다.(<Table 4> 참고)
이 연구에서는 윤리위원회 준비단 및 4개의 자 문단을 구성하여 각 2회 이상 회의를 통해 논의를 진행하였다. 우선, 윤리위원회 준비단에서는 본 사업의 ELSI 위원회의 주된 역할은 ‘자문’이 되어야 하며, 윤리적·법적 문제의 발굴과 상정을 위한 ‘공론화’ 기능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의 견을 제시하였다. 데이터 쉐어링 및 활용에 관한 자문단은 폐쇄망을 통한 데이터 제공을 원칙으로 하되, 데이터 조합의 민감도에 따라 차등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본 사업을 통해 데이터를 분양 받는 연구자들의 기밀성 유지 의무 확약서를 받도록 하여야 하며, 희귀질환자의 경우 가족에 대한 정보 접근에 관한 안전대책과 연구심의 기준 마련의 필요성이 논의되었다. 희귀질환 데이터 이용에 관한 자문단에서는 4개의 윤리원칙과 이를 실현하 기 위한 윤리적 고려사항 6가지를 도출하였다. 윤리원칙으로는 ‘자기결정권의 존중’, ‘사생활보호와 기밀성 유지’, ‘투명성과 신뢰’, ‘상호호혜성과 사회적 연대의 실현’을 제시하였다. 사업 수행과정에서 얻은 정보의 제공 관한 윤리적 원칙으로 ‘사 업 참여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 ‘임상적중요성 또는 예방가능성 시급성이 인정되는 결과의 우선적 제공’, ‘의학적으로 유효한 결과 제공을 위한 지속적인 분석 품질 관리‘, ‘연구와 임상진료의 혼동 방 지’를 제시하였다.
전문가 델파이 조사에서는 본 사업의 ELSI 위원 회의 핵심가치로 ‘책임성’, ‘투명성’, ‘사회적 소통 및 합의 도출’에 대해서, 그리고 운영 목표는 ‘사업 참여자의 보호’, ‘사회적 신뢰 구축’, ‘사업의 윤리적 거버넌스 체계 확립 및 투명한 관리감독’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높게 평가하였다.
Ⅴ. 결론
1990년대 유전체 분야에서 ELSI 연구가 시작 된 배경을 요약하면 과학기술의 양면성에 대한 성 찰과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여전히 다른과 학 분야에서도 ELSI 연구를 수행하는 기본적인 출발점이자 목표로 삼아야 하는 과제이다. 이러한 점에서 ELSI 연구는 기술영향평가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기술영향평가는 사전적인 예측과 분 석에 초점이 있는 반면 ELSI 연구는 과학기술 연구가 진행되는 전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란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그리고 ELSI 연구는 과학기술에 대한 공적 논의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대중의 과학이해와도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ELSI 연구는 대중의 기여를 확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정책입안자들이 대중의 의견을 정책에 반 영하는 과정을 매개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이는 과거 ELSI 연구에 대한 비판점으로 정책 실행력 이 지적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도 더욱 강조되어야 하는 역할이다.
국내에서도 정밀의학, 나노과학, 신경과학 등 첨단과학 분야에서 ELSI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정밀의학은 다른 분야보다 비교적 ELSI 연구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원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전체 데이터를 포함한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ELSI 쟁점을 도출하는 것 외에 윤리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중점적인과 제로 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이는 과학연구의 윤리적 수행을 위한 거버넌스 역할을 담당하는 ELSI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반 영한다. 따라서 앞으로 ELSI 연구는 점점 더과 학 연구의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의 발전 단계 중 어떤 지점에서 ELSI 연구와 접점을 형성할 것인지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