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기본의학교육 내에는 다양한 교과목명으로 윤리교육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의료윤리>, <생명윤리>와 같이 ‘윤리’라는 단어 그 자체가 포함된 교과목명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윤리와 연관성이 밀접한 교육내용, 예를 들어 <전문직업성>과 같은 교과목명, 혹은 <환자-의사-사회(patient-doctor-society, PDS)>와 같이 도덕적 행위자인 (예비)의료인이 처해 있는 맥락을 묘사한 교과목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40개 의과대학은 어떤 교과목명으로건 이러한 윤리교육 내용을 교육내용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한국 의학교육이 윤리교육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인정을 하게 된 배경에는 교과서[1]와 학습목표[2]를 발표한 학회1)의 오랜 기여가 있을 것이며, 인증평가 기준[3]과 그 기준의 동등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국제기준[4], 국내 의학교육 규범[5,6]에서의 교육내용에 대한 요구도 있을 것이다.
지난 30여년 간의 노력으로 의학교육에서의 윤리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광범위한 인정과 정규교과목의 위상은 획득하였다. 그러나 구체적 교육내용과 교육목적의 표준화, 교육효과 분석에 기반한 교육의 타당성 검증에 있어서는 여전히 난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난점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인지, 말하자면 40개 의과대학의 윤리교육 프로그램의 목표와 내용은 표준화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그 경우 타당한 평가 방법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된 바는 거의 없다. 한편, 실무에서는 각 개별 교수자가 현재의 윤리교육 혹은 제안하고자 하는 새로운 윤리교육을 정당화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펼쳐진다. 각 대학의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이 하나의 “교과서2)”에 의해 표준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개별 교수자가 교육프로그램을 근본적인 수준에서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론은 기본의학교육 내 의료인문학 전반에서 널리 수용되는 교수학습 방법이다. 이는 학생의 능동적 참여를 촉진하고자 강의 외 “다양한 교수학습 방법”의 활용이 요구되는 외적인 실무 환경[3]에서도 일부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교육내용과 교수학습 방법 간의 내적인 타당성 또한 존재한다. 의료인문학은 “의학 및 의료의 맥락, 경험, 개념적 및 비판적 문제를 탐구하는 동시에 전문직 정체성 형성을 돕는 간 학제적이고 다 학제적인(inter- and multidisciplinary) 분야3)”로 정의된다[7,8]. 이때, 기존의 의학적 환원주의로부터 맥락, 경험, 개념적 및 비판적 분석, 형성이라는 네 가지 주요 구성요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능동적인 참여와 비판적인 활동이 수반되어야 함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적 타당성, 그리고 이에 기반한 그간의 학술적 제안들[9-12]에도 불구하고, 교수학습 방법으로서의 토론의 효과를 한국의 기본의학교육 내 윤리교육 프로그램에서 실증 연구로 검증한 연구는 없다. 윤리교육 프로그램을 성과 혹은 역량이라고 일컬어지는, 다시 말해, 측정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행위 단위로 환원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에 대한 다면적 검토와 의사결정의 한 부분으로서 교육효과에 대한 자료, 특히 양적 자료가 필요함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 논문은 이러한 실무적 필요에 응답하기 위한 참고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기본의학교육 내 윤리교육의 한 방법으로서의 토론 수업의 실제를 소개하고, 그 효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실증연구를 함께 제시함으로써, 의학교육 내의 윤리교육 실무자들이 교육과정 평가(educational program evaluation)에서 참고할 만한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교육과정 설계와 실행의 자료를 한 축으로, 수업 전후 학생들이 작성한 3개의 설문 척도에 대한 자료를 또 다른 한 축으로 하여 이 둘을 함께 분석할 것이다.
II. 연구 방법
본 연구는 토론 수업의 설계와 진행을 한 축으로, 그리고 그 수업 효과의 일부를 통용되는 척도로 측정하는 것을 또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연구이다. 첫 번째 연구 내용인 설계와 진행에서는 교육의 실제 수행을 교수자의 기획 의도와 함께 제공한다. 두 번째 연구에서는 비판적 사고 성향, 문제해결능력, 의학전문직업성 척도를 활용하여 토론 수업의 효과를 측정한다.
본 연구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교육의 설계와 실행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이에 교육 설계와 실행 과정에서 교수자가 고려한 사항들을 가능한 한 자세하게 기술하고 검토하는 것을 연구의 방법론으로 삼는다. 연구의 두 번째 부분은 서술적 조사연구로, 부산 지역 일개 의과대학 재학생 중 2022학년도 의예과 2학년 1학기 전공 교과목 ‘생명윤리’를 수강하는 자를 편의표집하였다. G*Power 3.1 program(Heinrich-Heine-Universität Düsseldorf, Düsseldorf, Germary) 을 이용하여 연구 대상자 수를 산출한 결과, 다중회귀분석을 위한 효과 크기 .35, 유의수준 .05, 검정력 .80, 예측변수 3개를 적용했을 때의 적정 표본 수는 36명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참여한 48명의 자료 중 응답 항목에 결측치가 있거나 응답 내용이 불성실한 3명의 자료를 제외하고, 최종 45명의 자료를 분석하였다.
Yoon[13]이 개발한 비판적 사고 성향 측정도구는 지적 열정 및 호기심(5문항), 신중성(4문항), 자신감(4문항), 체계성(3문항), 지적 공정성(4문항), 건전한 회의성(4문항), 객관성(3문항)의 7개 하위영역, 총 27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문항은 ‘전혀 그렇지 않다’의 1점부터 ‘매우 그렇다’의 5점으로 이루어진 5점 Likert 척도로 측정되며, 점수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 성향이 높음을 의미한다. 도구 개발 당시 신뢰도 Cronbach’s α는 .84, 본 연구에서는 .94로 나타났다.
문제해결능력은 Lee at al.[14]이 개발한 생애능력 측정 도구 중 대학생/성인용 문제해결능력 측정 도구를 사용하여 측정하였다. 해당 도구는 문제인식(5문항), 정보수집(5문항), 분석능력(5문항), 확산적 사고(5문항), 의사결정(5문항), 기획력(5문항), 실행과 모험 감수(5문항), 평가(5문항), 피드백(5문항)의 9개 하위영역, 총 45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문항들은 5점 Likert 척도, ‘매우 드물게 한다’ 1점에서 ‘매우 자주 한다’ 5점으로 측정되었고, 점수가 높을수록 문제해결능력이 높음을 의미한다. 도구 개발 당시 신뢰도 Cronbach's α는 .94, 본 연구에서는 .85로 나타났다.
의학전문직업성은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의 Professionalism Questionnaire[15] 원문항을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연구자가 번역한 후, 이중언어자로부터 원문항의 의미 전달이 정확히 반영되었는지 검독받아 측정하였다. 해당 도구는 책무성(6문항), 명예와 통합성(6문항), 수월성(5문항), 의무(5문항), 이타심(5문항), 공평(4문항), 존중(5문항)의 7개 하위영역, 총 36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문항에 대하여 5점 Likert 척도, ‘전혀 그렇지 않다’ 1점에서 ‘아주 많이 그렇다’ 5점으로 응답하며, 개발 당시 도구의 신뢰도 Cronbach's α는 .79, 본 연구에서는 .88로 확인되었다.
실제 수업은 2022년 3월 2일부터 2022년 6월 15일까지, 2022년 1학기 동안 진행되었고, 서술적 연구의 자료수집 또한 동일한 기한 내 시행되었다. 사전 조사는 첫 수업 직전, 사후 조사는 수업 종료 직후에 이루어졌다. 자료 수집 전, 연구 대상자 설명문, 동의서, 설문지를 온라인 학습 플랫폼 게시판에 업로드하여 잠재적 연구 대상자에게 연구 참여 여부를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을 사전에 제공하였다. 연구 참여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학생만이 제공된 링크를 통해 동의서를 작성하였다. 코로나19 단계적 일상회복과 함께 본 교과목이 대면 수업으로 전환됨에 따라 설문은 온라인과 서면 형태로 제공되었고, 연구 대상자는 둘 중 편안한 방식을 택해 설문에 응답하였다.
수집된 자료는 SPSS 21.0 프로그램(IBM, Armonk, NY, USA)을 이용하여 분석하였으며, 구체적인 분석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상자의 일반적 특성은 빈도, 백분율, 평균과 표준편차로 분석하였다. 둘째, 일반적 특성에 따른 비판적 사고 성향, 문제해결능력, 의학전문직업성의 차이는 t-test와 ANOVA(GraphPad Software, San Diego, CA, USA)로 확인하였다. 셋째, 교육 전후 대상자의 비판적 사고 성향, 문제해결능력, 의학전문직업성의 차이는 t-test로 분석하였다. 넷째, 비판적 사고 성향, 문제해결능력, 의학전문직업성의 상관관계는 Pearson correlation coefficient로 분석하였다. 다섯째, 대상자의 비판적 사고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확인하기 위해 다중회귀분석을 시행하였다.
본 연구의 내용과 방법에 대하여 동아대학교 생명윤리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의 승인을 받았다(No. 202201-HR-003-02). 연구 대상자의 자발적 참여를 보장하고자 연구에 참여하지 않아도 어떠한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며, 연구 참여 유무 및 설문 응답 내용이 교과목 교육과정 내의 학생 평가로 활용되지 않음을 연구 설명문에 분명히 명시하였다. 연구 대상자의 솔직한 응답을 이끌어내고 연구 참여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고자 신원을 추적할 수 있는 정보는 일절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이렇게 배제된 정보에는 사전 사후 매칭을 위한 학번, 비밀번호 등도 포함된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수업 전후 자료 수집 및 분석도 수업과 무관한 자가 진행하였다.
III. 연구 결과
본 수업은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 2학년 1학기 학생 53명 전원에게 “생명윤리”라는 교과목명의 전공필수수업으로 제공되었다. 교과목의 기본적 설계는 2021년, 필자 중 한 사람이 교과목을 처음으로 맡게 되는 시점에 이루어졌다. 공식적 수준은 아니었으나, 해당 교과목의 책임과 제공을 다년간 맡아왔던 의료윤리 전문가와의 논의를 통하여 교육방식과 내용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였다. 교과목 설계는 의료윤리 및 의학교육의 이론적 배경에 기초하여 다음의 3가지 원칙에 따라 수행하였다.
첫 번째는 나선형 심화[16]의 원칙으로, 교과목 설계시 의예과로부터 의학과로 이어지는 의료인문학 전체 교육과정과의 조화 및 심화를 고려하였다. 본 교과목이 제공되는 전체 기본의학교육과정에는 다년간 여러 차례에 걸쳐 주어지는 환자-의사-사회(PDS) 교과목들을 비롯하여 의료인문학 관련 교과목들이 나선형 심화를 목표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에 교과목의 배치 뿐만이 아니라, 해당 교과목 내에서 다루는 교육목표와 교육내용들이 이후 교과목들과 이어질 수 있도록 꾀하는 동시에 의예과 수준에 맞춘 예비적 역량들에 집중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기본의학교육 내 윤리교육, 혹은 의료윤리교육의 영역을 폭넓게 다루되, 의예과생이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을 고려하였다. 또한 임상윤리사례 분석이나 전문직규범 수용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기초 역량인 비판적 사고와 여러 관점에 대한 열린 자세의 획득을 교육의 목표 중 하나로 채택하였다. 아울러 전문직 내부의 배타성보다는 일반인의 시각에 보다 가까울 것으로 기대되는 의예과 시점이라는 특성을 활용하여 전문직업성 관련 논제를 포함하되 민주시민의식을 배양하도록 꾀하였다. 이러한 교육의 방향성을 반영하여, 교수자는 전문직업성 규범을 교육하기에 앞서, 시민의 권리를 명시적으로 다룬 생명윤리 국제규범인 ‘생명윤리와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17]’을 오리엔테이션에서 제공하였다.
둘째, 성과바탕교육[18,19]의 틀 내에서 기존 교육목표들 및 상위 성과들과의 체계성을 고려하였다. 기본의학교육 내 관련된 교육목표[2,5,6], 해당 교과목이 제공되는 의과대학의 사명과 졸업성과[20,21] 등과의 체계적인 연결을 고려하여 의사와 윤리, 전문직업성 뿐만 아니라 소통과 협력, 상호 존중 및 공공선 인식의 기초가 되는 역량 배양을 목표하였다.
셋째, 교육이 제공되는 맥락과 교육적 필요를 고려하였다. 학습자가 현재 당면하고 있거나 미래에 필요로 하게 될 교육적 필요에 대한 분석은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에서 핵심적인 사항이다[22,23]. 필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한 해당 교과목의 교수자는 이전 책임교수와의 논의 과정에서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생명윤리’, ‘팀 중심의 의료를 수행해야 하는 (예비)의료전문직의 미래’라는 맥락에 합의를 이루었다. 이에 교조주의적 접근을 배제하고, 다원주의 사회에서 요구되는 비판적 사고 능력과 팀 내 문제의 소통과 해결능력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다.
동일 학년 모든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의과대학 전공수업의 특성상, 학생들은 자발적 선택이 아닌 기본값으로 본 교과목을 수강한 상태였다. 교육 시간은 1주에 50분씩 2교시가 연달아 제공되었으며, 강의, 토의, 토론이 모두 대면으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의예과 2학년이었으나 코로나19 상황으로 이전에 많은 대면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 본 교과목에 참여하게 되었다. 본 교과목의 교과목표는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다: 학생들은 시민 사회의 일원이자 예비의료인으로서 의생명과학 발전으로 인한 변화가 개인, 공동체, 환경에 가져올 영향을 인지하고, 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설정하기 위한 토론을 수행할 수 있다. 동료평가를 포함한 토론, 개인별 보고서, 논술형 지필고사, 조별 토의 등이 모두 평가에 반영되었으며, 평가는 기존에 공지한 비율에 의거한 상대평가로 수행되었다.
전체 수업은 토론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모듈 형식으로 구성된다. 하나의 모듈은 2주에 걸쳐 진행되는데, 한 번의 토론을 준비하고 수행하며 성찰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첫 주 중 1시간은 교수자가 다음 주 토론 주제와 연관된 개념적인 내용을 강의하되, 토론 주제를 직접적으로 분석하지는 않는다. 이 시간 이후 학생들은 각자의 ‘탐색조’로 흩어져 50분에 걸쳐 다음 주에 토론할 주제에 관하여 탐색을 수행한다<Table 1>. 탐색은 ‘탐색노트’라고 이미 제공된 형식을 채워나가는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먼저 모든 조원이 해당 토론 주제에 대한 본인의 주장과 근거를 짧게 표명하면, 이를 요약하고, 찬반으로 구분하며, 쟁점별로 체계화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논점이 발굴될 뿐만 아니라 용어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보이는 표현도 부각될 수 있는데, 이는 다음 주 토론에 참여할 이가 청중을 고려하여 용이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이 된다. ‘탐색노트’의 이어지는 장에서는 각각의 쟁점에 대한 찬반 주장과 근거, 그리고 논증구조를 타당하게 만드는 전제들을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탐색조의 구성은 그 다음 주에 토론을 수행할 조의 구성과 별도로 구성하되, 각각의 탐색조에는 그 다음 주에 토론을 수행할 찬성측과 반대측이 각각 일정수로 포함되도록 하여 모든 조원의 적극적 참여를 도모하였다. 조별 탐색노트를 모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온라인 학습 플랫폼에 공개함으로써 청중과 토론자 모두 적절한 사전지식 및 의문점에 노출되도록 하였다.
모듈의 두 번째 부분은 토론과 성찰이다. 모듈의 2주차는 2시간을 연달아 토론에 사용하는데, 교차조사식 디베이트 협회(Cross Examination Debate Association, CEDA)의 형태에서 변형된 교차조사식 토론포맷을 활용하였다. 변형의 가장 큰 부분은 입론과 교차조사, 반박을 동일 인물이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 청중에게 질문을 받고 답변하는 시간과 최종발언의 시간을 별도로 제공한다는 점인데, 이는 한정된 시간 내에 많은 학생의 참여를 목표했기 때문이다. 탐색조와 별도로 구성된 토론조는 찬반으로 나뉘어 연단에 배치된 토론자 좌석에 앉음으로써, 계단식 좌석에 앉은 청중이 시청하기 좋은 위치에 자리잡도록 하였다. 찬성과 반대는 각각 6명에서 7명으로 배정되었고, 입론과 교차질문의 경우 누가 수행할 것인지를 미리 정한 상태로 토론에 임하였다. 찬성측 입론-반대측 교차질문-반대측 입론-찬성측 교차질문의 순서로 찬반 각각이 3번의 입론 및 교차질문이 이루어지도록 한 후, 작전 회의 시간을 갖게 하였다. 이 시간에 토론자들은 어떤 반박을 활용할 것인지, 누가 반박의 역할을 맡을 것인지, 최종발언에는 어떤 요소들이 언급되도록 할 것인지를 결정하였다. 이후 교차하며 찬성과 반대 각 3회의 반박 시간을 가진 후, 청중으로부터의 질문 및 반박을 받아 이에 대응하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이후 찬성과 반대 각각이 최종발언을 수행하였다.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한 학기 동안 총 5회의 토론이 수행되었는데, 최초 1회는 자원자에 의한 연습토론으로 모든 학생들이 토론 형식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하였다.
청중의 적극적 참여를 도모하고자 청중에게는 3가지 역할이 부여되었다. 먼저 평가를 수행하였는데, 토론 전의 자신의 입장을 표시하고, 찬성과 반대 각각의 입론과 교차질문, 반박, 최종발언을 5점 척도로 평가하도록 한 후, 토론의 승패와 토론 후 본인의 의견을 표기하도록 하였다. 이 정보는 토론 후 학생들에게 전달되었다. 청중의 두 번째 역할은 질문을 준비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CEDA 토론포맷을 변형한 본 토론에서는 질문과 반박에 답할 공정한 기회를 찬성측과 반대측에게 보장하였는데, 청중은 입론과 교차질문, 반박을 들으며 질문 혹은 반박을 정교화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청중은 이 활동들을 토대로 자신의 성찰을 논증으로 구성할 기회를 가졌다. 본인이 토론자로 참여하지 않은 3번의 토론 중 한 번에 대하여 관련된 세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변 즉, 주장과 근거를 대는 1쪽 정도의 논증을 구성하였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청중은 필기를 하며 토론을 청취하였고, 청중 중 열성적인 일부는 모든 토론에 대해 이 논증 구성을 수행하여 제출하기도 하였다.
교육효과의 측정 및 평가 측면에는 교과목 설계에서보다 광범위한 인원으로부터의 두터운 합의가 있었다. 교육과정과 교실단위의 구조상, 해당 교과목은 의료인문학 전반을 맡는 의료인문학 교실의 담당이었다. 이에 필자 중 한 사람을 포함하는 의료인문학 교실 의료윤리 교원 2인과 임상교원 2인은 필자 중 또 다른 한 사람과 함께 의예과부터 졸업까지 이어지는 의료인문학 교육의 효과를 평가하기로 하였다. 이에 본 연구의 대상인 <생명윤리> 교과목의 전후를 그 효과 측정 시점에 포함하였다.4) 교육효과 측정을 위한 3개의 척도가 최종 선정되었는데, 이 3개의 척도는 <생명윤리> 교과목의 교과목표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여러 기본의학교육에서 제시한 목표, 동아대학교의 사명과 졸업성과 중 의료인문학 교육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성과 일부를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5, 21].5)
총 45명의 연구 대상자는 남학생 27명(60.0%), 여학생 18명(40.0%)으로 구성되었다. 평균 연령은 21.1세로 20-21세가 31명(68.9%)으로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연구 대상자들이 동일한 학년인 의예과 2학년에 재학 중인 바, 재학 연수 2년차인 학생들이 43명(95.6%)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직전 학기 학점은 3.0 이상 4.0 미만이 27명(60.0%), 4.0 이상이 15명(31.3%), 3.0 미만이 3명(6.7%)으로 순으로 나타났다. 전공 만족도에 관해서는 대다수인 43명(95.6%)의 학생이 만족한다고 응답하였으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응답을 한 학생이 2명(4.4%), 불만족한다는 응답은 없었다. 연구 대상자의 과반수 이상인 35명(77.8%)이 본 수업 전 토론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Table 2>.
수업 전후 대상자의 비판적 사고 성향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t= –3.109, p=.003). 비판적 사고 성향의 하위영역 중 지적 열정 및 호기심(t=–2.729, p=.008), 자신감(t=–1.999, p=.049), 지적 공정성(t= –2.950, p=.004), 객관성(t=–3.694, p=.000)에서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 문제해결능력의 경우 수업 전후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문제해결능력의 하위영역 중 문제 인식(t=–2.300, p=.024)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Table 3>.
수업 전 비판적 사고 성향, 문제해결능력, 의학전문직업성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문제해결능력과 의학전문직업성만이 통계적으로 유의한 정적 상관관계(r=.312, p<.05)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수업 후에는 비판적 사고 성향과 문제해결능력(r=.561, p<.001), 비판적 사고 성향과 의학전문직업성(r=.396, p<.01), 문제해결능력과 의학전문직업성(r=.370, p<.05)이 통계적으로 유의한 정적 상관관계를 보였다<Table 4>.
Variable | Before the class | After the class | ||||
---|---|---|---|---|---|---|
MP | CTD | PS | MP | CTD | PS | |
CTD | .029 (.850) | .396** (.007) | ||||
PS | .312* (.037) | .186 (.222) | .370* (.012) | .561*** (.000) |
비판적 사고 성향, 문제해결능력, 의학전문직업성의 각 하위영역들 간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수업 전에는 동일한 척도를 구성하는 하위영역들 간에서만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서로 다른 척도의 하위영역들 간에서는 비판적 사고 성향과 문제해결능력의 하위영역들, 문제해결능력과 의학전문직업성의 하위영역들 간에서만 상관계수 r=.303–.456의 범위 내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정적 상관관계를 보였다(p<.05, p<.01)<Table 5>. 수업 후에는 개별 척도에 해당하는 하위영역들 간에서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상관이 상관계수 r =.306-.543 범위 내에서 나타남에 따라(p<.05, p <.01), 3개 척도의 하위영역들 간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경우의 수와 크기가 수업 전과 비교할 때 모두 증가하였음이 확인되었다. 그 중에서도 자신감과 문제인식(r=.543, p<.01), 건전한 회의성과 존중(r=.530, p<.01), 체계성과 기획력(r=.516, p<.01) 간에는 .50 이상의 상관관계가 있음이 확인되었다<Table 6>.
MP: medical professionalism, CTD: critical thinking disposition, PS: problem solving, M1: accountability, M2: altruism, M3: duty, M4: excellence, M5: honesty and integrity, M6: respect, C1: intellectual eagerness and curiosity, C2: prudence, C3: self-confidence, C4: systematicity, C5: intellectual fairness, C6: health skepticism, C7: objectivity, P1: problem recognition, P2: gathering information, P3: analysis, P4: divergent thinking, P5: decision making, P6: planning, P7: practice and adventure, P8: evaluation, P9: feedback.
MP: medical professionalism, CTD: critical thinking disposition, PS: problem solving, M1: accountability, M2: altruism, M3: duty, M4: excellence, M5: honesty and integrity, M6: respect, C1: intellectual eagerness and curiosity, C2: prudence, C3: self-confidence, C4: systematicity, C5: intellectual fairness, C6: health skepticism, C7: objectivity, P1: problem recognition, P2: gathering information, P3: analysis, P4: divergent thinking, P5: decision making, P6: planning, P7: practice and adventure, P8: evaluation, P9: feedback.
비판적 사고 성향이 수업 전후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임에 따라<Table 3>, 비판적 사고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확인하기 위한 다중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회귀 모형은 비판적 사고 성향과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의학전문직업성, 문제해결능력, 그리고 일반적 특성 중 비판적 사고 성향에 유의한 차이를 나타낸 나이6) 변수를 포함하여 구축하였다. 분석 결과, 수업 전과 후의 회귀모형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였고, 개별 모형의 설명력은 수업 전 20.4%, 수업 후 33.3%로 나타났다. 수업 전에는 나이(β=.475, p<.01), 수업 후에는 문제해결능력(β=.503, p<.01)이 비판적 사고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확인되었다<Table 7>.
IV. 논의
Kwon[24]은 의료윤리교육의 영역을 의료윤리(medical ethics), 생명윤리(bioethics), 전문직 윤리(professional ethics)로 나누었으며, 각각의 영역의 특성에 맞추어 지식 획득, 문제해결능력 고취, 인성 및 프로페셔널리즘의 함양 등의 주안점을 생각하고 적절한 교수방법을 택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본 교과목의 교수설계 과정에서 필자 중 한 사람인 교수자는 <생명윤리>라는 교과목 하에서 이 3가지 영역을 모두 다루는 것을 목표하였다. 이는 Kwon[24]이 나열한 3가지 영역이 각기 한 교과목과 일대일 대응을 이룰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이었다. 오히려 하나의 교과목, 그리고 여러 교과목의 통합 안에서 적절하게 조합되도록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본 교과목을 기획하였다. 그 이유는 매우 현실적인 고려에 있었는데, 교과목‘명’에 대한 자율성은 개별 교수자에게 반드시 주어지지 않는 반면, 교육목표와 교육내용, 교육방법에 대한 자율성은 어느 정도 주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수자는 해당 교과목이 제공되는 시기와 타 교과목 및 교육내용 간의 관계, 교수자를 포함한 교육자원을 고려하여 세 영역의 조합으로서 적합한 교육내용을 설정하였다. 이러한 교육영역 통합이라는 지향은 전통적인 생명윤리 주제인 의생명과학기술의 도입 찬반만이 아닌, 의사-환자 관계, 의사의 사회적 책임을 다루는 정책 논제를 토론의 주제로 삼은 것[10,25]7), 그리고 토론과 토의라는 교수학습 방법의 채택에서도 반영되었다.
한편, 의료윤리교육의 목적에 관하여 Kwon [10]은 1. 의학전문직업성의 이해와 고취, 2. 의료윤리와 관련된 규범적 지식의 습득, 3. 비판적 사고 능력과 도덕 추론 능력의 발달, 4. 윤리적 민감성과 전문가적 품성의 계발, 5. 평생 전문직업성의 발달을 위한 기초 확립을 제안하였다. 필자들은 전문직 정체성 형성(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26,27]이라는 개념을 도입할 경우, 이 다섯 가지 목표가 1. 전문직 정체성 형성, 2. 의료윤리와 관련된 규범적 지식의 습득, 3. 비판적 사고 능력과 도덕 추론 능력의 발달, 이렇게 3가지로 압축된다고 본다. Cruess et al.[27]은 전문직 정체성 형성이 “개인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겪는 역동적 과정”으로서, “내가 누구인지”로부터 시작하여 “내가 누가 되고 싶은지”에 영향을 받는, 일반인으로부터 역량있는(skilled) 전문직이 되어 가는 여정으로 각 개인에게 독특한 과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Cruess et al.[27]이 이야기한 “내가 누가 되고 싶은지”에는 의료전문직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포함되므로, Kwon[10]이 열거한 목적 중 의학전문직업성의 이해, 윤리적 민감성과 전문가적 품성, 평생 전문직업성 발달이라는 목표를 포괄한다. 그리하여 이를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회화 과정을 통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내면화하는 것이 정체성 형성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고 보인다. 그 결과 Kwon[10]이 제시한 5개 목적 중, 1, 4, 5는 전문직 정체성 형성으로 통합되고, 총 3개의 목적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들은 이 3가지 목적의 달성 여부를 평가하는 데에 비판적 사고 성향, 문제해결능력, 의학전문직업성의 3개 척도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유용하다고 판단하였다.8) 본 연구에서 활용한 척도의 개발자인 Yoon[13]은 비판적 사고 성향을 “비판적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려는 동기 또는 바람, 태도”로 정의하며, 이보다 더 널리 활용되는 도구인 California Critical Thinking Disposition Inventory(CCTDI)[28]에서는 “개인적 혹은 직업적 상황에서 직면하는 문제와 선택에 대응하여 자제력 있는 결정을 내리는 개인적인 성향이나 습관”으로 정의한다. 필자들은 이렇게 정의될 때 비판적 사고 성향이 자기 자신을 윤리적 행위자로서 인지하도록 한다고, 그리하여 윤리적 행위로 이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전제를 수용하도록 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러한 ‘윤리적 행위자성(moral agency)’의 이해와 수용은 윤리적 행위자로서 자기 자신을 다른 이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이로, 그리하여 동등한 책임과 권리를 지닌 이로 이해하게 한다고 보았다. 특히 하위영역 중 지적 공정성, 객관성, 건전한 회의성은 기본의학교육 내 윤리교육이 목표해야 하는 바 중, 환자-의사 관계, 그리고 대중과 의료공동체 간의 적절한 의무-권리 관계를 설정하도록 하는 기초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문제해결능력 척도는 (예비)의료전문직에게만 활용되는 척도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 상태와 도달해야 하는 목표 상태의 차이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는 지적이며 창의적인 능력”이라 규정될 때[14], 문제해결능력은 의사소통에 기반한 문제의 분석과 결정을 포함하므로 의료윤리 및 전문직 윤리의 세부 역량들과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9) 필자들은 비판적 사고 성향과 문제해결능력이 -그 자체가 윤리적 역량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원주의 사회에서 임상진료를 윤리적으로 수행하여야 하는 (예비)의료전문직의 상황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된다고 판단하였다. 하나의 추상적 원리로부터 단일한 답을 도출하고 이를 외부로부터의 이의제기 없이 수행하는 것으로는,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윤리를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타인의 시각과 자신의 시각 양쪽을 비판적이고 공정하게 검토하면서 의사결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적이고 심리적인 역량이 오늘날 기본의학교육 내 윤리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역량이 위에서 논한 윤리교육의 3가지 목표 중 ‘비판적 사고 능력과 도덕 추론 능력’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한 기본 소양이라고 볼 수는 있다. 따라서 한국의 기본의학교육 내 윤리교육의 목표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부재하고, 그리하여 목표한 윤리적 역량을 직접 측정할 만한 척도가 부재한 상황에서는, 이 두 역량 및 성향에 대한 척도가 간접적으로 연관되는 기본 소양의 발전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고 판단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 활용한 Professionalism Questionnaire의 저자들은 의학전문직업성의 조작적 정의를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 의료전문직 단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의학전문직업성의 세부 요소[29]들을 그대로 차용하여 책무성, 명예와 통합성, 수월성, 의무, 이타심, 공평, 존중의 하위영역을 규정하고, 의과대학생[30,31]10), 레지던트, 교수진의 전문직업성에 대한 인식 및 태도를 평가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하위영역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때, 척도의 개발자들이 바라본 의학전문직업성은 위에서 논한 윤리교육의 3가지 목표 중 ‘전문직 정체성 형성’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중 책무성, 명예와 통합성, 의무, 이타심, 공평, 존중의 하위영역은 그 자체로 (예비)의료전문직에게 필요한 윤리적 품성이나, 개인이 설정하는 도덕적 의무의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따라서 보편적 시민성과 연관되는 나머지 두 개의 척도와 함께 통합적으로 해석할 때, 기본의학교육 내 윤리교육의 효과성을 간접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Kwon[10]이 제안한 의료윤리교육의 목적 5가지를 기본의학교육에서의 윤리교육 -교과목 명이 무엇이 되었건- 의 목적으로 보고 3가지로 압축하는 필자들의 접근을 따랐을 때, 토론 수업은 이 3가지의 목적을 의예과 과정에서 적합하게 추구할 수 있는 교수학습 방법으로 기대된다.11) 첫째, 전문직 정체성 형성을 위한 기초 형성의 차원이다. 기본의학교육 및 졸업 후 의학교육 과정은 교육생태계를 구성하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역동적 상호작용이 전문직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의예과 2학년 1학기라는 시점은 이 사회화 과정의 초기에 해당하는데, 이 시점에 토론 수업을 통하여 추후 이루어질 지속적 계발의 토양을 마련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타당하다. 학생들은 토론과 토론을 준비하는 탐색적 토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상상해 보고 이를 전개해 나가도록 독려된다. Lewin et al.[32]은 관점의 깊이와 폭이 변화하는 것으로서 전문직 정체성 형성을 이해한다. 한국의 중등교육 현황과 이 과정에서 최상위권으로 선발된 의과대학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Lewin et al.[32]의 설명이 갖는 시사점은 크다고 볼 수 있다. 의과대학 신입생이 되기 위한 조건인 최상위 성적은 이들이 사회적으로 격리되어 학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에 일정 부분 기인한다. 한편, 이들의 학업에서의 ‘성공’ 경험은 자신의 오류 가능성이나 다양한 관점에 대해 깊게 성찰할 기회를 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의과대학 신입생이 의사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정체성의 획득 과정 중 핵심적인 부분은 현재까지의 자신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타인들의 다양한 관점에서 동일한 사안을 바라보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관점의 깊이와 폭을 심화시키는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수업에서 학생들은 본인이 옹호하여야 하는 입장의 논증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교차질문, 반론을 준비하기 위하여 타인의 논증을 상상하여야만 하였다. 여러 관점에의 노출이란 토론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탐색적 토의 과정에서 각각의 주장과 그 기반이 되는 근거가 무엇인지 모든 학생이 돌아가며 참여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3개의 척도를 통한 수업 전후의 양적 측정에서 이러한 교육효과를 짐작할 수 있는 결과를 얻었다고 보인다. 수업 후 비판적 사고 성향이 유의미하게 증가하였으며, 비판적 사고 성향의 하위영역인 지적 공정성, 객관성이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학전문직업성과 의학전문직업성을 구성하는 하위영역 모두에서 수업 후 유의미한 증가치를 확인할 수 없었으나, 위에서 논의한 이유로 지적 공정성과 객관성은 전문직 정체성 형성을 위한 기초로 기능할 것이 기대된다. 또한 비판적 사고 성향 중 증가된 다른 하위영역인 지적 열정 및 호기심, 자신감, 그리고 문제해결능력 중 증가된 하위영역인 문제인식 또한 전문직의 평생에 걸친 자기계발의 밑바탕이 되는 역량이기에 주목할 만하다.
필자들이 압축한 기본의학교육의 3가지 목적 중 두 번째는 의료윤리와 관련된 규범적 지식의 습득이다. 토론이 지식 습득에 미치는 효과는 Bloom의 taxonomy 중 상위 기능을 활용하게 한다는 점[33-36], 그리고 학생으로 하여금 능동적 학습 과정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점[37-39]에서 이론적으로 뒷받침된 바 있다. 본 수업의 토론은 규범적 지식의 습득 여부를 평가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지는 않았음에도, 토론 과정에서 규범적 지식의 습득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논증을 구성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윤리 강령과 지침 등 전문직 행위 규범들[40,41]과 실정법[42-45]을 찾아 보게 되었으며, 이것의 타당성과 국제적 현황 등을 비교 및 검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토론의 논제는 현 상태(status quo)를 뒤집는 것으로 찬성 의견을, 그리고 이를 유지하는 것으로 반대 의견을 형성한다. 이에 토론은 고정된 실체로서 실정법을 바라보지 않고, 보다 비판적 검토를 할 수 있도록 도모하였을 것이라 사료된다. 따라서 학생들은 현 상태라는 것이 어떤 합의와 역사적 맥락의 결과로서 주어진 것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되고, 이는 학생들에게 현 상태가 그대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서 여길 기회를 제공하였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규범적 지식의 습득과 비판적 검토, 두 층위의 활동이 모두 수행되었다고 보인다.
필자들의 3가지 목적 구분 중 마지막은 비판적 사고 능력과 도덕 추론 능력의 발달이다. 토론 수업을 통해 비판적 사고 능력이 계발된다는 이론적 전개[46-48]와 실증 연구[49-51]는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선행연구에 기대어 본 연구는 수업의 사전 사후 양적 평가에서 비판적 사고를 측정하되, 비판적 사고 능력이 아닌, 비판적 사고 성향을 측정하였다. 비판적 사고는 인지적 측면인 비판적 사고 능력과 정의적 측면인 비판적 사고 성향의 두 축으로 구성된다[28,52,53]. 따라서 비판적 사고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능력뿐 아니라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성향까지도 갖추어야 한다. 높은 수준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비판적으로 사고하려는 태도, 즉 비판적 사고 성향이 부족하다면, 비판적 사고 능력이 실제 상황에서 제대로 발현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54]. 비판적 사고 성향이 비판적 사고의 결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성향을 바탕으로 형성된 비판적 사고 능력이 세부적 문제에 즉하여 추후 다듬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필자들은 비판적 사고 성향이 의예과 2학년이라는 시기의 교육목표로 삼기에 더 적절하다고 보았다. 비판적 사고 성향을 측정하는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도구는 CCTDI이다[28]. 그러나 CCTDI의 경우, 학문 영역에 관계없이 일반 학생 및 성인을 대상으로 개발되어 일률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이에 개별 학문 영역에서 활용 시 도구의 타당성이 검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55]. 기본의학교육 과정의 필요와 목적을 충실히 반영한 비판적 사고 성향 측정 도구는 아직 없기에, 필자들은 차선책으로 보건의료(간호) 실무의 특성에 보다 적합하게 개발된 Yoon[13]의 도구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간호와 의료 실무 각각이 지닌 고유한 속성으로 인해 본 척도 선택의 타당성에는 다소 제한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업 중 이루어지는 토론이 찬성과 반대라는, 본인이 옹호해야 하는 두 가지 답에 매몰되게 하고 이에 따라 잘못된 이분법에 빠지게 함으로써[56] 윤리교육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오히려 장애를 일으킬 수 있음도 인지하여야 한다. 토론이 경쟁 과정에서 불안을 촉진하고[57], 비판적 사고를 증진시키지 못한다는 지적[58]도 있다. 일부 학생들은 찬성 대 반대라는 토론의 구조, 그리고 심리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덜 편안하게 느꼈으며[59], 이러한 구조 속에서 다른 학생에 비하여 학습이 증진되는 효과가 적을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승패가 갈리는 경쟁적 구도의 의사소통 방식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선행연구[60]가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교수학습 방법으로서 토론이 야기할 수도 있는 이러한 부정적 효과를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61,62].12) 오히려 준비로부터 성찰에 이르는 토론의 전 과정을 얼마나 구조화된 형태로 제공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교수자가 얼마나 면밀하게 학생들에게 개방성과 존중과 같은 윤리적 태도를 이끌어 내느냐에 따라 윤리교육 프로그램이 목표하는 긍정적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진다고 보아야 한다. 본 연구가 대상으로 한 실제 교육의 운영에서는 학생들이 토론에서의 승패에 과하게 몰입한 나머지 본질적 탐구가 저해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전 탐색, 청중 질문 등을 활용하고, 토론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상기하곤 하였다.13) 이 연구 및 수업에서 채택한 바와 같은 토론 후 활동은 간호대학생 대상 구조화된 토론에 관한 systematic review를 수행한 Cariñanos-Ayala et al.[63]의 제안에도 포함되는데, 이들은 토론 후 활동이 참여, 반복, 개선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정리하였다. 이에 덧붙여 필자들은 평가의 차원에서, 구술 의사소통으로 과도하게 집중될 수 있는 평가를 분산시킴으로써 현장에서 벌어지는 토론 이외에 비판적 사고를 측정할 수 있는 다른 활동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경쟁적이고 감정적으로 극렬해질 수 있는 토론이 적정한 수준의 몰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며, 여러 특성을 지닌 학생들에게 보다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며 학습을 도모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실제 수업의 운영에서는 목적하는 학습성과가 무엇인지에 따라 토론의 중요도를 평가하고, 승패가 나뉘는 토론이라는 구조에서 취약할 수 있는 이들에게 만회의 기회를 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판적 사고 성향은 교육 이후 증가된 수치를 보였으며, 이는 하위영역인 지적 열정 및 호기심, 자신감, 지적 공정성, 객관성의 증가로 인한 것이었다. 의예과라는 학습 시기를 생각하였을 때, 이러한 하위영역들은 추후 실제 임상사례 분석이라는 후속 학습을 통하여 비판적 사고 능력과 도덕 추론 능력의 증진으로 이어지는 바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들이 앞서 도식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기본의학교육에서의 윤리교육의 목적을 3가지로 압축하였지만, 실은 이 3가지 목적 모두는 결국 비판적 사고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내용이다. 전문직 정체성 형성은 비판적 사고라는 고위인지기능을 바탕으로 하여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그 검토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 이룩할 수 있는 결과물이며, 의료윤리 규범적 지식은 기계적 습득의 대상으로 그치지 않고 비판적 사고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비판적 사고는 기본의학교육에서의 윤리교육에 있어 가장 바탕이 되는 역량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에 필자들은 토론을 통한 윤리교육 후에 비판적 사고 성향의 평균 점수가 사전 평균 점수에 비하여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하였다는 결과를 위에서 논의한 3가지 목적에 대한 교육효과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하였다.
본 연구 구조의 한계로 인하여, 결과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은 오류의 위험을 안고 있다. 본 연구는 상대평가로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의 전후에 수행되었다. 따라서 교수자 본인이 설문지를 배부하고 수거하는 방식을 피하기는 하였지만, 학생들에게 교수자와 연구책임자가 동일한 인물임이 충분히 전달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 참여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자, 본 연구는 사전-사후 매칭이 불가능한 구조를 채택하였다. 즉, 학생들은 자신으로 추적될 수 있는 어떠한 정보 - 학번, 지정한 비밀번호 등 -도 기록하지 않고 사전과 사후에 설문지를 작성하였다. 이러한 연구 구조는 설문의 응답 여부를 교수자가 확인할 수 없음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었지만, 한 개별 응답자의 사전-사후 결과를 매칭하여 분석할 수 없다는 점이 연구의 제한점으로 남아 연구 결과 해석을 까다롭게 한다.
예를 들어, 사전에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던 비판적 사고 성향-전문직업성, 비판적 사고 성향-문제해결능력이 사후에서는 상관관계를 보인 결과를 해석하는 것에는 다소 제약이 따른다. <Table 3>과 <Table 4>의 결과를 함께 고려하면, 교육의 효과로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성향이 높아지게 되면서, 비판적 사고 성향과 의학전문직업성, 비판적 사고 성향과 문제해결능력의 상관관계가 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 대상집단의 사전, 사후 의학전문직업성(사전 144.7점, 사후 143.1점)과 문제해결능력(사전 3.7점, 사후 3.8점)의 평균 수치는 타 연구에서 드러난 것에 비하여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선행연구에서 의학전문직업성의 평균은 127.3점[30], 142.5점[31], 138.6점[31], 140.1점[31]으로,14) 문제해결능력은 3.1점[14], 3.5점[64,65], 3.6점[66] 등으로 나타나, 본 연구 대상집단에 비해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본 연구 대상집단의 사전 비판적 사고 성향 평균 점수는 3.5점으로 선행 연구 3.6점[67,68], 3.7점[69], 3.8점[70]에 비하여 낮은 수치를 보였는데, 이 수치가 토론 수업을 통해 개선됨으로써 이미 타 연구를 상회하는 평균점수를 보였던 의학전문직업성 혹은 문제해결능력 간의 상관관계가 강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토론이라는 교수법이 의학전문직업성과 문제해결능력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척도 내 하위영역들 간의 상관관계에서도 비슷하게 유추 가능한 결론인데, 건전한 회의성, 자신감, 체계성이라는 비판적 사고 성향의 하위영역들은 의학전문직업성과 문제해결능력의 하위영역들인 존중(의학전문직업성), 문제인식(문제해결능력), 기획력(문제해결능력)과 각각 유의수준 .01에서 다소 높은 상관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건전한 회의성이라는 비판적 사고 성향이 자신과 타인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의학전문직업성에서 요구되는 타인에 대한 존중의 기초가 될 것임을 의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감이라는 비판적 사고 성향은 학생들로 하여금 문제에 관해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하여 문제가 갖는 미래 효과나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을 구체화하려는 노력, 즉 문제해결능력 중 문제인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한 체계성이라는 비판적 사고 성향은 목표 달성을 위한 계획과 순서를 따지도록 하여 문제해결의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비판적 사고 성향의 교육 후 증가에 따른 상관관계의 증가는 의예과 학생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타 역량과 잠재력에 비하여 비판적 사고 성향을 계발할 기회가 많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결론은 본 연구가 가지는 또 다른 한계점, 즉 수업 운영에 따른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대조군 없이 수업의 효과가 평가되었기 때문에 토론이 다른 교육방법에 비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는 한계점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최상위 성적의 입학생 그룹인 의예과 학생들이 타 역량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비판적 사고에 취약하다면, 그 자체로 토론을 교수학습 방법으로 적용할 타당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V. 결론
기본의학교육 내 윤리교육 프로그램이 지향해야 하는 3가지 목적을 전문직 정체성 형성, 의료윤리와 관련된 규범적 지식의 습득, 비판적 사고 능력과 도덕 추론 능력의 발달로 보았을 때, 토론은 이 목적에 합당한 교수학습 방법 중 하나이다. 이러한 주장은 토론이 학생들의 관점의 깊이와 폭을 심화시키고, 보다 능동적 학습을 촉진하며, 궁극적으로 목표해야 하는 고위인지기능을 연습하게 한다는 기존 교육학 연구들로 지지받을 수 있다. 본 실증연구에서는 이러한 기대효과가 기본의학교육 내 윤리교육 프로그램이라는 맥락에서도 참임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관찰된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 성향의 증가와 문제해결능력의 하위영역인 문제 인식의 증가는 비판적 사고 능력과 도덕 추론 능력의 발달이라는 목적에 부합한다. 뿐만 아니라 지식 습득과 정체성 형성에도 부합하는데, 이는 비판적 사고가 문제해결능력 및 의학전문직업성과 갖는 상관관계, 그리고 각각의 하위영역들끼리 갖는 상관관계를 고려할 때 추후 각 영역의 발달에 밑바탕이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토론은 토론의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면밀한 설계 안에서 쓰일 경우, 의학교육의 현실에서 충분히 정당화 가능한 윤리교육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