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석(이하 저자)의 논문 ‘우리 사회의 의사조력자살 법제화(이하 논문)’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의 한계와 개선 방향, ‘의사조력 자살 법제화’ 의미, 생애말기 돌봄의 진정한 의미와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소에 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에 논평자는 논문과 관련된 몇 가지 의문점과 ‘우리 사회의 의사조력자살 법제화’에 관한 단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논문에서의 의문점
질문 1:
‘의사조력자살’을 개별 법규로 다루어야 하는 근거에 대한 추가 설명
의료환경이라는 구체적인 실천의 장에서 의료인으로서 오랫동안 실제 환자를 돌본 저자에게 ‘의사조력자살’을 개별 법규로 다루어야 한다면, ‘연명의료중단’과 ‘의사조력자살’을 구별 하여 논의하는 것의 실질적 효과 및 필요성에 대해 고견을 구하고자 한다.
논문에서 저자는 ‘조력존엄사법안’을 ‘연명의료 결정법’의 개정안이 아닌 별개의 법안으로 발의하고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명의료결정’과 ‘의사조력자살’, 이 두 개념에 대해 죽음의 과정에 서의 행위개입 시기, 행위의도, 개입방법을 구분 함으로써 이 두 행위에 관한 윤리적 정당성을 구 분한다. 또한 ‘의사조력자살’은 ‘자살’과 구별되지만, 자기결정권의 영역이 ‘사회적 협의 결정’에 의해 제한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저자의 기본 생각에 대하여, 논평자는 다소 비판적인 관점을 가진다.
먼저, 저자는 ‘의사조력자살’은 죽임이라는 행위가 포함됨으로 ‘치료중지 및 거부’ 행위인 ‘연명의료중단’과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저자의 주장은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연명의료결정시기가 ‘임종기’로 제한되어 있고, 대상 환자 및 중단 내용 또한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어서, 맞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향후 연명의료 결정법의 대상이 임종기에서 말기로, 대상 환자는 식물인간/치매환자 등으로, 중단 내용은 영양공급 관중단으로 확대되어진다면, 이는 단순한 치료중단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치료중단행위인 안락사로도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논평자는 ‘연명의료중단’과 ‘의사조력자살’ 이 두 개념이 치료중단에 의한 죽게 내버려 둠/자연스러운 죽음의 상태로의 진입과 죽음 즉, 행위의 소극적 및적 극적 측면에서 차이는 있어도, 행위동기는 둘 다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행위, 환자의 자율성에 기반한 행위,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대한 고려로 동일하다고 본다. 따라서, 두 개념 모두 생애말기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그들이 생각하는) ‘존엄한 죽음’의 실현 방법이기에 동일한 법제 안에서 검토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죽을 권리’라는 큰 틀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명의료중단’과 ‘의사조력자살’을 생애말기 치료중지라는 연속선상에서 논의하는 것이, 본 사안와 연관된 다양한 요소들 - 생애말기 돌봄의 개인 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사결정의 다양한 딜레 마와 영향요인, 행위자의 삶의 남은 기간에 대한 질적, 양적 평가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 고통의 속 성과 차이, 경감 가능성 등을 입체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더 나아가 ‘자살’과 ‘의사조력자살’의 임의적 구별에 대한 ‘애매모호성’의 문제에 관해서도 구체적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가령 치매 등 참을 수 없고 회 복불가능한 만성질환자의 고통에 대한 의사조력 자살의 허용에 관한 논의들).
질문 2:
생애말기 돌봄에서 의료진의 역할에 대한 고민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와 각 의료기관 (1~3차 의료기관)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생애말기 돌봄에서 의료진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의료진과 환자의 신뢰 관계는 어떻게 구축될 수 있을지? 현재의 보건의료체계에서 생애말기 돌봄을 제공함에 있어 의료진으로 어떠한 역할 고민이 있는지? 저자에게 여쭙고 싶다.
생애말기 돌봄에서 의료진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특히 환자-의료진의 관계는 질병 치료를 위한 단계부터 생애말기의 의료적 돌봄에 이르는 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며, 의료진의 역할은 환자의 존엄성 인식에서 상당히 큰 영향을 미 친다. 따라서, 임종이 의료화되고 있는 한국 상황에서 더 이상의 의료적 처치가 불필요할 때, 생애 말기 돌봄에서 의료진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관한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저자는 의사조력자살을 보조하는 의료행위의 정당성 여부 논의에서 의료인의 역할을 환자와의 신뢰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의사의 법적 면책 행위를 규정하는 것을 넘어서 생애말기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덜어주고자 하는 의사의 윤리적 행위를 고려한 것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논평자는 의사조력자 살에 대한 의료진의 행위정당성 논의는 생애말기 돌봄에서의 의료진의 역할에 관한 논의의 큰 틀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본다.1) 이를 위해 환자가 느끼는 육체적, 심리적, 영적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의 복합적 원인을 파악하고, 공감하면서 대화를 통한 신뢰와 연대감 구축하려는 생애말기 의료진의 돌봄 방식에 대한 고민이 긴급하게 요청된다.
2. 우리 사회 의사조력자살 법제화 논의를 위한 제언
최근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안’은 우리나라 생애 말기 환자가 죽어감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고통이 무엇인지, 그 고통이 발생한 맥락은 무엇인지에 관해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하기보다는 ‘참을 수 없는/감내할 수 없는 고통’, ‘무의미한 고통’의 빠른 제거로 인간의 존엄성 존중을 구현하고자 했다[1]. 인간은 생애말기뿐 아니라 삶 속에서도 많은 고통을 경험한다. 인간은 역사를 통해서도 전쟁, 대공 황, 전염병으로 인한 팬데믹(pandemic) 속에서 고통을 장기적으로 경험했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구현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무의미한 삶의 종식인 ‘자살’과 ‘죽음’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생의 말기, 즉, 죽음의 과정에서 고통이 크게 경험되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존재를 의미 있게 지탱해주었던 많은 것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경험하는 상실은 질병으로 인한 건강 상실, 오랜 기간 익숙하게 수행했던 다양한 역할의 상실, 자신이 믿던 가치와 믿음의 상실, 관계의 상실로 인한 고립과 외로움 등과 같이 육체적, 경제적, 관계적, 정서적 측면을 포함한다[2].
생애말기에서 고통이 유독 삶을 버티는 다른 요 소들보다 크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오직 고통만을 크게 보고, 그 고통을 죽음으로 없애는 유일한 방법으로 의사조력자살을 법제화한다면, 우리의 생애말기 삶에서 생략되는 것은 무엇일까? 만약 우리의 남은 삶이 1년이라고 할 때 의사조력자 살을 선택하면 우리 삶 속에서 과거의 아픔, 현재의 상실 등과 같은 누적된 고통이 한순간에 없어지는 것인가? 생애말기 복합적인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은 그들의 실 존적 고통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생애말기 삶에서 존엄이 구현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생애말기 고통과 존재의 의미를 무의미성으로 규정짓고 ‘나’의 의지에 따라 ‘의사조력자 살’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도 있지만, 죽음 앞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의 생애말기 삶을 버텨내게 하는 다양한 삶의 요소를 발견하 면서, 돌봄의 연대성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도 있다. 따라서 생애말기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돌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빠른 고통의 제거’만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법제화하기보다는 생애말기 돌봄의 다른 대안들에 대한 논의와 이에 관련된 법제화를 함께 진행하여야 한다.
현대사회의 ‘임종의 의료화’와 ‘죽음에 관한 자기 결정권 강화’ 현상 속에서 생애말기 환자의 자율성 존중 문제는 ‘생애말기 돌봄의 방향’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논의되기보다는 생애말기 돌봄의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한 선택지에 불과한 ‘의사조력자 살’의 윤리적·법적 정당성 유무로 치우쳐 논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명의료결정법’과 최근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안’은 생애말기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현할지에 대한 자율성의 방향을 ‘죽을 권리’로 비중을 두었다. ‘조절될 수 없고’, ‘감내할 수 없는’ 생애말기 실존적 고통 속에서 한 인간은 자율적 선택에 의해 조력존엄사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이는 생애말기 인간이 자신의 자율성을 구현하는 데 있어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즉, 그것이 생애말기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거나 자기결정권을 구현하는 전부는 아니다.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에는 삶의 의미, 행복, 고통, 가족, 직업, 가치, 종교, 물질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죽음 앞의 삶의 막바지에서도 삶의 다양한 요소는 여전히 동일하게 유지된다. 다만, 삶의 요소들이 질병과 상실의 경험 속에서 어떻게 축소되거나 없어지는지를 보아야 하는데, ‘죽을 권리’에 대한 법제화 논의는 그것들을 간과한다. 생애말기 인간의 ‘존엄’을 ‘존엄사’의 논의에만 집중될 때는 존엄을 구현하는 다양한 방향이 죽음으로 집중되어 어떻게 ‘죽을지’의 논의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생애말기 인간은 연명의료유지를 선택할 수도 혹은 연명의료중단을 선택할 수도 있다. 또한 어 떻게 죽을지 ‘죽을 방법’에 관하여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지에 관한 ‘살 방법’에 관해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 개인의 자율적 선택은 그들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한 방식이다. 따라서, 생애말기 인간이 자신의 자율성을 잘 구현할 수 있도록 생애 말기 다양한 돌봄의 선택지를 제공하여야 하며, 생애말기 인간이 개인적·사회적 맥락에 따라 자기결정권이 제한당하거나 딜레마 상황을 해결하여야 한다[3].
임종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연 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사전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 계획서 작성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 및 공동체 중심의 문화, 자본주의 문화 속에서의 효율성에 대한 가치판단의 문제, 오랜 병상에 대한 돌봄 부담, 의료적 치료에 대한 경제적 비용 등에 대한 고려는 생애말기 인간의 돌봄 및 의사결정 이면에 작용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생애말기 돌봄의 방향을 빠른 고통의 종식이 가능한 의사조력자살의 법제화로 혹은 느리지만 좋은 돌봄이 수행될 수 있는 물리적, 심리적, 경제적, 관계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법제화로 결정할 수 있다. 사회적 논의를 통하여 우리는 오랜 병상에 대한 돌봄, 홀로 고독하게 아픈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법제화의 방향은 생애말기를 경험하는 환자,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생애말기 의사결정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3. 나가며
좋은 생애말기 돌봄을 위해서는 생애말기 개별 인간의 ‘개별성’이 존중되며, 돌봄을 위한 다양한 자원의 확보, 창조적 돌봄의 모색 그리고 사회적 연대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생애말기 인간의 다양한 삶의 공간(병원, 요양원, 호스피스, 자택 등)에서 경험하는 고통의 속성과 원인에 대한 파악, 그리고 생애말기 돌봄 현실에서의 딜레 마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또한 좋은 생애 말기 돌봄을 위해 개인, 공동체, 그리고 국가는 어 떻게 연대를 맺으며 돌봄 관계를 구축할지 고민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좋은 생애말기 돌봄 논의 기구의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국가에 의해 ‘기획된 좋은 죽음과 돌봄’은 자칫 생애말기 돌봄의 다양성과 연대성 속에서의 역동을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좋은 생애말기 돌봄에 관한 논의는 ‘좋은 돌봄이란 무엇인가?’, ‘좋은 돌봄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누가 돌봄을 수행하는가?’, ‘좋은 돌봄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좋은 돌봄을 위해 개인, 가족, 돌봄기관, 국가는 어떠한 의무와 권리를 가지나?’ 등과 같은 구체적인 돌봄 이슈들을 생애 말기 돌봄 장소에서의 다양한 돌봄네러티브들을 기반으로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