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Article

서사의학 관점에서 본 이상적인 의사-환자 관계

안동현 1 , * https://orcid.org/0009-0000-5930-5384
Donghyun Ahn 1 , * https://orcid.org/0009-0000-5930-5384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서울신학대학교 교양교육원, 부교수
1Associate Professor, College of General Education, Seoul Theological University, Bucheon, Korea
*Corresponding author: Donghyun Ahn, Associate Professor, College of General Education, Seoul Theological University, Bucheon, Korea, Tel: +82-32-340-9151, E-mail: donghyun@s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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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Feb 14, 2025; Revised: Feb 19, 2025; Accepted: Mar 18, 2025

Published Online: Mar 31, 2025

Abstract

Narrative medicine aims to enhance empathetic, patient-centered care by listening to patients’ narratives and understanding their experiences. This article examines Emanuel and Emanuel’s four models of the physician-patient relationship—paternalistic, informative, interpretive, and deliberative—highlighting their distinctions and connections to narrative medicine. By comparing these models, the article shows how narrative medicine addresses some of the limitations of traditional approaches to patient care. Drawing on analyses of literary works such as Tolstoy’s The Death of Ivan Ilyich, Edison’s Wit, and Roth’s Everyman, the article explores how the paternalistic and informative models manifest in real-world clinical interactions and illustrates how narrative medicine can mitigate their shortcomings. In the context of healthcare systems driven by efficiency and constrained consultation times, narrative medicine offers a way to improve patients’ quality of life and foster trust between doctors and patients. This article argues for integrating narrative medicine into medical education and healthcare practice as an essential step toward cultivating ethical and effective physician-patient relationships.

Keywords: narrative medicine; physician-patient relationship models; empathy in healthcare; Death of Ivan Ilyich, Wit, Everyman

I. 서론

단순한 치료를 넘어 치유와 돌봄이 최근 의료 분야의 화두가 되고 있다. 병의 치료만큼이나 환자의 경험과 삶의 질을 고려하는 의료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이 단순히 병의 증상만을 진단하는 것을 넘어,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며 이를 진료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의료진 개인의 태도 변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의료진 간의 관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고 개선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더 공감적이고 환자중심적인 의료를 위해서는 의사-환자 관계에 대한 탐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맥락에서 서사의학(narrative medicine)은 의료의 본질을 돌아보는 각성의 계기이자 중요한 해결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본고는 서사의학적 접근이 어떻게 의사-환자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서사의학은 환자의 입장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의 경험을 이해함으로써 더욱 공감적이고 환자중심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서사의학은 기존의 의사-환자 관계 모델이 환자의 이야기와 감정적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기존의 의사-환자 관계에 대한 논의를 서사의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문학작품을 통해 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서사의학 관점에서 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이후 오랫동안 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의 모델은 가부장적/사제적 모델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나는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를 돕기 위해 치료를 사용할 것이며, 절대 해를 끼치거나 잘못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나와 있다[1].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환자와 상의하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의 권위를 강조하는 가부장적 의료 관행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자주 동원되었다. 그 기조에 따르면 의사는 자신의 의학 지식과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환자와 상의하지 않고 의료에 관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

일찍이 1956년에 Szasz & Hollender는 당시까지 거의 유일한 것으로 여겨졌던 가부장적 의사-환자 모델에 의문을 제기하며,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의 의사-환자 관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능동-수동 모델(activity-passivity model), 지도-협력 모델(guidance-cooperation model), 상호 참여 모델(mutual participation model)이라는 세 가지 모델을 제시하여 환자의 발언권과 자율성이 점차 확대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2]. 이는 환자를 단순한 의료결정의 대상으로 간주하던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환자가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자율성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 중요한 시도라 할 수 있다. 환자의 자율성이 의사-환자 관계에서 더 뚜렷하게 부상한 것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참여 민주주의 확산, 대중 교육 발전, 그리고 민권운동의 현실화가 이루어지면서였다[3]. 이후 의사-환자 관계는 환자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더욱 급격히 변화한다. 새로운 의사-환자 관계 모델들은 의사와 환자가 상호작용하고 대화하는 협력적 과정을 통해 의학적으로 가장 적절하며 환자의 가치와 가장 잘 맞는 결정을 도출하고자 하는 변화의 방향을 보여준다.

1970년대에 새롭게 부상한 의사-환자 관계 모델 중 특히 기술자형(engineering) 모델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1972년 비취(Veatch)는 사제형(priestly), 기술자형(engineering), 동료형(collegial), 계약형(contractual)이라는 네 가지 모델을 제시했는데[4], 이중 기술자형 모델은 이전 모델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으로, 의사-환자 관계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를 보여준다. 이 모델에서 의사는 고장난 물건을 수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기능 제공자이며, 환자는 질병 치료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는 의료소비자가 된다. 의사는 과학적 지식의 저장소이자 의학적 사실의 전달자로서 개인적인 추천을 배제하고 환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이 모델에서 의사의 역할은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가로 한정되며, 모든 의사결정 책임은 환자가 지게 된다. 기술자형 모델의 등장은 현대 의료에서 환자의 역할이 극적으로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Emanuel & Emanuel이 저술한 1992년 논문 「네 가지 의사-환자 관계 모델」(“Four Models of the Physician-Patient Relationship”)[5]은 기존의 의사-관계 모델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서 의사의 역할을 심도 있게 탐구한, 이정표적인 연구로 평가된다. 이들은 가부장적(paternalist) 모델, 정보제공(informative) 모델, 해석적(interpretive) 모델, 및 숙의적(deliberate) 모델을 제시하며 각 모델이 가지는 특징과 장‧단점을 균형 있게 분석하였다. 특히 전통적인 가부장적 모델과, 새롭게 부상한 정보제공 모델의 한계를 명확하게 지적하고, 의사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대안으로 해석적 모델과 숙의적 모델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였다. 이들의 논의는 단순한 모델 분류에 그치지 않고, 점점 환자의 목소리가 커지는 의료 현장에서 의사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겠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이 제시한 모델들을 서사의학의 관점에서 다시 평가함으로써 의사-환자 관계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한다.

다음 장(II장)에서는 Emanuel & Emanuel의 네 가지 모델을 서사의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네 가지 모델 중 특히 해석적 모델과 숙의적 모델은 서사의학적 관점과 상통하는 점이 많으나 그들과 구별되는 차이점도 존재했다. 이러한 이론적 논의를 바탕으로 III장에서는 앞서 검토한 의사-환자 관계 모델을 문학작품을 통해 점검하고자 한다. 다룰 작품은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6], 마거릿 에드슨(Margaret Edson, 1961–)의 “위트”(1999)[7], 그리고 필립 로스(Philip Roth, 1933-2018)의 “에브리맨”(2006)[8]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각각의 의사-환자 관계 모델의 문제점이 현실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서사의학적 모델이 어떻게 기존 모델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탐구하고자 한다.

19세기 말 발표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당시 의사들의 가부장적이고 비인간적인 태도를 조명하며, 20세기 말의 “위트”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인간적 존엄성과 감정적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1세기 초반의 “에브리맨”은 주인공이 다양한 의료 경험을 거치는 과정을 통해 현대 의사-환자 관계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 세 작품을 통해 시대별 의료 환경과 의사-환자 관계의 변화를 조망하고, 서사의학적 접근이 기존 모델의 한계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에브리맨”은 주인공이 생애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의사들과 만나면서 의료 환경의 변화를 체감하는 작품으로, 현재의 의료 환경에서 서사의학적 모델이 기존 의사-환자 관계 모델의 대안으로서 가지는 의미를 강조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그 다음 장(IV장)에서는 서사의학 관점에서 바람직한 의사-환자 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II. Emanuel & Emanuel의 의사-환자 관계의 4가지 모델

본 장에서는 서사의학 관점에서 Emanuel & Emanuel이 제시하는 네 모델을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들은 균형감각을 가지고 포괄적으로 각 모델의 장‧단점을 논하였으며, 특히 가부장적 모델과 그에 대한 반발로서의 정보제공 모델의 결함이 분명해진 시점에서 의사의 적극적인 역할을 다각도로 모색했다는 점에서 자세히 다룰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러한 논의는 의사-환자 관계에서 서사적 접근이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서사의학의 창시자인 리타 샤론은 서사의학과 서사 역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적으로 유능한 의학만으로는 환자가 건강의 상실을 다루거나 고통에서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다. 의사는 과학적 지식과 함께,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의미를 파악하고 존중하며, 환자를 위해 행동하도록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서사 역량 즉 인간이 이야기를 흡수하고 해석하고 그에 반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능력이다. 이 논문은 서사 능력에 대해 설명하고 이를 통해 의사가 공감, 성찰, 전문성, 진실함을 가지고 의학을 실행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러한 의학이 바로 서사의학이다[9].

서사의학의 핵심은 이야기를 통해 환자를 이해하고, 공감의 태도로 그것을 치료의 과정에 통합하는 것이다. 샤론은 그 실행을 위해서는 서사 역량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서사 역량을 키우기 위한 구체적 교육 방법으로 문학의 자세히 읽기(close reading)와 성찰적 글쓰기(reflective writing)라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9].

서사의학의 가치를 믿는 이들은 그것이 질병이나 질병에 걸린 몸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을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인간은 모두 개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같은 병이라도 모두에게 똑같은 증상과 고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질병 자체가 아니라,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 개인에 대한 관심이다. 개인에 대한 이러한 관심으로 환자와 의사가 서로의 경험과 관점을 공유할 때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바탕으로 한 이해를 형성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의학적 지표나 임상적 수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이야기를 깊이 듣고,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며, 공감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호주관적 인식이 서사의학이 지향하는 의사-환자 관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에서 상호주관적인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샤론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학은 서사적 관심사 없이 존재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사업으로서 그것은 항상 삶의 상호주관적인 영역에 기반을 두어왔기 때문이다. 서사와 마찬가지로 의료행위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관련될 것을 요구하며, 진정한 관련은 모든 참여자들에게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9].

이런 서사의학 관점에서는 Emanuel & Emanuel의 4가지 모델 즉 가부장적 모델, 정보제공 모델, 해석적 모델, 숙의적 모델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각 모델에 대한 Emanuel & Emanuel의 설명과, 그가 정리한 일반적인 비판을 간략히 정리한 후, 각 모델을 서사의학적 관점에서 간단히 평가하고자 한다.

가부장적 모델(부모 모델 혹은 성직자 모델로 불리기도 한다)에서 의사는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환자의 상태와 질병 진행을 파악하고, 환자의 회복을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검사와 치료를 결정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환자가 치료에 동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선택된 정보를 제공하며 극단적인 경우, 치료가 언제 시작될 것인지 권위적으로 통보하기도 한다. 이 모델은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하는 공유된 객관적 기준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며, 따라서 환자의 참여가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의사가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 모델에서 의사는 환자의 수호자(guardian)로서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구할 의무를 가진다[5].

가부장적 모델은 환자의 동의를 얻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없는 응급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겠으나, 그 외에는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의사와 환자가 동일한 가치와 이익에 대한 관점을 공유한다는 가정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들조차도 일상적인 의사-환자의 상호작용에서 가부장적 모델을 이상적인 것으로 옹호하지 않는다고 Emanuel & Emanuel은 설명한다[5]. 환자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의사의 결정이 최선이라는 전제 하에 환자에게 일방적인 지시를 내리는 가부장적인 의사-환자 모델은 서사의학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서사의학은 환자의 이야기와 개별 경험을 중시하며, 환자를 수동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치료의 적극적인 동반자로 보기 때문이다.

정보제공 모델은 과학적 모델, 공학적 모델, 또는 소비자 모델이라고도 불린다. 가부장적 모델을 대신해 정보제공 모델이 급부상한 것은 최근 수십 년 동안 환자 자율성, 또는 환자 주권에 대한 요구가 커져 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의사를 의료제공자(healthcare provider), 환자를 소비자(customer)로 묘사하는 비즈니스적 용어의 채택에서도 이 모델에서 환자의 권한이 강화된 것이 드러난다. 생명 유지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비롯한 모든 의료 과정에 환자의 선택권이 보장된다[5]. 정보제공 모델은 사실과 가치 사이의 명확한 구분을 전제로 한다. 환자의 가치는 명확하고 잘 정의되어 있으며, 환자에게 부족한 것은 사실(facts)이라는 것이다. 이 모델에서는 의사의 가치관, 환자의 가치관에 대한 의사의 이해, 또는 환자 가치관에 대한 의사의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5].

정보제공 모델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비판받고 있다고 Emanuel & Emanuel은 설명한다. 즉 이 모델에는 환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그 가치에 질병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는, 배려(caring)의 접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의사의 필수적인 특성 중 하나가 의학적 사실, 유사한 상황에 대한 이전 경험, 그리고 환자의 관점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합하여 환자의 상황에 맞는 권고안을 제시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단순한 정보만 제공할 뿐 권고를 제시할 수 없는 정보제공 의사 모델은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진다. 또한 정보제공 모델은 개인이 고정적이고 명확하게 정의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지만, (따라서 정보만 주면 잘 선택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이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5].

환자의 서사와 개별적 경험을 강조하는 서사의학의 입장에서는 정보제공 모델 역시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의사는 단순한 사실의 전달자이고 그가 제시하는 선택지 중에 환자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식을 선택한다는 정보제공 모델은 서사의학이 지향하는 바, 즉 환자의 서사를 이해하고 이를 질병의 치료에 반영하고자 하는 시도와는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또한 Emanuel & Emanuel이 정확히 지적했듯이, 개인의 가치관은 고정되거나 명확한 것이 아니다. 서사의학 관점에서도 환자의 가치체계는 질병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의사는 환자가 이야기를 통해 변화를 파악하고 자신의 가치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서사의학의 입장이다. 정보제공 모델에서 의료의 과정은 환자의 서사와 그에 담긴 경험과 가치를 무시하고 단순히 의학적 사실과 선택지를 전달하는 데 그친다.

Emanuel & Emanuel이 제시하는 세 번째 모델은 해석적 모델이다. 정보제공 모델의 의사와 마찬가지로, 해석적 모델의 의사도 환자에게 현재의 건강 상태와 가능한 의료적 조치의 위험과 이익에 대해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더 나아가, 해석적 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가치를 명확히 하고 표현하도록 돕고, 특정한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의료적 조치를 결정하도록 돕는다. 해석적 모델에 따르면, 환자의 가치는 종종 미완성 상태이고 환자는 이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며, 특정 상황에서는 가치들이 서로 모순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의 가치관을 명확히 하기 위해 환자와 협력하여 환자의 목표, 열망, 의무, 그리고 성격을 재구성한다. 그런 다음 의사는 이러한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검사와 치료를 제안한다. 중요한 점은 의사가 환자에게 지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궁극적인 판단은 환자가 내리며, 의사는 환자의 가치관을 판단하지 않고, 환자가 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해석적 모델은 정보제공 모델의 결점을 보완하여 환자의 상태와 맥락 속에서 가치를 명확히 하는 것을 의사-환자의 상호작용의 핵심으로 둔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석적 모델에는 크게 두 가지 반론이 제기된다고 Emanuel & Emanuel은 소개한다. 첫째, 기술적 전문화 때문에 의료진이 해석적 모델에 필요한 기술을 익힐 수 없다는 점이다. 제한된 해석 능력과 시간 때문에, 의사는 자신도 모르게 환자의 가치관을 대변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가치를 주입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견해에 확신이 없는 환자는 의사의 강요를 너무 쉽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실제에 있어 해석적 모델을 가부장적 모델로 전환시킬 위험이 있다. 둘째, 자율성을 자기 이해(self-understanding)로 간주하면 환자의 가치관에 대한 평가적 판단이나 환자가 다른 가치를 수용하도록 설득하려는 시도가 배제된다. 이는 의사가 제공할 수 있는 지침과 권고를 제약한다[5].

해석적 모델과 서사의학의 관점은 여러 지점에서 연결될 수 있다. 일단 환자의 경험을 중시하고 환자중심의 접근을 한다는 점이 둘의 공통점이다. 해석적 모델에서는 “극단적으로 의사가 환자의 삶을 하나의 서사적 전체로 상상하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5]고 Emanuel & Emanuel은 소개하는데, 이처럼 환자의 서사를 통해 환자를 전인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둘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해석적 모델에서 환자의 이야기는 적절한 의료적 결정을 내리기 위한 도구의 성격이 강한 반면, 서서의학은 환자의 전체 이야기를 해석하는 데 더 중점을 둔다. 서사의학은 환자의 이야기를, 결정을 위한 자료라기보다는 환자의 존재를 깊이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사의학은 환자와 의사의 상호작용을 더욱 강조하는데, 이 과정은 해석적 모델의 다소 일방적 관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서사의학을 통해 해석적 모델을 보완 및 확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Emanuel & Emanuel이 소개하는 해석적 모델의 한계점 중 하나는 그 모델을 적용할 의료진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의료진이 해석의 방법을 모른다는 것인데, 이런 기술을 훈련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서사의학의 취지라고 할 수 있다. 의사가 환자의 가치체계를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서사의학적인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사의학은 이야기를 통해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데 이것은 해석적 모델이 잘 작용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Emanuel & Emanuel이 제시하는 네 번째 모델은 숙의적 모델이다. 이 모델에서 의사-환자 상호작용의 목표는 환자가 임상 상황에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건강 관련 가치(health-related values)를 결정하고 선택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사는 환자의 임상 상태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용 가능한 선택지에 내재된 가치 유형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의사의 목표에는 특정 건강 관련 가치가 왜 더 가치 있고 추구해야 할지의 이유를 제안하는 것도 포함된다. 즉 의사 자신의 가치 판단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는, 어떤 건강 관련 가치를 환자가 추구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숙의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한다. 숙의적 모델에서 의사는 교사나 친구의 역할을 하며, 환자와 어떤 행동이 가장 적합한지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의사는 환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제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를 잘 알고 최선의 결과를 바라는 입장에서, 환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치료와 관련해 어떤 결정이 바람직한지 제안한다[5].

서사의학의 관점에서 숙의적 모델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일단 숙의적 모델은 의사와 환자가 함께 상의하며 최선의 방법을 찾는다는 의미이므로 서사의학의 관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서사의학은 숙의적 모델의 숙의 과정을 더 세밀하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만, Emanuel & Emanuel이 지적한 바와 같이, 숙의적 모델에서는 설득 과정에서 의사의 역할과 권한이 과도하게 커질 위험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5]. 의사가 특정한 가치를 중시하여 환자를 설득하고 가치관을 교정하고자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가부장적 모델에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서사의학에서는 의사가 대화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의사와 환자가 함께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숙의적 모델에서 환자의 가치관을 형성하거나 변화시키려 한다면, 서사의학은 환자의 기존 가치와 경험을 경청하고 이를 반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숙의적 모델이 이상적인 모델로 실천될 수 있으려면 서사의학적 해석의 방식을 도입하고 환자의 가치관을 최대한 존중하는 식으로 숙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해석적 모델과 숙의적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서사 역량을 키우는 훈련이 필수적이다. 해석과 숙의의 과정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는 적절한 태도와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경청하는 자세, 상대방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 등이 요구된다. 이는 의료진이 환자의 서사를 단순한 정보의 전달로 보지 않고, 그 속에서 가치와 맥락을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적인 역량이다. 해석적 모델과 숙의적 모델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려면 의료진이 서사 훈련을 통해 환자의 이야기를 분석하고 가치에 대한 설득을 비강압적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서사 훈련을 통해 가능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바람직한 소통을 위한 관계의 형성을 위해, 관계 중심적이고 과정 중심적인 서사의학적 접근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III. 문학작품에 나타난 의사-환자 관계 모델

1. “이반 일리치의 죽음”: 19세기 가부장적 의사 모델의 문제점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한 평범한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그린 고전으로, 의료 인문학에서 중환자 치료와 완화 치료에 대해 교육할 때 많이 다루는 작품이다[10]. 톨스토이는 인간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겪는 내면적 변화를 통찰력 있게 제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성찰하도록 만든다. 이 작품의 철학적‧종교적 교훈과 별개로 본 연구에서는 작품 속 의사들에 주목하여 의사-환자 관계를 분석하고, 돌봄의 가치에 대해 성찰하고자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전형적으로 19세기 가부장적 모델의 의사에 가깝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와 치료에 대해 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환자의 의견이나 감정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환자는 의사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라야 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다음 장면은 병이 심각해진 이반 일리치가 처음으로 저명한 의사를 찾아가는 장면인데, 의사가 그를 대하는 태도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모든 것이 그의 예상대로였다. 모든 것이 항상 그랬던 대로 진행되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법정에서 그 자신이 그러했기에 익히 아는 짐짓 근엄한 척하는 의사의 태도도, 여기저기 두드려 보고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도, 미리 정해져 있기에 굳이 답할 필요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그저 우리에게 맡겨 주면 모두 알아서 처리하리라고, 모든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확실히 잘 안다고, 치료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똑같이 대한다고 주장하는 의미심장한 표정도 말이다. 모든 것이 법정과 똑같았다. 그가 법정에서 피고를 대하며 짓는 표정을, 저명한 의사는 환자를 대하며 똑같이 짓는 것이었다.

의사는 이런저런 말을 하고, 당신 내부에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검사를 해도 확진할 수 없다면 이런저런 것을 가정해야 한다고, 만약에 이런저런 것을 가정한다면 그때는... ... 이반 일리치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의 건강 상태가 위중한지 아닌지 하는 문제였다. 의사는 이 부적절한 질문을 무시했다. 의사의 관점에서 이 질문은 논할 가치도 없을 만큼 공소한 것이었다. 오직 신하수증인지, 만성 카다르나 맹장임인지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볼 뿐이었다. 요컨대 이반 일리치의 목숨에 대한 의문은 없고, 오직 신하수증인지 맹장염인지를 두고 논쟁할 따름이었다[6].

인용의 앞부분에서 의사는 권위를 보이기 위해 마치 재판관처럼 근엄한 척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의사가 재판관처럼 느껴진다면 환자는 마치 법정에 선 피고인처럼 느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단지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체계 전반에 깔린 권위주의적 문화의 반영이다. 이 장면에서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답이 정해진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며, 환자의 목소리는 의사의 소위 전문가적인 판단에 의해 묵살되고 있다. “치료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똑같이 대한다”는 것 역시, 당시 가부장적 의료체계의 일면을 보여준다. 공정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의사가 개별 환자의 상황과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이미 정한 절차를 기계적으로 행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뒷부분에서도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기보다 진단과 병명에만 집착하며, 이를 통해 가부장적 모델의 문제를 보여준다. 이반 일리치는 “삶이냐 죽음이냐”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지만, 의사는 그에 대해서 어떤 답도 해 주지 않으며, 환자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무시하고 진단과 병명만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환자를 하나의 삶을 가진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증상의 집합체로 보는, 비인간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반 일리치는 의사가 내리는 결론을 듣고 자신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이토록 중요한 문제에 지독히 무심한 의사”에 대해서는 커다란 증오심을 느낀다[6].

이후에 등장하는 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반 일리치의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하는 무능한 의사들이지만, 권위를 유지하고자 자신들의 무능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반은 자신의 병과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이해받기를 바라지만, 의사들은 그의 몸의 증상에 초점을 두고 진단과 치료에만 집중한다. 따라서 이 작품의 의사들은 이반 일리치와 어떤 인간적인 친밀함이나 신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이반은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끔직하다고 느끼는데[6], 이것은 의사들로부터 오는 소외감과 무관하지 않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반 일리치가 바라는 위안은 의사들이 아닌 자신을 돌보는 하인 게라심으로부터 온다. 게라심은 단순한 돌봄 제공자가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이반 일리치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다. 게라심은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신뢰가 결여된 환경에서, 인간적인 유대가 어떻게 치유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반 일리치는 게라심에게 다리를 좀 들어 달라고 부탁한 뒤,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상하게도 게라심이 이렇게 다리를 들어 주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이반 일리치는 가끔 게라심을 불러서 그의 어깨에 다리를 걸쳐 놓은 채 그와 이야기하기를 즐겼다. 게라심은 그 일을 가뿐히, 기꺼이, 그저 선한 마음으로 해 주었고, 이반 일리치는 감동했다. 다른 사람들의 건강, 체력, 삶의 원기에는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게라심의 체력과 삶의 원에는 괴로워하기는커녕 위안을 받았다[6].

다리를 들어주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있어 주는 사소해 보이는 행동들에서 게라심의 배려심,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이 전해지며, 이로 인해 이반 일리치는 정신적 안정감을 얻게 된다. 게라심의 태도를 직접적으로 서사의학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지만, 경청과 공감을 보여주고 이반 일리치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는 서사의학의 본질을 잘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부장적인 의사들과 대비되어, 서사의학이 지향하는 돌봄의 가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위트”: 20세기 말 가부장 모델과 도구적 모델의 한계

“위트”는 마가렛 에드슨이 집필하고 무대에 올린 극본이다. 이 작품은 난소암에 걸린 저명한 영문학자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루며, 의사와 병원 시스템이 죽음을 앞둔 환자를 어떻게 비인간적으로 대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작품 속 의사들의 태도와 행위는 환자 중심의 접근이 결여된 의료 관행이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미국 대학들에서 의료 인문학의 교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의사-환자 관계, 죽음에 대한 태도, 윤리적 의료 관행 등을 가르치는 데 적합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장에서는 “위트”에 등장하는 두 의사가 어떤 의사-환자 관계 모델에 속하는지를 살피고, 그들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을 탐색하고자 한다. 작품 속에 이들에 대한 대안은 없는지, 이 대안이 서사의학적 관점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논의할 것이다.

극의 초반에 담당의사인 켈레키언 박사(Dr. Kelekian)는 주인공 비비안 베어링(Vivian Bearing)에게 암 선고를 내린다. 듣는 이가 주저앉을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면서도, 박사는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만 체크할 뿐 듣는 이의 충격과 근심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그는 전문적인 의학 용어를 써서 병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이 어떤 식으로 치료를 진행할지,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건조하게 설명한다. 그의 설명은 환자 비비안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며, 자신이 가진 정보와 자신의 계획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환자 비비안의 동의를 얻어내는 대화는 다음과 같다.

켈레키언: 다음 학기는 강의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비비안: (분개하며) 절대 안 됩니다.

켈레키언: 매 주기의 첫 주는 화학요법을 위해 입원하게 될 것이고, 그 다음 주에는 조금 피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두 주는 비교적 괜찮을 겁니다. 이 주기는 제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총 8번 반복될 예정입니다.

비비안: 8개월 동안 그런 식으로요?

켈레키언: 이 치료가 저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연구적으로 우리 지식에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비비안: 지식, 그렇군요.

켈레키언: (종이를 건네며) 여기에 동의서가 있습니다. 동의하시면 맨 아래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설명을 들으셔야 할 가족이 있나요?

비비안: (서명하며) 그럴 필요는 없어요.

켈레키언: (종이를 다시 받으며)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항암제를 최대 용량으로 복용하시는 겁니다. 부작용 때문에 용량을 줄이고 싶어질 때도 있겠지만, 연구의 실험 단계에서는 최대 용량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7].

이 부분의 켈레키언 박사는 연구에 몰두한, 20세기 가부장적 의사 모델의 특징과 문제점을 보여준다. 그는 환자와의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려 애쓰기보다 환자를 자신의 치료 계획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는 자신이 환자의 상태와 치료법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환자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는 화학요법의 주기와 용량, 병원 입원 일정 등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는데, 그의 설명과 안내에서 환자의 선택권이나 자율성이 들어설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그가 환자를 감정적‧심리적으로 이해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비비안에게 일방적 전달과 통제로 작용한다. 이 장면에서 비비안은 동의서에 서명을 하지만, 진정한 동의를 위한 숙고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녀가 이후 과정을 잘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없기에 진정한 의미의 동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켈레키언 박사의 이런 태도는 치료 과정 내내 문제를 드러낸다. 그가 몰고 온 의사들 무리는 그녀를 가운데 두고 복부의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암의 진행을 서로에게 설명한 뒤, 배를 다시 덮어주지도 않고 떠난다[7]. 그것이 환자에게 어떤 불편함과 수치심을 가져올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들은 비비안을 병을 가진 대상으로만 대할 뿐 감정을 가진 전체적인 인간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비비안이 오한과 백혈구감소증으로 급히 병원으로 들어오고 격리치료를 받을 때, 그녀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지만, 켈레키언 박사는 “모든 것이 좋다”며, 격리를 단순한 휴가라고 생각하라는 무신경하고 배려 없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7]. 이런 태도는 단순히 가부장적인 태도를 넘어서서 비인간적인 태도이다.

위의 인용에서 켈레키언 박사는 비비안에 대한 연구가 지식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지만, 그런 이유로 비비안은 과도한 투약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연구를 위해 최대 용량의 항암제를 처방하고 그 부작용으로 환자가 겪을 고통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켈레키언 박사의 태도는 그에게 가부장적 모델의 요소뿐 아니라 도구적 의사-환자 모델의 요소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와 의학 지식에 집착하는 도구적 모델의 요소는 비비안의 담당 레지던트인 제이슨(Jason)에게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치료과정에서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힘들어 하는 비비안을 위해 간호사 수지(Susie)가 약 투여량을 줄여달라고 부탁하지만, 제이슨은 연구 목적을 위해 이를 거부한다. 그가 사악하다거나 악의를 가지고 행동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는 환자의 안녕보다 의학적 연구 성과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고, 목표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환자의 고통이나 감정적 요구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비비안과 대화하면서 암세포가 지닌 놀라운 생명력에 경탄하는 연구자의 열정을 보여주는데[7], 그것은 암으로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매우 무신경하고 배려심이 없는 태도로 비춰진다. 이를 보고 비비안은 “나이든 의사처럼 젊은 의사도 인간성보다 연구가 중요하다”(The young doctor, like the senior doctor, prefers research to humanity.)[7]고 언급한다. 이 작품의 켈레키언 박사나 제이슨은 가부장적인 의사 모델과 도구적 의사 모델이 결합했을 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공감과 배려의 마음으로 비비안을 돌봐주는 사람은 간호사 수지이다. 그녀는 방문객이 없는 비비안을 자주 찾아가 대화를 나누며 정서적 지지를 제공한다. 제이슨이 비비안을 진료실에 수치스러운 자세로 방치했을 때 그것을 질책하고, 비비안이 의식을 잃어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치 과정을 끝까지 설명해 주는 따뜻한 배려를 보여준다. 비비안이 덜 고통스러워하도록 화학요법의 용량을 줄여달라고 의사에게 요청하는 등 비비안을 단순한 환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 존중하며 신체적‧정서적 안위를 세심하게 돌본다.

무엇보다도 수지는 비비안이 존엄한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연명 치료 여부와 임종 과정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막상 담당의사인 켈레키언 박사나 제이슨은 그녀의 병이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지도 않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대화도 전혀 나누지 않는다. 수지는 비비안에게 심정지 상태에 놓였을 때 의료진이 어떻게 대응할지 "코드 상태(code status)" 결정이 필요함을 알린다. 수지는 이 중요한 결정을 켈레키언 박사와 제이슨이 논의하기 전에 미리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는 환자가 자신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배려심 있는 행동이다. 수지는 켈레키언 박사와 제이슨 같은 의사들이 생명을 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생명이 유지되기만 하면 그것이 곧 성공이라고 여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지는 이런 관점이 항상 환자의 최선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결국 비비안은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한다. 수지가 마지막으로 의사를 다시 확인하지만, 비비안은 "그냥 멈추게 두세요."라는 말로 자신의 뜻을 다시 확실히 한다[7].

수지는 비비안이 곧 죽을 것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 주면서도, 그녀가 상황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의료진의 입장을 가감 없이 설명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고, 사려 깊고 공감적인 태도로 비비안이 스스로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결국, 비비안은 자신의 상황을 숙고한 끝에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 장면에서 수지의 태도는 서사의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환자가 자신의 서사를 스스로 형성하고 완성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3. “에브리맨”: 정보제공 모델과 해석적 모델의 등장

“에브리맨”에는 긍정적‧부정적 인물을 포함한 다양한 유형의 의사가 등장하여 독자가 다양한 의사들의 유형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어린 시절인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주인공이 생애 전반에 걸쳐 몇 번의 중대한 질병을 앓으며 여러 의사들과 만나는 경험이 상세히 그려지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이 시기 동안 의사와 병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시대에 따라 의사의 역할과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에 정보제공 모델과 해석적 모델의 의사가 새롭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 만나는 의사들은 대체로 가부장적인 의사들이다. 주인공이 기억하는 첫 병원 경험은 탈장 수술을 위한 입원이었다. 그가 세상에 나올 때 받아주기도 했던 이민자 출신의 닥터 스미스는 그가 좋아질 것이라고 장담하고, 이런저런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는 어린 주인공에게 “내일 그 탈장을 고쳐주마. 그럼 새로 태어난 것처럼 말짱해질 거야.”[8]라고 말하며 안심시킨다. 그러나 주인공은 불안함을 떨칠 수 없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장면은 이렇게 묘사된다.

어머니는 수술실로 가는 엘리베이터까지만 침대를 따라올 수 있었다. 그곳에서 잡역부들은 그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넣었다. 엘리베이터는 밑으로 내려가 깜짝 놀랄 만큼 지저분한 복도에 그를 내놓았다. 복도는 수술실로 이어졌고, 그곳에는 닥터 스미스가 의사 가운과 하얀 마스크 차림으로 서 있었다.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어쩌면 닥터 스미스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다른 사람, 스물로비츠라는 성의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서 성장하지 않은 사람, 그의 아버지가 전혀 모르는 사람, 아무도 모르는 사람, 그냥 우연히 수술실로 들어와 칼을 집어든 사람일 수도 있었다. 마치 질식을 시키려는 듯이 그의 얼굴에 에테르 마스크를 씌우던 그 공포의 순간에 그 의사가, 그가 누구였건, 이렇게 소곤거렸다고 그는 맹세라도 할 수 있었다. “자, 이제 널 여자로 바꿔주마.”[8].

닥터 스미스는 유능한 의사로 그려지지만, 어린 환자의 불안과 이해 수준을 고려한 소통에는 한계가 있었다. 만약 의사-관계 모델에 대해 더 의식하는 의사였다면 공감적 의사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주인공을 안심시키기 위해 필요한 설명을 더 했을 것이며, 주인공은 위의 예문에 나온 것 같은 비이성적인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이런 의사 유형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며,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의사가 드물었을 수 있다.

긴 세월이 지나 주인공이 나이가 많이 든 상태에서 방문한 병원은 사뭇 풍경이 다르다. 경동맥 수술을 하러 입원한 병원 대기실에서, 주인공은 같은 시간에 여러 곳에서 진행될 수술을 받을 여러 명의 대기자들과 함께 수술을 기다린다. 앞에서 묘사했던 어린 시절 병원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병원은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서비스는 체계적으로 제공된다. “대기실의 차분한 분위기를 보면 뇌에 이르는 동맥을 찍어 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라도 깎으러 가는 것 같았다.”[8]고 주인공은 묘사한다. 다음 인용은 개인적 친밀함이 사라진 현대 병원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

그는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수술실로 갔다. 안에서 대여섯 명이 강하게 내리쬐는 조명을 받으며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담당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의사의 친근한 얼굴을 보면 안심이 될 것 같았지만 그 의사는 아직 수술실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가 있었다. 젊은 축에 속하는 의사 몇 명은 이미 수술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테러리스트 생각이 났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전신 마취를 원하는지 아니면 국부 마취를 원하는지 물었다. 꼭 웨이터가 레드 와인을 원하는지 아니면 화이트 와인을 원하는지 묻는 것 같았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왜 마취 결정을 이렇게 늦게 내리는 걸까? "모르겠네요. 어느 쪽이 낫습니까?" 그가 말했다. "우리한테는 국부가 낫죠. 환자가 의식이 있으면 뇌 기능을 더 잘 관찰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더 안전하다는 말인가요? 그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그럼 그렇게 하죠.“

그것은 실수였다. 그는 간신히 무너지지 않고 실수의 대가를 당할 수 있었다. 수술은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그의 머리는 밀폐공포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천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고, 자르고 긁는 소리가 귀에 너무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바람에 마치 반향실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그들의 도구가 움직이는 소리를 빼놓지 않고 다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싸울 수도 없었다. 그냥 받아들이고 견뎌야 했다. 그 일이 계속되는 동안 그냥 자신을 내 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8].

주인공은 익숙한 담당의사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지만, 그를 발견하지 못한다. 수술준비 중인 의사들을 보며 테러리스트를 떠올리는 것은 주인공의 불안한 마음을 잘 보여준다. 담당의사도 아닌 한 의사가 그에게 마취 방법을 선택하라고 한다. 말하자면 의료 소비자인 주인공에게 선택지를 제공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의 의사는 정보제공 모델의 의사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주인공이 좋은 선택을 잘할 수 있을 만큼 부분 마취와 전신 마취의 장‧단점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의사가 충분한 설명 없이 마취 방법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환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배려라기보다 의사 자신의 편의나 기계적 절차에 따른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정보제공 모델 의사는 환자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오히려 환자의 불안감을 키우고 잘못된 결정을 하게 할 위험이 있다.

이 작품에는 해석적 모델 유형의 의사도 등장한다. 주인공이 충수염과 그로 인한 복막염 수술로 죽을 위기를 겪고 퇴원하려 할 때, 담당 의사는 그의 아내가 믿을 만한 간병인이 아니라며 그대로는 퇴원시킬 수 없다고, 간호사를 고용하라고 강하게 조언한다. 그 의사가 정확히 본 대로 주인공의 둘째 부인은 자신에게 맡겨진 아주 단순한 일조차도 해내지 못하는, 매우 신뢰성이 떨어지는 인물이다[8].

그는 자신을 담당한 심장전문의가 병실을 찾아와, 집에서 아내가 그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퇴원을 시켜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의사가 의료와 관계없는 일에도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도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부인 문제는 내가 알 바 아니지요. 하지만 부인이 면회 왔을 때 지켜봤어요. 그 여자는 기본적으로 없느니만 못한 사람이더군요. 따라서 나로서는 내 환자를 보호할 수밖에 없습니다.”[8].

어찌 보면 이 의사는 환자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깊이 개입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환자를 보호하려는 선의를 가진 인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해석적 모델 유형의 의사는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표면적인 정보 이면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여 최선의 결정을 돕는다. 이 의사 역시 주인공이 자각하지 못한 문제를 대신 파악하고 해결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해석적 모델에 가깝다. 그러나 환자의 가치관을 충분히 탐색하지 않았고, 자율성보다는 보호하려는 의도가 앞섰다는 점에서 일부 가부장적 요소도 드러난다.

이런 해석의 능력은 모든 의사가 가진 능력은 아닐 것이다. 관찰력과 통찰력을 키우려면 서사 역량을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사 역량은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의 상황과 정서를 깊이 이해하며, 이를 바탕으로 환자와 함께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이 우리가 서사의학적 의사-환자 모델에 큰 의미를 두는 이유이다.

IV. 서사의학의 이상적 의사-환자 관계 모델

위에서는 서사의학 관점에서 Emanuel & Emanuel이 분류한 의사-환자 모델 넷을 차례로 살펴보고 문학작품에서 이 모델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분석하였다. 이 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서사의학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를 제시하고자 한다. Emanuel & Emanuel이 네 모델을 제시하면서 설명했던 항목들 즉 환자의 가치관에 대한 관점, 의사의 의무와 역할, 환자 자율성의 개념, 의사 역할의 개념 순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Emanuel & Emanuel에 따르면 가부장적 모델과 정보제공 모델에서는 환자의 가치관이 객관적이거나 고정되어 있다고 보는 반면, 해석적 모델이나 숙의적 모델에서는 변화할 수 있다고 본다. 서사의학 관점에서 환자의 가치관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형성되고 변화하는 것으로 본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서사의학은 질병을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가지는 서사로 이해한다. 따라서 환자의 가치관도 시간과 경험에 따라 발전하며 의료진과의 서사적 상호작용에 의해 재구성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샤론은 환자가 이야기를 통해 무질서해 보이는 질병의 경험에 형태를 찾고 통제를 가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신분석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의료 행위에서 환자 이야기를 서술하는 과정은 치료의 중심적인 행위이다. 왜냐하면 질병과 그로 인한 걱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는 것이 질병의 혼란에 형태를 부여하고 통제력을 갖게 해 주기 때문이다[9].

서사의학에서는 환자의 가치관과 선호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의료진과의 서사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고 재정의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모호하고 상충되며 설명이 필요하다"는 해석적 모델의 가치관과, "도덕적 토론을 통해 발전과 개정에 열려 있다"는 숙의적 모델의 속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차이점은 서사의학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질병 경험을 하나의 고정된 해석이나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환자와 함께 탐색하고 의미를 형성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는 점, 그 과정에서 서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는 서사의학 관점에서 의사의 역할과 의무를 알아보고자 한다. 서사의학에서 의사의 역할은 해석적 모델(“환자의 관련된 가치들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동시에, 환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가 선택한 치료를 실행하는 것”)과 숙의적 모델(“가장 바람직한 가치들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환자를 설득하는 동시에, 환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가 선택한 치료를 실행하는 것”)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서사의학에서 의사의 역할은, 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고, 환자의 질병 이야기를 적극적이고 공감적으로 경청하며, 그의 이야기와 관점을 존중하여 보다 개별화된 진료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둔다. 따라서 숙의적 모델의 설득의 요소는 서사의학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의사의 역할에 대해 샤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질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환자의 서사적 질문에 명확한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부당한 상실과 무작위적인 비극을 용인하고 목격할 용기와 관용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목격 행위를 수행함으로써 의사는 보다 전형적인 임상적 서사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여기에는 치료적 동맹을 구축하고, 감별 진단을 생성하고 진행하며, 신체 소견과 검사 결과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환자의 경험에 공감하고 이를 전달하며, 이 모든 것의 결과로 환자가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참여를 유도하는 일이 포함된다[9].

앞의 인용에서 서술되는, 감별 진단을 생성하고 진행하며, 신체 소견과 검사 결과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은 일상적인 의사의 역할이다. 여기에 더해, 서사의학의 관점을 가진 의사는 치료적 동맹을 결성하고, 환자의 경험에 대한 공감을 전달하며, 환자가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참여를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환자의 질병 경험을 서사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함께 탐색하며, 환자와 협력하여 함께 치료에 관한 결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단순히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자신의 질병과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에 의료진이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처럼 의사의 의무를 규정할 때 환자의 자율성이란 어떤 의미인가? 서사의학에서 환자의 자율성은 환자가 자신의 서사를 통해 질병의 의미를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병과 관련한 자신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고,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에 기초하여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결정(informed decision)을 내리는 것이 서사의학 관점에서의 환자의 자율성이라 할 수 있다. 의료진에 의해 제시된 수많은 선택지 중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되는 것을 선택(정보제공 모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질병 경험을 스스로 재구성하며 의미를 찾고 변화하는 과정 혹은 능력이 자율성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해석적 모델(치료와 연관관 자기 이해) 혹은 숙의적 모델(치료와 연관된 도전적 자기 발전)과 유사하지만 서사의학에서는 서사가 개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환자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자율성이 형성되고 발전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의사 역할에 대한 개념을 살펴보자. 가부장적 모델에서 의사는 수호자(guardian)로 여겨진다. 위 문학 작품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부장적 의사는 실제에 있어서 지배적이고 권위적 인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정보제공 모델에서 의사는 기술적 전문가이며, 해석적 모델에서는 상담가나 조언자, 숙의적 모델에서는 친구 혹은 선생님으로 여겨진다. 서사의학에서 의사는, 이끌고 동반하는 인물(a guiding and accompanying figure)이다[11]. 샤론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치료의 동맹군(therapeutic alliance)로 표현한 바 있다[12].

V. 결론

위에서는 Emanuel & Emanuel이 제시한 의사-환자 관계 모델 네 가지의 내용을 살펴보고 이를 서사의학의 관점에서 평가하였다. 네 모델 중 해석적 모델과 숙의적 모델은 서사의학의 관점과 공통점이 많지만, 강조점이 달랐다. 해석적 모델에서 환자의 이야기가 적절한 의료적 결정을 내리기 위한 도구의 성격이 강한 반면, 서사의학은 환자의 존재를 깊이 이해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또한 서사의학은 해석적 모델보다 더 관계 중심적이다. 숙의적 모델에서는 의사가 자신의 가치관을 설득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서사의학에서는 환자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함께 의미를 구성하고 치료 방향을 모색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서사의학이 두 모델을 보완할 수 있는 면도 있다. 서사의학에서 강조하는 서사 역량은 해석과 숙의의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해석과 숙의 과정의 바탕이 되는 긴밀하고 신뢰감이 있는 의사-환자 관계를 위해서는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적으로 반응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의사-환자 관계 모델을 작품을 통해 살펴보았는데,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위트”에서는 환자의 고통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사례를 분석하여 가부장적 모델이 환자의 정서적‧윤리적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한계를 조명하였다. 또한, “에브리맨”을 통해 다양한 의사-환자 관계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현대 의료 환경에서 다양한 의사-환자 관계의 문제점과 한계를 살펴보았다. 이들 작품은 서사의학적 접근이 부족할 때 의사-환자 관계에서 어떤 소통의 단절과 갈등이 발생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기존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 환자의 서사를 존중하는 의료를 구현하기 위해 서사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수적임을 알 수 있었다.

의료 시스템에서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적으로 반응하며, 치료 과정에 환자의 가치와 경험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서사의학적 접근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서사의학적 의료를 실천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23년 의료서비스 경험조사’에 의하면 국내 의사의 외래 진료 시간은 평균 8분이었다. 응답자의 55%는 실제 진료시간이 1-5분이라고 응답하였다[13]. 환자 1인당 진료시간이 이토록 짧은 상황에서 서사의학이 요구하는 충분한 경청과 대화는 쉽지 않다. 물론 충분한 진료시간 확보의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이와 함께 적극적 듣기(active listening)의 훈련을 통해 짧은 시간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환자의 핵심적인 이야기와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적극적 듣기 훈련을 받은 의사들이 참여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일반 진료에서 80%의 환자가 2분 이내에 자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으며, 5분 이상이 필요한 환자는 335명 중 7명에 불과했다[14]. 이는 짧은 진료시간 내에서도 효과적인 경청과 환자의 서사적 경험 반영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효율성과 성과 중심의 의료 시스템도 서사의학의 실천에 방해가 된다. 그러나 의료의 모든 측면이 데이터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며, 서사의학의 성과는 단기적으로 측정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여야 한다. 작품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환자의 삶의 질 향상과 의사-환자 간의 신뢰 구축에서 서사의학적 접근은 큰 가치가 있다. 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비용이 소요되지만, 이러한 노력이 장기적으로 치료 효과와 환자의 만족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환자와 소통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의사에게 불이익이 아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의료 재정 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서사의학적 접근을 장려해야 할 것이다.

서사의학의 실천을 위해서는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사의학적 접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의학 교육과정에 서사의학을 포함시킬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대부분의 의학 교육은 질병의 과학적 이해와 치료 기술에 집중되어 있고, 환자의 서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진다. 그러나 서사 역량을 의료인의 핵심역량으로 삼고 교육과정에서 충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서사의학 교육과정과 프로젝트는 미국, 캐나다,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와 중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12]. 우리도 의료현장에서 환자의 삶과 경험을 존중하는 의료 실천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이 환자의 서사를 반영하는 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 모델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이다.

서사의학적 접근이 모든 의료 환경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응급실이나 중환자실과 같이 신속한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환경에서는 장시간의 대화가 어렵고,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할 기회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병원의 여러 구조적 제약, 의료보험 체계, 환자의 의료 쇼핑 문화, 가족 중심적 의사 결정 과정, 다문화적 의사소통 문제 등 현실적 제약 역시 서사의학의 실천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서사의학적 접근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응급 상황에서는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비언어적 신호를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나 짧은 문장으로도 환자의 감정을 확인하는 기술 즉 서사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또한, 다문화적 의사소통이 필요한 환경에서는 환자의 문화적 배경을 잘 고려할 수 있는 문화적 감수성과 소통역량이 요구된다. 이처럼 다양한 의료 환경에서 어떻게 서사의학을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본 연구에서 서사의학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향후 연구를 통해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Conflict of interests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Acknowledgements

Not applicable.

Funding information

This article was supported by a research grant from Seoul Theological University in 2025.

Data availability

Upon reasonable request, the datasets of this study can be available from the corresponding author.

Author contributions

The article is prepared by a single author.

Ethics approval

Not applic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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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료윤리학회지 28권 2호 모집


한국의료윤리학회지는 1997년에 창립된 한국의료윤리학회의 공식 학술지이자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로서, 임상현장에서의 윤리, 의료윤리교육, 그리고 의학 및 생명공학 기술 발전으로 제기된 삶과 생명 문제에 대한 윤리적 ∙ 철학적 ∙ 법적 ∙ 사회적 성찰에 대한 여러 분야 연구자들의 학술연구 결과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 투고 형식 안내 ■

1. 주제

임상윤리, 의료윤리교육 및 생의학에서의 윤리 ∙ 철학 ∙ 법 ∙ 사회학과 관련된 주제이면서 다른 학술지에 발표되지 않은 글

 

2. 모집 기간

~ 2025년 4월 30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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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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