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논문

장애와 손상의 구분을 중심으로 본 장애의 모델들: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필요성

유기훈 1 , 2 , * https://orcid.org/0000-0001-9956-6503
Kihoon You 1 , 2 , * https://orcid.org/0000-0001-9956-6503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박사과정
2서울대학교병원 공공부문 진료조교수
1Ph.D. Student, Departments of History of Medicine & Medical Humanities, College of Medicin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2Assistant Clinical Professor, Department of Public Health,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Seoul, Korea
*Corresponding author: Kihoon You, Ph.D. Student, Departments of History of Medicine & Medical Humanities, College of Medicin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Tel: +82-2-740-8378, E-mail: bdpp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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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Aug 11, 2024; Revised: Aug 14, 2024; Accepted: Sep 09, 2024

Published Online: Sep 30, 2024

Abstract

The conceptualization of disability is not merely a descriptive issue but also a normative one, as the way disability is viewed can fundamentally shift the focus of what constitutes ethically appropriate support for disabled people. This paper reviews the historical debates surrounding models of disability over the past several decades, arguing that each model is a product of conceptual engineering, developed in response to normative needs related to disability. Given the persistent conflicts between these models, we propose a "pluralistic approach to disability" as a solution to the deadlock between them. It is argued that the conceptualization of disability does not require adopting a single stance among conflicting models; rather, by employing a pluralistic approach as part of strategic conceptual engineering, it becomes possible to more effectively address the diverse normative demands surrounding disability.

Keywords: social model of disability; social constructivism; illness narrative; disability studies; conceptual engineering

I. 서론

‘장애’를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지는 단지 기술적(descriptive)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규범적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장애를 어떤 것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지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초점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1]. 예를 들어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손상이라고 정의하면, 그 손상을 예방·치료하는 것이 장애인 지원의 최우선 과제가 될 가망이 크다. 반면 장애를 손상을 가진 사람들의 활동을 가로막는 사회적 장애물로 정의하면, 사회적 편의제공과 사회적 장애물의 해소가 적절한 조치가 될 것이다. 혹은 장애가 신체적 손상과 결부된 사회적 편견, 혹은 그러한 편견으로 인해 개인이 갖게 된 내면화된 억압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러한 편견을 해소하거나 스스로의 손상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장애 해소를 위한 적절한 정책적 목표가 된다.

이처럼 장애의 개념화 방식은 장애인의 규범적 요구를 틀 짓는 중요한 기초 작업이지만, 무엇이 장애에 대한 적절한 개념화 방식인가에 대한 논쟁은 해결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먼저 1970–1980년대 장애의 사회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이 탄생한 이래 장애를 개념화하기 위해 제안된 여러 장애의 모델들을 살펴보고(II장), 그 사이의 주된 쟁점을 장애-손상의 구분과 그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검토할 것이다(III장).

장애의 사회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에서는 장애(disability)와 손상(impairment)을 구분하고, 장애란 신체의 손상이 아니라 손상 위에 사회적으로 부과된 것으로 개념화한다. 따라서 장애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인에 대한 치료적 접근이 아닌 사회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되며, 장애인의 규범적 요구와 상응하는 이러한 결론으로 인해 사회모델은 지난 40여 년간 사회운동의 주류적 이론 틀로 채택되어 다양한 담론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사회모델이 장애학(disability studies) 및 장애인 권리 운동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며, 사회모델이 통증이나 만성질환의 경험과 같은 다양한 몸의 주관적 경험들을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페미니스트 장애학(feminist disability studies)에서는 “몸과 마음이 괴롭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장애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 왔고[2], 그 과정에서 장애학은 질환 서사(illness narrative) 운동과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논쟁의 중심에는 사회모델에서 도입한 손상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파악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특히 손상이 통증과 같은 부정적 경험을 동반할 때 이를 장애학에서는 어떻게 개념화해야 할지의 문제가 있었다. 본 논문의 II장 및 III장에서는 이러한 장애-손상의 구분과 통증의 문제를 둘러싼 장애학에서의 논의를 통해, 장애의 개념화 방식에 있어서의 주된 쟁점과 논의의 지층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 IV장에서는 다양한 장애의 모델들에 대한 앞선 검토를 바탕으로,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애의 모델들은 그 특성상 장애인 권리 운동과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며 발전해 왔다[3]. 장애 당사자들의 특정한 규범적 요구를 포착·설명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장애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여러 장애 모델들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장애에 대한 단일한 개념화 방식을 채택하게 되면, 장애인의 규범적 요구들의 일부분이 누락되거나, 최소한 간접적으로밖에 설명되지 못한다는 난점이 발생한다. 그렇기에 만약 장애를 단일한 개념화 방식으로 파악하여야 한다는 전제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장애를 설명하는 여러 모델들을 다원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이 전략적으로 채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장애의 개념화 방식은 서로 다른 모델들 간의 양자택일적 입장을 반드시 취할 필요는 없으며, 여러 관점을 허용하는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이 전략적으로 채택될 수 있음을 제안하고자 했다.

II. 장애의 사회모델과 그 비판

1. 장애의 사회모델의 분류

장애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의 문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애학의 핵심적 논의를 이뤄왔다. 장애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대처와 장애를 근거로 한 권리주장의 내용과 성격이 크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장애의 사회모델이 주된 담론으로 등장하기 이전에는 장애란 몸의 결함이자 개인에게 일어난 비극이며, 따라서 이를 치료해 내는 것이 장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접근이라 믿어졌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학자들은 장애가 오직 몸의 결함으로, 따라서 장애가 개인적 비극이자 치료의 대상으로만 규정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이러한 장애의 “개인적 비극이론(the personal tragedy theory of disability)”[4] 혹은 장애의 의료모델(medical model of disability)을 넘어설 것을 요청해 왔다. 그들은 장애란 사회적으로 부과된 것이라 주장했다. 장애의 사회모델이 탄생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영국의 분리에 저항하는 신체장애인 연합(Union of the Physically Impaired Against Segregation, UPIAS)에서는 장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장애(disability)란 우리가 불필요하게 고립되고 사회의 완전한 참여에서 배제되는 방식으로 인해 우리의 손상(impairment) 위에 부과된 것이다. 따라서 장애인(disabled people)은 사회에서 억압받는 집단(oppressed group)이라고 할 수 있다[5].

UPIAS의 장애 정의에 따르면, 장애란 개인적 비극이나 몸의 결함이 아닌, 외부적 장벽(barrier)으로 인해서 손상된 몸을 지닌 사람들이 활동에 제약을 받는 사회적 조건(social conditions)이다. 이러한 주장 속에서 장애의 원인은 개인의 손상된 몸이라는 개인적 차원에서, 장애를 만드는 사회(disabling society)로 옮겨간다. 사회적 활동과 참여의 제한은 장애인의 손상된 몸 때문이 아니라, 계단이나 문턱과 같은 사회적 조건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영국 장애단체들에 의한 장애 개념의 급진적 변화는 이후 1980년대 마이클 올리버(Michael Oliver)나 콜린 반스(Colin Barnes)와 같은 장애학자들에 의해 이론화되어 사회적 억압 이론(social oppression theory)[4] 혹은 장애의 사회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6]로 불리게 된다. 장애의 사회모델에서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몸의 물질적 변화인 손상과, 사회환경 속 물리적 장벽에 의해 초래되는 장애를 명확히 구분하고, 장애의 원인은 개인의 몸이 아닌 사회의 장벽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장애의 개인모델과 사회모델 간의 갈등은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보다 정교화되었다. 마크 프리스틀리(Mark Priestley)는 “장애 이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개인적 모델 접근법과 사회모델 접근법을 구분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개인적↔사회적 구분에 더하여 유물론적(materialist)↔관념론적(idealist) 축을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7]. 프리스틀리의 작업을 반영하여 4가지 장애의 모델을 구분한 결과는 Table 1과 같다.1)

Table 1. Four models of disability
Materialist account Idealist account
Individual model [Position 1]
Individual materialist model
[Position 2]
Individual idealist model
Social model [Position 3]
Social creationist model
[Position 4]
Social constructionist mo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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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입장 1]의 장애에 대한 개인적 유물론 모델(individual materialist model)은 장애를 사회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것으로, 관념론적이라기보다는 물질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앞서 살펴본 장애의 의료모델이 프리스틀리가 제시하는 [입장 1]에 해당하는 대표적 모델이다.2) 장애의 의료모델에서는 장애를 몸의 완전히 본질주의적이고 개인적인 물리적 결함[9] 내지 해악이 되는 신체적 상태[10]로 파악하며, 사회의 영향과는 무관하고 문화와 같은 관념적 요소로부터도 영향받지 않는 것으로 바라본다.

한편 장애의 사회모델은 다시 두 유형([입장 3] 사회창조론 모델, [입장 4] 사회구성주의 모델)으로 나뉜다. 사회모델의 첫 번째 유형인 [입장 3] 사회창조론 모델(social creationist model)3)은 장애를 몸의 손상과 구분하며, 장애란 물질적인 사회환경의 산물이라 주장한다[7]. 사회창조론 모델의 옹호자들이 보기에 손상을 지닌 이들이 동등하게 이동하고 활동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몸의 손상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는 손상된 몸이 이동하고 활동할 수 없게 만드는 계단의 존재나 사회서비스의 부재와 같은 사회적·물질적 환경으로 인해 발생하여 개인에게 부과되는 조건이며, 이러한 사회적·물질적 환경은 다시 사회 전반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경제 구조에 기인한다. 초기에 장애의 사회모델을 정립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던 빅터 핀켈슈타인(Victor Finkelstein)[11], 마이클 올리버 및 콜린 반스[12]와 같은 학자들이 주장한 전통적 사회모델의 많은 부분이 바로 이 사회창조론 모델로 설명될 수 있다.

2. 장애의 사회창조론 모델의 손상 개념 비판
1) 손상은 부정적인 것인가: 장애의 사회구성주의 모델과 긍정모델

이러한 급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료모델과 사회창조론 모델 사이에는 손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측면에서 유사성이 남아 있다. 사회적 기능과 활동에 있어서의 정상성을 여전히 전제하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영국의 정치철학자인 스티븐 스미스(Steven Smith)는 다음과 같이 사회창조론 모델의 한계를 지적한다.

[사회창조론 모델의 손상과 장애에 대한] 해석이 여러 면에서 (...) 의료적 모델론의 해석에 급진적인 도전을 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상적인(ordinary) 또는 정상적인(normal) 삶이라는 동일한 본질주의적 신화를 고수하고 있다. 왜냐하면 (...) [전통적 사회모델의] 해석 또한 이성적 그리고 비이상적 존재태와 연계된,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에 관한 고정된 가정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9].

이처럼 사회창조론 모델은 손상을 지닌 사람이 사회적 제한 속에서 장애화되는 과정을 강조함으로써, 보다 ‘정상적 삶’ 혹은 ‘이상적 삶’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이는 비장애인의 삶을 표준적인 것 혹은 이상적인 것으로 놓는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장애인 권리 운동의 주된 지향 중 하나인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이라는 이상조차, 독립적이고 비의존적인 비장애인의 삶의 방식을 정상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장애인의 삶을 그러한 ‘정상적인 삶’에 최대한 근접시키려는 문제적 시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미스가 지적하듯, 사회창조론 모델의 이러한 지향은 정상성과 비정상성, 자립과 의존 간의 경직된 구분이 형성되는 방식을 간과한다[9].

사회창조론 모델에 잠재해 있는 이러한 정상성 가정으로 인해, 장애인은 여전히 자신이 처해 있는 기능상의 제약과 그 배경이 되는 자신의 손상을 지닌 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된다. 사회적인 활동과 기능성에 대한 정상성 가정이 유지되는 한, 손상을 지닌 개인에 대한 사회의 낙인과 무시는 종식될 수 없고, 이러한 낙인과 무시는 다시 장애인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정상적 몸을 되찾고 싶다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도록 만들었다. 즉, 20세기 말에 태동한 전통적 사회모델은 사회적 억압 이론(social oppression theory)[4]을 주창하며 사회적 억압에 대항하는 언어를 만들어 냈지만, 이는 외부적 억압(external oppression)에 주목하였을 뿐이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상성이 장애 당사자에게 내면화되어 발생되는 내면화된 억압(internalised oppression)[13]에 대해서 전통적인 사회모델은 적절한 설명을 제공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간접적으로 내면적 억압을 영속화시키는 효과를 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창조론 모델의 한계에 천착하여, 사회적·물리적 장벽의 문제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정체성의 부정적 사회적 구성에 대한 문제까지도 초점을 맞추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9]. (Table 1의 [입장 4]) 유물론적이고 경제 결정론적인 사회창조론 모델과는 달리, 장애의 사회모델의 두 번째 유형인 사회구성주의 모델(social constructionist model)은 장애는 사회적 관념의 구성물이라 주장한다.4)5) 프리스틀리에 따르면, 문화상대주의의 관점에서 장애를 바라본 여러 학자들과 활동가들의 관점이 사회구성주의 모델의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7]. 장애란 사회적 관습과 같은 공동체 전반의 정신 상태의 산물이며, 따라서 각 사회의 문화적 인식에 따라 손상을 지닌 당사자들이 사회에 통합되거나 배제되는 정도가 달라진다. 맹(盲)에 대한 로버트 스콧(Robert A. Scott)의 고전적인 연구처럼, 맹인은 시력의 차이라는 개인적 요소로 인해 장애인이 된다기보다, 시력의 차이를 열등한 것으로 연결짓는 문화적 관습으로 인해서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다[17]. 이러한 사회구성주의 모델에 따르면 “특정한 의학적 상태(medical conditions)가 어떤 사람의 경험 및 자기 발전과 관련하여 필연적으로 결함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그 자체가 장애를 만들어내는 요인”이다[9]. 손상에 대한 의료적 해석은 장애의 의료모델 및 장애의 사회창조론 모델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으로, 손상을 지닌 몸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인식과 관련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외부적 억압일 뿐만 아니라 내면적 억압으로 장애 당사자 내면에 스며들어 개인을 장애화시킨다.6) 관련하여 로즈마리 갈런드-톰슨(Rosemarie Garland-Thomso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과적으로 보통이 아닌 몸들(extraordinary bodies)의 속성이라고 여겨지는 의미들은 내재된 신체적 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집단이 가치 있게 여기는 신체적 특징들을 소유함으로써 정당화되고, 다른 집단들에게 문화적 혹은 신체적으로 열등한 역할을 체계적으로 부여함으로써 그 우위와 자기-정체성을 유지하는 사회적 관계내에 놓인다[18].

따라서 사회구성주의 모델에서는 손상을 지닌 몸에 대한 대안적이고 긍정적인 사회적 평가를 촉구하는 것이 곧 장애화라는 사회적 억압을 해소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사회구성주의 모델에 입각했을 때 필요한 사회적 변화란, 손상을 지닌 몸과 그러한 몸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긍정적 혹은 중립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 인식의 확보이다.7)

이러한 사회구성주의 모델은 일찍이 존 스웨인(John Swain)과 샐리 프렌치(Sally French)가 주창한 장애의 긍정모델(affirmation model of disability)과 상응한다[19].8) 그들에 따르면, 손상을 가진 사람들은 “비장애인, 전문가, 부모, 미디어로부터 매일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인정하지 않는 집중 공세를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손상 경험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지닐 수 없다. 정상성에 대한 지배적인 가치와 이데올로기, 손상을 결함과 비극으로 전제하는 장애의 비극모델(tragedy model of disability)은 그 자체로 개인을 장애화하며, 경험, 삶의 즐거움,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기인식을 부정한다는 것이다[19]. 반면, 장애의 긍정모델은 이러한 손상과 손상된 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도전한다. 스웨인과 프렌치는 장애의 긍정모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긍정모델은 비장애인의 가치-적재적 추정(value-laden presumptions)을 통한 개인적 비극의 추정과 정체성 결정에 직접적으로 도전한다. 이는 비극에 대한 추정을 거부하는 것, 그리고 의존성 및 비정상성에 대한 추정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

긍정모델을 수용하는 장애인은 장애화되었다는 것(being disabled)뿐만 아니라 손상되었다는 것(being impaired)으로부터도 긍정적인 정체성을 주장한다. 손상되었다는 것의 긍정적 정체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장애인은 정상성이라는 지배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개인의 변화는 단순히 장애의 의미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아니라, 손상을 지닌 사람으로서의 삶의 가치와 타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다[19].

장애의 긍정모델에 따르면 손상의 의미 또한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으며, 사회적 편견과 손상된 몸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개선하는 것이 내면화된 사회적 억압을 개선하는 핵심에 놓인다.9) 오늘날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장애 프라이드(disability pride) 운동이나 몸-긍정(body positive) 운동이 이러한 사회구성주의 모델에 입각한 변화 촉구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장애의 긍정모델에서 손상은 무조건적인 비극이나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손상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꿈으로써 내가 스스로의 손상에 자부심을 갖고 긍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된다. 장애학자 톰 셰익스피어(Tom Shakespeare)가 지적하듯, 사회창조론 모델이 장애 당사자들에게 (자신들의 몸을 바꾸는 것이 아닌) 사회적 장벽을 없애도록 하는 정치적 전략을 찾아주었다면, 장애의 사회구성주의 모델은 장애인들에게 좀 더 강력한 정체감의 기초를 제공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21].

2) 사회창조론 모델에서 전제하는 손상과 장애의 이분법 비판

나아가 손상은 자연적인 것으로, 장애는 사회적인 것으로 이분화하려는 사회창조론 모델 자체에 대한 비판의 움직임 또한 일어났다. 페미니스트 장애학자 로즈마리 갈런드-톰슨은 손상이란 “결코 절대적이거나 고정적이지 않으며, 많은 외적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고, 보통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동하는(fluctuating) 역동적(dynamic)이고 불확정적인(contingent) 상태”라 말한다[18]. 마찬가지로 앨리슨 케이퍼(Alison Kafer) 또한 사회창조론 모델에서 말하는 손상과 장애의 엄격한 구분은 “손상과 장애가 모두 사회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한다[22]. 장애는 사회적으로 창조되는 것으로, 손상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는 사회창조론 모델의 견해와는 달리,10) 장애뿐만 아니라 손상 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이러한 견해를 윌리엄 펜슨(William J. Penson)은 장애의 이중-사회적 모델(double-social model of disability)이라 칭한다[24].11)

더 나아가, 셸리 트레마인(Shelley Tremain)은 문화적 젠더(gender)와 자연적 성(sex)의 구분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포스트모던 젠더 연구의 논의를 받아들여, 손상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지식/권력(knowledge/power)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효과”일 뿐이라 주장한다[26]. 그는 성-젠더 구분에서 성(sex)이라는 범주가 젠더(gender)라는 범주보다 앞서서 생각할 수 없다고 지적한 주디스 버틀러의 논의를 손상-장애 구분에 차용하여, 우리가 ‘손상’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장애’라는 범주가 선행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장애의 근간이 된다고 주장되는 손상은 실제로는 현재의 사회적 제도를 유지하고 심지어 강화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며, 따라서 손상은 더 이상 실제 신체의 본질적이고 생물학적 특성으로 이론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손상은 언제나 장애였다”는 것이다[26]. 이처럼 손상과 장애를 이분화시키는 사회창조론 모델에 대한 비판,12) 그리고 장애뿐만 아니라 손상까지도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장애의 이중-사회적 모델은 이후 III장에 살펴볼 질환 서사와 페미니스트 장애학의 탄생으로 이어진다.13)

3. 장애의 사회모델에 대한 비판
1) 장애의 사회모델의 한계: 손상 그 자체의 효과에 대한 간과14)

전통적인 사회창조론 모델부터 사회구성주의 모델 및 장애의 긍정모델에 이르기까지의 사회모델의 다양한 분화와 확장에도 불구하고, 사회모델이 장애 당사자의 경험을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1990년, 사회창조론 모델을 학술적으로 정립한 마이클 올리버의 저작 《장애화의 정치》(Politics of Disablement)가 나온 직후부터도 이러한 장애의 사회모델이 개인의 경험, 특히 손상과 연관된 통증과 고통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터부시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비판자들에 따르면, 몸의 손상에 부수되는 통증이나 고통과 같은 당사자의 경험이 분명 존재함에도 (사회모델의 첫 번째 형태인) 사회창조론 모델에서는 언제나 장애는 사회적 조건의 산물임을 주장하며 이러한 당사자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때로는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한다.15) 낸시 허시먼(Nancy Hirschmann)이 지적하듯, “사회모델이 극단화–장애는 오직 그리고 언제나 차별적 대우의 산물이다는 식의–될 때, 몸은, 그리고 통증 같은 신체적 경험의 어떤 측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관심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심지어 무산될” 우려가 있다[29].16) 유사한 맥락에서, 사회학자 빌 휴스(Bill Hughes)는 사회창조론 모델에서 손상을 생의료적인 것으로, 장애를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분리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만일 손상이 장애와 반대되는 것이고 장애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 당연히 손상은 사회적 의미를 갖지 않으며 자아와 분리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손상은 단지 생물학적인 기능부전의 형태로서만 인식론적인 유효성을 주장할 수 있었으며, 오로지 의료적 시선의 권력에 의해서만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장애모델에 의해 지지된, 손상 및 장애에 대한 데카르트주의적인 접근은 생의학에 의해 촉진되어 온 것과 구별될 수 없는 몸의 개념을 채택하도록 강제했다. 이는 기이하고 아이러니하기까지 한 친화성이라 할 수 있다. 장애학의 정치적 급진주의는 의료적 헤게모니에 손상 개념을 내어 주는 이론적 보수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었다[30].

다른 한편, 이러한 “아이러니하기까지 한 친화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모델의 두 번째 유형인 사회구성주의 모델에서는 이에 대한 성찰과 보완의 시도가 있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장애의 긍정모델에서는 개인의 손상된 몸에 대한 긍정적 인정을 추구하며 스스로의 손상을 긍정적으로 재구성할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손상과 장애에 대한 이분법을 비판하며 손상의 사회구성에 대해 주목하는 여러 시도들 또한 존재했다. 물론 장애의 긍정모델을 통해 개인이 경험하는 여러 어려움의 많은 부분이 개선될 것임은 틀림없으나,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다. 바로 통증과 같은, 손상과 관련한 부정적 경험의 문제이다.17) 통증이나 손상의 악화와 같이, 쉬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개인적 손상의 경험은 분명 당사자에게 이를 긍정하고 프라이드를 갖도록 요청할 수만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18) 거부할 수 없는 몸의 통증과 손상의 악화 앞에서, 사회적 장벽의 철폐만을 이야기하거나(사회창조론 모델), 스스로의 손상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긍정을 촉구하는 것(사회구성주의 모델 및 긍정모델)은 모두 장애 당사자의 경험과 필요를 적절히 포착해 내지 못하는 듯이 보이는 것이다. 장애 당사자이자 사회 운동가인 일라이 클레어(Eli Clare)의 말처럼 “사회적 부정의의 외적이고 집단적이며 물질적인 본성을 몸과 분리된 것으로 정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때때로 몸과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억압을 경험하는지’를 연결하는 심층적 관계성을 외면해 왔던 것”이다[33].

2) 손상으로 인한 조건적·비조건적 불리함의 구분

사회적 장벽이나 손상된 몸과 기능에 대한 정상성의 가정을 철폐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손상 그 자체의 경험이 존재한다면, 이를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 가지 가능성은 손상 그 자체의 경험을 설명하는 거의 유일한 언어였던 의료모델을 차용하는 것이지만, 이는 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정립하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과거로 퇴행하는 것일 뿐이다. 이에 낸시 허시먼은 의료모델이 사용해 온 용어와 손상 간의 부정적인 관념연합을 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어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라 주장한다. 우리가 “장애인에 대한 학대와 비인간화가 자행되었던 과거로 회귀하기를 원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의 신체적 측면들은 인정”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우리는 “의료모델이 사용해 온 용어들과의 부정적인 관념연합을 피하기 위해서, 이런 측면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용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29].

이러한 문제 속에서 캐롤 토머스(Carol Thomas)는 손상됨과 관련한,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활동의 제약을 ”손상 효과(impairment effects)“라 명명하였다[34]. 많은 손상 연관적 경험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측면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증과 같이 (사회창조론 모델에서 말하는) 장애가 아닌, 손상 그 자체에 의한 활동의 제약이 손상 효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캐롤 토머스는 손상 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손상 효과란, 손상(신체적, 감각적, 지적)이 사회에서 개인의 체화된 기능(embodied functioning)에 미치는 직접적이고 피할 수 없는(direct and unavoidable) 영향이다. 손상과 손상 효과는 항상 생물사회적(biosocial) 성격을 띠며, 생애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35].

이러한 캐롤 토머스의 이론에 천착하여, 톰 셰익스피어는 장애는 손상 효과와 거의 항상 날실과 씨실처럼 얽혀 있다고 지적한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장애와 손상 효과 간의 상호작용을 “손상과 장애의 상호침투(interpenetration of impairment and disability)”라 명명하며[21], 다음과 같이 손상의 역할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많은 장애인 권리 운동가는 닫힌 문 뒤에서는 아픔과 통증, 요로감염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밖에서 캠페인을 벌일 때에는 몸의 중요성에 대해서 여전히 부정한다. 그러나 이런 불일치는 물론 잘못된 것이다. 만약 모두가 사적으로는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행동하면서 공적인 담론에서는 한 가지만을 말한다면, 아마도 그 담론은 재고되고 좀 더 정확하게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 사회모델 접근이 손상의 역할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장애인이 처한 사회적 상황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21].

이처럼 손상 그 자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촉구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주로 사회적 편견이나 낙인, 고정관념 등으로 인하여 생성된 손상의 불리함과 이러한 사회적 조건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손상의 불리함을 구분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론 아문슨(Ron Amundson)과 샤리 트레스키(Shari Tresky)는 손상에 의한 불리함(disadvantage)을 사회적 맥락과의 관련성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나눈다[36].

  • 손상의 조건적 불리함(conditional disadvantages of impairment, CDI) : 손상을 지닌 사람에 의해서 경험되는, 그러나 당사자가 사는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생산되는 불리함.

  • 손상의 비조건적 불리함(unconditional disadvantages of impairment, UDI) : 손상을 지닌 사람에 의해서 경험되는, 그러나 당사자가 사는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무관하게 생산되는 불리함.

앞서 살펴본 의료모델에서는 장애에 의한 불리함은 대부분 사회적 맥락과는 연관이 없는 것으로, 즉 대부분 비조건적 불리함(UDI)인 것으로 파악해 왔다. 반면 사회창조론 모델에서는 비조건적 불리함으로 여겨졌던 많은 것들이 실은 조건적이며 사회적 맥락을 바꿈에 따라 해소될 수 있는 것임을 주장하였지만, ‘사회적 장애’로부터 ‘개인적 손상’을 분리해 냄으로써 손상은 여전히 사회적 맥락과는 무관한 비조건적 영역으로 남겨져 버렸다.19) 즉, 전통적 사회모델에서는 손상의 비조건적 불리함(UDI)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비조건적 불리함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의료모델로 회귀할 위험을 높이고 그 이면의 사회적 구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지양되었다. 손상은 의료모델에서도, 이를 비판한 사회창조론 모델에서도 비조건적 불리함의 영역으로 남겨졌던 것이다.20)

한편 사회구성주의 모델에서는 손상이나 손상의 비조건적 불리함(UDI)조차 사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다르게 말해 손상의 조건적 불리함(CDI)이었음을 지적해 왔다. 사회구성주의 모델에 따르면, 손상을 지닌 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사회적 인식과 편견, 그리고 이것이 내면화된 억압을 형성함으로써 발생하는 손상의 불리함은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생성되는 조건적인 것이다. 관련하여 리즈 크로우(Liz Crow)는 1996년의 글에서 손상의 사실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을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손상은 단순히 신체의 일부가 기능하지 않거나 기능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종 이것은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신체, 궁극적으로 그 사람이 열등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해석입니다. 이러한 해석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고정되거나 불가피한 것이 아니며, 우리 자신의 손상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해석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38].

그러나 손상으로 인한 불리함의 많은 부분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여전히 손상에는 그 자체로 어려움을 초래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사회구성주의 모델에 충실히 따르더라도, (통증과 같은) 손상의 비조건적 불리함(UDI)은 일정 부분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캐롤 토머스가 손상 효과를 명명하며 포착하고자 했던 것 또한, 여전히 남아 있는 손상의 비조건적 불리함(UDI)을 설명해 내려는 하나의 시도였다.21)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손상 효과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의료모델로 회귀하지 않는 손상 효과에 대한 설명은 가능할까. 손상을 경험하는 사적 경험에 관심을 두고 새로운 이론 틀을 개발하고자 했던 페미니스트 장애학자들의 논의를 살펴보기에 앞서,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질환 서사(illness narrative) 논의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 보자.

III. 질환 서사와 페미니스트 장애학: 손상과 통증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1. 질병, 장애 그리고 서사(narrative)

장애의 사회모델이 이론화되고 장애학이 새로운 학문 분과로 정립되던 1980–1990년대, 다른 한편에서는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만성적으로 질병을 겪어내는 사람들의 체험에 주목하는 학술적·사회운동적 움직임이 탄생했다. 질병 체험을 다룬 문학작품들을 통해 질병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한 ‘문학과 의학(literature and medicine)’ 분야가 이러한 움직임의 포문을 열었다.22) 이어서 의료인류학과 의료사회학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서의 논의가 뒷따랐다. 대표적 저작으로, 1988년 의료인류학자 아서 클라인만(Arthur Kleinman)은 《질환 서사》(Illness Narrative)를 통해 질병 당사자의 서사에 주목하지 않는 의료계의 현실에 경종을 울렸고[42], 이어서 의료사회학자 아서 프랭크(Arthur Frank)가 자신의 암 투병의 경험을 토대로 1991년 《몸의 의지로: 질환에 대한 성찰》(At the Will of the Body: Reflections on Illness)를[43]23), 1995년에는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The Wounded Storyteller)를 출간했다[44]24). 아서 프랭크는 1991년의 저작에서 “통증 속에 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아픈 사람이 자신의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리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아픈 사람이 자기 질병에 관해 하는 말은 대부분 자신에게서 나온다기보다는 의사라든지 그 밖의 의료진에게서 온다”는 점을 지적한다[43]. 즉, 질환과 고통을 겪어내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당사자는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으며, 이로 인해 의료의 언어를 차용하여 자신의 질환 경험을 설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서 프랭크는 아픈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하고 오직 의료화된 언어 속에서 진단명을 말하거나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설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의료의 식민화”라 비판한다.25)26) 그 예시로, 그는 암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암과의 전쟁을 벌이는 의학’이라는 의료의 언어와 프레임 속에서 자신이 겪었던 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종양은 통증을 일으켰고 생명을 위협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일부였다. 변화를 주지 않으면 내 몸은 얼마 못 가 기능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지만, 이 몸은 여전히 나 자신이었고 종양은 바로 이 몸의 일부였다. 내 몸을 전쟁을 벌이고 있는 두 편으로 나눌 수는 없었다. 종양은 나쁜 놈들이고 이에 맞서 건강한 원래의 내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종양까지도 포함하는 오직 하나의 나, 하나의 몸만이 있었다. 내가 여전히 하나의 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편해졌다[43].

“오직 하나의 나, 하나의 몸만이 있었다”는 아서 프랭크의 이러한 성찰은, ‘나’와 ‘질병’을 끊임없이 대립시키는 의학의 언어에서 벗어나는 것이자, 자신의 손상된 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의학의 언어 바깥에서 설명할 수 있는 단초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랭크는 “몸은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며, 당사자가 겪어낸 몸의 경험은 그 고유의 지식과 서사를 생산해 낼 수 있고, 또한 생산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44]. 이처럼 1990년 장애학 분야에서 마이클 올리버가 《장애화의 정치》(Politics of Disablement)라는 기념비적 저작을 출간하였던 바로 그 무렵, 질병 경험에 주목한 이들은 그와는 다른 언어로 몸의 경험에 서사를 부여하고 이론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2. 페미니스트 장애학과 이에 대한 전통적 사회모델의 비판

장애에 서사적 접근이 적극적으로 도입된 또 하나의 계기는 페미니스트 장애학의 발전에 기인한다. 장애학과 장애 운동이 사회모델에 기반하여 사회적 장벽의 철폐를 외쳤던 1990년대, 다른 한편에서 페미니스트 장애학자들은 장애의 사회모델에서 질병과 손상을 겪어내는 당사자의 주관적 체험이 누락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제니 모리스(Jenny Morris)는 1993년 ‘페미니즘과 장애(Feminism and Disability)’라는 선구적인 글에서 당대의 장애학이 “장애인의 주관적 현실을 다루지 않고, 우리를 대상화하여 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소외”시킨다고 비판한다[47]. 모리스에 따르면 이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은, 여성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 정당한 연구 영역이라고 주장해 왔던 페미니즘 이론과 방법론을 장애 연구에 접목하는 것이었다[47].

질병과 몸의 손상을 경험했던 페미니스트들은 1990년대부터 앞서 살펴본 문학과 의학, 질환 서사 운동 및 페미니즘 방법론의 전통으로부터 서사적 접근법을 받아들여, 몸을 둘러싼 자신의 경험에 대한 새로운 장애학의 흐름을 개척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수전 웬델(Susan Wendell)이나 캐롤 토머스, 로즈마리 갈런드-톰슨 등 여러 페미니스트 장애학자와 활동가들은 이미 1990년대부터 장애의 전통적 사회모델이 자신이 겪고 있는 몸의 경험을 적절히 설명해 주지 못함을 지적해 왔다. 모리스는 1993년 저작에서 “장애는 질환, 노령, 그리고 불가피한 고통의 상태와 관련이 있으며, 장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인체의 연약함(frailty)을 경험하는 것”이라 말한다. 모리스는 이러한 통증과 같은 장애의 육체적 측면을 부정하면, 개인적 장애 경험은 고립된 것으로 남을 뿐이라 주장한다[47]. 이에 페미니스트 장애학에서는 사회적 장벽이 해소되어도 남아 있는 몸의 통증과 고통의 경험에 주목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장애학에 손상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대두되었다[35].

이러한 맥락 속에서 앞서 살펴본 캐롤 토머스의 ’손상 효과‘ 및 아문슨과 트레스키의 ‘손상의 비조건적 불리함(UDI)’ 개념이 이론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통증과 같이 손상된 몸에 피할 수 없는 부정적 경험이 동반된다면, 장애의 의료모델로 회귀하지 않고 이를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 의료모델에서 사회창조론 모델로의 패러다임 전환 과정에서 쫓겨났던 손상을 다시 들여올 필요성이 생겼지만, 그 방식이 기존의 의료모델이나 개인적 모델의 방식이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교착상태 속에서, 손상의 불리함도 주관적 해석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여 개개인의 서사 속에 서로 다르게 자리 잡는다는 점이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크로우는 장애 당사자가 겪는 손상의 경험과 해석의 중요성을 자서전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기 해석은 객관적인 손상 개념에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을 추가합니다. 개인적 해석에는 손상이 개인에게 갖는 의미, 손상이 유발하는 감정,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우려가 포함됩니다. 개인은 자신의 손상을 긍정, 중립 또는 부정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이는 시간과 상황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손상에 대한 경험과 역사가 자서전의 일부가 됩니다. 장애 경험과 우리 삶의 다른 측면이 결합되어 우리 자신에 대한 완전한 감각을 형성합니다[38].

장애에 대한 서사적 접근을 취하게 되면, 통증이라는 ‘손상의 비조건적 불리함(UDI)’ 또한 (크로우가 지적하듯) 개인의 자전적 서사의 일부로 ‘해석’된다. 그리고 손상 효과로서의 통증이 이러한 해석을 거쳐 개인의 삶의 서사의 일부가 된다면, (통증 자체는 비조건적 불리함이자 부정적 속성일지라도) 서사에 통합된 ‘해석된 통증’은 당사자에게 다른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다발성 경화증을 겪었던 수전 웬델이 자신의 통증에 대해 썼던 다음의 글은 ‘통증 그 자체’와 ‘해석을 거쳐 서사에 통합된 통증’ 사이의 차이를 잘 드러낸다.

나는 더 강한 체력을 갖고 싶고 통증이 없어졌으면 좋겠고 또 어느 정도 몸이 예측 가능하기를 원한다. (...) 누군가 근육통성 뇌척수염으로 진단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어떻게 내가 그 병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위한 치료법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내가 그 병에 걸리지 않았었다면 하고 바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병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 즉 내가 기꺼이 되고 싶고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고, 내가 ‘치유’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변화를 포기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장애의 모든 생물학적 원인을 없애버리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당연시하는 사람들[에게는,] (...) 그 동기가 고통을 덜어주고 예방하려는 것이라 해도 고통 이외에 우리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2].

수전 웬델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만성질환에 동반된 통증과 같은 손상의 비조건적 불리함(UDI)은 해석을 거쳐 당사자의 자전적 서사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을 거쳐 서사에 통합된 통증’은 모든 측면에서 부정적인 것도, 장애의 의료모델에서 말하는 손상의 부정성으로 완전히 환원되는 것도 아니다. 즉, 장애에 대한 서사적 접근에서는 통증을 비롯한 여러 손상 효과들을 당사자의 해석이라는 렌즈를 통과하여 주관적으로 경험되는 것으로 새롭게 개념화한다. 이처럼 손상 효과가 해석의 렌즈를 통과해 당사자의 서사 속에 비추어짐으로써, 서사적 접근은 당사자의 개인적 통증을 다루는 것이 의료모델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라는 전통적 사회모델의 옹호자들의 우려를 해소할 가능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만약 서사적 접근을 따라 당사자의 경험과 서사를 장애 개념의 중심에 놓는다면, 이는 이제까지 살펴본 사회모델의 성과들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다른 측면의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전통적인 사회모델을 옹호하는 핀켈슈타인은 이러한 개인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우리를 장애화 하고 있는(disabling) 저 바깥의 세상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데 있어, 과거의 불명예스럽고 무익한 접근 방식으로 되돌아가게 한다”고 비판한다[48]. 마이클 올리버 또한 장애의 사회모델의 30주년을 회고하며 작성한 글에서 개인적 경험과 서사에 초점을 맞추는 장애 접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그러나 나와 다른 사람들은 손상과 차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사회모델을 탈정치화할 뿐이며, 장애인의 생활 방식을 개선하거나 지키는 캠페인을 개발하는 데 유용한 접근방식이나 대안모델 개발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 지적해 왔다. (...) 그리고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손상과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 몰아치는 경제위기에 따른 장애권리 예산 삭감과 같은 경제적 폭풍으로부터 장애인을, 우리의 복지수당과 서비스를 보호하는 데 무력한 전략이었다. (...) 한때 장애라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단결했던 장애인 운동은 이제 깊은 분열을 겪으며 거의 사라졌고, 장애인은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정부의 자비에 맡겨져, 자기 이익에 사로잡힌 대형 자선단체 외에는 우리를 보호해 줄 주체가 아무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 사실상 우리는 사회모델이 존재하기 전으로, 즉 30년 이상을 거슬러 후퇴했다[49].

물론 장애에 대한 서사적 접근의 옹호자들은 장애 당사자의 사적 서사 속에 녹아들어 있는 다양한 사회적 장벽과 차별을 두텁게 읽어냄으로써 사회모델의 성과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장애를 초래하는 사회환경에 대한 그러한 간접적 강조로 인해 사회창조론 모델이 지녔던 ‘장애=사회적 장벽’이라는 명확한 메시지가 상실되고, 소수자들 간의 연대의 가능성을 상실한다는 핀켈슈타인과 올리버의 지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살펴본 장애-손상의 구분을 둘러싼 다양한 장애의 모델들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모델들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의 한계를 검토하고, 그 대안으로서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IV. 장애의 개념공학과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

1. 장애 모델의 다원성과 개념공학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각각의 장애의 모델들은 장애를 둘러싼 특정한 규범적 요구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치료 및 재활 서비스 제공에만 머물러 있는 현실에 대한 응답으로 장애의 사회창조론 모델이,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포착하기 위해 장애의 사회구성주의 모델이, 손상의 주관적 경험이 소외되는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써 서사적 접근이 개발되어 현실의 문제와 함께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의 규범적 문제에 대응하여 장애 개념이 새롭게 개발되고 기존의 장애 개념들과 경합해 왔던 이와 같은 역사적 과정은, 최근 메타-의미론(meta-semantics) 및 사회 존재론(social ontology)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개념공학(conceptual engineering)의 한 사례로 적절히 설명될 수 있다.27) 개념공학은 ‘개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해 왔던 기존의 철학적 질문이 아닌, ‘해당 개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묻는다. 개념공학의 기본적 가정은, 특정 개념에 대해 현재 우리가 견지하고 있는 의미가 반드시 규범적으로 이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개선·개량하는 것이 중요한 학문적 목적이 될 수 있다.28) 관련하여 마티 에크룬드(Matti Eklun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철학자들은 흔히 현실의 개념이나 개념이 나타내는 속성이나 관계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철학자들은 이러한 관심이 실재의 관련 측면을 이해하는 데 정말 최선의 도구인지 자문하고, 많은 경우 무엇이 더 선호할 만한 대체물일지를 고려해야 한다. 즉, 철학자는 개념 공학(conceptual engineering)에 관여해야 한다. 비교해 보라: 물리학자들은 실재를 연구할 때 통속 물리학(folk physics)의 개념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이론적 목적에 더 적합한 개념을 사용한다. 왜 철학자가 연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물리학과 다른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우리 스스로가 사용하는 개념이 해당 목적에 가장 적합한 개념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panglossian)일 수 있다[54].

이처럼 개념공학에서는 개념이 구성된 방식이 사회정의를 실현하기에 부적합하게 설정되었다고 판단될 때에는 그 개념 자체를 새롭게 개선하고자 하는 규범적 입장을 취한다.29) 따라서 장애의 개념을 둘러싸고 실천가들과 이론가들에 의해 다양한 모델이 개발되어 서로 경합해 온 역사 또한 이러한 개념공학의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장애의 모델들은 단순히 기술적(descriptive) 정확성의 측면이 아닌, 장애차별주의와 맞서 싸우고 장애인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개발되고 옹호되어 왔기 때문이다[56]. 시미 린튼(Simi Linton)은 자신의 사회운동적·학술적 기획이 장애라는 용어를 바꾸는 것이 아닌, 장애의 의미가 지시하는 바를 정치적인 것으로 변경하는 것이라 주장하는데, 이는 장애 개념을 둘러싸고 진행되어 온 개념공학적 구상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장애 개념에 대해] 새로운 용어를 택하기 보다는 그 의미를 재정립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장애’라는 용어를 유지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떠올리는 생각 속 의료화된 관념을 그대로 유지시킬 위험이 있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장애가 속하는 정치적 범주(political category)를 명명하는 것이다. 여성은 젠더(gender)의 범주이고, 흑인이나 라틴계는 인종/에스니시티(race/ethnicity)의 범주이며, 이러한 범주에 대한 인식이 여성과 흑인의 정치적 의미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왔다. 인종과 젠더는 많은 부분에서 생물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용어는 아니지만, 이 범주들은 점점 더 권력과 자원이 분배되는 억압의 축으로 이해되고 있다. (...) 이러한 축의 명명과 인식은 관련 문제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얻는 데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57].

린튼의 기획과 유사하게, 다양한 장애 모델들 또한 ‘장애’라는 용어를 유지하되, 그 개념이 무엇을 뜻하는지(혹은 그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각 모델의 전략적 목적에 맞추어 다르게 정립해 왔다. 각각의 장애 모델은 장애라는 동일한 이름하에 실은 서로 다른 것을 지칭하며 다원적 가치를 추구해 왔던 것이다.

2.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필요성

장애의 모델들 간의 논쟁이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장애에 대한 오랜 개념공학적 논쟁 끝에도 이러한 다양한 모델들 중 하나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모델들이 여전히 경합하고 있는 이유는 (물론 논쟁의 복잡성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각 장애 모델은 각자의 특정한 가치 증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으며[58], 그러한 가치는 서로 간에 환원될 수 없는 다원적인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장애와 관련한 여러 가치들을 생각해 보자: 치료를 통한 장애 당사자의 통증 감소, 사회의 물리적 장벽 해소와 접근성 향상,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의 감소, 장애인이 자전적 서사를 쓸 때 취할 수 있는 문화적 레퍼토리의 확장. 이러한 각각의 다원적 가치들은 온전히 그중의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각 가치가 훼손되는 상황에서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장애의 모델들은 그러한 비환원적 가치 각각을 추구하기 위한 중요한 이론적 틀로 작동한다.

이처럼 장애의 개념화 방식은 각각 특정한 규범적 요구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고안되고 만들어졌다는 고유한 특수성을 갖는다. 크로우는 손상의 다양한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함을 1996년에 선구적으로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장애와 손상 개념의 다원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손상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손상의 객관적인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1976년 분리에 반대하는 세계 장애인연합(UPIAS)에서 합의한 개념으로, 이후 국제장애인연맹(DPI)에서 다양한 비신체적 손상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하도록 발전시켰습니다. (...) 둘째, 개인이 손상의 정의에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을 전달하는 주관적인 손상 경험에 대한 개인적 해석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표되지 못함, 사회적 배제 및 차별이 결합되어 손상을 가진 사람들을 장애화시키는, 더 넓은 사회적 맥락이 손상에 미치는 영향이 있습니다. (...) 이 세 가지의 모든 측면이 지금 우리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경험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38].

크로우가 “손상의 객관적인 개념”이라 칭한 것은 의료모델과 같은 개인적 유물론 모델과, “사회적 맥락이 손상에 미치는 영향”은 사회창조론 모델 및 사회구성주의 모델과, “주관적인 손상 경험”은 앞서 살펴본 서사적 접근과 개략적으로 상응한다. 이처럼 우리가 ‘장애’라 칭해온 것은 단일한 것이 아니며, 장애학자 토빈 시버스(Tobin Siebers)가 지적하듯 장애학과 장애운동은 서로 다른 사회정의의 문제를 포착하기 위해 장애에 대한 서로 모순되는 용법과 태도를 개발시켜 왔다[59]. 그렇기에, 만약 여러 장애의 모델들 중 한 가지를 택하여 장애에 대한 단일한 개념화 방식을 취하게 되면, 장애인의 규범적 요구들의 일부가 누락되거나, 최소한 간접적으로밖에 다뤄질 수 없다는 난점이 발생한다. 장애 모델 수립의 역사가 이미 일종의 전략적 개념공학의 결과였음을 고려할 때, 그 다원성을 하나의 모델로 환원시키는 방식이 규범적으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부드리는 장애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다의적(polysemic)임을 지적한다[27]. 그의 주장에서 특히 주목할 지점은, 여러 장애 모델에서의 장애 정의(定義)는 하나로 환원될 수 없음을 지적하는 부분이다. 그가 보기에 여러 장애 모델에서의 장애 정의는 근본적으로 규범적이고 가치-적재적(value-laden)이기에, “장애에 대한 한 가지 해석을 다른 해석보다 우선하여 선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지 않다[27].” 애초에 장애학과 장애 운동의 출발부터 장애에 대한 정의(定義)는 윤리적·정치적 함의를 강하게 전제한 상태로 내려졌으며 환원 불가능한 서로 다른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데 사용되어 왔기에, 장애 개념을 단일한 존재론적 기준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27]. 이를테면 장애의 정의(定義)를 사회모델의 관점으로, 혹은 의료모델의 관점으로 축소하여 장애를 단일하고 보편적 방식으로 명확히 규정하려는 시도는 장애의 일면만을 포착할 수 있을 뿐이며[60], 각 주체가 그러한 확정적 설명에 합의할 가능성도 낮다. 이에 부드리는 장애를 하나의 확정적이고 단일한 개념으로 환원시키지 않을 것을, 장애에 대한 개방적 접근(open-ended approach)을 취할 것을 권한다[60].

이에 본 장에서는 장애의 모델들을 화해시키는 하나의 개념공학적 전략으로,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pluralistic approach to disability)’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탐색적 수준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이는 부드리의 개방적 접근의 한 가지 구체화이자, 해슬랭어의 사회적 범주에 대한 다원적 접근(pluralistic approach)[61]을 장애 개념에 적용한 것이기도 하다.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에서는 장애 개념이 지향하는 바의 다원성을 허용하고,30) 여러 장애의 모델들이 포착하고 있는 다원적 장애들이 ‘장애’로 지칭될 수 있다고 받아들인다. 이는 장애인의 규범적 요구로부터 장애의 개념이 재정의되어 온 장애의 고유한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이며,31) 하나의 장애 모델을 채택함으로써 그 모델이 다루지 못하는 다른 규범적 요구를 적절히 포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전략적인 개념공학적 시도이기도 하다.32)

이러한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강점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각각의 장애 모델들에서의 서로 다른 장애에 대한 개념화 방식들을 수용하기에, 각 모델이 달성하고자 하는 여러 다원적 가치를 달성하기 용이하다. 이를테면 물리적 접근성의 문제가 쟁점이 될 때에는 사회창조론 모델에 기반한 장애 개념을, 사회문화적 편견과 낙인이 쟁점이 될 때에는 프리스틀리식의 사회구성주의 모델에 기반한 장애 개념을 통해 각각의 문제를 용이하게 포착할 수 있다. 각 장애의 모델들은 서로 다른 가치를 실현하려는 목적하에 상정된 개념공학적 산물이기에, 장애가 애초에 구성적 개념이라면 해당 개념을 다원적인 것으로 사용함으로써 다원적 가치를 가장 적절히 추구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원적 접근의 두 번째 강점은, 특정한 단일 모델만으로는 모두 포괄할 수 없는 상이한 유형의 여러 장애들을 ‘장애’라는 이름으로 적절히 포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애의 유형과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이러한 장애의 다양성은 장애의 모델이 하나로 환원되기 어렵게 만드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위의 두 강점을 선명히 하기 위해, 만약 배타적으로 하나의 장애의 모델만이 채택된다면 장애를 둘러싼 규범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데에 어떤 문제가 초래되는지 검토해 보자. 하나의 예시로, 장애의 사회창조론 모델만이 배타적으로 선택되는 경우에 정신장애 당사자가 처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II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장애의 사회창조론 모델에서는 장애를 사회경제적 관계의 물질적 산물로서 개인의 손상 위에 부과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정신장애의 경우,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것은 (적어도 직접적 방식으로는) 장애를 구성하는 것도, 장애를 초래하는 것도, 장애 당사자가 겪는 고통이나 경험을 잘 설명해 내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정신장애인이 겪는 고통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인 낙인과 편견을 생각해 보자. 사회창조론 모델에서 말하는 사회적·물질적 산물로서의 장애 개념으로는 이러한 정신장애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적절히 설명하기 어렵다[64]. 나아가, 설사 사회창조론 모델에서 낙인과 편견에 대해 간접적이고 부차적으로 설명해 내는 방식을 고안해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모델을 단독으로 선택하는 것이 개념공학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사회창조론 모델이 장애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를 제안하며 추구했던 사회적 억압의 종식이라는 목적이, 적어도 정신장애를 둘러싼 낙인과 편견이라는 문화적·관념적 영역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단과 같은 사회적 장벽의 존재를 잘 포착하는, 따라서 신체적 장애를 둘러싼 사회정의를 달성하기 위한 뛰어난 개념공학적 산물이었던 사회창조론 모델은, 정신장애를 둘러싼 부정의를 설명하는 데에는 적절한 설명 방식이 아닌 듯이 보인다. 배타적 사회창조론 모델을 취하는 것은 정신장애를 포함하는 장애의 개념공학에 있어서 적절한 전략이 아닌 것이다.

장애의 특정 모델을 배타적으로 선택하는 경우 발생하는 이러한 규범적 문제는 이외에도 다양하다. III장에서 손상 효과와 손상의 비조건적 불리함(UDI)으로 포착하고자 했던 통증의 문제를 떠올려 보자. 만약 사회창조론 모델만으로 장애를 개념화한다면, 개인의 손상된 몸에 동반된 고통이나 통증을 치료하려는 개인의 시도는 사회창조론적 장애의 언어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오히려 그러한 사적 치료 행위는, 장애의 사회적 원인을 개인의 몸을 변화시켜 해결하려 한다는 사회창조론 모델 옹호자들의 날 선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물론, 일부 사회창조론 모델의 옹호자들은 치료의 문제는 손상과 관련된 것으로 남겨 놓으면 된다고 반론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II장에서 살펴본 장애-손상 이분법 비판에 맞닥뜨리게 되며, 손상의 치료를 의료모델과 같은 자연주의적 접근으로 축소시킨다는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처럼 사회창조론 모델을 배타적으로 택하는 것은, 장애인의 몸과 치료를 둘러싼 여러 규범적이고 사회적인 요구를 적절히 포착하는 최선의 개념화 방식이 될 수 없는 듯이 보인다.

하나의 장애 모델을 배타적으로 선택할 때의 이와 같은 규범적 난점은 사회창조론 모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모델이나 긍정모델, 혹은 서사적 접근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장애 모델을 배타적으로 고수하는 경우에 유사한 규범적 어려움이 발생함을 앞선 II, III장의 논의로부터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단일한 장애 모델을 배타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다양한 장애를 설명하는 데에도, 장애를 둘러싼 다양한 규범적 요구를 포착하는 데에도 적절한 전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책으로, 장애의 개념적 다원성을 인정하고 포괄하는 다원적 접근 방식이 주요하게 고려될 수 있다. 애초에 장애 모델 각각이 기존 관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규범적 요구들을 포착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다원적 규범적 요구들을 가장 잘 달성하도록 해주는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이 유력한 개념공학적 대안일 수 있는 것이다.33)

3.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가능성

이제까지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질문은,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일 것이다.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을 하나의 모델로 구체화하여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본 절의 범위를 넘어서는 별도의 작업이 필요할 것이기에,34) 본 절에서는 다른 사회적 범주에 대한 선행연구를 참고하여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가능한 반론을 검토하는 것으로 범위를 좁혀 논의하고자 한다.

장애를 둘러싼 규범적 요구에 적절히 응답하기 위해서는 다원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본 논문의 주장과 유사하게, 젠더와 인종과 같은 다른 사회적 범주에 대해서도 해당 범주와 관련한 부정의를 적절히 포착하기 위해 다원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최근 활발히 제기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인고 브리간트(Ingo Brigandt)와 에스터 로사리오(Esther Rosario)는 전략적 개념공학(strategic conceptual engineering)의 입장에서 ‘젠더’ 범주를 다원적으로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들은 하나의 개념으로 모든 목표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기에, 젠더 개념에는 ‘다원성’과 ‘개방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63].35) 그 구체적 방식으로, 브리간트와 로사리오는 젠더 개념을 통해 달성되어야 할 사회적-정치적 목표(socio-political aims)의 서로 다른 세 가지 차원을 식별한 뒤,36) 각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서로 다른 세 가지 젠더 개념이 필요하다고 논증한다[63]. 이전의 젠더 개념에 대한 논의들은 각각의 개념을 배타적으로 옹호하는 과정에서 다른 다원적 목적들을 함께 달성하는 데 실패했기에, 젠더 개념을 다원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신들의 입장이 젠더를 통한 사회 정의 실현에 보다 적절하다는 것이다. 젠더라는 사회적 범주의 ‘목적’을 식별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개념’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는, 개념을 규범적 목적에 부합하는 도구로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저자들의 개념공학적 기획을 명확히 보여준다.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연구로, 캐서린 젠킨스(Katharine Jenkins)의 젠더에 대한 다원적 설명을 참고할 수 있다. 앞선 연구와 유사하게, 젠킨스 또한 여러 규범적 기획을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젠더와 같은 사회적 범주가 다원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7) 그러나 젠킨스의 연구가 앞선 다른 브리간트와 로사리오의 연구와 차별화되는 점은, 특정 사회적 범주에 대한 다원적 설명들을 하나의 틀로 조직할 수 있는 이론적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젠킨스는 특정 사회적 범주에 속한 개인들에게는 해당 범주 특유의 사회적 제한들(constraints)과 사회적 권한들(enablements)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러한 제한과 권한의 조합이 해당 사회적 범주를 구성해 낸다고 주장한다[66]. 예를 들어 ‘아내’라는 사회적 범주 특유의 사회적 제한들과 권한들의 묶음이 식별되었다면, 특정 개인에게 부여된 제한과 권한의 조합이 이에 부합하는지 확인함으로써 ’아내’라는 범주에의 포함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젠킨스는 이러한 틀을 ’제한과 권한 프레임워크(constraints and enablements framework)’라 명명하는데, 이러한 프레임워크를 통해 사회적 범주에 대한 다원적 설명의 체계적 이해가 가능해진다[66]. 다양한 이론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이한 규범적 고려 사항들은 어떤 개인에게 부여된 제한과 권한의 차원으로 투영될 수 있는데, 따라서 그 제한과 권한의 조합을 통해 규정된 사회적 범주는 (제한과 권한이라는 평면 위에 투영된) 다원적 가치들을 보다 정합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66]. 젠킨스는 이런 프레임워크를 젠더와 인종에 대해 적용하였으나,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에서도 이를 차용할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사회창조론 모델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회적·물리적 장벽이나 사회구성주의 모델에서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낙인과 편견, 그 밖에 다양한 장애 모델에서 제기하는 다양한 규범적 고려 사항들이 제한·권한의 차원으로 투영될 수 있다면, 그 제한과 권한의 조합으로 구성된 ‘장애’라는 사회적 범주를 통해 다원적 가치를 정합적으로 설명해 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다원적 접근은 자칫 잘못하면 여러 이질적 설명들이 뒤섞인 일종의 존재론적 무질서 상태(ontological free-for-all)가 되기 쉬우며[66], 체계적 방식으로 각 의견의 차이를 이해하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젠킨스의 이론은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을 체계화하는 데에 있어서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가능한 비판에 응답하며 본 절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원적 접근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장애를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른 것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게 되면 해당 범주를 이용한 소통 기능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하며, 관련한 사회적 범주가 무한히 증식될 수 있기에 ‘장애’라는 범주와 그 구성원에 대한 일반화와 귀납적 추론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비판할 수 있다[67]. 예를 들어,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에서 여러 장애의 모델들을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장애’라는 개념이 의미하는 바가 다양해지기에 매번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장애(사회창조론 모델)’이나 ‘장애(긍정모델)’과 같이 구분해 주어야 하며, 나아가 ‘장애’라는 사회적 범주를 통한 일반화와 귀납 추론 자체를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다원적 접근을 옹호하는 두 가지 응답이 가능하다. 첫 번째로, ‘장애’라는 사회적 범주가 층위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우려가 적절히 해소될 수 있다. 하나의 예로, 사회창조론 모델에서의 장애 범주를 생각해 보자. 사회창조론 모델에서 장애를 유발하는 사회적·물리적 장벽은 서로 다르고 구별될 수 있기에, 각 장벽에 따라 장애를 세분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사회적 장벽 A로 인한 장애는 장애(A)로, 사회적 장벽 B로 인한 장애는 장애(B)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사회적 장벽의 종류에 따라 장애라는 범주가 세분화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보다 상위의 통합된 장애 범주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회창조론 모델에서는 장애(A)와 장애(B), … 장애(X) 모두가 ‘사회적 장벽에 의해 유발되었다‘는 공통점에 근거하여 그 모두를 하나의 (사회창조론적) 장애로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에서도 각 모델에서 추구하는 규범적 목적에 따라 장애의 범주가 세분화될 수는 있지만, 이로부터 ‘장애’라는 통합된 사회적 범주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따라 나오지는 않는다. 하나의 예로, 앞서 살펴본 제한과 권한의 프레임워크를 이용하여 장애 범주의 층위를 식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자. 각 장애 모델별로 신체·정신적 차이가 있는 개인에 대한 제약과 권한의 특유한 조합들을 식별하고, 그러한 조합들의 느슨한 집합으로서 통합된 장애 범주를 구성한다면,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과 함께 장애라는 통합된 범주가 양립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어 보인다.

비판에 대한 두 번째 응답은, 이미 일상에서도 ‘장애’라는 범주를 다양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기에, 범주의 다원성과 관련한 비판자들의 우려 중 많은 부분은 실제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예로, 현재 한국에서 법적으로 규정되는 장애 범주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행정적·법적 ‘장애’는 의료 및 복지 서비스의 제공을 목적으로 구획된 제도적 범주인데, 이는 앞서 살펴본 장애 모델들에서 말하는 ‘장애’와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예를 들어 ‘장애 등급을 받았다’는 표현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제도적 범주의 특성이 보다 명확해진다. 해당 발화에서의 장애는 다른 장애 모델들에 기반한 장애 범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서로 다른 장애 범주가 공존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일상에서 소통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각 발화가 이루어지는 맥락과 상황, 그리고 해당 발화 속에서 ‘장애’라는 표현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성 등으로부터 해당 표현이 어떤 범주의 장애를 칭하는 것인지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미 우리는 일상에서 다원적인 장애 범주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과 추론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으며, 세부적으로는 서로 다른 대상을 지칭하는 느슨한 범주의 다발로써 장애 범주를 공유하여 사용하고 있다. 즉, 현재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미 다양한 장애 범주에 기반하여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애에 대한 다원성 접근은 장애 범주에 기반한 소통과 귀납적 추론을 크게 저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오히려 현실을 보다 잘 설명하는 이론 틀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V. 결론

장애의 개념화 방식은 장애를 둘러싼 여러 윤리적 쟁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하나의 규범적 틀이기도 하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장애의 개념화 방식을 둘러싼 논쟁의 지형을 검토하고, 여러 모델들의 다원성을 허용하는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가능성을 제안함으로써 장애를 둘러싼 다양한 규범적 요구를 잘 설명해 낼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자 했다.

먼저 II장 1절에서는 프리스틀리(Priestly)의 장애 구분을 따라 장애의 모델을 크게 4가지로 구분하고, 그중 장애학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장애의 사회모델을 ‘장애의 사회창조론 모델’과 ‘장애의 사회구성주의 모델’로 나누어 검토했다. 먼저, 장애의 사회창조론 모델은 장애와 손상을 구분하는 중요한 이론적 기여를 하였으나 장애인의 손상된 몸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한다는 한계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II장 2절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장애인의 집단적 정체성의 사회적 구성에 주목한 사회구성주의 모델과, 손상은 무조건적 비극이나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손상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바꿈으로써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장애의 긍정모델을 검토하였다.

한편, 장애의 사회창조론 모델과 사회구성주의 모델은 모두 통증과 같은 손상 그 자체의 효과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손상에 대해서 여전히 본질주의적이며 의료적인 관점을 취하게 된다는 한계가 있었다(II장 3절). 이에 III장에서는 장애에 대한 서사적 접근을 중심으로 통증과 같은 손상의 비조건적 불리함도 개인의 자전적 서사 속으로 해석되어 들어감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지적 배경에는 질환 서사(illness narrative)와 페미니스트 장애학의 영향이 있음을 검토했다.

마지막 IV장에서는 장애의 모델 자체가 장애인의 규범적 요구를 잘 뒷받침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장애 개념화 방식의 특수성에 근거하여, 장애의 모델은 서로 다른 모델들 간에 단일한 입장만을 반드시 취할 필요는 없으며, 여러 관점을 허용하는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이 전략적으로 채택될 수 있음을 제안하였다.

장애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개념이며, 장애를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장애 당사자의 규범적 요구와 호응하여 치열하게 이뤄져 왔다. 본 글에서는 그 핵심에 있는 장애-손상 구분의 문제를 중심으로 장애의 모델들 간의 논쟁의 지형을 검토하고 통합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장애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도출하고자 했다. 본 논문이 장애 정의(disability justice)의 규범적 요구를 잘 포착해 낼 수 있는 이론적 틀을 도출해 내는 데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샐리 해슬랭어가 말한 ‘변화의 지렛대(levers for change)’로 역할할 수 있기를 바란다[68].

Conflict of interests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Acknowledgements

This paper is a revised version of a presentation delivered at the 2024 Spring Joint Conference of the Korea Academy of Disability and Welfare and the Korean Society for Disability Studies, held on May 31, 2024.

Funding information

Not applicable.

Data availability

Upon reasonable request, the datasets of this study can be available from the corresponding author.

Author contributions

The article is prepared by a single author.

Ethics approval

Not applicable.

Notes

1) 프리스틀리[7]의 78면의 서술 및 도표를 참고·재구성하여 필자가 작성함. 이하에서 언급할 것처럼 이러한 4분적 구분에는 여러 한계가 있으며, 사회구성주의 모델(social constructionist model)을 프리스틀리를 따라 사회적·관념론적 모델로 구분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 또한 존재한다. 관련한 비판으로는 하기의 각주 5를 참고할 수 있다.

2) 단, 장애에 대한 개인적 유물론 모델에는 의료모델 이외에도 다양한 장애 정의가 포함될 수 있으며, 프리스틀리가 지적하듯 생물학적 패러다임 내에서 수행된 모든 연구가 반드시 억압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7]. 하나의 예시로, 신유물론(new materialism)에 기반하여 장애를 유물론적으로 새롭게 이해하려는 마리아 크릴리(Mariah Crilley)의 작업을 참고해볼 수 있다[8].

3) 장애에 대한 사회창조론 모델에서의 창조론(creationist)이라는 용어는 1990년 마이클 올리버가 장애의 (유물론적) 사회모델을 이론화하며 제안한 용어로[4], 이를 프리스틀리가 자신의 모델 분류의 한 입장으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4) 사회창조론 모델을 옹호하는 마이클 올리버는 두 입장 간의 차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구성주의와 사회창조론의 본질적 시각차는 문제가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가에 있다. (...) 사회구성주의는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적대적인 사회적 태도의 표출과 비극적 시각에 기초한 사회정책의 실행으로 드러나는 비장애인들의 사고 속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사회창조론은 제도화된 사회적 실천 속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4].” 반면 올리버의 대척점에 있는 로즈마리 갈랜드-톰슨은, 장애란 “신체적 일탈이나 몸의 속성이라기보다는, 몸이 어떠해야 하는지 혹은 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화적 규칙의 산물”이라 말한다[18].

5) 사회구성주의는 여러 이론가들에 의해 다양한 입장들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되어 왔기에, 프리스틀리가 관념론적 사회모델을 사회구성주의 모델(social constructivist model)로 명명한 것에는 여러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먼저, 혹자는 사회창조론 모델 또한 (넓은 의미에서) 사회구성주의의 한 유형이라 볼 수 있으며, 사회적이고 관념론적인 장애 모델만을 ‘사회구성주의 모델’이라 지칭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또한 설사 이러한 구분법을 받아들이더라도, 사회구성주의 모델에서 말하는 ‘사회적 구성’이 대상(object)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인지 관념(idea)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인지 불명확하며[14], 나아가 구성적(constitutive) 사회구성인지 인과적(causal) 사회구성인지 또한 모호하다는 한계가 있다[15]. 이에 더해, 이러한 프리스틀리의 분류가 자연종(natural kinds)과 사회종(social kinds)을 둘러싼 형이상학의 논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도 보다 명확히 밝혀질 필요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관념과 물질의 관계를 프리스틀리처럼 이분화시켜서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또한 제기될 수 있다[16]. 다만 본 논문 II장 및 III장의 목적은 장애-손상 문제를 둘러싼 장애학에서의 논쟁의 역사를 검토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으며, 프리스틀리의 구분법은 앞의 각주에서의 마이클 올리버의 사회구성주의 모델 비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장애학 연구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기에, 본 논문에서는 사회구성주의 모델이라는 용어를 프리스틀리가 구분한 개념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하여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선행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장애 개념과 분류에 대한 보다 엄밀한 작업은 향후 후속 연구의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6) 그러나 마이클 올리버는 이러한 사회구성주의 모델과 같은 부류의 흐름을 경계하며 우리가 본문에서 사회창조론 모델이라 구분한 전통적 사회모델을 옹호한다. 그에 따르면 장애를 내면적인 것으로, 비장애인들의 사고 속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이러한 사회구성주의의 시각은 문제를 개인화·개별화할 우려가 크며, 사회의 제도화된 실천을 그 사회 구성원들의 개인적, 집단적 시각의 총합으로 가정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4].

7) 스티븐 스미스는 손상된 몸 혹은 몸의 기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긍정적 인식으로 변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이성(transferability)이라는 말로 포착한다[8]. 따라서 사회구성주의 모델에 근거한 장애 운동의 규범적 목표는 이러한 전이성을 실현시키는 것이 된다.

8) 한편 사회구성주의 모델을 장애의 사회모델의 일부분으로 정의하는 프리스틀리나 스미스와는 달리, 스웨인과 프렌치는 긍정모델을 장애의 사회모델과는 구분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들에 따르면 사회모델은 문제를 사회 내에 위치시키는 반면, 긍정모델은 문제가 개인이나 손상에 있다는 관념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도전한다는 측면에서 차이를 나타낸다[15]. 이때 스웨인과 프렌치가 언급하고 있는 사회모델은 본문에서 사회창조론 모델이라 명명한 협의의 사회모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사회구성주의 모델을 사회모델의 일부로 포함시킬지, 이와 별개의 모델로 독립시켜 분류할지의 문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존재한다. 본 글에서는 장애의 긍정모델이 사회구성주의 모델의 하나의 아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여긴다.

9) 한편, 장애의 긍정모델이 발전하는 과정, 즉 스미스의 언어로 전이성(transferability)을 실현시키는 과정에는 장애예술의 발전과 장애인의 예술 활동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장애예술과 장애 정체성 간의 상호작용과 그것이 장애의 긍정모델로 이어지는 방식에 대해서는 콜린 카메론(Coline Cameron)의 연구[20] 등을 참고할 수 있다.

10) 대표적으로 올리버는 손상이란 “물리적 신체에 대한 기술(description)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23].

11) 신체적·정신적 상태와 손상 간의 관계를 이러한 맥락에서 엄밀하게 규정하려는 시도로는 다나 하워드(Dana Howard)와 션 아스(Sean Aas)의 작업을 참고할 수 있다. 그들은 특정 신체적·정신적 상태 x와 손상은 필연적 연관성을 갖지 않으며, 어떤 맥락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x는 손상을 포함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추정될 뿐인 것으로 둘 간의 관계를 재배열한다[25].

12) 부드리(J. S. Beaudry)는 사회모델이 장애와 손상을 서로 배타적으로 이분화했다는 점을 둘러싼 일련의 비판을 일컬어 “이분법 비판(dichotomy criticism)”이라 칭한다[27].

13) 본문의 논거 이외에도, 장애-손상을 구분한 뒤 손상에 대한 자연주의적 설명(naturalist account)을 제시하는 사회모델이 여전히 ‘손상’이라는 범주를 적절하게 설명해 내지 못한다는 상세한 비판으로는 엘리자베스 반스(Elizabeth Barnes)의 작업[3]을, 특히 해당 단행본의 13-38면을 참고할 수 있다.

14) 제목의 손상 그 자체의 효과에 대한 간과는 부드리(J. S. Beaudry)의 표현에서 착안한 것이다. 부드리는 사회모델이 손상을 간과했다는 일련의 비판을 일컬어 손상 간과/부정 비판(Neglecting/Denying Impairments Criticism)이라 칭한다[27].

15) 제니 모리스(Jenny Morris)는 핀켈스타인[11]과 마이클 올리버[4]가 제시한 장애의 사회모델과는 다르게 “개인을 정치적으로 만드는 또 다른 의미, 즉 장애라는 개인적 경험의 표현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것에 천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때의 경험은 통증과 고통과 같은 경험의 부정적인 부분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47]. 이와 유사한 비판과 관련하여서는 로렐라 터지(Lorella Terzi)의 작업[28]을, 특히 해당 글의 150-153면을 참고할 수 있다.

16) 톰 셰익스피어 또한 사회창조론 모델은 손상의 개별성을 무시하며, 손상에 대한 의료적 처치를 수용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처럼 사회창조론 모델이 여러 한계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이데올로기로 바뀌어버렸다고 지적한다[21].

17) 관련하여 모리스는 “우리는 다른 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s)과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우리의 억압 형태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흑인이나 여성 또는 게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고통스럽지 않은 반면, 손상을 경험하는 것은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라며, 다른 정체성 운동과 장애가 구분되는 통증의 존재를 강조한다[31].

18) 물론 이에 대해 손상에 대한 부정적 경험의 사회적 원인이 있을 수 있으며, 페미니스트 장애학자들 또한 해당 측면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함을 인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캐럴 토머스(Carol Thomas)는 “활동의 제한이 실제로 장애차별주의의 결과일 때에도 (혹은 그 두 가지, 즉 손상 효과와 장애차별주의의 결합일 때에도) 흔히 활동의 제한은 오직 손상 효과의 탓으로만 돌려지는” 것에 대해 경계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다[32].

19) 관련하여 캐서린 젠킨스(Katharine Jenkins)와 킴 웹스터(Kim Webster)는 장애의 사회모델과 같은 구성주의적 접근은 여전히 “자연주의적으로 이해되는 손상과 사회적으로 이해되는 장애를 구분하기 때문에 자연주의적 모델(naturalistic model)의 특정 측면을 재사용(repurpose)한다”고 지적한다[37].

20) 한편, 손상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것이 손상-장애의 이분법에 대한 비판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반박으로는 부드리(Beaudry)[27]의 작업을 참조할 수 있다. 반면 마이클 올리버는 전통적 사회모델이 손상에 따른 통증을 부인해 왔다고 비판받는 것에 대해 이는 오해라 언급하며, 전통적 사회모델의 시도는 “집단적 행동을 통해 바뀔 수 있는 쟁점을 식별하고 다루려는 실용주의적 시도”라 주장해 왔던 바 있다[23].

21)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아니타 실버스(Anita Silvers)는 장애와 손상의 비조건적 측면을 포착하기 위해 장애에 대한 “중립적 개념화 방식(neutral conception)”이 필요함을 지적한다[39].

22) 관련한 당대의 관심을 반영하여, 문학과 의학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지인 문학과 의학(Literature and Medicine)이 미국에서 1982년에 창간되기도 하였다. ‘문학과 의학’ 분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던 조앤 트럿먼(Joanne Trautmann)은 해당 창간호의 첫 글로 “우리는 아폴로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Can we resurrect Appolo?)”라는 참신한 제목의 글을 발표한다. 트럿먼은 의술과 시(poet)를 함께 주관했던 아폴로를 언급하며, 문학과 의학이 다시 만날 수 있으며 만나야 함을 주창한다[40]. 문학과 의학 및 서사의학 분야의 발전사를 소개한 국내 논의로는 황임경의 글[41], 특히 6-12면을 참고할 수 있다.

23) 한글 번역본으로는 아서 프랭크. 메이 역. 아픈 몸을 살다. 봄날의 책. 2017. 이하의 본문 인용의 번역은 해당 번역본을 따랐다.

24) 한글 번역본으로는 아서 프랭크. 최은경 역. 몸의 증언: 상처 입은 스토리텔러를 통해 생각하는 질병의 윤리학. 갈무리. 2013. 이하의 본문 인용의 번역은 해당 번역본을 따랐다.

25) 아서 프랭크는 의료의 식민화에 대해 “전문 의학이 그것 자신의 어휘, 선호하는 태도, 시간성, 그리고 목적을 아픈 사람들의 경험에 부과하는 방식”이라 정의한다[44].

26) 아서 클라인만은 1988년 저작에서 “환자와 그 가족, 의사가 각각 특정 질병 사례에 대해 갖고 있는 개념”을 설명 모델(explanatory model)이라 정의하며, 상황에 따라 각 주체 간 설명 모델이 조화를 이루기도, 충돌하고 불화하기도 함을 지적한다[42]. 환자와 가족의 설명 모델이 의료 실천의 과정에서 적절히 고려되지 않는다는 비판 속에서, 이후 리타 샤론(Rita Charon) 등의 학자를 중심으로 질병을 경험자의 서사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의료적 실천인 서사의학(narrative medicine)이 탄생하기도 했다. 관련하여서는 리타 샤론의 2001년 논문[45]을 참조할 수 있으며, 서사의학과 관련한 여러 연구자 및 활동가들의 논의를 담은 저작[46]으로는 국내에 번역된 리타 샤론 외. 김준혁 역.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 동아시아. 2021을 참조할 수 있다.

27) 개념공학(conceptual engineering)이라는 용어는 1990년 루돌프 크리스(Rudolf Creath)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50]. 물론 개념공학이라는 용어가 명명되기 이전에도 다양한 개념공학적 연구가 있었으나, 개념공학이 하나의 연구 분야로 정립되고 학술 용어로 정착한 것은 2010년대이다. 2018년 허먼 카펠렌(Herman Cappelen)에 의해 최초로 개념공학에 대한 독립적 단행본이 출간된 이후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51]. 한국어로 쓰인 개념공학적 연구로는 최성호의 일련의 연구를 참고할 수 있다[52].

28) 이는 젠더에 대해 선구적으로 개념공학적 연구를 진행한 샐리 해슬랭어(Sally Haslanger)가 자신의 연구를 사회적 범주에 대한 “개선적 기획(ameliorative projects)”이라 칭했던 것에서 잘 드러난다. 해슬랭어는 개선적 기획을, 특정 사회적 범주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분류할 때 그러한 분류에 어떤 정당한 목적이 있는지 파악하고,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개념을 개발하는 것이라 설명한다[53]. 한편, 이러한 개념공학 옹호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며 “올바른 사회종(social kind)의 이론과, 실용적으로 가장 유용한 사회종의 이론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분리될 수 있는 것 같아 보인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3].

29) 이에 개념공학적 작업을 ‘개념윤리학(conceptual ethics)’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자 하는 흐름 또한 존재한다. 개념공학과 개념윤리학의 관계에 대한 설명으로는 허먼 카펠렌(Herman Cappelen)과 데이비스 플런켓(David Plunkett)의 작업을 참고할 수 있다[55].

30) 이러한 개념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방식에도 여러 종류가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데이비스 차머스(David Chalmers)는 개념적 다원주의(conceptual pluralism)라는 용어로 이러한 다원성을 포착하려 시도하는데[62], 용어와 관련된 논쟁을 “단지 말의 문제(mere verbal)”라 취급하는 차머스에 대해 카펠렌은 개념공학적 및 개념윤리학적(conceptual ethics) 입장에서 비판을 전개하기도 했다[55](특히 해당 단행본의 17장 참조). 본 논문은 기본적으로카펠렌의 입장을 따랐으며, 장애 개념에 대한 다원적 접근이 단지 차머스가 말하는 ‘물신주의적인 것’[62]에 그치지않음을 보이고자 했다.

31) 관련하여 엘리자베스 반스가 제시한 장애 정의(definition)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스는 장애라는 개념이 사실상 장애인 권리 운동과 함께 발전하여 정의되어 왔다는 점에 착안하여, 장애인 권리 운동에서 그것을 정의(justice)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을 장애의 정의(definition)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3].

32) 이때 유의할 점은, 부드리의 견해[27][60]와는 달리, 본 논문의 견해는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을 채택한다고 하여서 ‘장애란 개인적인 것 혹은 사회적인 것 중의 어느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다’거나 ‘장애란 유물론적인 것 혹은 관념적인 것의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둘 중의 하나로 환원될 수 없음이 참이라면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이 더욱 신뢰할 수 있는 모델이 되겠지만, 본 논문에서 다원적 접근을 제안하는 근거는 어디까지나 장애 당사자의 다원적인 규범적 주장들을 잘 포착할 수 있다는 전략적 측면에 국한된다. 관련하여 인고 브리간트(Ingo Brigandt)와 에스터 로사리오(Esther Rosario) 또한 개념공학의 전략적 방법론을 “전략적 개념공학(strategic conceptual engineering)”이라는 말로 포착한다[63].

33) 이러한 장애 개념의 개방성과 불확정성으로 인해 소통의 어긋남과 복잡성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러한 불확정성과 엇갈림이 해당 용어의 강점이 될 여지 또한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젠더(gender)나 인종(race)과 같은 개념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그 외연과 지칭의 대상이 끊임없이 경합하고 변화해 왔으며, 그러한 불확정성으로 인해 젠더연구(gender studies), 비판적 인종연구(critical racial studies)와 같은 새로운 학문 분야를 탄생시키고, 이전에는 포착되지 못했던 권리를 탄생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장애 개념의 개방성과 불확정성은 용어 사용에 있어서의 단점임과 동시에 강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개방성과 불확정성은 불구 이론(crip theory)과 공명한다. 앨리슨 케이퍼는 페미니즘의 퀴어(queer)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불구(crip)라는 언어의 사용을 옹호한다. 케이퍼는 “퀴어라는 용어는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포함하고 제외하는지에 대한 이론가 및 활동가의 논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경합의 영역”이며, “장애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환영한다”며 ‘불구’라는 사유의 틀을 옹호한다[22]. 부드리의 개방적 접근과 본 논문이 제시하는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은 장애학의 전통을 받아들이되, 그 전통 간의 경합과 충돌 그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놓는다는 측면에서 불구 이론(crip theory)과 호응한다.

34)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구체화를 위해서는 2000년대 이후로 젠더, 인종과 같은 여러 사회적 범주에 대해 이루어진 사회존재론(social ontology) 분야의 광범위한 연구를 개괄하고 장애에 맞게 적용하는 독립적 학술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예를 들어, 사회종(social kind)에 대한 최근의 영향력 있는 선행연구로는 아스타(Ásta)의 연구[65], 젠더와 인종에 대한 다원적 설명(pluralist account)을 옹호한 캐서린 젠킨스(Katharine Jenkins)의 연구[66] 및 샐리 해슬랭어의 일련의 연구 등을 참고할 수 있다). 이에 본 장에서는 장애와 손상을 둘러싼 논쟁의 역사를 검토한 II장과 III장의 논의를 바탕으로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다른 사회적 범주에 대한 선행연구에 비추어 그 가능성을 제안하는 것으로 논의를 한정하고자 했다. ‘장애에 대한 다원적 접근’ 혹은 ‘장애의 다원적 모델’의 구체화 작업은 향후의 후속 연구의 과제로 남겨 놓고자 한다.

35) 저자들은 “우리는 젠더 개념의 다원성(plurality of concepts of gender)뿐만 아니라, 전략적 개념 공학(strategic conceptual engineering)이라고 부르는 것, 즉 특정 인식적 또는 사회적 목표를 위해 개념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기존에 정립된] 개념의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이해 및 [따라서] 다른 목표와 관련하여서는 다른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 개방성(openness)이 결합되어야 함을 주장한다”며 젠더 개념의 다원성과 개방성을 옹호한다[63].

36) 저자들이 제시하는 사회적-정치적 목표의 서로 다른 세 차원은 (1) 젠더-기반 차별의 식별과 설명, (2) 법적 권리의 부여와 젠더-적합적 사회적 인정의 보장, (3) 젠더 정체성을 통한 임파워링에 해당한다[63].

37) 원문[66]에서 젠킨스는 ‘사회적 범주(social categories)’ 대신 ‘사회종(social kinds)’을 사용하고 있다. 젠킨스[66]는 설명종(explanatory kinds)을 통해 사회종(social kinds)을 정의하는데, (1) 설명종은 세계 속의 수많은 종류들(kinds) 중 성공적인 설명을 제공할 수 있는 하위 집합으로, (2) 사회종은 설명종 중에서도 사회적 요소들에 의존하는 특수한 하위 집합으로 개념화한다(pp.78-81). 본 글에서는 사회종(social kind)과 사회적 범주(social category)를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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