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ournal of Medical Ethics
The Korean Society for Medical Ethics
Commentary

환자·시민 참여 패러다임의 존재론적 전환 가능성

조태구1,*https://orcid.org/0000-0002-5854-142X
Tegu Joe1,*https://orcid.org/0000-0002-5854-142X
1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1Institute of Humanities, Kyung Hee University, Seoul, Korea
*Corresponding author: Tegu Joe, Institute of Humanities, Kyung Hee University, Seoul, Korea. Tel: +82-2-961-9209, E-mail: joetegu78@khu.ac.kr

ⓒ Copyright 2024 The Korean Society for Medical Ethics.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Nov 03, 2024; Revised: Nov 14, 2024; Accepted: Dec 13, 2024

Published Online: Dec 31, 2024

Abstract

Amid the growing prominence of healthcare artificial intelligence (AI), current research still pays only nominal attention to patient and citizen participation. However, this engagement rarely extends beyond tokenism, as healthcare AI ethics continues to reinforce rigid distinctions between doctors and patients and also between subjects and objects. These distinctions, which impedes genuine participation, are rooted in a specific ontology. By embracing a new ontology, participation becomes self-evident, shifting the focus from questioning its feasibility to justifying any limitations on its scope. Importantly, this shift is not limited to healthcare AI ethics; adopting a new ontology could enable meaningful progress across the entire field of bioethics.

Keywords: community participation; physician-patient relations; ontological shift

I. 서론

김준혁(이하 저자)의 논문 ‘헬스케어 AI(artificial intelligence) 윤리에서 환자·시민 참여 모형: 주제범위고찰과 방법론적 검토에 기초하여’는 현재 의료계의 핵심 문제 가운데 하나로 떠오른 헬스케어 AI의 활용과 관련하여 “헬스케어 AI 윤리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외부 검증이 도출되며, 정당성의 확보를 위해 헬스케어 AI 환자·시민 참여가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함을 제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덧붙여 저자는 주제범위고찰의 방법론을 통해 현재까지 진행된 관련 연구들을 검토하여, ‘헬스케어 AI 환자·시민 참여’에 대한 현행 이해가 환자·시민 참여를 헬스케어 AI의 신뢰성 증진을 위한 주요한 기작으로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가 분명하며, 따라서 대안 모형이 도출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저자는 “참여적 설계 모형”과 “헬스케어 AI 리터러시 모형”, 그리고 “헬스케어 AI 시민과학 모형”을 헬스케어 AI 환자·시민 참여를 위한 세 가지 대안 모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본 글은 우선 논문의 주요 논의를 간략하게 재구성하고, 저자가 지적하는 ‘헬스케어 AI 환자·시민 참여’에 대한 현행 이해가 가지는 한계에 동의하면서, 이러한 한계가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가정하고 있는 존재론적 토대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존재론적 지평 위에서 문제를 성찰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고자 한다.

II. 논의의 재구성

저자가 밝히고 있는 논문의 목적에 따라 논의는 우선 두 층위로 구분된다. 즉 1) 외부 검증이 헬스케어 AI 윤리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도출된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 논의의 한 층위라면, 2) 이 외부 검증이 환자 및 시민의 참여로 이루어질 때에만 정당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논의의 또 다른 층위이다.

먼저, 헬스케어 AI의 연구 및 개발에서 외부 검증이 헬스케어 AI 윤리의 필수적인 요소로서 요청된다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헬스케어 AI의 연구와 개발에 RWD(real-world data)가 활용되는 한, 헬스케어 AI 윤리는 기존에 제시된 생명의료윤리의 원칙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더 많고 더 세밀한 윤리적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실제로 저자가 밝히고 있는 바처럼, 선행 연구로부터 수립된 헬스케어 AI 윤리와 그에 기반을 둔 자율규제 프레임워크에는 외부 검증의 필요가 이미 원칙 수준에서 제안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이 외부 검증이 오직 환자와 시민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질 때에만 정당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환자와 시민만이 “헬스케어 AI 윤리의 틀 안에서 검증의 정당성과 합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라는 매우 강력한 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직접 답하기보다는 외부 전문가나 국가 기관이 그러한 주체가 될 수 없음을 밝히거나, 선행 연구들에 대한 주제범위고찰을 통해 환자·시민 참여가 헬스케어 AI의 개발과 연구의 신뢰성 증진을 위한 주효한 기작으로 여겨지고 있고, 따라서 외부 검증의 핵심 요소로 제시되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이 문제에 답하고 있다.

저자가 이러한 간접적인 방식, 특히 선행 연구들에 대한 주제범위고찰 방식을 연구방법론으로 선택한 것은 다음의 세 가지 목적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1) 헬스케어 AI의 영역에서 환자 및 시민의 참여에 대해 진행된 연구들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2)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논문이 목적하는 바, 즉 환자·시민 참여를 외부 검증의 핵심 요소로 위치시키는 것이 적절하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이며, 마지막으로 3) 선행 연구들의 부족함을 드러냄으로써 논문의 후반부를 차지하는 대안 모형을 제안하기 위해서이다. 저자가 선행 연구를 검토함으로써 “해당 논의의 지반 위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살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이 마지막 목적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헬스케어 AI와 관련된 환자·시민 참여에 대한 논의들의 한계는 무엇인가? 저자는 오클루와 매튜가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헬스케어 AI 연구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환자·시민 참여가 단순히 환자나 시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수준의 형식주의(tokenism)에서 벗어나야 함을 말하고 있다[1]. 그리고 패널이나 포럼과 같은 전통적인 참여 방식으로는 이러한 형식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이는 “이런 패널 등 외부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하기 위한 방법론이 검토 대상과 외부의 엄격한 분리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헬스케어 AI의 환자·시민 참여는 다만 외부의 목소리로 머물러서는 안되며, “역량강화와 공동 생산의 형식으로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

III. 환자·시민 참여를 가로막는 존재론적 전제와 새로운 존재론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저자가 환자·시민 참여를 단순한 형식주의에 머물도록 만드는 원인으로 지목한 “검토 대상과 외부의 엄격한 분리”이다. 이러한 분리는 대상과 주체라는 전통적 분리의 한 형태로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겨질 수 있으나, 사실 특정한 존재론을 가정하고 있다. 철학사의 여러 논의들은 이러한 존재론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술해 왔고, 또 비판해 왔다.

먼저 시간을 철학의 중심 문제로 제기하면서 현대 철학을 개시한 베르크손(Henri Bergson)은 이러한 존재론을 ‘공간적 사고’ 혹은 ‘양적 사고’로 규정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수를 세고 양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각각의 고립된 하나 이상의 항을 동시에 표상할 수 있다는 것을, 즉 병치할 수 있음을 전제하며, 이러한 병치는 각각의 항들이 동시에 놓일 수 있는 동일 지평, 즉 공간을 전제한다. 만약 각각의 항들이 명확한 자신의 한계를 가지지 않고 다른 항과 뒤섞여 버리거나, 하나의 항이 다른 항의 밖에 위치하는 것으로 표상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수를 셀 수 없고, 양을 말할 수 없다[2]. 물리학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물질의 작용이 원자들의 충돌로 설명되어 왔던 것도 같은 사유 방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3]. 그런데 문제는 실재가 고립된 항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운동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베르크손에 따르면, 각각의 개별적인 항들은 이 운동의 흐름으로부터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고정시키고 잘라낸 결과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렇게 운동을 정지시키고, 고정된 항으로 잘라내는 이유는 삶의 유용성, 즉 운동인 물질로부터 무언가를 쉽게 얻어내어 삶을 유지하기 위함이다[3].

결국 주체와 대상의 분리는 자명한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사변이 아니라 행동을 잘 하기 위해 마련된 인간의 자연적 성향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서양 철학의 주된 경향은 이러한 경향성에 주목하여 공간 위주의 존재론을 설립했다. 그러나 실재 그 자체로 돌아왔을 때, 존재는 운동이며, 모든 것은 서로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특히 공간성이 모조리 빠져버린 순수의식이나 생명의 영역에서 모든 것은 서로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뒤섞여 하나(사실 하나라는 말도 양적 개념인 한에서 적절하지 않다)를 이룬다[3]. 주체와 대상은 서로의 밖에 있지 않고, 나와 너, 우리는 우리의 자연적 성향에 따라 서로를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기 이전에 이미 내적으로 만나고 있다.

현대 프랑스 현상학자인 앙리(Michel Henry) 역시 베르크손과 동일한 사유를 극단적인 형태로 전개한 바 있다. 그는 서양 철학사 전체를 “존재론적 일원론” 혹은 “현상학적 일원론”으로 규정하고, 서양 철학사가 존재를 단 하나의 방식으로만, 즉 가시성의 지평 속에서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만을 존재로 인정해 왔다고 주장한다[4]. 그런데 이러한 사유 방식 속에서 존재로서 나타나는 것은 대상일 뿐, 대상을 대상으로서 나타내는 주체는 그 자체로 나타날 수 없다. 대상을 대상으로서 나타내는 작용인 주체는 대상만을 존재로 인정하는 한, 그 자신이 대상으로 변질된다는 조건 하에서만 존재로서 주어질 수 있다. 따라서 그 자체로 자기 자신을 규정할 수 없는 주체는 자신을 존재로서 가정하기 위해 언제나 자신 아닌 다른 것을 요청한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너가 필요하고, 우리는 우리로서 존재하기 위해 너희를, 또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인간 아닌 비인간 존재들이 필요하다. 주체는 대상을 대상으로서 나타나게 할 수 있는 작용으로 가정되지만, 정작 이 작용 그 자체는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나타나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주체의 자리는 언제나 빈자리였으며, 따라서 이 빈자리는 철학자들의 기호에 따라 때로는 빛으로, 때로는 의식으로, 때로는 몸으로 규정되어 왔다[5].

그러나 철학사의 몇몇 예외적인 경우처럼, 다른 방식의 존재함, 즉 자기 자신과 어떠한 거리도 없이 자기 자신에게 자기로서 주어지는 절대적인 내재성으로서의 존재함을 인정한다면 전혀 다른 사태가 전개된다. 존재는 더 이상 가시성의 지평에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어떠한 거리도 없이, 어떠한 공간성의 매개도 없이 다름 아닌 바로 자기로서 나타나며, 이러한 자기는 순수한 질로서 다만 느껴질 뿐이다. 앙리는 이러한 자기-주어짐의 방식, 자기-촉발의 운동을 삶이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삶에서 이제 모든 것은 뒤섞인다. 그리고 어떠한 생명체도 스스로의 의지로 태어난 것이 아니므로, 개별적인 각각의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대문자 삶, 앙리가 신이라 부르는 절대적 삶이 존재하며, 이 절대적 삶은 모든 존재할 수 있는 삶들을 자신 안에 포함하는 동시에 개별적인 삶들 각각에 거주한다. 이제 이러한 존재에 대한 사유에서 우리 개별적 삶들은 자신 안에 절대적 삶을 포함함으로써 모든 가능한 삶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순수한 질로서 느껴지는 고유한 나의 존재는 다른 모든 존재들을 자신 안에 자기 자신의 존재 조건으로서 포함한다. 나는 모든 타자를 고유한 방식으로 포함함으로써 다름 아닌 나로서 존재하며, 다른 각각의 살아있는 것들도 바로 나를 자신 안에 그 자신의 방식으로 포함함으로써 바로 그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우리 모두는 누구도 누구의 밖에 있지 않다. 외적으로 서로의 밖에 서로를 표상하기 이전에, 우리 모두는 삶의 공동체 속에서 서로의 내부에 함께 존재한다[6]. 자기 충족적인 자아의 관념은 허상이거나 적어도 보다 근본적인 사태로부터 귀결되는 이차적인 것일 뿐이다. 주체와 대상의 엄격한 분리는 다름 아닌 이 허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

Ⅳ. 결론

헬스케어 AI 윤리 영역에서 환자 및 시민의 참여 가능성을 논하는 매우 실천적인 목적의 논문에 대해 논평하면서, 이런 형이상학적 논의를 소개하는 것이 부적절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헬스케어 AI 윤리의 영역에서 환자나 시민의 참여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이 주체와 대상, 나와 타자의 엄격한 분리이며, 이 분리가 사실이기보다는 인류가 선택한 특정한 존재론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 존재론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론을 소개하는 일이 다만 사변적인 논의만은 아닐 것이다. 새롭게 주체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관련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할 수 있고, 사실, 헬스케어 AI 분야만이 아니라 생명윤리의 모든 분야에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책은 이러한 형이상학 차원의 전환으로부터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현재 생명윤리 분야에서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는 연구분야가 이미 존재한다. “돌봄 윤리”가 그것이며, 이 분야의 연구에서 기존의 윤리 이론들이 가정하는 자기 충족적인 주체는 허상으로 규정되고 비판받는다. 다만 “돌봄 윤리” 역시 그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기존의 윤리 이론들이 전제하는 주체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6]. 전혀 새로운 차원의 주체관, 존재론으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으며, 이때 질문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제기될 것이다. 가령, 논문의 저자는 헬스케어 AI에서 환자·시민 참여가 요청된다는 점을 확인한 후, “환자·시민 참여의 범위를 외부 검증으로 일단 한정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 각자가 서로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공동체 안에서 이미 서로의 내부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질문은 이와 같이 참여의 가능성이 아니라, 참여 범위를 한정하는 일의 정당성에 대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도 누구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환자나 시민의 참여는 이미 자명한 사실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존재론의 토대 위에서 물어야 할 질문은 ‘헬스케어 AI 윤리에 환자나 시민이 참여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그들의 참여는 일단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야 하고, 이제 ‘어떠한 이유로 이러한 참여를 일정 범위까지 제한할 필요가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조태구

Conflict of interests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Acknowledgements

Not applicable.

Funding information

Not applicable.

Data availability

Upon reasonable request, the datasets of this study can be available from the corresponding author.

Author contributions

The article is prepared by a single author.

Ethics approval

Not applicable.

REFERENCES

1.

Ocloo J, Matthews R. From tokenism to empowerment: progressing patient and public involvement in healthcare improvement. BMJ Qual Saf 2016;25(8):626-632.

2.

Bergson H. 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UF); 2001.

3.

Bergson H. L’évolution créatrice.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UF);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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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M. L’Essence de la manifestation.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UF); 2003.

5.

Joe T. Michelle Henry’s concrete subjectivity and the phenomenology of the body. Res Philoso Phenomenol. 2017;72:93-123.

6.

Joe T. Caring, subjectivity, and life: Michel Henry and exploring alternative approaches to care. Phenomenol Con Philos 2024;102:6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