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글을 열며
한국의료에 대한 우려가 깊다. 응급실에, 수술실에, 중환자실에, 분만실에, 지방병원에 사람 살릴 의사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아프면 안 돼’라는 있을 수 없는 염려가 현실이 될 수 있겠다[1]. 현장의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 시민단체, 언론과 정치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일보는 2023년 4월부터 한 달여 동안 의사캐슬 ‘3058’ <정원이냐 수가냐, 필수의료 부족의 진짜 이유>라는 포커스 취재기사에서 21개의 주제들을 심층 분석하여 내 보냈다. 동아일보도 2023년 5~9월 사이에 <위기의 필수의료>라는 이슈 하에 33개의 기획기사를 통해 한국의료의 난맥상을 보여주었다.1) 하지만, 전체 기사를 일별해도 답답함은 여전하고, 한마디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규명이 쉽지 않은데, ‘수가 문제’, ‘정원 문제’라는 양측의 시퍼런 주장만 단순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2]. 당사자인 의사들은 눈앞에 산적한 일들에 매몰되어 있다. 갈수록 치열한 경쟁 속에 개인의원과 중소병원은 환자유치에, 3차 병원과 의과대학은 인증평가에 목을 매고 있다. 한국의료라는 거대한 숲의 곳곳이 불타고 있는데, 남 탓만 하며 각자도생으로 별장 리모델링에 골몰하는 형국이다. 산불을 끄기 위한 컨트롤 타워가 보이지 않는다. 필수의료의 ‘위기’가 ‘붕괴’라는 현실로 닥치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중병이 든 한국의료를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병든 한국의료의 주된 증상과 증후를 먼저 살펴보고 병태생리와 진단을 통해 적절한 처방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Ⅱ. 증상 및 증후
23년 3월,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여학생이 2시간 넘게 응급실을 전전하다 구급차에서 사망하였다.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2017년부터 5년간 치료거절로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한 환자수가 3.752명에 달한다. 지방도시의 대학병원 응급실들은 치료할 의사가 없거나 입원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환자를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3].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22년 7월엔 국내 최고 수준의 수도권 병원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가 없어 타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숨졌다[4]. 이처럼 소위 ‘바이탈과(생명을 살리는 주요 전문분야)’ 의사의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드문 소아암이나 선천성 기형을 수술하는 소아외과 응시자는 2021년 ‘0명’을 찍었다[3].2)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소아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은 31곳뿐이다[5].
2013년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것은 한국 공공의료가 처한 현실과 처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의사도 환자도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기대나 신망이 없다. 시작부터 민간 병의원을 중심으로 의료전달체계가 성립되었고, 공공병원은 결핵, 나병 같은 전염성 질환이나 행려환자들을 위한 구호 병원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 문제였다. 대부분 계약직인 의사들은 처우나 신분상의 특혜도 없는데 지방근무를 선택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2023년 5월 기준, 전국 지방의료원 35곳 중 전문의 부재로 인한 휴진 과목 현황은 23곳(65.7%)이다. 일례로 충주의료원의 경우 순환기내과 전문의는 70대가 넘는 고령의 의사 한 명뿐이어서 24시간 심혈관 응급환자를 볼 수 없다[6].
2023년 6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주관으로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전공과목인 소아청소년 진료를 접고 피부미용 등을 배우려는 의사 521명이 몰렸다[7]. 학술대회는 미용, 비만, 하지정맥류 등 비급여진료 주제들이 주를 이루었고,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회장은 “일종의 재수 종합반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각 분야의 기초를 강의해주고 거기서 ‘나는 미용이다’, ‘나는 통증이다’라는 식으로 적성을 고민해 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의대를 갓 졸업한 젊은 의사들이 전문의 수련과정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미용진료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다.3) 불변의 인기과인 정형외과조차도 대학병원에 남아 수술을 하려는 의사들을 찾기 힘들다. 전문의 취득 후 1~2년의 전임의 수련과정을 통해 수부, 족부, 척추 등 세부전공을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제는 바로 개원해서 수술은 안 하고 비급여 통증 치료만 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9].
의사가 직접 유흥업소를 드나들며 여종업원들을 고객으로 유치하여 1,118회에 걸쳐 프로포폴을 의료외 목적으로 처방한 사례가 적발되었다[10]. 유명 비만클리닉 의사는 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 24인 기자에게 ‘디에칠프로피온’ 등 향정신성의약품, 항우울제, 당뇨약, 식욕억제제, 이뇨제 등 무려 14가지 약을 처방하였다[11]. 수가나 제도 탓 이전에 기본 도덕성이 의심되는 의사들의 범죄행위가 적지 않게 보도되고 있다.
Koh[12]는 “지금의 의료현실에 누가 절망하고 있는가? 원칙대로 환자를 진료해서는 의원을 유지하기 어려운 의사들이 그렇다. 수익 증진에 대하여 부당한 압력을 받는 봉직의들과 점점 더 왜곡되어 가는 의료행태를 안타깝게 지켜보는 이들이나 직능단체들도 그럴 것이다. 많은 의사들이 이 의료보험급여체제로는 제대로 진료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일찍이 기술한 바 있다.
지금까지 중병을 앓고 있는 한국의료의 증상 및 증후를 나열해 보았다. 이제 한국의료가 총체적 난국에 빠지게 된 경위(병태생리와 진단)를 알아보자.
Ⅲ. 병태생리 및 진단
‘정원이냐? 수가냐?’는 정부와 의사들 간 대표적 논쟁점이다. 정부는 지난 18년째 그대로인 의대정원이 문제의 핵심이며, 정원을 늘리면 필수의료나 지방의료 쪽이 채워질 것이라는 소위 ‘낙수효과’를 주장한다.4)
의사들은 문제의 본질이 ‘편중’이라고 반론한다. 주요 바이탈과 전문의의 인구 대비 숫자를 미국과 비교하면, 신경외과 3.5배, 외과 1.7배, 산부인과 1.6배, 흉부외과가 1.3배 많으나, 이들 상당수가 개원가로 빠져 전공과 무관한 진료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낙수효과에 대한 정부의 기대는 ‘순진한 발상’에 불과하며, “늘어난 의사들도 똑같이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정재영(정신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 ‘워라밸과’로만 몰려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피과를 멀리하는 근본 원인을 고민하지 않고, 의대 정원을 늘려 중환자실과 응급실, 지방병원을 채우겠다는 발상은 ‘순진한 착각’이라는 것이 의사들의 주장이다[2].
정원확대가 오답이라는 의사들은 ‘낮은 수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한다.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석준은 “필수 의료를 살릴 개입은 필요하지만, 건보 재정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마구잡이 식으로 수가를 올리는 건 가능하지 않다”며 “시스템 전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살피는 작업이 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2]. 한편, 수가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주장이 너무 진부하다는 의사 측 입장도 있다. 안덕선은 “의사집단은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위한 수가협상에 앞서, 보다 더 초월적인 가치에 집단적으로 헌신한다는 이데올로기를 펼칠 수 있어야 사회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 의사 전문직의 오랜 교육과 특별한 지식·술기에 근거한 전문직업성의 이데올로기 주장은 너무 미약하고 진부해 보이며 시대착오적이다.”라고 하였다[13].
젊은 의사들이 사명감보다는 워라밸을 택하는 것이 문제라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의대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가는 곳이지, 사람 살리겠다고 가는 학생이 얼마나 있겠냐”는 선배의사, “20대 후반은 인생의 하이라이트잖아요. 그런데 그 시기를 병원에서 격무에 시달리며 보내고 싶진 않았어요.”라는 젊은 의사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띈다[8]. 한국일보는 개별 젊은 의사들의 선택은 ‘합리적’일 수 있지만 그 선택의 총합인 의료시스템의 붕괴 현상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와 비슷하다고 진단한다[8].
의사들은 의료소송의 급증과 의학적 판단을 결과만 보고 단죄하는 법원의 판단에 상당한 원인이 있다고 본다. 기원전 1750년 경에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 218조에는 “의사가 수술 칼로 심한 상처를 수술하여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눈의 농양을 절개하여 그의 눈을 실명케 한 경우 의사는 그의 손가락을 자른다.”는 내용이 있다[14]. 코비드 유행으로 14일간 일인실에 격리조치 중이던 조현병 환자의 자살에 대해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다[15]. 6개월 전 개복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는 복통환자를 보존치료를 우선하다 소장 절제술을 받게 한 의사에게 실형이 선고되었다[16].5) 대한민국의 법은 함무라비 법전에서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문직에게 부여된 자율규제 노력을 의사들이 슬그머니 파기한 흑역사가 원인의 일부라는 견해가 있다. 2001년 대한의사협회 윤리지침에는 이미 공인되지 않은 의료행위를 금지하고(제 11조) 이를 행하는 동료의사의 오류를 바로잡는 절차(제42조) 등이 잘 기술되어 있었다.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회사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경우 그 방법과 절차가 공정하고 공개적이어야 한다는 내용도 부당이득 추구 금지 조항(50조)에 있었다. 그런데 2006년 윤리지침을 전면개정하면서 이런 조항들을 모두 삭제하였고, ‘의사는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필요하지 아니한 진료행위를 하거나 부당하게 많은 진료비를 요구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제 13조. 과잉진료 및 부당이득금지)’는 모호한 문장만 남겨 두었다. 이후 제약사와 의사 간 리베이트 문제는 언론의 단골 메뉴가 되었고, 결국 2010년 의료법 23조 2항에 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의 취득금지, 즉 소위 ‘쌍벌제’가 전격 도입되었다. 의사들의 자율규제 노력 포기가 외부로부터 더 강력한 법적 제제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1977년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약 1,000달러로 구조적으로 3저(底) 구조(저부담-저보장-저수가)를 기반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국민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수준이 상향되었고, 첨단 의료기술의 발달로 전반적인 의료서비스의 수준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3저(底) 구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17].
미봉책으로 민영건강보험이 도입된 이후 수요자인 환자와 공급자인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불필요한 의료수요가 발생하며, 결국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악화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김대환은 2008~11년 사이 한국의료패널 자료를 분석하여 “실손의료보험은 단기적으로 의료수요자의 의사결정에 의해 수요량이 결정될 수 있는 외래방문횟수와 입원일수는 증가시키는 반면 의료공급자의 의사결정에 의해 수요량이 결정될 수 있는 입원횟수나 입원비용을 증가시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18]. 즉 환자들의 의료 과다이용은 나타났으나 의사들의 과잉진료에 대한 근거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방법으로 최근 몇 년의 자료를 분석해도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을까? 초진환자의 실손보험 가입여부를 의무적으로 확인하고 입원이나 고가의 검사를 권하는 병원들에 대한 소문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동일한 결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부실한 의료전달체계, 특히 ‘빅5’라고 일컬어지는 대형병원들의 문어발식 확장이 한국의료의 위기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진단이 있다. 중증, 경증을 가리지 않고 큰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욕망과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의료제도가 지방의료와 일차의료의 붕괴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Jo[19]는 ‘한국의 의료시장’은 대형병원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다. 환자의 대형병원 집중현상은 오히려 의사들에게 매출 증대의 압력을 가하고, 과로와 소진을 유발하며, 환자와의 교감기회를 제한한다. 또한 중소병원과 개인의원의 환자 감소로 이어지고, 그 결과 일차부문 의사들의 불만을 높인다. 즉 의료체계의 확대성장은 의사보다는 민간병원의 역할이 두드러지면서 의사가 민간병원에 예속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병원이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면서 의사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는데, 의사들은 이러한 사실에 정면 대응하여 대형병원의 역할을 감소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기보다는 모든 불만의 원인을 저수가 보험으로 돌려서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이상을 요약하면, 한국 의료의 위기는 철학 없는 보건의료정책의 불합리성을 박리다매, 3분 진료로 버티던 의사들이 비급여진료라는 워라밸 높은 분야로 쏠리게 된 점, 여기에 ‘빅5병원’의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한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실손보험으로 인한 환자와 의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기름을 부은 형국이라 하겠다.
Ⅳ. 치료
병든 한국의료를 치료할 방안은 있는가? 칼자루는 누구의 손에 있는가? 하나의 답이 있을 리 없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시민, 의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길을 내야 하는 시점이다. 급한 불 끄기식으로 눈앞의 증상만 해결하는 것을 대증 치료, 보다 근본적으로 병증의 원인을 교정하는 것을 근치적 치료라 한다. 차례로 살펴보자.
현 정부는 의대정원을 늘리고 필수의료의 수가를 상향 조정하는 ‘투트랙’ 방식을 고려 중이다.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소위 ‘낙수효과’로 필수의료를 채우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의사가 되기까지 최소 10년은 걸린다는 점에서 대증치료라 하기도 어렵지만, 핵심의료를 낙오 직전의 의사들에게 맡기겠다는 발상 자체부터 잘못되었다. 필수의료의 수가 상향 역시 세밀한 조정이 없으면, ‘대형병원 탈출’의 빌미가 되기 쉽다. 필수의료의 처우 개선은 경제적 개선뿐 아니라 충분한 교대 인력의 마련을 통한 삶의 질 개선, 의료소송 걱정없는 진료환경 등과 함께 포괄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일부 의사들은 “사람 살리는 일을 시작하자”라며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하였다. 박익성 대한뇌혈관외과학회 회장은 “응급 중증 뇌혈관질환 환자를 발생 지역에서 적시에 치료할 수 있도록 신경외과 뇌혈관 전공 교수들이 별도의 연락체계를 꾸려 가동하고 있다. 순번을 정해 연락을 돌리는 당번제도 도입해 24시간 수술 치료가 가능한 의사가 있는 병원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하였다[1].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의사들이 자체적으로 연락망 네트워크를 꾸린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지속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근본 해결책이라 보긴 어렵다.
일부 의사들은 투쟁을 통해 불합리한 환경을 바꾸자고 한다. 불합리한 의료소송 판례가 나올 때마다 일종의 ‘준법투쟁’, 즉 ‘모든 두통 환자에게 CT나 MRI 검사 시행’ 등을 지침화 하자고 한다. 이런 접근은 투쟁의 방식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얼마 남지 않는 의사의 전문성에 자해를 가하는 꼴이다.
병든 한국의료에 대한 근치적 치료란 ‘필수의료가 바로 인기의료’가 되도록 제도와 환경을 완전히 바꾸는 일일 것이다. 이 참에 유럽식 복지의료와 미국식 시장경제 의료가 묘하게 뒤섞여 있는, 의사들의 희생을 담보로 유지되고 있는 현 의료제도를 갈아엎자는 논의도 있다. 하지만, 얽힌 실타래를 푸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알 수 없으며, 한 편의 논문에서 다루기엔 벅차다.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처음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 면에서 ‘의사됨’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한국 의료에서 의사됨에 대한 성찰은 2014년 발표된 ‘한국의 의사상’에 잘 담겨있다. 의료전문직의 역량과 도덕적 가치를 ‘환자 진료’, ‘소통과 협력’, ‘사회적 책무성’, ‘전문직업성’과 ‘교육과 연구’라는 다섯 영역으로 기술하였는데, 그 중심에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두었다<Figure 1>[20].
중세시대 길드의 전통 이후로 의사는 그 사회의 공동선(common good)인 환자의 건강과 사회의 보건의료 향상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대가로 업무의 자율성과 독점권 및 일정수준 이상의 지위와 보상을 받는다. 이때 의사들이 전문집단으로서 지키고자 하는 가치 및 신념 체계가 의학전문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이다[21].
미국개원의협회(American College of Physicians Foundation), 미국내과학회(American Board of Internal Medicine) 및 유럽내과연합(European Federation of Internal Medicine)이 공동으로 개발한 ‘의학 전문직업성에 대한 선언’은 의학 전문직업성의 10가지 의무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환자 진료에 필요한 의학적 전문성, 둘째, 환자에 대한 정직성, 셋째, 환자와 관련된 정보에 대한 기밀 유지, 넷째, 환자와의 적절한 관계유지, 다섯째,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꾸준한 노력, 여섯째, 의료제공 기회를 높이기 위한 노력, 일곱째, 한정된 의료자원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노력, 여덟째, 과학적 발전을 위한 노력, 아홉 번째, 이해갈등 상황을 잘 관리함으로써 신뢰를 유지하려는 노력, 그리고 끝으로, 전문직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려는 노력이다[22].”
반대로, 의학 비전문직업성(unprofessionalism)은 의학 전문직업성의 기준을 벗어나는 것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으로 보고하거나, 다른 분야 의료종사자 및 환자에게 거만하거나,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거나,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거나, 환자나 보호자와의 라포(rapport) 형성이 안 되는 경우 등”을 포함하는 용어이다[23]. 전문직으로서의 가치들을 파기하고 환자의 이익보다 자신이나 병원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상업주의, 환자와 의사의 신뢰 관계를 거래행위로 변질시키는 것도 비전문직업성의 특징이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상담이나 광고에서도 비전문직업성적인 행위들이 발견되고 있다[24]. Lee et al.[25]은 “의학 전문직업성의 정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상업주의, 특히 의료 상업주의(예를 들어 과도한 선전, 특히 인터넷을 통한 의료용품 광고나 판매 행위나 병원비 할인, 환자 정보를 제약회사나 연구소에 금전을 받고 넘기는 행위 등)가 의사의 비전문직업성을 야기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하였다. 한국의 의사들은 전문직업성의 귀한 가치들에 대해서 제대로 성찰해 보지 못한 채 비전문직업성(unprofessionalism)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은 ‘흔들리는 믿음’에 관한 것이다. 의협 중앙윤리위원회나 법원의 징계를 받는 사례들을 들여다보면, 의사들 스스로가 동료 의사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현실을 체감하게 된다. 이효진은 직업인으로서의 의사가 등장한 이후로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믿음’이라고 했다. 지금의 면허와 같은 독점적 지위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의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교육이나 훈련, 학위나 자격, 면허 그 어떤 것보다도 오직 하나, 환자의 믿음이라는 것이다[14]. Koh[12]도 “의사가 윤리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타인의 생명에 관여하기 때문이라고 단순히 규정지을 수는 없다. 타인의 생명에 관여하는 직업은 의사 외에도 많다. 의사에게 특히 윤리성이 강조되는 것은 자신의 건강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의사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자-의사 관계의 속성에 더 큰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환자가 자신의 건강에 위해가 초래될 수도 있는 권고에 따른다는 것은 의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라고 하였다[12].
제도 탓, 수가 탓 수준을 넘어, 환자를 유인하거나 근거 없는 처방 등 의도적인 과잉진료를 당연시하는 의사들에 대한 소문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비전문직업성은 결국 탈전문화(deprofessionlization)로 이어진다. Cockerham은 의료에서 소비자주의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통제 강화로 의사의 전문적 권위가 쇠퇴하고 있는 상태를 탈전문화(deprofessionlization)라 하였다[26]. 탈전문화(deprofessionlization)가 가속화되면 의사의 진료 독점권과 자율권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의사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심각한 재앙이 된다.
의학 전문직업성의 수호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수호해야 할 시작점이자 마지막 보루이다. 의사들은 전문직의 핵심요소인 고도의 전문지식과 술기로 환자를 돌보되, 철저한 자기규제, 동료평가를 통해서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의사들의 윤리의식 고양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대표되는 각종 선언과 윤리강령, 4원칙 등 원칙 중심의 규범 윤리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침화, 규범화’는 오히려 ‘옳은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축소할 우려가 있다. 부정적인 표현을 포함하는 ‘금지와 제재’는 본능적으로 ‘투쟁-도주 반응’을 유발하기 때문에 인간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억제한다[27]. 전문인들을 위한 윤리강령이나 각종 윤리지침을 비롯한 표준은 ‘윤리학적인 바닥(ethical floor)은 되어 줄 수 있으나 지향할 천장(ethical ceiling)은 되어 주지 못한다’는 주장이다[28]. 이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긍정윤리(positive ethics)다. 본래 윤리학이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옳음과 그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과 관련된 가치를 다루는 학문이다. 단순히 ‘잘못된 행위’를 피하는 것이라기보다, ‘옳은 행위를 하는 것’이다[29]. 긍정 윤리학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긍정 윤리학의 목적으로 위법 행위에 대한 규제에만 초점을 맞추던 것에서 윤리의 높은 이상을 비전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향으로 전환”하거나[30], 또는 “윤리적 이상을 염원하도록 권장하는 보다 균형 잡히고 통합적인 접근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31]. 일례로 환자의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를 규범적으로 접근하면 환자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만, 긍정 윤리적 접근은 환자와의 신뢰를 향상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까지 포함한다.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도 규범적 접근은 동의서에 환자의 서명을 받을 법률적인 책임만을 강조하지만, 긍정 윤리적 관점은 동의서를 매개로 치료의 과정에 환자가 최대한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강조한다. ‘징계를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윤리적인 이상을 실현하는 길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29].
Ⅴ. 글을 닫으며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최근 주요 언론을 통해 기사화된 ‘필수의료의 위기’를 화두로 한국 의료의 병증을 살펴보았다. 먼저 증상과 증후를 점검하였고, 병태생리와 진단을 고민한 후 처방을 고민하였다. 현 상황에서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되, 의사-환자 관계의 최후의 보루인 ‘믿음’을 전문직업성 재조명을 통해 지켜내야 한다. 늘어만 가는 법적 제재와 의무 규약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의사’, 더 ‘좋은 의료’를 꿈꾸는 긍정윤리 쪽이 맞는 방향임을 역설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야는 여전히 뿌옇고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Niebuhr는 개인과 집단의 행동 양태를 분석하고 사회적 정의를 수립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역작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들도 사회 내의 어느 집단에 속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한다”라고 하였다[32].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타인의 이익을 배려할 수 있지만, 사회는 종종 민족적-계급적-인종적 충동이나 집단적 이기심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를 차용해 보면 현재 한국 의료는 ‘중립적 의사와 비도덕적 시스템(neutral physician and immoral system)’에 가까워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의사를 지망하는 이들은 평균보다 더 도덕적이지도 덜 도덕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이들이 속한 의료 시스템이 도덕적이라면 대부분의 의사는 도덕적 의사가 될 것이며, 그 역도 성립할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중병으로 판명이 난 한국 의료를 살리기 위한 처방은 정원이냐, 수가냐 같은 근시안적 미봉책이 아니다. 효율성에 매몰된 ‘믿음’을 되살리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최우선순위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 성찰은 정부-의료계-시민단체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이다. 이 과제 안에는 행위별 수가제, 매출액 기준의 인센티브, 도덕적 해이를 유혹하는 실손보험, 근거 없는 비급여진료 등에 대한 대수술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