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임상에서 의사결정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선택하는 것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는 환자가 처한 의학적 상황, 치료 가능성, 치료의 종류, 치료 여부 및 각 치료에 따른 이익을 평가하며, 환자가 기대와 실현 가능한 의료 행위를 조율한다[1,2]. 의학적 근거와 환자의 이성적이며 자율적인 판단에 기반하여 환자와 의사가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논의하며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대한 합의, 즉 정보에 기반한 함께하는 의사결정(shared decision-making, SDM)을 할 때, 이상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3].
그런데 실제 의료현장에서 이상적인 의사결정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현실에서는 의학적 근거가 불충분하기도 하고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기도 하며, 의사와 환자가 함께 논의하기에 시간적, 물리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도 하다[4]. 의학적 근거가 충분하다 하더라도 확률에 기반하기 때문에 개별 환자의 치료에는 늘 불확실성이 동반되며[5], 근거가 불충분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도 있다.1) 또한 삶에 기대하는 가치와 질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환자의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이 의사나 가족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 있어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하기도 한다.
의료기술의 발전은 불확실성을 줄이기도 하지만 애매한 선택지를 늘려 종종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삶의 질과 무관하게 생명을 연장시키는 기술이 그 중 하나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에는 생존할 수 없는 환자가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연장된 삶이 원하는 삶의 형태가 아닌 경우가 있다. 지속적 식물상태(persistent vegetable state), 혹은 일상 생활의 전부 혹은 상당 부분을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 심각한 인지저하 등이 그 예가 된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치료 과정의 고통을 감내하지만 환자는 자신이 원치 않는 상태에 처하며, 많은 가족들은 환자의 돌봄에 대한 시간적, 정서적, 경제적 부담을 지기도 한다. 무엇이 최선인지 확신이 없기에 가급적 환자의 선택에 따라 치료 여부를 결정하고 싶지만 환자에게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그 경우 의사와 가족은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에서는 가상의 급성기 뇌졸중 환자의 사례에서 관찰되는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4분면 접근법을 통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2) 사례는 급성기의 위중한 상황에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긴박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 예후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어 의사와 가족이 결정해야 하는 상황들을 포함한다. 4분면 접근법의 분석틀을 통한 사례 분석 방법론은 선택에서 고려해야 할 내용 목록을 만드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답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6]. 여기서 제시한 사례 역시 하나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며, 의사와 가족이 참여하는 SDM을 통해 환자마다의 최선의 선택을 발견해 나갈 것을 강조한다.
Ⅱ. 본론
77세 남자 A가 의식 저하로 응급실에 왔다. 환자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며 건강 관리를 해 왔고, 1년 전 심방세동과 고혈압을 진단받아 약을 복용하고 있다. 환자는 밤 9시경 잠이 들었고 아침 7시 30분에 가족이 깨웠으나 일어나지 않고, 좌측상하지의 움직임이 감소하여 119를 통해 병원에 왔다. 응급실 내원 당시 환자의 의식은 저하되어 있었고, 뇌자기공명영상(MRI)에서 우측 중뇌동맥 영역에 뇌경색 소견이 있었으며, 뇌혈관영상에서 우측중뇌동맥의 폐쇄가 있었다. 환자의 의식저하로 인해 보호자의 동의하에 동맥내혈전제거술(intra-arterial thrombectomy)를 시행하였고, 혈관은 성공적으로 재개통되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기본적인 뇌경색 치료와 뇌부종을 낮추기 위한 삼투압 요법을 실시하였다. 시술 12시간 후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어 실시한 뇌컴퓨터단층촬영(brain CT)에서 뇌경색과 뇌부종이 진행되는 소견을 보였고, 의사는 가족에게 환자의 추가적인 처치로 반두개절제술(hemicraniectomy, decompressive craniectomy)를 소개하였다. 의사는 가족에게 수술을 하지 않을 경우 사망 확률이 높고, 수술을 시행할 경우 환자의 생존률은 높아지지만 인지 장애가 발생하며, 일상 생활에 의존도가 높은 중증장애가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하였다. 의사의 설명을 들은 가족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환자는 평소 산행, 운동을 즐겨하였고 자신의 건강 관리에 적극적이었으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거나 자신의 연명의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은 없다고 한다. 뇌부종을 낮추기 위한 수술은 증상 발생 후 48시간 이내에 이루어져야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어 있어 적어도 A의 수술은 하루 이내에 결정되어야 한다.
A는 광범위한 급성 중증 뇌경색으로 매우 위중하며, 적극적인 치료에도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질병의 결과인 뇌압 상승으로 인한 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의사는 반두개절제술을 제안하였고, 만약 반두개절제술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환자는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두개절제술은 중증 뇌졸중에 따르는 뇌부종, 뇌간 압박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환자의 사망 가능성을 의미 있게 낮춘다[7–11]. DESTINY II로 알려진 60세 이상의 노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수술을 받지 않은 경우 70%의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으며, 반두개절제술을 받은 환자군에서는 33%의 사망율이 보고되었다[10]. 연구 결과를 그대로 A에게 적용한다면 반두개절제술은 A의 생존 확률을 약 두 배가량 증가시킨다. 만약 A가 반두개절제술로 생존하는 군에 속하게 되면, A는 급성기에 보이는 혼수상태에서 벗어나 안정된 활력징후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체적, 인지적 제약의 발생은 불가피해 보인다. DESTINY II 연구에서는 뇌졸중 환자의 결과 평가에 널리 사용되는 mRS(modified Rankin Scale) 점수3)를 사용하여 6개월 후 치료군과 대조군의 상태를 비교하였는데, 두 그룹 모두 mRS 0–2에 해당하는 환자는 아무도 없었으며, 수술을 시행한 그룹의 mRS 4, 5 환자가 대조군에 비해 두 배 정도 많음이 관찰되었다[10].4) 이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사망하였을 환자들이 수술로 4, 5단계의 상태로 생존하게 되었음을 예측하게 한다[11].5) 1년 후 추적관찰에서는 반두개절제술을 시행한 mRS5 환자군의 비율이 감소하는데 mRS4 이하의 변화는 거의 없으며, 사망 환자 비율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아 mRS5의 줄어든 환자가 사망으로 진행되었으며, 일상생활의 의존도는 시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다[10].
반두개절제술을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서 환자의 예후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급성 뇌졸중의 장기 예후는 초기 증상의 심한 정도와 관련이 깊은데, 초기 증상이 어느 정도 고정되고 난 후에야 대략적인 장기 예후 추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반두개절제술은 고정된 초기 증상의 중증도를 낮추려는 시도로 시행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젊은 환자의 장기적인 중증도를 낮추는데 의미 있는 효과를 보였다[7]. 한편 고령의 환자에서 초기 증상의 중증도를 낮추려는 시도는 mRS6에서 mRS5 또는 4로 진행되어 궁극적으로 생존률의 감소에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10]. A가 수술을 하여, 혹은 수술을 하지 않고 생존을 할 수 있을지 여부, mRS4의 수준, 혹은 5의 기능 수준을 가질 수 있는지는 수술을 결정하는 시점에서 예측하기 어렵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A가 반두개절제술 여부와 무관하게 급성기를 넘겨 안정기 상태에 도달한다면, 아마도 A는 의식의 일부가 회복되어 외부 자극과 정보를 인지하고 반응할 수 있으며, 제약은 있으나 타인과 소통을 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 상당부분 혹은 전부를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태에 처할 위험이 높으며, 심리적으로 우울감을 호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이다[13,14].6)
중증 뇌졸중으로 환자의 의학적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반두개절제술은 환자의 사망 가능성을 의미 있게 낮춘다. 생존하게 된 환자는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적극적인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mRS4나 5, 운이 좋다면 제한적인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mRS3 정도의 신체 수행 기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반두개절제술에 기대하는 바가 급성기의 불안정한 생체 징후의 개선, 죽음을 피하는 것이라면 반두개절제술은 치료의 일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치료로 볼 수 있다[5].7)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이 A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가, 환자 중심의 최선의 선택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즉 A가 원하는 것인가, A의 삶의 질은 어떠한가 등에 대한 고려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8)
만약 A에게 의사결정능력이 있다면 의사는 A에게 지금까지 이야기한 반두개절제술의 기대되는 효과, 효과의 결과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A는 반두개절제술로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의 자신을 상상할 것이고, 상상 속의 삶이 자신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으며, 그 삶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반두개절제술을 받을지 말지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A는 이를 평가하고 결정하지 못한다. A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며, A의 이익과 관련하여 누가 환자의 적합한 대리인이 될 수 있는지, 대리인이 취해야 하는 태도가 무엇인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가족이 대리인의 역할을 맡는다. 만약 질병이 있기 이전에 A가 자신이 반두개절제술이 성공한 후 처할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고려하여 자신에 대한 의료 결정을 미리 문서화하거나 주변에 알렸다면, 가족은 사전에 고지된 A의 요청을 들어주면 된다. 하지만 사례에서 A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같은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directives)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경우 가족은 A가 하였을 법한 상상을 대신하며 A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그의 과거 선택, 삶의 태도, 은연 중에 했던 말과 행동 등을 통해 A가 누리고자 하는 삶의 모습, 삶의 질이 저하되었을 때 어느 정도를 견딜 용의가 있는지 등을 미루어 짐작하여 치료 방안에 대한 입장을 정하도록 요청받는다[5]. 만약 이러한 A의 선호를 추정하기조차 어렵다면 가족들은 의료인과 함께 주어진 정보 내에서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평가해야 한다.
환자의 선호를 알고 있더라도 환자의 예후가 불확실한 경우, 특히 급성 뇌졸중과 같이 생존의 문제만이 아니라 중증의 장애가 발생하나 그 수준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에, 가족은 주어진 선택지가 환자가 사전에 이야기한 상황과 일치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즉,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예후의 불확실성은 이 시점에서 해당 환자가 선택했을 법한 치료인지 확신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대리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뇌졸중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16]. 여기에는 그래픽 차트 및 이해하기 쉽도록 간략히 정리한 mRS 등을 활용하여 뇌졸중 전반에 대한 설명, 뇌졸중의 결과, 치료 방식, 치료 이후의 재활 과정 등의 가족의 이해도를 높이는 방안이 포함된다. 또한 가치를 명확히 하기 위한 방안으로 예상되는 일상생활 및 중요한 활동을 위한 기능의 제약들을 목록을 만들어 환자라면 어떠한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질문하고, 치료 목록과 목표를 요약한 체크리스트의 활용도 고려해 볼 수 있다[16].9)
무엇이 최선인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최선의 이익 원칙에 기반한 대리의사결정은 명백히 환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가족들은 대리인으로서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개인의 현재와 미래의 이익에 집중하여 삶의 질 판단을 해야 한다[17]. 의학적 적응증 분석은 당면한 현재 진행형의 의학적 문제 해결에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5].10) 하지만 반두개절제술을 시도하고자 하는 일차적 이유가 환자의 위중한 상태를 넘겨 안정적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면, 안정기의 환자가 마주하게 되는 삶의 상황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즉, ‘최선의 이익’을 위한 결정에는 안정기에 환자가 경험하는 삶의 질이 반영되어야 한다.
안정기 상태의 A를 그려본다면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상당부분을 타인에게 의존을 해야 하는 상태로 언어 장애로 소통의 장애를 겪을 수 있고 우울감을 호소할 가능성이 높다[10,13,14]. 재활 등의 노력을 통해 남아 있는 생존 기간 동안 제한된 상태에 적응을 할 수는 있겠으나 증상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경험하는 삶의 질은 사람마다 다르다. 삶의 질은 환자 스스로가 느끼고 경험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로서 당사자인 환자만이 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5]. 하지만 중증 뇌경색 환자인 A는 의사결정 시점에 자신의 삶의 질을 예측하고 평가할 수 없다. 결국 가족과 의료인이 환자를 대신하여 연구를 통해 타당성이 입증된 수치화 된 기준 – 신체적 건강, 일상생활 수행 능력 등의 기능, 지적 능력, 감정적 상태, 사회적 역할 등을 수치화한 기준 – 을 활용해 환자의 삶의 질을 논의하게 된다[18,19].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mRS 점수에 따른 장애 발생과 반두개절제술에 대한 의향을 물은 설문에서 mRS4의 장애에 대하여는 6%만, 그리고 RS5에 대해서는 1%만이 수술을 받겠다고 답하였다[13]. 물론 이전에는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mRS4나 5 상태가 현실이 되었을 때, 이에 적응하고 삶의 만족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20]. 심각한 지속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의 질 수준이 상상이나 추측에 근거한 삶의 질보다 높음을 보여주는 이러한 장애역설(disability paradox)은 장애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21]. 하지만 장애역설을 확대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데, 지속적이며 중증의 심각한 장애나 전적인 타인의 도움이 있어야 만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상태에 처한 환자들의 다양한 실존적 문제가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의 중증 뇌졸중 환자가 직접 참여한 삶의 질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수술 후 생존한 환자 63%가 반두개절제술에 대해 소급 동의한다는 답변을 보고한 DESTINY II 연구 결과는 언뜻 수술적 치료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가 높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답변한 27명 중 환자는 11명뿐이었고, 나머지 16명의 답변은 환자가 중증 실어증, 중증의 신경심리학적 결손이 있다는 이유로 대리인에 의해 이루어졌다[20].
Jonsen et al.은 의사결정에서 의학적 적응증, 환자의 선호, 삶의 질과 함께 환자를 둘러싼 상황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전문가, 가족, 종교, 비용(재정), 법, 제도적 요인 등-이 고려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5].11) 여기서는 중점적으로 돌봄 주체로서 이해상충의 상황에 처한 가족의 문제와 치료 중단과 관련된 제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12)
A의 가족은 대리인으로서 대리의사결정의 기준에 따라 의사결정 내려야 할 의무를 가진다. A의 상태는 매우 급작스럽고 치명적이며 예후조차 불확실하여 결정은 쉽지 않다. 가족은 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환자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생존하여 의식을 회복한 환자가 의존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판단하고 추측해야 한다. 한편 가족은 결정의 주체이자 돌봄의 주체가 되기에 이해상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의존도가 높은 환자를 돌보는 것은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된다. 가족들은 환자를 보살필 자원은 있는지, 선택이 환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 어떤 각오를 해야 하는지, 돌봄 과정에서 예상되는 가족 간의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다. 가족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며 선택지를 찾는 작업을 1–2일 이내에 하도록 요구받는다.
가족의 돌봄에 대한 우려는 이해상충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의사결정에 있어 고려해야 하는 요소이다. 뇌졸중은 신체적 의존성, 언어 및 인지 장애, 우울 등의 감정적 문제를 함께 동반하며, 이 모든 영역에 돌봄을 필요로 한다. 환자의 삶의 질은 다양한 영역의 사회적 지원에 크게 영향을 받는데, 가족 돌봄이 강조된 사회에서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은 가족의 역할로 주어진다.13) 장기간의 다방면으로의 돌봄은 돌봄제공자인 가족들에게 시간적, 재정적 부담과 자기개발 및 사회생활의 제약, 희생을 요구하며 더 나아가 돌봄제공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23–26]. 이는 다시 환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환자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자신의 취약성에 대해 자괴감, 돌봄 제공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는데, 만약 돌봄 제공자들이 자신으로 인해 과도한 희생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심해질 것이다[27]. 또한 돌봄의 질이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환자에게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있다면, 환자 역시 가족이 겪는 부담을 고려하여 의사결정 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안녕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이 심각한 재정적, 감정적 부담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17]. 이러한 입장은 좋은 죽음에 관한 연구에서도 발견되는데 다수의 연구에서 사람들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을 좋은 죽음이라고 이야기한다[28–30]. 그들은 마지막까지 독립성을 유지하고, 질병을 앓는 시간이 짧아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남은 가족들이 장기간의 돌봄으로 인해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꺼려한다.
최선의 이익을 위한 선택의 계산식에 가족의 돌봄 부담은 고려되며 평가되어야 하는 요소이다. 문제는 여기에 얼마만큼의 비중과 무게를 두어야 하는가이다. 사람들은 좋은 결정을 위해 주어진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스스로에게 좋은 것, 유리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의학적 맥락에서 이러한 선택의 존중을 ‘자율성 존중’이라는 원칙으로 치켜 세우는 이유는 환자가 자기 다운 ‘최선의 이익’을 선택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2]. 대리의사결정 기준은 자율성 존중의 원칙 아래에서 다뤄지며, 대리인은 환자가 사전에 지시한 선택, 환자가 할 법한 선택, 환자에게 최선이 되는 선택을 하도록 요청받는다. 의사결정에서 가족의 돌봄 부담에 대한 비중은 환자의 자율성 존중에 넘어서지 않는 범주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선호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환자의 계산식에서의 가족 돌봄에 대한 비중을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가족과 의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가족 돌봄의 부담을 무시하지 않고, 이를 환자의 선택 혹은 선택하였을 법한 것과 삶의 질을 논의하는 무대에서 같이 올려놓고 야기해 나가는 것이다. 또한 의료진은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함으로써 가족의 돌봄 부담이 무조건적인 치료 거부나 중단 요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는 치료를 둘러싼 문화, 제도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의료계에 큰 충격을 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은 의사들에게 치료 중단으로 인한 환자의 사망이 살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주었다.14) 결과적으로 환자에 대한 치료는 적극적이고 침습적으로 이루어졌고, 치료 중단을 기피하는 의료 관행이 만들어졌다[31]. 환자와 의사들 사이에서 과도하고 무의미한 치료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쏟아져 나왔지만, 치료 중단을 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근거와 환자의 요청(4분면 접근법의 용어로는 의학적 적응증과 환자의 선호)에 더하여 법적 부담감을 견딜 용기가 필요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6년 무의미한 치료로 인해 생애 말기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고, 이는 임상에서의 연명의료중단과 관련된 의료행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중단 가능한 몇 가지 의료행위를 제시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임종 과정에 있지 않은 환자는 치료 중단을 할 수 없는가’라는 당혹스러운 질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환자에게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가’, ‘의학적 적응증, 환자의 선호, 삶의 질을 고려하여 치료 중단이나 유보를 하고자 하는데 임종 과정에 있지 않다면 이는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서 연명의료 중단 가능하다는 법조문에 대해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의 의료중단 논의는 임종기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환자의 상태를 임종기로 보지 않는다면 환자에 관한 의학적 의사결정은 법과 무관한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15)
A는 급성기의 생존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임종과정의 환자로 보기 어려우며, 반두개절제술은 생존의 확률을 높이고 상당한 기간의 생명 연장 가능성을 제시하는 치료이다. 전자, 즉 임종과정에 있지 않은 환자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은 보라매 병원 사건 판례나 연명의료결정법의 근저에 깔린 삶의 질보다는 생명 지속을 강조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이 입장에서 반두개절제술은 A에게 시행되어야 하는 수술이 된다. 하지만 연명의료결정법과 무관하다고 보는 후자의 관점으로 A의 사례를 본다면 A에게는 여러 선택지가 생기게 된다. 이 글은 후자의 관점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으나,16) 법과 무관하게 어떤 선택이 환자에게 최선인지 알아내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후자의 영역에서 사례를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즉, A의 치료결정권을 존중해 주기 위해 의사와 가족은 치료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A의 상황과 A가 어느 정도까지 저하된 삶의 질을 견딜 수 있을지 등을 추측하고 여러 질문에 답을 해가며 A의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자 노력하였다. 이는 대리의사결정이지만 A의 치료결정권을 존중해 주기 위해서이다. 그 과정은 번거로우며 원하는 결과를 보장할 수 없기에 의사들은 가족에게 결정을 넘기거나 아니면 순서도(flow chart)를 개발해 그 흐름에 판단을 맡기기도 한다. 가족들 역시 의사가 대신 결정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동일한 진단명에 유사한 예후가 예상되더라도 그에 대한 개인의 선호와 판단은 다르다. 우리의 의료 행위가 의미 있는 선택이 되기를 원한다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알아 내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
급성기를 넘긴 A는 안정기 상황에서도 뇌경색 재발, 폐렴, 요로감염, 욕창 등 여러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A는 간단한 치료만으로 나아질 수 있으며 때로 중환자실 등의 집중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급성기 이후 환자의 의사결정능력이 회복된다면 가족과 의사는 이후 변화하는 의학적 상황에서의 선택에 대해 환자와 함께 논의해 나갈 수 있으며, 환자는 사전의료지시를 남길 수 있다.17) 이 때 환자와 가족들은 처음 반두개절제술 여부를 결정할 때와는 다르게 주어진 삶에서 직접 삶의 질을 직접 평가할 수 있기에 보다 침착하고 분명하게 ‘최선의 이익’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4분면 접근법을 통해 은 의학적 의사결정이 어려울 때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 살피는데 유용하다. 하지만 어떤 기준, 어떤 정보에 우위를 두어야 할지, 그래서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직접적인 답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 다룬 가상 사례는 의학적 적응증, 환자의 선호, 삶의 질, 맥락적 요인의 각 항목에서 제기되는 세부적 질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어, 더욱 반두개절제술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이 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제한된 정보로 의사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현실에서도 발생한다. 의사나 가족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으며,18) 이 경우 의사들은 무엇이 환자에게 최선인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설명의무를 수행하게 된다.
의사는 환자에게 검사나 치료 전 충분한 정보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의사가 전달해야 하는 정보에는 환자의 질병 경과, 계획하고 있는 치료의 이익과 위험, 예상 가능한 결과들, 그 외 대안이 되는 가능한 치료 방법들과 각각의 치료에서 기대하는 효과, 부작용, 결과가 포함된다[1]. 충분한 정보에 의한 동의에 충실한 의사는 A의 가족에게 환자의 임상적 상황과 경과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지금 적극적인 내과적 치료를 하고 있으나 경과가 악화되고 있어 생존하기 어렵고, 생존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의존 상태로 지내게 될 것이라는 설명을 확률적 수치와 함께 이야기할 것이다. 현재 적용할 수 있는 의학적 방법으로 반두개절제술을 소개하면서 수술로 기대하는 효과를 이야기하고 그럼에도 마비로 인해 mRS4 또는 5 정도의 의존 상태가 예상되며, 인지기능 저하, 언어 장애 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수술을 하지 않는 경우 현재 시행 중인 스테로이드 치료, 삼투압 요법을 유지하면서 경과를 관찰하고 저체온요법 등을 추가로 고려할 수 있는데 사망률을 낮추는 데에는 반두개절제술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추가로 뇌졸중에서의 반두개절제술과 관련하여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가족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다. 어떻게 설명을 하든 의사는 24–48시간이 지나면 이 논의조차 의미가 없어지니 하루 정도의 기한을 제시하며 그때까지 결정해 달라고 할 것이다.
위의 설명 내용을 보면 의사는 최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지 않고 정보를 전달했음을 알 수 있다. 의학적 이득이 명백한 치료를 설명할 때 의사들은 해당 치료의 선택을 권고하고 때로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이 이득인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 종종 의사는 가급적 정보만을 나열하며 가족의 결정을 기다린다.19) 그런데 환자의 상황과 질병 경과, 확률적 수치로 표시된 치료 결과의 나열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찾아가는 데 있어 충분한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Emanuel & Emanuel은 온정적 간섭주의적, 정보중심적, 해석적, 숙의적 모형으로 의사-환자 관계 모형을 구분하였다[32]. 어떤 모형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질지는 환자의 질병 종류와 중증도, 대화에 참여하는 의사 및 환자의 특성 등에 영향을 받게 된다. A의 상황과 같이 무엇이 좋은 예후인지 판별하기 어렵고 불확실성이 높은 경우, 의사는 단순히 지시하거나 정보를 전달하기 보다 정보를 해석하고 가족들과 함께 숙고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의사와 가족이 함께 정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숙고하는 SDM이 필요하다.
A의 사례에서 SDM을 강조하는 이유는 증거 기반의 최적의 선택(evidence-based “right” choice)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3]. 반두개절제출을 받는다 하더라도 A의 생존 여부를 알 수 없으며, A가 생존하였을 때 어느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지닐지 알 수 없다. 환자가 고령이고 상태가 중증이어서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할 뿐이다. 가족과 의사는 환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을 유지하기 힘든 상태로 살아 가는 것을 사망보다 더 나은 상태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족들은 의견이 일치되지 못해 갈등을 겪기도 하며, 의사결정과 돌봄 제공 주체 사이에서의 이해상충으로 어떤 결정을 하든 후회와 죄책감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의료진은 결과에 비난을 피하고자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SDM은 가족과 의사가 선택에 대해 짊어진 짐을 내려놓고 최선의 선택지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가족과 의사는 SDM을 통해 환자의 의학적 정보, 추측되는 환자의 선호와 삶의 질, 환자를 둘러싼 다양한 맥락적 요소들을 분석해 나가면서 환자의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 합의해 나갈 수 있다. 이때 뇌졸중 생존 환자의 재활 등을 지원하는 제도 등 가족의 돌봄 부담을 낮춰줄 수 있는 사회적 제도에 대한 정보가 함께 공유된다면 논의과정에서 가족들이 경험하는 이해상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의사가 모든 정보를 제공할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관련 분야 전문가가 SDM에 참여하거나 해당 정보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 된다. 중요한 것은 환자 중심의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의사와 가족이 논의하고 이렇게 합의하여 내려진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Ⅲ. 결론-정리하는 글
급성 뇌졸중 상태의 A는 의식이 없으며 가족들은 A에게 반두개절제술을 시행할 것인가 여부를 빠른 시간 내에 결정해야 한다. 반두개절제술은 환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며, 생존한 A는 신체적, 인지적 기능이 저하되어 일상생활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로 남은 생애를 지내게 된다. 의존의 정도는 현시점에서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지만 고령의 환자의 나이를 고려하였을 때 전적인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가족은 이러한 의학적 정보를 가지고 환자가 명시적으로 남겼거나 혹은 선택했을 법한 결정을 미루어 짐작하여 선택하거나, 환자의 의사를 알 수 없는 경우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고려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사례가 어려운 이유는 환자에게 결정능력이 없고, 가족들은 환자의 선호를 알 수 없으며, 적극적인 치료로 환자가 생존하였을 때, 수명 연장의 효과는 있으나 남은 삶의 기간 동안의 삶의 질이 환자가 견딜 만한 수준인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의학적 적응증, 환자의 선호, 삶의 질에 대한 평가만으로 치료 여부를 주장하기 어려우며, 환자가 처한 상황을 여러 측면에서 점검해 보아야 한다. 특히 가족이나 사회의 돌봄 지원은 환자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이에 대한 고려는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에서 환자의 돌봄에 일차적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는 가족으로 가족은 환자의 대리의사결정자이자 돌봄제공자로서의 역할 사이에 이해상충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이 환자의 최선의 이익 보다는 돌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담들을 더 크게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족들이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는 것은 종종 대리의사결정 기준을 어기는 이기적 태도로 비춰진다. 하지만 가족의 돌봄이 안정기 환자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환자가 의사결정 했더라도 가족의 안위를 고려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면 가족이 지는 돌봄의 부담은 최선의 이익 평가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 A의 상황은 급박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요구하지만 증거 기반의 최적의 선택이 어렵기에 환자와 가족이 참여하는 SDM이 도움을 준다. 원활한 SDM의 진행을 위해 의사는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평가하기 위해서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며, 의사결정이 어려운 요인을 분석하고 함께 고민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 의사들은 자신이 돌보는 환자가 사망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때 법에 맞춰 환자의 상황을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환자에게 말기 정의, 임종기 정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지 않다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치료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임종 과정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지 등을 고민한다. 문제는 법에 맞춘 선택지가 환자, 가족, 의사가 SDM을 통해 내린 합의된 선택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 ‘자기 결정의 존중’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임종기 여부의 판단에 집착함으로써 오히려 환자의 자기결정을 방해하고 생애 말에 진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무엇이 환자를 위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법이나 제도는 여러 선택지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서 개인에게 최선의 이익을 제한하지 않아야 하며, 그 본래의 취지에 맞는 상황적 판단을 허용하여야 한다. 환자의 상태, 선호, 삶의 질, 여러 상황적 맥락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여 결정하였다면 적극적인 치료를 선택하지 않는 선택지를 허용할 수 있어야 하며, 완화의료를 통해 환자가 고통받지 않고 그 시간을 지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