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조력존엄사법안)이 발의되었다[1]. ‘우리 사회의 의사조력자살 법제화’에서 임종 방식과 시기를 선택할 환자의 권리, 발의된 법안의 내용, 의사조력자살을 보조하는 의료 행위의 정당성, 의료계의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대비, 현행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의 보완, 및 좋은 죽음에 관한 논의를 이어갈 사회 기구의 측면을 살펴보았다.
의료계의 대비를 논의하면서 호스피스·완화의료(이하 호스피스 의료)의 체계가 어느 수준까지 제공되는 것이 의사조력자살의 전제 조건이며, 호스피스 의료에서 소외된 환자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또한,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안에 대해 알아보 면서 고통이 통증과 같지 않고 그 수준을 객관화 할 수 없는 한계를 지적하였다. 하지만, 현행의 연명의료결정법의 보완점은 주로 연명의료의 결정 과정에만 국한하고 있다. 말기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한 현실적이고 적절한 호스피스 의료가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존력 존엄사는 말기환자에게 대안이 없는 사회적 압박이 될 수 있다. 이 논평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적용되고 있는 한국의 호스피스 의료의 상황을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파악하고, 조력존엄사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의 현황과 비교하여 조력존엄사를 대비한 호스피스 의료의 개선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조력존엄사는 외국의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이나 조력사망(Aid in dying)과 같은 구체적인 행위를 고정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의미를 분명히 전달할 수 있지만 본문에서는 조력존엄사법안에 따라 조력존엄사로 용어를 사용한다.
1. 호스피스 의료의 접근성과 양적 확대
조력존엄사법안에서 조력조엄사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기환자에 해당해야 한다. 말기환자는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태”로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으로부터 의학적 진단을 받은 환자로 정의되어 있다 [2]. 의료현장에서는 “말기와 임종과정에 대한 정의 및 의학적 판단지침(이하 판단지침)”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다양한 질환의 말기 상태를 진단하고 진료에 활용하고 있다[3]. 반면에, 연명의료 결정법에서 호스피스 의료의 대상은 암, 후천성면 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로 한정하고 있다. 미국의 오레곤주에서 20년간 존엄사법에 의해 사망한 환자의 말기질환은 암이 가장 많았고(77.9%), 신경계 질환(10.5%) 및 호흡 기질환(4.8%) 등이었다[4]. 2021년 캐나다의 존엄사법에 의해 사망한 환자는 암(65.5%), 심혈관 질환(18.7%), 호흡기질환(12.4%) 및 신경계 질환 (12.4%)이었다[5]. 조력존엄사가 시행 중인 외국의 현황을 살펴볼 때, 조력존엄사를 선택하는 말 기환자 중 심혈관질환 및 신경계 질환과 같이 한국의 호스피스 대상질환에 포함되지 않은 질환을 가진 말기환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는 2003년 보건복지부가 말기암환자 호스피스시험사업을 시작하면서 2017년 입원 형·가정형·자문형 호스피스가 모두 도입됨으로써 제도의 틀이 마련되었다[6]. 하지만, 보건복지 부에서 보고한 2020년 호스피스·완화의료 현황에서 호스피스 대상질환 사망자 대비 호스피스 이 용률은 21.3%에 불과했고, 신규 이용 환자 대부 분은 암환자(99.8%)였다. 이것은 연명의료결정법 이 시행된 후 2017년의 호스피스 대상질환 사망 자 대비 호스피스 이용률 20%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7]. 캘리포니아에서 2021년 존엄사법에의해 사망한 환자의 91.6%가 호스피스 의료를 받았고, 캐나다의 경우, 존엄사법에 의해 사망한 환자의 80.7%가 호스피스 의료기관을 이용했고 나머 지 호스피스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은 환자들의 88%는 본인이 호스피스 의료를 받고자 한다면 이용할 수 있었다[5,8].
의료현장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과 판단지침에 따라 만성심장질환 및 치매나 뇌혈관질환과 같은 신경계 질환을 가진 말기환자가 진료를 받고 있지만, 이 중 일부의 환자만 호스피스 의료의 대상이며, 호스피스 의료의 대상질환을 가진 말기환자도 일부만이 돌봄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력 존엄사법이 시행된다면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말 기환자는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조력존엄사를 선택해야 하는 모순을 가지게 된다. 조력존엄사법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호스피스 의료의 대상을 연명의료결정법과 의료현장에 맞게 현실적으로 조절하고, 말기환자가 충분히 호스피스 의료를 받을 수 있는 호스피스의 양적 확대가 필요하다.
2. 호스피스 의료 중재의 변화와 질적 향상
조력존엄사법안에서 조력존엄사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어야 한다.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은 연명의료결정 법에서는 제시되지 않은 조력존엄사법안만의 기준이다. 임종과 관련된 의사결정의 기준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고통은 육체적인 통증부터 삶의 무상함으로 인한 실존적 고뇌까지 포괄하는 개념이고,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고통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환자의 주관적인 판단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게다가 고통은 환자의 신체 및 주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화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주관적이고 수시로 변하는 환자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 환자의 고통은 의학적으로 분류가 가능한 질병에 기안한 것이거나 의학적인 차원의 고통으로 최소한도 담당의사와 상담의사가 의료적 경험에 따라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8]. 하지만, 벨기에의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에서는 말기환자가 아니더라도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고통을 초래하는 질환도 대 상으로 하고 있고[9], 네덜란드는 12세 이상의 미성년자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2020년에 기억, 언어, 판단력 등의 여러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치매까지 대상범위를 확대하였다[10]. 이처럼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제한하더라도, 일단 조력존엄사가 가능해지면 점차 대상 질환과 고통의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환자의 관점에서 고통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최근 캐나다에서 3년간 존력존엄사를 요청한 환자를 대상으로 살펴본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은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Loss of ability to engage in meaningful activities), 일상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Loss of ability to performing activities of daily living)가 각각 86.3%와 83.4%로 가장 많았고, 조절되지 않는 통증(Inadequate control of pan)과 존엄성의 상실(Loss of dignity) 이 각각 57.6%와 54.3% 순으로 보고하였다[5]. 환자의 활동 장애 정도와 전신 수행 능력은 주관적이고 수시로 변화하는 고통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고통은 조력존엄사의 기준일 뿐 아니라 호스피스 의료에서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관리해야 하는 새로운 중재의 대상이 된다.
국내에서 호스피스 환자는 초기에 환자의 활동 장애 정도와 전신 수행 능력을 평가하지만, 주로 환자의 예후와 여명을 예측을 하는 지표를 활용해 왔고 중재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11,12]. 한국의 호스피스 의료는 암환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호스피스 의료는 생의 마지막 수일 혹은 수 주 동안 적극적인 돌봄이 요구되지 않는 임종 과정의 환자에게 제공되는 포괄적인 돌봄으로 이해되었다. 이로 인해 신체적 증상의 관리는 주로 암환자가 겪는 극심한 통증에 대한 적극적인 중재에 집중해 왔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제한적이 지만 비암성질환까지 호스피스 의료가 확대되었다. 비암성질환의 경우, 암에 비해 신체기능의 저 하가 천천히 이루어지고, 급작스러운 병의 악화와 호전이 반복되며 악화에서 회복이 되면 어느 정도의 신체기능이 유지된다. 암 환자의 경우에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후 호스피스 의료를 신청하는 시기가 빨라지고, 일상 활동과 자기관리가 가능한 상태인 환자가 늘어났다[13]. 국내의 호스피스 의료 환경의 변화로 그동안 여명을 예측하는 평가의 대상이었던 활동 장애 정도와 전신 수행 능력이 새로운 호스피스 의료의 중재의 대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외국의 조력존엄사 현황과 국내의 호스 피스·완화의료 환경의 변화에 따라 호스피스 의료에 대한 중재의 범위와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아직 국내의 호스피스 의료의 진료 행위는 전문적인 통증 조절이나 정서적 치료보다 회진이나 보호자 면담, 약물 설명 등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보고가 있다[14]. 국내의 호스피스 의료의 연구는 주로 사전의료계획과 윤리적, 법적 문제 및 정책개발에 대한 논의가 많았고, 호스피스 의료의 중재 행위에 대한 연구는 부족했다[15]. 한국의 말기환자가 인지하는 고통을 찾고 이것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계속해서 개발해야 한다. 고통의 기준을 찾는 동시에 환자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신체적 중재를 호스피스 의료의 범위에 포함하고 의료현장에서 적용하는 질적 향상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
3. 정리
‘우리 사회의 의사조력자살 법제화’에서 조력존 엄사법안이 발의된 현재의 우리 사회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조력존엄사법안에서 제시한 조력존엄사의 전제 조건인 말기환자에게 발생한 수용할 수 없는 고통은 적절한 호스피스 의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면 대안이 없는 고통이라고 할 수 없다. 조력존엄사의 법제화를 논의하기 전에 이미 조력존엄사를 시행 중인 외국의 현황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호스피스 의료의 개선점을 살 펴볼 필요가 있다. 연명의료결정법과 판단지침을 통해 다양한 말기질환이 진단되고 있지만, 호스피스 의료를 받을 수 있는 대상질환과 차이가 있어 서 말기환자 중 일부는 호스피스 의료를 받지 못 하고 조력존엄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었다. 수용 할 수 없는 고통은 매우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평가가 가능한 고통은 단순히 조력존엄사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호스피스·완화의료에서 적극적으로 조절해야 할 새로운 중재 대상이 되어 실제 의료현장에 적용이 되어야 한다.호스피스 의료의 대상질환을 현재의 의료현장에 맞게 조절하여 접근성을 높이고, 말기환자에게 양적으로 충분히 제공하며, 변화하는 호스피스 의료 환경의 맞게 질적으로 향상 된 호스피스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향후 조력존엄 사를 논의할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