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017년 대한의사협회가 개정한 의사윤리지침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의료윤리’라는 이름으로 거론되는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다[1]. 이 지침의 제1장에는 환자의 선택권 존중 (제13조), 진료의 거부 금지(제14조), 환자의 알 권리와 의사의 설명의무(제15조), 회복불능 환자의 진료 중단(제16조), 환자 비밀의 보호(제17조), 응급의료 및 이송(제18조)이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지침의 제5장에는 태아 관련 윤리(제33조), 보조생식술 관련(제34조), 연명의료(제35조), 안락사 금지(제36조), 뇌사의 판정(제37조), 장기이식술과 공여자의 권리 보호(제38조), 장기 등 매 매 금지(제39조)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의료윤리 주제들은 학술적 논의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의료윤리 문제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의사윤리지침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의사윤리지침은 전문직의 자율적 규범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준수하길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 예를 들어, 학계에서 뇌사에 대한 논의는 오래되었어도 실제 의료현장에서 장기이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굳이 의사가 지켜야 하는 의사윤리지침에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
의료와 사회가 변화하면서 관련된 의료윤리 쟁점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의사가 지켜야 할 의료윤리 규범이 형성된다. 하지만 법과 윤리는 구별된다[3]. 일반적으로 법의 역할이 있고 윤리의 역할이 있다. 그런데 의료윤리적 쟁점에는 법으로 규율되는 주제가 매우 많다[4]. 따라서 의료윤리가 법인지 윤리인지 혼동되는 경우도 많다[5]. 윤리와 법이 미분화되고 윤리적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의료윤리적 쟁점이 논의되고 그것이 법제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과잉입법이나 비합리적 입법의 기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1945년부터 1999년까지 우리나라 언론에서 보도한 의료윤리 쟁점의 변화를 검토하였다. 특히 이러한 의료윤리 쟁점 중에서 소위 ‘리베이트’라는 이름으로 제기된 사회적 논란은 2000 년 건강보험법상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로 입법화되었다. 그리고 이는 2010년 소위 리베이트 쌍벌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의료법에 새로운 규정으로 입법화되어 형사범죄화되었다. 그리고 의료법의 관련 조항은 계속 강화되었다. 아래에서는 1945년 8월 15일부터 1999년 12월 31일까지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에 대한 언론 기사를 분석하여 사회적으로 진행된 윤리적 비난이 어떻게 입법으로 연결되었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윤리적 차원과 법적 차원에서 소위 리베이트의 문제를 고찰하고자 한다.
Ⅱ. 연구방법 및 자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는 1920년 3월 5일부터 1999년 12월 31일까지의 국내 신문기사를 제공하고 있다.1)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1999년 12 월 31일 현재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한겨레의 5개의 국내 신문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이 데이터베이스에서 1945년 8월 15일부터 1999년 12월 31일까지 기간에 키워드를 ‘의사윤리’로 하여 검색된 3,041건, ‘의료윤리’로 하여 검색된 1,075건, ‘생명윤리’로 하여 검색된 2,783건 중에서 실제 다양한 의료윤리 쟁점과 관련된 기사 728건을 찾을 수 있었다. 그중 그 당시에 새롭게 주목받은 윤리적 쟁점을 중심으로 변화를 고찰하였다. 의료윤리 쟁점은 현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 지침에 포함되어 있거나 한국의료윤리학회가 펴낸 “의료윤리학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를 기초로 하였다. 이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 의료윤리의 쟁점이 변화된 과정을 추적하였다.
의료윤리 쟁점의 변화를 분석하는 작업에 객관성과 구체성을 더하기 위해 특정한 주제 하나를 선택하여 관련 기사 전체를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1945년 8월 15일부터 1999년 12월 31일까지 키워드를 ‘리베이트’로 하여 검색된 1,869건 중 보건의료 부문의 리베이트를 거론한 79건 전수를 찾아 그 내용을 집중 분석하였다.
Ⅲ-1. 연구결과: 시대별 주요 의료윤리 문제의 등장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이후 우리나라 언론에 처음으로 ‘의료윤리’란 단어가 등장한 것은 “의료윤리위 두기로”라는 제목의 1962년 4월 15일자 조선일보 기사다. 이 기사는 정부가 동년 4 월 14일 공표한 의료법 시행령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2) 이에 따르면 의사로서 품위를 잃거나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의료행위를 한 자, 그리고 의사회 등에서 그 품위를 잃었다고 인정하는 행위 등을 심사하기 위하여 보건사회부 소속하에 “의료 윤리위원회”를 둔다는 것이다.
1969년 6월 15일자 조선일보는 모 의과대학 산 부인과학교실에서 발생한 인공수정 논란을 보도하고 있다.3) 기사에 따르면 모 의과대학 산부인과 과장 이동○ 박사가 청와대에 “국가교육기관인 대학병원에서 비도덕적인 인공수정을 하고 있으니 진상을 조사해서 처벌해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의 상대방은 같은 대학교 이상○ 조교수다. 청와대는 진정서를 부산시경으로 이첩하였는데 경찰은 법조문을 아무리 뒤져도 처벌할 수 있는 명분을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상○ 조교수는 자신이해 준 것은 제3자가 정자를 기증하는 AID4)가 아니라 남편의 정자를 모 아두었다가 일시에 수정하는 AIH5)라고 밝혔다. 이상○ 조교수는 부부합의에 따라 수술해 준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반박하였다. 문제를 제기한 산 부인과 과장 이동○ 박사의 주장은 오늘날과 다른 과거의 윤리적 기준을 보여주고 있다.
1970년 5월 22일자 조선일보는 임신중절범위를 확대한 보건사회부의 모자보건법안이 법제처에 회부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에 대한 찬반 론이 들끓고 있다고 보도하였다.6) 그러나 1970 년 6월 10일 경희대에서는 “인공임신중절과 모자 보건법”을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되었는데 인공임 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가 너무 넓다는 지적이 있었다.7)8) 결국, 1973년 모자보건법은 임신중절의 사유에서 경제적 사유를 삭제하고 입법되었다.
1971년 9월 9일부터 9월13일까지 다수의 언론은 서울대학교병원 등 4개 국립대병원 수련의 파업을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9) 1971년 9월 13 일자 동아일보는 수련의 파동이 7일간의 격동을 치르고 지난 10일 새벽 극적으로 수습되었음을 전했다.10) 기사에 따르면 정부는 매달 인턴에게 5천 원, 레지던트에게 1만 원의 임상연구비를 지급하는 등 약속을해 주었으나 수련의제도를 포함한 의료제도 전반에 걸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1971년 8월 9일자 조선일보는 인술 폭력에 메스가 가해졌다고 보도하였다.11) 기사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8일 입원비가 없는 산모의 치료를 거부한 모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의료법 제30 조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키로 하였다. 이 사건 이후 대한의학협회는 동년 8월 16일 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중앙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응급환자 진료지침을 마련, 전국 시도의사회에 시달했다. 이 지침에서는 구 단위 또는 시·군 단위로 각 의사 회의 윤번담당제를 강화, 실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12)
의사들에 대한 윤리교육이 언론에 등장한 것은 1978년 1월 17일자 조선일보다. 기사에 따르면 대한병원협회와 보사부는 각 병원의 수련의들에게 직업윤리 교육을 시행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기사에 따르면 이는 의료계의 자발적 시도로서 병원협회가 보사부의 지원을 받아 주관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 의학사상 처음인 윤리교육의 구체적 내용, 방법 및 기간 등은 병원협회와 보사부가 공동으로 연구, 작성하기로 하였다.13)
1977년 7월 우리나라에서 사회보험으로서의 의료보험이 시작되었다. 1980년 8월 16일 보사부는 의료보험 환자를 상대로 진료비를 과다하게 청구하거나 허위로 치료비를 받아내는 의사는 최고 1년까지 면허자격을 취소하는 등 제재조치를 강 화한 의료보험요양취급기관 행정처분기준을 새로 마련해 훈령 제407호로 공포했다.14)
1981년 9월 24일 충남대 총장과 문교부 차관을 지낸 박모 교수와 부인 채모 여사가 링거 주사를 맞고 동반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간암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던 박모 교수와 심장병으로 고생하 던 부인 채모 여사는 함께 죽자고 합의한 뒤 내과 의사인 부인이 링게르 주사를 조제하여 박모 교수를 안락사시키고 자신도 자살한 것이다.15) 이 사건으로 안락사의 합법성 여부에 대한 기사가 다수 나왔으나 대체적으로 적극적 안락사의 부작용을 거론하고 있다.16)
1985년 7월 25일자 경향신문은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 추진해 온 환자의 권리 선언에 대해 대학의학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계가 차례로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의료계가 반박이유로 들고 있는 것은 ① 구미 등 선진국과 여건이 다르고, ② 선진국에서도 공식화해 있지 않은 환자권리 선언을 직수입할 경우 의사와 환자의 갈등을 심화시켜 오히려 의료 행위에 장애를 초래하고, ③ 환자의 권리와 아울 러 의무도 규정해야 한다는 것들이다.17)
1985년 10월 12일자 경향신문은 국내 최초로 어머니 몸 밖에서 인공수정된 시험관 아기가 12일 상오 5시 10분 서울대병원에서 태어났음을 전했다.18) 또한, 1986년 1월 31일자 동아일보는 태 아 성감별검사에 대한 사설을 올렸다. 이에 따르면 대한의학회와 산부인과학회는 전국의 산부인과 병의원에 태아의 성별검사진단을 자제하자는 권고문을 내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1989년 6월 15일자 동아일보는 의료보험수가 인상률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대학의학협회가 정부의 잠정결정 의보수가 인상안에 반발하여 의보요양취급지정반 납과 전국 1만 1천여 명의 개업의가 참석하는 대 토론회 개최를 결정하고 나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전했다.19) 이 사건은 7월 전국민의료보 험 시행으로 일반 환자가 없어지게 되는 상황에서 나타난 일이다.20)
1989년 10월 21일자 동아일보는 “현대판 씨받이, 찬반 큰 파문”이라는 제목으로 대리모 사건을 소개하였다. 기사에 따르면 대리임신모의 시술에 성공한 서울제일병원 체외수정연구팀의 전종영 박사는 “이들 의뢰 부부는 불임으로 남들이 알 수 없는 고통을 수년간 겪어 왔다”며 “대리임신 밖에는 이들 부부의 불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의사로선 이 같은 문제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1993년 3월 4일 대한의학협회는 “뇌사”에 관한 선포식을 하고 뇌사를 공식인정했다. 의협은 뇌사 인정에 필요한 뇌사판정기준도 제정했다. 이처럼 뇌사는 법률 제정 전에 의료계의 중지를 모아 공 식적인 의료윤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21)
1993년 1월 21일자 한겨레는 대학병원 불임클 리닉에서 불임여성에게 체외인공수정을해 오면서 기증된 정자의 혈액형, 성병, 에이즈 검사 등 기본검사조차 하지 않은 채 7년 동안 파행시술을해 왔다고 보도하였다.22) 이에 대한의학협회는 1993년 5월 6일 “인공수태 윤리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인공수정 시술은 정상 수태에 결함이 있는 경우에 한정해 의협이 제정한 시술지침을 준수하도록 하고 인공수정을 하려는 의사는의 협의 심사와 인준을 받도록 하였다.23)
1993년 5월 6일 대한의학협회의 “인공수태 윤리선언”과 관련하여 당시 의협 법제이사는 의협이 대한변호사협회처럼 회원들에 대한 자체징계권을 갖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4) 이는 의협의 자체징계권 주장에 대해 언론이 처음 보도 한 사례다.
1993년 7월 13일자 동아일보는 서울지검 특수 2부의 수사결과를 전하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관계자는 의료계의 구조적인 비리로 제약회사와 병원 간의 약품 납품과 관련한 금품수수, 전공의 선발 과정에서의 금품수수, 과잉진료 과대 투약, 진료비 과다청구 등을 꼽고 분야별로 대표적인 비리 사례를 적발, 20여 명을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25)
1994년 3월 2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보사부는 의료단체가 자율적으로 제정한 윤리선언에도 강제이행 조항을 부여해 이를 위반하면 자격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즉 의료법 시행령의 품위손상행위 이외에도 대한의학협회 등 의료 단체가 자율적으로 만든 의사의 윤리, 인공수태윤리선언, 뇌사에 관한 선언 등 각종 윤리선언에 대한 위반항목을 추가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행정 처분을 내리겠다는 것이었다.26) 하지만 결국 법령으로 제정되지는 못하였다.
1998년 5월 15일 가족의 요구에 따라 사망가능성이 높은 중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 한 의사들에게 처음으로 살인죄가 적용되어 유죄가 선고되었다.27) 이 판결은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가 원하면 퇴원을 허락해 주던 병원 관행에 제동을 건 첫 판결이다.
Ⅲ-2. 연구결과: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의 윤리적 쟁점화와 평가
앞선 분석에서 우리 사회에서 보건의료 분야의 윤리적 쟁점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연 한 데 시대에 따라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보 건의료 문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국민의료보험이 시작된 1989년 7월 이후 새롭게 등장한 윤리적 쟁점으로 소위 의약품 리베이트가 있다. 이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위해 1945년 8월 15일부터 1999년 12월 31일까지 키워드를 ‘리베이트’로 하여 검색된 1,869건 중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를 거론한 79건 전수를 분석하였다.
1945년 8월 15일부터 1959년 12월 31일 사이에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를 다룬 기사나 사설은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리베이트를 거론한 기사는 1958년 1월 28일자 동아일 보 ‘보험업계에 대파동’으로 정치자금과 관련된 보험업계에서의 리베이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 기사가 나타난 시기는 1960년대이며 총 4건이다. 최초의 기사는 1967년 8월 22일자 매일경제 “한국산 의약품 월남에 진출 가능” 기사다.28) 이에 따르면 한국의약품의 대월(對越) 수출을 위하여 현지 약품 수입상들과 접촉하였는데 현지에서는 주로 구미제품이 통용되고 있고 일본산도 보급되지 못해 한국산의 시장개척에는 상당한 경비와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선전비로 35%를 지급해 주 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선전비의 지급 방법은 리베이트 형식을 취하게 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국내 문제로 처음 리베이트를 거론한 기사는 1969년 1월 28일자 매일경제 “의약 리베이트에 허덕이는 메이커들” 기사다.29) 이에 따르면 의약 품소매업계의 거래는 소강상태이나 계절적인 인 기품목으로 전 거래액의 90%의 매상 비중을 차지했던 감기약은 여전히 왕성하게 거래되고 있으며 도매상이나 메이커에 있어서는 리베이트 지급관 계로 거래가 부진하다는 내용이다. 기사에 따르면 1월 말까지 대개 메이커들은 리베이트 지급을 끝내게 되므로 메이커와 도소매업계 간의 거래는 순조로울 것 같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 시기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는 모두 경제지인 매일경제가 보도하였고 4건 모두 의사나 의료기관의 문제가 아닌 의약품 유통이나 의약품 도소 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의약품 판매질서가 엉망이고 의약난매가 번지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리베이트를 위법의 문제로 다루고 있지 않다.
이 시기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 기사는 4건이다. 1973년 5월 15일자 매일경제 “전기 맞은 유 통구조 (10) 의약품” 기사는 의약품 메이커와 유 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30) 이에 따르면 당시 전 국의 의약품 메이커는 3백 20여 개에 이르고 있으며 연간 생산액 2억원 이상인 대규모 메이커는 전체의 10% 미만인데 대규모 메이커는 전국지역을 일원으로 판매망을 갖고 있고 평균 60-100개의 도매상과 2천여 개의 소매상 판매망을 갖고 있다. 또한, 기사는 지나친 리베이트 등으로 가격체계와 거래체계가 안정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1975년 6월 7일자 매일경제 “제약업게 자금난 가중 판매 부진 미수금 늘어” 기사는 판매 부진에 따라 종전 10-15%씩 주던 리베이트가 최근 자금회수가 어려워지자 현금결제인 경우 최고 30%까지 늘었다고 전한다.
1976년 7월 23자 매일경제 “해설 유통질서 건 전화에 주안 10 불공정거래행위 지정 내용”은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정 시행 후 3개월 만에 그 핵심인 불공정거래행위가 지정고시 되었음을 전하고 있다.31) 이 중 차별가격은 할증 판매 또는 할인판매에 해당되는 것으로 타 사업자 의사업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차별가격으로 물품이나 용역을 공급하거나 매입하는 것을 말하는데 의약품의 리베이트 등은 엄격히 보아 이 조항에 저촉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시기 역시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 기사는 모두 경제지인 매일경제가 보도하였고 4건 모두 의사나 의료기관 문제가 아닌 의약품 유통이나 의약품 도소매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처음으로 보건 의료 부문 리베이트가 불공정거래행위라는 법적 규율 대상이 되었지만 “타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방해하기 위해”라는 요건을 충족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 기사는 아니지만 1977 년 8월 13일자 매일경제 “세무요체 [9] 리베이트의 세무처리”를 보면 당시 리베이트를 어떤 관점으로 이해했는지 알 수 있다.
“자기제품을 1백개 팔아주면 1개를 더 준다든지 1백만 원어치를 팔아주면 1만 원을 현금으로 준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다. 제약회사에 있어서는 이러한 사례가 많다. 이 때 물품을 더 주거나 현금을 주거 나 하는 것을 세법에서는 보금, 장려금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를 리베이트라고 한다. ... 이런 약정을 물품을 팔기 전 미리 약정서에 의하여 마련하여 두고 리베이트 금액을 비용으로 처리하였을 때에는 전액 손금인정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전약정 없이 리베이트를 주었을 때에는 접대비 한도액 내에서만 손금용인이 됨을 세무경리인들은 유의해야 될 것이다.”32)
이 기사는 리베이트 자체는 적법한 마케팅의 방법으로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세법상의 비용 처리와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 기사는 5건이다. 1970년대까지의 기사는 경제지인 매일경제에서 다루었지만 1980년대 기사는 일간지인 조선, 동아, 경향, 한겨레에서 다루고 있다. 또한, 1970 년대까지의 기사는 경제적 관점이지만 1980년대의 기사는 범죄라는 관점이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근본적인 이유는 의료보험 제도라고 판단된다. 우리나라는 1979년 300인 이 상 사업장의 근로자와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으로 대상으로 처음 의료보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적용 범위가 확대되어 1988년 1월 농어촌지역 의료보험, 1989년 7월 도시지역 의료보험이 시작되어 전국민 의료보험 시대를 맞게 되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의료기관의 약 구입과 사용은 의료보험이라는 제도의 틀 속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열악한 보험재정의 문제는 보험 약의 구매를 둘러싼 논쟁을 가속했다.
1980년대 첫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 기사는 농어촌지역 의료보험이 시작된 이후인 1988년 12월 1일자 동아일보 “본회의 사회분야 대정부 질문”이다. 이에 따르면 당시 이철용 의원은 제약회사에서 종합병원에 약품을 불법덤핑하고 의사들에게 리베이트, 임상실험비, 특별지원금 등 명목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연간 1조 원에 달하고 있다며 약품 가격을 합당한 선으로 조정할 용의가 있는지를 정부에 질의하였다.33)
여기서 종래 없던 새로운 관점이 시작되는데 종 합병원이 제약회사로부터 약을 싸게 구매하는 것을 “불법덤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량구매시 단가가 떨어지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적법 한 경제현상이다. 이를 불법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는 결국 의료보험이 확대되면서 의료보험재정이라는 새로운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다량구매시 단가가 떨어지는 것이 보편적 경제 현상이라는 점은 무시하고 의료보험 재정에 해가 된다면 위법한 것이라는 시각이 출현한 것이다.
1989년 12월 23일자 경향신문 “제약사들 병원에 연 250억 상납”은 의사 개인의 비리가 아니라 제약업체로부터 병원이 지원을 받는 것 자체를 상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감사원은 23일 지난 8월부터 의약부조리를 집중감사한 결과 주요 대학병원을 비롯한 전국 20여 개 대형병원이 의약품 구입 과정에서 전체 구입비의 20% 선인 2백50억 원을 제약업체로부터 연구지원금 등 각종 명목으로 부정하게 받았음을 밝혀냈다는 것이다.34)
이 기사는 의사 개인이 처방의 대가로 이익을 취득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이 제약업체로부터 연구지원금 등을 받은 것을 ‘부정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지원금은 ‘탈세’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면 의약품을 리베이트의 형태로 싸게 구입한 것이다. 이처럼 과거에는 경제적 현상으로 이해했던 리베이트가 이제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제도적 틀 속에서 범죄적 현상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보건의료 부문의 리베이트 기사는 66건이다. 이 중 의사가 처방의 대가로 돈을 받는 등 개인적 비리에 초점을 맞춘 기사가 21건, 이른 넘어 의료기관의 문제까지 포함한 기사가 23건, 무자료 거래 등 제약유통 전반의 문제까지 포함한 기사가 22건이다.
1990년대 처음으로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 문제를 다룬 것은 1990년 2월 3일자 조선일보 “‘뒷돈’ 양성화” 기사다. 이에 따르면 감사원은 병원과 제약회사의 음성적 뒷돈 거래가 연간 1천5백억 원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낸 후 보사부에 이 같은 부조리를 없앨 방안을 강구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보사부는 이 지시를 받고 제약회사가 보험 약품의 신고가보다 15%까지 약을 싸게 팔 수 있도록 허용하여 음성적인 뒷돈거래를 양성화 시키는 정책을 펴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보사부는 “병원에서 약품 거래 때 받는 뒷돈이 개인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병원경영에 쓰이기 때문에 무조건 약품의 덤핑판매에 행정 제재를 가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사는 보사부의 조치가 사회부조리를 합법적으로 인정해 주었으며 의료계와 제약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부담을 가중시켰다고 비판하였다.35)
이 기사를 보면 당시 보사부는 의사 개인이 처방의 대가로 뒷돈을 받아 개인 호주머니로 챙기는 비리와 의료기관이 약품을 리베이트 형태로 싸게 구매하는 것을 구별하였다. 하지만 언론은 계속 의사 개인의 문제와 의료기관 운영의 문제를 구별하지 않고 의료보험 재정과 연관하여 비판을 이어 갔다.
1991년 3월 20일자 동아일보 “의료약품 폭리 보험재정 휘청” 기사는 지역의료보험의 재정적자 누증으로 보험료가 해마다 큰 폭으로 인상되고 있는데 보사부가 의료보험 약가를 시판가격보다 높게 책정하여 업계에 부당이익을 주는 반면 의료보험재정 적자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하였다.36)
이렇게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가 의료보험재정 적자와 연결되어 전달되면서 1990년대에 검경의 기획사정이 시작되었다. 1993년 5월 13일자 조선일보 “의료비리 전면수사 착수” 기사는 서울지검 특수부가 민생비리 사정 차원에서 전공의 부정 채용, 의약품 및 최신 고가의료기기 구매과정에서 뇌물 수수 등 뿌리 깊은 의료계 비리에 대한 전면 수사에 착수했다고 전하고 있다.37) 또한, 1993년 6월 4일자 한겨레 “○○의료원 등 제약사서 2억대 수뢰” 기사는 부산·경남지역 대형 종합병원들이 한 제약회사로부터 2억여 원의 사례비(리베이트)를 받아 온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전했다.
1993년 8월 6일자 동아일보 “9개 종합병원-10개 제약회사 의약품 납품비리 36명 입건” 기사는 서울경찰청 강력과의 수사결과 서울 시내 9개 종합병원이 10개 유명 제약회사로부터 의약품을 납품받으면서 기부금, 임상실험 판촉비 등의 명목으로 납품가의 21%가 넘는 3백 44억 원을 받았다고 전했다.38) 기사에 따르면 경찰은 이중 기부금과 랜딩비 수수가 배임수증죄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배임수증죄는 대학교수나 봉직의가 처방의 대가로 돈을 받는 행위에 적용되는 것이지 의료기관 자체가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리베이트의 형태로 싸게 구입하는 것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다. 후자는 범죄도 아니고 전혀 배임수증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실제로 1993년 8월 8일자 동아일보 “의약비리를 보는 시각” 사설에는 이와 같은 병원 관계자들의 해명을 소개하고 있다.39) 대학병원이 제약회사로부터 받는 돈은 장학금, 연구기금 또는 시설비에 보태쓰기 때문에 그 성격은 기부금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보사부의 병원회계처리지침도 “병원이 기부금, 장학금, 연구비 등의 명목으로 받는 수입은 기부금으로 회계장부에 계상한 후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기부금을 인정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설은 이러한 주장을 소개한 후 자신 들은 경찰의 관점과 대학병원의 주장에 대해 시비를 가릴 처지가 아니며 사법적 판단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쓰고 있다. 다만 비리의 소지가 있는 돈거래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8년 11월 21일자 조선일보 “제자들이 의도 소리 들어서야 ... ” 기사는 서울의대 김용익 교수의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40) 김 교수는 참여연대 소식지 “개혁통신”에 제약업계와 병원 간 비리를 고발하는 공개서한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냈다. 김 교수는 의약품의 보험가격이 실거래가보다 최고 9배까지 높게 책정되어 왔으며 병원에서 약을 살 때 기부금, 장학금, 학회참가 보조금 등 제약회사와 비밀거래가 오간다고 비판했다. 이 글은 대학교수나 봉직의 개인이 처방의 대가로 돈을 받는 배임수증죄와 의료기관이 의약품을 싸게 구입하는 것에 차이를 전혀 구별하지 않고 있다. 후자의 행위도 도둑질이라는 것이다. 한편 의사 개인의 비리도 이어졌는데 전·현직 대학병원장과 의대 교수가 납품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겨 구속되는 사건 때문에 사회여론이 크게 악화되었다.
1999년 12월 8일 조선일보, 한겨레, 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는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이 국내 의약품의 무자료 거래규모가 연간 2조1천억 원에 이르며 이 가운데 9천억 원이 리베이트 비용으로 사용돼 세금을 누락하고 있다고 주장한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41)
결국, 이러한 사회 흐름 속에 의사 개인이 처방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과 의료기관이 의약품을 싸게 구입하는 것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모 두 범죄시하는 시각이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2000년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라는 의료보험 약가상환 방법으로 제도화되었다. 이후 2010년 의료법에 의료기관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 밖으로 의약품을 싸게 구매하는 것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소위 “리베이트 쌍벌죄”가 입법화되었다.
의사는 비의료인과 동업하거나 고용되어 일해서는 안 된다. 이는 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지침 제28조 제3항에 위배 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의료법 상 위법한 행위이며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된다. 하지만 의사는 은행이나 지인으로부터 의료기관 운영을 위한 자금을 대여받을 수 있다. 이는 정상적인 금융 거래 행위로서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나 문제 될 수 없다. 그런데 의사가 비의료인으로부터 자금을 대여받으면서 지분을 인정하여 수익의 일정 비율을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면 이는 단 순한 금융 거래가 아니라 일종의 동업으로서 의료 법에 위배 된다.
이처럼 의사가 자금을 대여받는 것과 자금의 대 가로 지분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행위다. 여기서 비의료인과 지분을 나누는 것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의사가 자금을 대여받는 것을 금지할 수는 없다. 이는 비의료인과의 동업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의사의 정상적 금융 거래까지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병원 의사가 처방의 대가로 제약회사 등으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는다면 이는 의사윤리지침에도 위배되며 동시에 위법한 행위이다. 이는 형 법 제357조 제1항의 배임수재죄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대학병원 의사가 조영제나 의료재료를 지속해서 납품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정한 청탁 또는 의약품 등을 사용해 준 대가로 제약회사 등으로부터 선물이나 골프접대 등 향응을 제공받은 경우 배임수재죄를 인정하였다. 광주지방법원은 대학병원 의사가 특정 업체로부터 매달 의국비를 지원받은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배임수재죄를 인정했다.
그런데 2014년 대법원은 의료기관 종사자가 의료기기 판매업자로부터 의료기기 채택·사용 유도 등을 목적으로 제공되는 금원을 교부받아 의료법 및 구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무죄를 선고하였다[6]. 그 이유는 금원을 받은 당사자가 의료기관 종사자가 아니라 의료기관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의료기관 종사자가 의사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의사여도 마찬가지의 판결이나 왔을 것이다. 그리고 의사가 그런 행위를 했다고 하여 의료윤리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의사이던 의사가 아니던 의료기관 직원은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싸게 구매하려고 노력하며 그러한 행위를 하였다고 해서 윤리적으로 비난하거나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 대법원판결 이후 2015년 12월 29일 의료법 제23조의 5 제1항은 의료기관 종사자가 경제적 이익을 자신이 근무하는 의료기관으로 받 게 하여도 처벌한다고 개정되었다[7]. 따라서 이제는 의료기관 종사자가 열심히 일하여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싸게 사서 의료기관의 재정에 기여하는 것은 불법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의사윤리에 위배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는 매우 근본적인 경제활동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료법 제23조의 5 제1항 부당한 경제적 이익 등의 취득 금지는 단순히 봉직의들의 이해상충 행위를 제한하는 것을 넘어 의약품 공급자의 이윤이 의료기관으로 전달되는 것 자체를 불법화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는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매우 과도한 범죄화에 해당한다. 이러한 규제의 연원은 건강보험법의 의약품 실거래 가상환제에서 비롯된다.
2000년 도입된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는 의료기관이 정부가 고시한 의약품의 상한가 이하로 구매하여 그 차액을 경영에 활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러한 제도는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를 비판해 온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는 복지는 공동구매라고 표현하였다. 개개인이 복지 서비스를 구매하면 가격이 비싸지만, 국가가 개입하여 공동으로 구매하면 다량 구매라는 경제원리 때문에 국민이 싸게 구입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복지제도조차 경제적 원리에 기초해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건강보험법령은 실거래가상환제를 도입하여 의료기관이 특정 의약품은 1개를 구매하던, 10,000개를 구매하던 상한가와 실거래가와의 차액을 의료기관 경영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결국, 의료기관은 의약품을 싸게 살 필요가 없고 대부분 정부가 고시한 상한가에 맞추어 구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의 취지는 2010 년 의료법에 소위 리베이트 쌍벌죄가 도입되면서 형사범죄로 규정되었다. 따라서 의료기관을 운영 하는 의사는 정부가 만든 규정 외로 의약품을 싸게 사서 그 차액을 얻게 되면 형사적으로 처벌받 게 되었다. 그리고 2014년 위 대법원판결에서 의료기기를 싸게 구매하여 의료기관 운영에 도움을 준 의료기관 종사자가 무죄를 선고받자 국회는 의료법의 리베이트 쌍벌죄를 개정하여 이마저도 봉 쇄하였다.
이처럼 의료법이 불법화한 리베이트의 범주는 현실 세계에서 기본적으로 인정되는 경제원리를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채택하지 않는 기인한 제도다. 그리고 그 기원은 2000년 도입된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다. 그리고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는 1990년대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윤리적 비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Ⅴ. 결론
중복되는 영역도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법은 법의 역할이 있고 윤리는 윤리의 역할이 있다. 법과 윤리의 미분화는 전근대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법이 최대한의 윤리적 요구를 감당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8].
의료계에서는 자율규제를 하지 못하면 법이 개입하므로 의료윤리를 정립하고 자율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많다[9]. 일정 부분 타당하지만 이러한 논의의 전제는 사회 전체적으로 법과 윤리가 분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가 법에 맡길 것과 윤리에 맡길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의료윤리’라는 단어가 1962년 보사부 소속의 “의료윤리위원회”에서 처음 나온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형태의 윤리는 본질적으로 윤리라기보다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법규범의 성 격을 갖는다. 윤리가 곧 법인데 다만 처벌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의료계가 참여하는 의료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의료윤리’는 위반시 제재를 가하는 일종의 법규범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1994년 보사부가 의료계가 자율적으로 제정한 윤리선언을 위반하였을 경우에도 제재하는 의료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였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오래도록 윤리와 법이 미 분화상태였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의사가 윤리를 위반하면 처벌하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도 의료 분야의 법령에는 윤리적 내용을 법의 이름으로 강제하고 처벌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의료법상 진료거부 금지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규정이다. 독일 등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응급환자에 대하여만 진료를 강제한다[10,11]. 사실 의사와 환자와의 계약은 변호사와 의뢰인의 계약과 마찬가지로 민법상 위임계약에 해당한다. 그리고 변호사가 위임계약을 체결하기를 원하지 않는데 의뢰인이 원한다고 하여 강제로 위임계약을 체결하게 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1970년대 “비정 인술(非情 仁術)”로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은 응급의료체계의 문제가 근본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의료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는 없었고 의료제도가 감당해야 할 몫을 쉽게 의서의 윤리적 책임으로 돌린 것이다.
이처럼 사회 자체가 윤리와 법을 제대로 분별하지 않는다면 의료윤리의 독자성을 세우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결국, 의료계는 집단으로 우리 사회가 법과 윤리를 분별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의료윤리를 정립하는 이중의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윤리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윤리의 핵심에 변화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변화하는 내용도 많다. 사회윤리가 그렇고 성윤리가 그렇다. 의료윤리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러한 의료윤리의 변화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깊은 관계가 있다.
1969년 모 의과대학 산부인과에서 AIH 시술과 관련하여 과장과 조교수 사이에서 발생한 분쟁은 의료윤리가 변화한다는 대표적 사례이다. 지금 남편의 정자를 아내의 자궁에 넣어주는 AIH 시술이 비윤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의사나 국민은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1850년경 Marion Sims는 55명의 불임여성을 대상으로 AIH를 시술하였으나 동료 의사들의 비난을 받아 중단하였다. 오랜 시간이 걸려 정액 주입이 정상적인 의료로 받아들여졌다[12].
의료기술과 의료윤리의 관계는 다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첫째, 의료기술의 발전이 의료윤리의 변화를 이끌고 법적 변화까지 끌어낸 경우다. 대표적인 예가 뇌사다. 뇌사는 196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크리스천 버나드(Christiaan Barnard)가 심장이식에 성공함으로써 처음 제기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1990년대 각종 장기의 이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거의 30년간의 논의 끝에 1999년 2월 8일 국회에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다. 다만, 이 법은 ‘뇌사자’를 장기기증을 전제로 한 경우에만 사망자로 판단하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13].
반면 의료기술은 가능하지만, 우리나라 의료윤리가 정면으로 다루기를 외면하는 영역도 있다. 대리모가 대표적인 예다. 체외수정이 가능해지면서 대리모라는 의료윤리 문제가 등장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대리모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여 왔다. 그래서 대리모는 여전히 법적 사각지대에 있다[14]. 2018년 가정법원은 대리모가 출산한 자녀의 친모는 대리모라는 결정을 내 렸다. 대리모계약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것으로서 민법 제103조에 의하여 무효라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15]. 그러나 대리모를 처벌할 규정은 명확하지 않다. 대한의사협회 의사 윤리지침에도 대리모에 대한 의견은 없다. 분명히 발생할 수 있는 현상에 대해 우리 법이나 의료윤리는 외면하고 있다.
종합하여 보면 외국에서 새로운 의료기술이 개발되고 그에 대한 의료윤리적 논의가 마무리되어도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의료윤리적 논의가 이어지기까지는 시차가 존재한다. 뇌사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태아 성감별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가 의료윤리적 논의를 이끈 사례는 없다고 판단된다. 이는 일정 부분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를 선도하는 새로운 차원의 의료기술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일 우리나라의 의학이 발전하여 새로운 의료 기술을 선도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가 먼저 관련된 의료윤리적 논의를 하고 새로운 기준을 정립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그런 예가 없지만, 황우석 사건 이 교훈을 줄 수 있다[16]. 당시 우리 사회는 전 세계적 신기술이 개발된다는 내용에 전적으로 열광하면서 관련 의료윤리적 문제는 외면하였다.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의료기술의 개발과 동시에 의료윤리적 문제를 논의하는 역량을 축적해야 한다. 의료기술 개발 연구비 중 적으나마 일정 부분은 관련 의료윤리적 문제를 검토하는 데 투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나라 의료법은 1951년 “국민의료법”으로 제정되었는데 1962년 3월 20일 전부개정되면서 “의료법”이라고 명칭이 변경되었다. 동법 제19조 제2항은 “보건사회부장관은 의사, 치과의사, 한 의사, 조산원 또는 간호원이 심히 그 품위를 손상 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에는 각령으로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그 업무를 정지시킬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다[17].
이에 따라 동법 시행령 제1조는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로 ①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아니하는 치료 행위, ② 비도덕적 치료행위, ⑬ 기타 의사회 등에서 그 품위를 심히 손상시켰다고 인정하는 행위를 열거하고 있다. 또한, 동법 시행령 제2조에 따르면 품위손상행위를 심사하기 위하여 보건사회 부장관 소속하에 “의료윤리위원회”를 둔다고 규정 하였다[18]. 의료윤리위원회는 1973년 의료법이 전부 개정되고 이에 따라 동법 시행령이 개정될 때 삭제되었다. 그리고 그 기능은 새로 구성하는 의료심사위원회가 대체하였다. 그러나 1973년 의료 법이 전부 개정되고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의료심사회의 위원장은 보건사회부차관이, 부위원장은 보건사회부 의정국장이 되고 위원은 보건사회부 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하는 형태로 바뀌어 자율징계의 성격은 완전히 사라졌다[19].
현 의료법은 각 중앙회의 장은 의료인이 제66조 제1항 제1호(품위손상행위)에 해당하는 경우만 각 중앙회의 윤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보건 복지부장관에게 자격정지 처분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962년 의료윤리위원회는 당시 보사부에서 직접 운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원 9명 중 7명을 민간 위원이 담당했다는 점에서 지금보다 더 자율적 권한이 컸다고 판단된다. 자율징계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제도는 과거보다 축소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1960년대에 처음으로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가 언론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후 1970년대까지의 기사들은 모두 경제지인 매일경제에서 다루고 있으며 의사나 의료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의약품 유통이나 도소매의 문제를 다 루고 있다. 그리고 이들 기사는 모두 리베이트를 경제적 현상이고 문제점이 있지만, 위법의 문제로 다루고 있지 않다. 이와 달리 1980년대 리베이트는 처음으로 일간지인 조선, 동아, 경향, 한겨레에서 다루고 있으며 범죄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당시 기사는 집중적으로 1988년 12월 이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가 의료보험과 관련하여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했음을 알려준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1979년 시작되었지만 1988년 1월 농어촌지역 의료보험이, 1989년 7 월 도시지역 의료보험이 시작되어 전국민의료보험 시대를 맞게 되었다. 따라서 의료기관의 의약 품 구입과 사용은 의료보험이라는 제도의 틀 속으로 편입되었으며 열악한 의료보험재정 문제는 보험 약의 구매를 둘러싼 윤리적 논쟁을 가속했다.
1980년대 보건의료 부문의 리베이트 기사는 모두 의사 개인의 비리보다 의료기관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실 의료윤리적으로 문제 되는 것은 의사가 처방의 대가로 돈을 받는 이해상충의 문제이다. 그런데 당시 이러한 문제보다는 의료기관이 의약품을 싸게 구매하는 것 혹은 리베이트라는 형태로 돈을 받는 것 자체가 집중적으로 주목 받았다. 이는 의료보험재정이라는 관점에서 리베이트의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알려 준다. 1989년 12월 23일자 경향신문 “제약사들 병원에 연 250억 상납” 기사는 제약업체로부터 병원이 지원을 받는 것 자체를 상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1990년대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 기사 역시 의료기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당시 보사부는 “병원에서 약품 거래 때 받는 뒷돈이 개인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병원경영에 쓰이기 때문에 무조건 약품의 덤핑 판매에 행정 제재를 가할 수 없었다”고 밝히는 등 의사 개인의 문제와 의료기관 운영의 문제를 구별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의사 개인의 문제와 의료기관의 문제를 구별하지 않았으며 이는 대대적인 검경의 기획사정으로 이어졌다. 특정 개인의 비리보다 의료기관 전체의 비리이자 의료기관 전체의 비리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의사 개인의 비리도 이어졌는데 전·현직 대학병원장과 의대교수가 납품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겨 구속되는 사건 때문에 사회여론이 크게 악화되었다. 여기에 정점을 찍은 것은 1988년 11월 서울의대 김용익 교수가 김대중 대 통령에게 참여연대 소식지 “개혁통신”을 통하여 제약업계와 병원 간 비리를 고발하는 공개서한을 보낸 것이었다. 이 글은 의사 개인의 문제와 의료기관이 의약품을 싸게 구입하는 것이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있다. 전자건 후자건 도둑질이며 이런 문제가 해결되어야 제자들이 의도(醫盜)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1990년대 우리 사회에서 의사 개인이 처방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과 의료기관이 의약 품을 싸게 구입하는 것이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 범죄시하는 시각이 확산되었다. 이는 2000 년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로 이어졌다. 그리고 2010년 의료법에 이를 위반하면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소위 “리베이트 쌍벌죄”가 입법화되었고 2015년 12월 다시 의료법이 개정되어 의료기관 종사자가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싸게 구매하여 의료기관 경영에 도움을 주는 행위조차 형사범죄 화하는 것으로 강화되었다.
그러나 의사 개인이 처방의 대가로 돈을 받는 문제와 의료기관이 의약품을 싸게 구입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실제 이 둘을 구별하지 않고 모두 범죄화하여 위반시 처벌하는 나라가 있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어떤 사업체가 특정 물품을 구매하는데 1개를 구매하던, 10,000개를 구매하던 같은 돈을 지불 하라고 법을 만들고 위반하면 처벌하는 나라가 있을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따라서 보건의료 부문의 리베이트는 지극히 과잉범죄화되어있다.
사실 의료인의 윤리로서 이해상충은 매우 근본적인 문제다. 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지침 제29조는 이해상충을 제약회사나 의료기기회사와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인의 윤리로서의 이해상충은 이런 문제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상충은 본질적으로 의료인의 진료행위 자체에 내재해 있다. 의료인이 환자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다면 늘 문제 될 수 있는 것이 이해상충이다. 따라서 미국 의료윤리규약(AMA Code of Medical Ethics)은 이해상충을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구매에 한정하지 않고 일반적인 의료행위에서 의사가 주의해야 할 윤리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20]. 다만 이러한 이해 상충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법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런 논리라면 의료기관에서 환자에게 진료비를 받는 것 자체가 이해상충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건의료 부문 리베이트는 법적으로는 과잉범죄화 되어있으며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의료윤리적으로 이해상충은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구매의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일반적인 진료행위 자체에 내재해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의료인이라면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