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낙태죄는 자기낙태를 행한 여성과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인공임신중지1)를 한 의사 등을 처벌하는 형법이다. 이 낙태죄는 1953년 형법에 규정되어 66년간 논란 속에 유지되었으나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판정을 받아 2021년 1월 1일 실질적으로 폐지되었다. 법은 그 법이 속한 사회의 인식을 반영한다. 또한, 법의 변화는 새로운 사회적 인식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즉 낙태죄 폐지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고양을 위시한 한국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며, 나아가 한국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진전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낙태 관련 법은 단지 낙태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모자보건법 제14조2)와 의료법상의 태아성감별행위 및 고지금지법(이하 ‘태 아성감별금지법’)이 있다. 모자보건법은 법리상 낙태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조항을 담고 있기에 보건복지부와 시민사회 진영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에 반해 태아성감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찾기 어렵다. 태아성감별금지법은 1987년 여태아 낙태 방지를 위해 제정된 의료법상의 규정으로 인공임신중지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낙태죄가 폐지된 상황에서 태아성감별 금지법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과연 현재적 유효성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태아성감별금지법에 대한 선행연구로는 양현아와 이백휴의 것이 대표적이다. 양현아[1]는 2009년 태아성감별금지법은 그 효과를 출산성비, 출산력 등을 해석할 때 입법목적을 위한 적정한 방법으로 보기 어렵고, 한국인의 ‘남아선호현상’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시각에서 보아야 하므로 입법목적이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였고, 이백휴[2]는 2010년 태아 성감별 행위는 낙태죄의 예비·사전행위에 해당하나 낙태행위보다 더 엄격하게 해석되며, 낙 태행위의 방지는 낙태죄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태아성감별금지법 제정의 직접적 배경이 된 출생성비와 남아선호의 변화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한 선행 연구로는 김두섭과 이철희의 것이 대표적이다. 김 두섭[3]은 2011년 출생성비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성선별 출산행위의 설명틀을 적용하여 특정 지역 출생성비의 집단 간 편차를 설명하였고, 이철희[4]는 2013년 여성 노동시장성과의 상대적인 개선이 출생성비를 통해 드러나는 남아선호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여 여성 기대소득의 상대적인 증가는 남아선호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하였다. 태아성감별 금지법에 관한 선행연구들은 2008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전후하여 태아성감별금지법의 법적 논리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출생성비와 남아선호에 대한 이전 연구들은 한국사회에서 이에 대한 변화 양상을 잘 분석하여 설명하였지만 2010년 이후로 출산율, 출산성비 등이 확연히 변화된 만큼 인구 사회학적, 보건의학적인 고찰을 토대로 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태 아성감별금지법 제·개정 과정의 역사와 더불어 법 제정 배경이 된 한국 사회의 남아선호사상과 양성평등의 사회적·제도적 변화 등을 살펴보 고자 한다. 아울러, 태아성감별금지법에 대한 사회, 의료, 법적 검토를 통해 현재적 유효성을 타진해볼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게시된 의료법과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통계청 국가 통계포털에 게시된 인구 관련 통계자료와 한국보 건사회연구원에서 시행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 사” 결과를 검토하였다. 또한, 태아성감별금지법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성선별 출산행위와 산전검사에 대한 각종 문헌을 분석하였다.
Ⅱ. 태아성감별금지법에 대한 역사적 고찰
선행연구들이 태아성감별금지법의 개정 과정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다루고 있으나 법의 제·개정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않았다. 따라서, 더욱 명확히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태아성감 별금지법의 제·개정 과정의 역사를 당시의 시대 적·사회적 배경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태아성감별금지법의 제정은 출생성비의 불균형에 기인한다. 성비(性比)는 인구의 성별 구조를 나타내는 지표로 출생성비는 출생 여아 100명당 출생 남아의 수를 나타낸다. 의료적 개입이 없을 때 달성되는 생물학적인 정상 출생성비인 자연성비 란 사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105를 기준으로 103~107의 범위 내에 있을 때 정상으로 본다.
한국의 출생성비는 <Figure 1>에서 보듯이 2000년대 중반까지는 자연성비보다 확연히 높았다. 이러한 출생아의 성비 불균형은 일반적으로 ① 성선별 출산 및 인공유산 ② 여아의 출생신고 혹은 등록 누락 ③ 영아의 유기 혹은 살해 ④ 영아 사망률의 성별 편차 등 네 가지 요인으로 설명된 다[3]. 특히 ②, ③, ④, 즉 여아의 출생신고나 등 록 누락, 영아의 유기 혹은 살해, 그리고 영아사망률의 성별 편차는 중국이나 인도 등 국가에서 성 비 불균형을 초래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5].
그러나 한국의 경우 출생통보제가 법제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모가 출생신고를 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출생신고를 해야만 주민등록이 되므로 아동학대나 불법매매와 같은 범죄와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출생신고가 누락되며, 또한 이러한 경우에도 성별에 따라 여아인 경우에만 등록하지 않는다고 볼 근거가 없으므로 성비 불균형에 여아의 출생신고 혹은 등록 누락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영아 유기·살해는 분명 한 건 한 건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긴 하나, 연간 100건 내외이기 때문에 통계적으로는 성비 불균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3) 연간 영아사망률의 성별 차이는 생물학적으로 남영아사망률이 여영아사망률 보다 높고, 한국 통계에서도 대부분의 해에 남영아사망률이 여영아사망률보다 높았고, 그렇지 않은 해에도 통계학적인 의미가 없었으므로 이 또한 성비 불균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 된다.4)
이 때문에 한국의 경우에는 ①에 해당하는 성선 별 출산, 즉 임신한 상태에서 태아의 성을 감별하고, 성감별 결과에 따라 여태아의 인공임신중지가 광범하게 행해짐으로써 1980년대 중반 이래 일정 기간 성비 불균형 현상이 초래되었고 할 수 있다[6].
이러한 사회적 상황이 1980년대 두드러지게 포 착되자, 1987년 “태아의 성감별행위등 비윤리적인 진료행위의 금지를 명문화하기 위해”5) 태아 성감별금지법이 제정되었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구) 의료법 제19조의 2 [태아의 성감별행위등의 금지]
① 의료인은 태아의 성감별을 목적으로 임부를 진찰 또는 검사하여서는 아니되며, 같은 목적을 위한 다른 사람의 행위를 도와주어서는 아니 된다.
② 의료인은 태아 또는 임부에 대한 진찰이나 검사를 통하여 알게 된 태아의 성별을 임부 본인, 그 가족 기타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
[본조신설 1987.11.28]
이후 1994년 의료법 등의 위반행위에 대한 행 정처분을 규정하는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이 제정 되면서 태아의 성감별 및 고지행위를 한 경우 1차 위반 시 면허자격정지 7~12개월, 1차 위반에 대한 처분일부터 2년 이내 다시 위반 시 면허취소의 행정처분을 할 수 있도록 처벌규정이 이전보다 약화되는 듯했으나, 1996년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일부개정으로 1, 2차 구분 없이 면허취소의 행정 처분을 할 수 있도록 다시 강화되었다. 또한, 태아 성감별금지법 위반으로 의사들이 처음 적발되어[7]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것은 1990년이었으나[8], 1996년에는 보다 강력한 법 집행이 이루어져 태아성감별금지법 위반으로 의사가 구속되는 상황에 이르렀다[9].
이처럼 법이 강화되고, 실제 집행에서도 엄격하게 이루어진 것은 당시의 사회적 변화 때문으로 생각된다. <Figure 1>에서 보듯이 1980년대 후 반~90년대 초반의 출생성비가 110 이상으로 가장 높아, 이시기 성선별 출산행위가 전국적으로 만연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시사 TV프 로그램6)에서도 출생성비의 증가로 인한 성비 불 균형 현상을 집중 조명하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의식한 듯 대한의사협회도 제정 당시에는 법안 자체를 반대하였다가[10] 1990년대에는 “태아 성감별 않겠다”는 의사윤리선언을 채택하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하였다[11].
또한, 인구정책의 변화도 법 적용에 영향을 미 친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인구정책 기조가 출산 억제일 때에는 인공임신중지를 금하는 법 적용을 느슨하게 하는 반면, 출산 장려일 때에는 법 적용을 강하게 하기 마련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경제개발’을 위해 출산 억제 정책을 폈 고, 이를 위해 낙태죄를 단속하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12]. 이후 한국의 인구정책은 인구의 질적 측면을 제고하는 단계(1996~2004년)를 거쳐, 출산 장려정책(2005년~현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였는데[13], 그 변곡점이 된 1996년에 태아성감별금지법의 처벌이 강화되고, 의사가 처음 구속된 것 역시 그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며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출생성비가 정상범위까지 떨어졌고 태아성감별금지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태아성감별금지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1례씩 다른 사례에서 제기되었다. 2004년 임신한 아내가 초음파검사를 받는 중에 남편이 산부인과 의사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줄 것을 요청하자 의사는 의료법 조항에 의거하여 요청을 거절하였고, 이에 남편은 해당 의료법 조항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 2005년에는 산부인과 의사가 태아의 성별을 확인하여 줌으로써 의료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의사면허자격정지 6월을 명하는 처분을 받아 이에 의사가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 이 2가지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08년 7월 31일 재판관 5인(이강국, 김희옥, 민형기, 목영준, 송두 환 재판관)의 헌법불합치 의견, 3인(이공현, 조대 현, 김종대 재판관)의 단순위헌 의견, 1인(이동흡 재판관)의 헌법합치 의견에 따라 9인의 헌법재판 관 중 8인의 다수 의견으로 해당 조문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결정의 주된 이유는 인공임신중지가 의학적으로 어려운 임신 후반기까지 이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의료인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부모의 태아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아니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었다.7)
이 헌법재판소 판결에 의해 2009년 의료법이 개정되었는데, 주된 내용은 임신 후반기인 32주 후부터 태아의 성별 고지가 허용되고, 법을 지키 지 않은 경우에 대한 처벌이 면허취소에서 1년 면허자격정지로, 벌칙이 3년 이하의 징역에서 2년 이하로 완화되었다.8) 태아성감별 고지 허용시기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면, 임신 주수가 너무 이른 시기에 이를 허용하면 사실상 태아성감별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되고, 너무 늦은 시기에 허용할 경우 그 실효성이 없게 되기 때문에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헌법재판소에 임신 28주 이후부터는 진료 과정에서 인지하게 된 태아의 성별을 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 시기에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할 경우 임부의 건강, 생명에 위험도가 매우 높고 실제 이 시기에 임신중지 목적으로 성감별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반면 유아용품 구입 등 출산준비를 위하여 태아의 성별에 대한 확인 요구가 증가한다는 논리였다. 이것이 받아들여져 태아성감별 고지 허용 시기에 대한 개정안 및 보건복지위원회 검토보고서에서는 임신 28주를 기준으로 삼았으나, 보건복지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32주로 변 경되어 통과되었다.
다음 <Table 1>과 같이 태아성감별금지법은 2009년의 개정 이후 2016년 벌금 상향의 작은 조정이 있었을 뿐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9)
Ⅲ. 태아성감별금지법에 대한 인구사회 학적 고찰
한국에서 성선별 출산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 부모의 남아선호, 출산수준, 희망 자녀수와 같은 내부적인 요인과 의료기술 환경과 법적인 제한(태아성감별고지 금지법, 낙태죄)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10)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사회의 성비 불균형 현상은 1980년대 중반에서부터 1990년대 초, 중반을 정점으로 하여 높아지다가 점차 감소하여,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며 정상범위에 들어섰고 2010년대 초반에는 자연성비에 이르렀다. 이러한 출산성비 감소 원인을 성선별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낙태의 원인과 낙태죄 발생 건수를 분석하여 현재 성선별 출산행위가 어느 정도 발생하는지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또한, 태아성감별의 의학적 필요성과 태 아성감별금지가 의료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태아성감별금지법 폐지의 필요성을 논증할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권리가 향상될수록 상대적으로 남아선호가 약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해방 이후 여성의 사회적 권리가 점차 향상되어온 것은 여러 법적, 제도적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경제발전, 여성고용률과 임금상승 같은 경제적 변화를 통해서도 남아선호는 약화된다. 이와 같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은 노후에 대한 전통적인 대책으로서 아들이 갖는 상대적인 우위를 약화시키는 등 이전보다 딸에 대한 선호를 높이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14]. 실제 한국의 남성 고용률 및 임금 대비 여성고용률 및 임금은 꾸준히 증가하여 여성의 상대적인 경제적 지위는 적어도 과거보다는 개선되었음을 보여주는데[4], 이러한 변화가 남아선호 경향을 감소시키는 데적 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남아에 대한 강한 선호가 성선별 출산행 위의 충분조건으로 작용하거나 출생시의 성비불 균형을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성선별 출산행위는 출산수준, 즉 기존의 자녀수와 성별 구성의 영향을 받는다.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남아선호가 강하면, 출산순위가 높아질수록 성선별 출산행위의 동기화의 강도가 강해질 것이다. 반대로 출산순위가 낮거나 아들이 이미 있는 부부의 경우에는 성선별 출산행위의 개연성이 낮아진다. 과거 고출산시대에서 부부는 무작위적 생리 과정을 통해 많은 자녀 중 적어도 1~2명의 남아를 출산함으로써, 강한 남아선호도에도 불구하고 전체 출생성비는 자연수준인 105에 근접할 수 있었다. 또한, 거시 수준에서는 한 사회의 출산수준 이 낮을수록 성선별 출산행위가 출생성비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기 마련이다. 한국사회의 합계출 산율이 대체수준보다 낮아진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생성비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낮은 출산수준 이 성선별 출산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하였음을 시사한다[3].
소(小)가족 가치와 규범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무조건 출산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하는 자녀수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출산을 시도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아선호관이 강하면, 첫 번째 출산아가 아들인 경우, 단산할 확률이 높아진다. 한국 사회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핵가족화의 흐름이 강해지는 가운데 강한 남아선호관이 존속하여 출산수준이 낮아지고 출생성비가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
<Figure 1>과 <Table 3>을 함께 보면, 한국사회의 성비 불균형 현상은 1980년대 중반에서부터 시작해 1990년 정점을 찍고 1993년 이후 점차 감소하여, 2010년대 초반부터는 자연성비에 도달하였다. 자녀의 출산 순위에 따라 분석해보면, 첫 째아 출생성비는 총출생성비가 높은 해에도 대체로 자연성비에 가까웠는데, 이는 남아선호에도 불구하고 첫째아 출산시에는 성선별 출산행위가 많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더불어 일반적으로 셋째아 이상 자녀의 성비에서 출생성비보다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었던 것을 보면, 주로 셋째아 이후의 자녀 출산시 의료적 개입을 통한 성별 선택 출산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셋째아 이상 자녀의 경우에도 1993년을 정점으로 하여 성비 불균형이 줄어들어 2014년 이후에는 자연성비 범위에 도달하였다. 정리하면, 2010년대 초반까지는 셋째아 이후의 자녀를 낳는 동기 중 남아 출산이 주요했다고 추정할 수 있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는 출산순위에 관계없이 자녀의 성별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현시기 남아선호로 인한 여태아 성선별 인공 임신중지가 실제로 얼마나 일어났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가임기 (15~44세) 여성 10,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설문에서 임신중지 경험자에게 임신중지의 주 된 이유 2가지에 대해 질문한 결과(복수응답) 크게 3가지 사유가 확인되었는데,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3.4%)’, ‘경제상 태상 양육이 힘들어서[고용불안정, 소득이 적어서 등(32.9%)]’, 그리고 ‘자녀계획 때문에[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조절 등(31.2%)]’이었다. 그 밖의 임신중단의 사유로는 ‘파트너(연인, 배우자 등 성 관계 상대)와 관계가 불안정해서[이별, 이혼, 별거 등(17.8%)]’, ‘파트너(연인, 배우자 등 성관계 상대)가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11.7%)’, ‘태아의 건강문제 때문에[임신 중 약물복용 포함(11.3%)]’, ‘나의 건강상태에 문제가 있어서(9.1%)’, ‘나 또는 파트너의 부모가 낙태를 하라고 해서(6.5%)’ 등이 있었다.
물론 <Figure 2>의 ‘기타’를 선택한 사람 중 성 선별과 관련된 사유를 염두에 두고 답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설문 참여자들의 ‘인공 임신중지를 한 임신주수’에 대한 응답을 보면 이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 인공임신중지를 한 임신주수는 평균 6.4주였고, 절반 이상(55.8%)이 4~6주(4주 19.9%, 5주 19.6%, 6주 16.3%)였다. 누적 비율로 보면 임신주수가 4주 이하는 31.5%, 8주 이하는 84.0%, 12주 이하는 95.3%, 16주 이 하는 97.7%로 나타났다. 뒤에서 자세히 살피겠지 만 일반적으로 초음파를 이용한 태아성감별이 가능한 최소 임신주수는 16주다. 다시 말해 적어도 97.7%는 태아의 성별을 모른 채 인공임신중지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임신주수 10주를 넘어 인공임신중지를 한 여성들에게 10주 이후 수술을 받은 이유에 관해 물어본 결과(복수응답),11) ‘임신한 사실을 늦 게 알게 되어서’가 47.3%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수술비용을 마련하느라(25.8%)’, ‘파트너(연 인, 배우자 등 성관계 상대) 및 가족과의 의견 조율이 늦어져서(25.4%)’, ‘처음에는 낳으려고 했으 나 상황이 변해서 고민하다가(19.1%)’, ‘낙태를 하려고 했으나 적절한 방법을 몰라서 알아보다가 (14.5%)’,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서 시기를 기다리 느라(10.3%)’ 등의 순서였다. 주관식으로 작성한 ‘기타’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설문조사와 함께 진행한 심층면접조사 결과에서도 성선별로 인한 임신중지를 언급한 경우는 없었다. 다시 말해 임신 10주 이후에 인공임신중지를 한 이유 중에서도 성 선별 낙태를 위해 태아성감별 가능 시기를 기다린 때는 없다고 볼 수 있다.
Ⅳ. 태아성감별금지법에 대한 보건의학적 고찰
남아선호, 출산순위, 출산율 등의 요인들이 출생성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성선별 출산을 위한 의료기술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태아의 성을 감별하여 여아로 판명되었을 때 인공임신중지를 가능하게 하는 의료기술이 없다면, 강한 남아선호관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출생성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다.
태아의 성별은 수정될 때부터 이미 결정된다. 모체의 난자에는 성염색체로 항상 X염색체가 포함되어 있으나 정자에는 X 혹은 Y염색체 중 하나가 포함되어 있고, 수정의 결과 성염색체를 XX로 가지게 되면 여아가, XY이면 남아가 된다. 배아기(embryonic period)는 수정 후 8주(임신 10주)까지이며 이 시기에 대부분 기관이 형성되고, 이후 임신 10주 이후에는 태아기(fetal period)로 조직형성, 분화, 성숙이 일어난다. 임신기간에 산모는 여러 산전검사(prenatal testing)를 받는데, 이는 태아의 비정상적인 이상을 조기에 발견하여 이에 대한 적절한 산과적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시행되는 검사이다. 이러한 산전검사 과정에서 태아의 성별이 확인가능하다. 태아의 성별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로 융모막융모생검(Chorionic Villus Sampling), 양수천자(amniocentesis), 탯줄혈액채취와 같은 침습적 검사와 산모 혈액을 이용한 비침습 산전검사(Non-Invasive Prenatal Testing for Fetal Aneuploidy using Cell-free Fetal DNA in Maternal Blood, 이하 NIPT)와 초음파영상진단검사(이하 초음파검사)와 같은 비침습적 검사가 있다.
침습적 검사인 융모막융모생검과 양수천자는 태아 물질을 채취하여 주로 염색체 이상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시행하는데, 일반적으로 전자는 임신 10-12주, 후자는 15-20주에 시행된다.12) 이러한 침습적 검사는 자궁을 통과하여 태아 물질을 채취하여야 하므로 고도의 기술을 가진 전문가가 시행해야 하며 그만큼 고가의 검사 비용이 든다. 또한, 출혈, 감염과 같은 다양한 합병증이 동반될 수 있으며, 융모막융모생검의 경우 2%, 양수천자의 경우 1/300-1/500의 확률로 유산이 될 수 있다[15]. 다시 말해 고비용과 위험성 때문에 태아 성감별을 주된 목적으로 이러한 침습적 검사를 시행하는 경우는 없다고 볼 수 있다.
NIPT는 태아 핵산이 임신기간 동안 증가하고 분만 후 모체 혈액 내에서 빠르게 제거되는 특징을 이용해 이전 임신에 영향을 받지 않고 현재 임신한 태아에 대한 유전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비 교적 손쉽고 유용한 검사 방법이다. 이를 통한 태아성별검사의 원리는 태아 핵산이 임신 4~5주부터 모체 혈액에서 검출되는데 모체에 존재하지 않는 남아 유래의 Y염색체 내 DNA 서열을 PCR 방법 등을 이용해 확인하는 것이다[16]. 임신 12주 이전에 임산부의 혈액만으로 태아성별을 정확히 아는 방법으로, 2011년 소개된 후 국내 특허등록까지 마쳤으나 아직 상용화되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초음파검사는 침습적이지 않고 저렴해13) 산전진단으로 가장 널리 활용되는 방법이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대중화되어 산과 관련 거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다. 대략 임신 16 주경이면 초음파상에서 태아 골격과 외부 생식기가 육안으로 구분돼 태아성감별이 가능하다. 현재 침습적 검사들은 고비용인 데다 위험성이 있고, 비침습적인 NIPT 역시 고비용일 뿐 아니라 개인 의원 자체적으로 검사를 진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직 국내에서 태아성감별 수단으로 초음파검사를 대체할만한 것은 없다.
일부 연구에선 국내에서 1980년대 중반 이후 초음파검사가 대중화됨에 따라 여태아 성선별 임신중지가 광범하게 행해지고, 전국적으로 출생성비가 높아졌다고 주장한다[6]. 과거에는 그랬을지 모르나 최근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임신주수 16주 이하에서 97.7%의 인공임신중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현재 태아성별을 이유로 행해지는 인공임신중지는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설령 초음파검사를 통해 태아성별을 알게 되더라도 인공임신중지를 선택하는 동기로 작용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한편, 35세 이상의 고령임부, 초음파에서 태아 염색체 이상에 대한 위험성이 증가하여 있는 임부, 이전 임신에서 유전질환의 태아를 임신한 여성 등에서 침습적 산전진단 검사가 필요하다. 태아의 성별에 따라 의학적 조치가 달라지는 유전질환이 의심될 때에는 의학적 필요로 태아의 성별을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다. Duchenne 근위축증, 혈우병(A형, B형), Lesch-Nyhan 증후군, 만성육아종증 질환 등 X염색체 의존성 질환이 대표적이다.
특히 혈우병14)과 같은 유전적 질환이 의심될 경우 태아의 성감별은 필수적이다. 혈우병의 경우 X 염색체 의존성 질환이므로 부모 중 남성만 혈우병일 경우 태어나는 여아는 모두 보인자이고 남아는 정상이다. 부모 중 여성이 혈우병과 관련된 경우는 혈우병 보인자일 경우만 가능한데, 왜냐하면 성염색체 두 개에 모두 혈우병 유전자가 있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부만 혈우병 보인 자일 경우 태어나는 여아의 1/2은 정상이며 1/2은 보인자이므로 여아에서 혈우병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남아의 경우 1/2은 정상이며 1/2은 혈우병에 이환된다. 따라서 혈우병 보인자인 임부에서 태아가 여아일 경우는 특별한 검사 없이 임신을 유지할 수 있지만, 남아일 경우 1/2은 혈우병에 이환될 수 있다. 그 때문에 태아가 남아인 경우 혈우병 진단을 위해서는 전술했던 침습적 산전진단검사인 융모막융모생검이나 양수천자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다른 X염색체 의존성 질환에서도 태아가 여아라면 추가적인 검사 없이 진단을 배제 할 수 있지만, 남아일 경우 진단을 위해 침습적 산 전진단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17]. 침습적 산전진단 검사가 고비용과 출혈, 감염, 유산 등의 합병 증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태아성감별만으로 여태아인 경우 의학적으로 침습적 산전진단 검사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큰 이득이 된다. 또한, 분만시에도 태아가 혈우병인지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혈우병인 신생아는 그렇지 않은 신생아에 비해 뇌출혈 발생률이 20~50배 높은데, 이것은 기구를 통한 질식분만이나 장기간의 분만과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17]. 그 때문에 혈우병 태아의 질식분만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분만이 잘 안 될 때 시행하는 진공흡입분만15)이나 겸자분만16)은 뇌출혈의 위험이 높으므로 시행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특정 유전질환이 의심되는 경우 태아의 성별에 따라 예후 및 의학적 조치가 확연하게 달라지므로 태아성감별이 반드시 요구된다.
태아성감별로 인한 인공임신중지가 거의 일어나 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별개로 태아성감별금지법이 갖는 모순점과 그 존재 자체가 갖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태아의 성별 확인은 의료인이 아닌 부모가 원한다. 의료인이 아닌 부모의 이익 또는 희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의료인에게 태아의 성별을 확인·고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의료인이 이에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태아성감별금지법 위반은 ‘의료인’에게만 적용된다. 이처럼 부모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요구한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이익이 거의 없는 의료인만 처벌하는 것은 기존의 낙태죄와 비교하더라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이처럼 지나치게 의료인을 타겟으로 한 나머지 법리적인 공백도 크다. 즉 ‘의료인’이 아닌 이가 태아성별감별을 했을 때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것이다. 임부가 자신의 태아 초음파 영상을 의료자료의 목적으로 받아 인터넷에 올려 초음파 영상해 독 능력이 있는 불특정 인물로부터 성별 정보를 얻는 경우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 경우 어떠한 법적인 문제도 없다.
물론 최근 태아성감별금지법에 따라 처벌받는 사례가 거의 없기에 사실상 사문화된 만큼 굳이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2010년경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인공임신 중지를 행한 의사들을 고발하겠다고 선포한 것만으로도 낙태죄가 엄청난 위력을 과시했던 것처럼[18], 태아성감별금지법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의료인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환자-의사 관계에서 환자는 의사가 진료를 통해 파악한 자신의 몸에 대한 정보를 요구할 권리18)가 있고, 의사는 그에 응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 장래 태어날 아기가 여아인지 남아인지는 임부나 그 가족에게 중요한 태아의 인격 정보에 해당하며 태아의 부모가 이를 미리 알고자 하는 것은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라 할 수 있다.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게 되면 태어날 아기에 대한 미래의 설계를 미리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태교와 출산 준비를 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의사에게 당당하게 묻지 못하고, 의사 역시 임신한 여성에게 정확하게 성별을 말해주지 못한 채, ‘아기가 엄마를 닮았네요’, ‘파란색 옷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와 같은 말로 얼버무리는 상황에 머물고 있다. 의료인으로서도, 임부가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건강하게 태아를 출산하도록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고, 이러한 측면에서 태아의 성별을 궁금해하는 임부에게 진료과정에서 알게 된 태아의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직업수행의 중요한 부분임에도 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태아성감별금지법은 임부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그 존재 자체로 자연스러운 환자-의사 관계를 저해하며 의료인의 직업수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태아성감별금지법으로 처벌 된 사람이 없다고 해서 사문화된 것이 아니며 의료현장에서 엄연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태아성감별금지법은 의료인에게만 제약을 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존재 자치로 적지 않은 사회적 부작용을 낳는다. 태아성선별금지법은 비록 남아선호 경향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법이긴 하지만 그 자체가 가부장적인 시대의 산물이다. 즉 그 법이 존재하고 심지어 그 법을 계속 의식하게 만드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구시대적인 가치를 넘어 보다 건설적인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Ⅴ. 결론
한국의 출생성비는 2000년대 후반부터 자연성 비에 도달되었고, 남아선호를 반영하였던 셋째아 이상 출생성비도 2010년대 중반부터 자연성비에 도달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태아성감별금지법이 제정될 당시 입법목적인 ‘여태아 낙태 금지’를 통한 ‘인구의 성비균형’이 이제는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2018년 진행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의 인공임신중지의 이유와 인공임신중지를 한 임신주수 분석 등을 통해서도 여태아 성선별 인공임신중지는 거의 발생하지 않음이 증명되었다.
태아성감별금지법을 법률적인 관점에서 문제점이 있다. 기존 낙태죄조차 모자보건법 제14조의 예외조항이 있어 질환이나 강간 등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합법적으로 인공임신중지를 할 수 있었는데 태아성감별 행위는 본론에서 본 바와 같이 의학적으로 꼭 필요할 때가 있음에도 법적인 예외 조항이 없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인하여 낙태죄가 폐지된 상황에서 그 사전행위로 간주되 던 태아성감별금지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법의 자기모순이다. 아울러 객관적으로 태아성감별 행위가 낙태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인 만큼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낙태죄 폐지를 반대한 사람조차 태아 성감별금지법 폐지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가질 근거가 없기에 사회적 논쟁도 크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기에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도 하나, 사회적 상황 또는 환자-의사 관계의 악화로 인해 얼마든지 의료인을 압박하는 도구로 부활할 수 있다. 그리고 처벌 사례가 없어졌다고 해서 사문화된 것은 아니다. 의료인이 태아의 성별고지를 간접적·은유적 방법으로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법이 일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법에 따른 직접적인 처벌보다 이러한 사회문화적인 파급이 더 무서운 것이다. 법은 그 법이 속한 사회의 인식을 반 영하며, 법의 변화가 그 사회의 인식을 다시 형성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태아성감별금지법은 비록 남아선호 경향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법이긴 하나, 부모가 남아를 선호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므로 법의 존재가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한다. 여태아란 ‘낙태 당할 수 있는 태아’ 그리하여 여성들은 ‘낙태를 당할 수도 있었는데 운 좋게 살아남은 존재’라는 남성에게는 없는 의미가 부착되어 지속하여 여성을 열등화하는 인식의 틀이 될 수 있는 것이다[1]. 즉 그 법이 존재하고 심지어 그 법을 계속 의식하게 만드는 상황이 지속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구시대적인 가치를 넘어 보다 건설적인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 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
태아성감별금지법은 입법목적이 상실되고, 위 법 여부가 모호하며, 현재적 의의를 잃었다. 또 한, 법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낙태죄와 함께 존폐를 논의하는 것이 맞다. 건설적인 사회적 논의를 통해 태아성감별금지법을 폐지함으로써 의료인의 직업수행 자유를 보장하고, 부모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며, 법의 권위를 높이고, 제도적 양성평등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