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지난 2020년 3월 12일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에 대해 팬데 믹을 선언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사태가 이렇게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모순적이지만, 코로나19 백신이 이렇게 빨리 개발되어 상용화될 수 있다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이보다도 더 적었을 것이다. 통상 5~10년을 예상하는 백신의 개발은 발전된 과학기술과 전 세계적인 지원에 힘입어 전례 없이 단기간에 완성되었다. 지난 2020년 12월 8일 영국에서 첫 백신 접종이 이루어진 이래, 2021년 3월 19일 현재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다[1].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백신 접종과 관련된 소식들은 백신 접종이 방역과는 다른 질서의 문제라는 점을 말해준다. 특히 2020년 12월 27일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직후 프랑스가 보여준 초기 과정에서의 혼란은 그들의 백신 계획이 오랜 기간 준비된 것이며, 뚜렷한 윤리적 관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주요 일간지들은 프랑스의 지나치게 느린 접종 속도의 원인을 프랑스 국민의 백신에 대한 높은 불신에서 찾고 있지만, 이러한 불신은 지연 사태의 적어도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2,3,4,5].1) 물론 잘 알려진 바대로,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백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이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의 백신에 대한 불신을 접종 지연 사태의 원인으로 전제할 때, 현재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온 전히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초기 계획에서 몇 가지 주요사항을 수정한 채 진행되고 있는 현재 프랑스의 백신 접종 상황은 주변국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나은 수준이다. 특히 비교의 대상이 되었던 독일과 비교하면 이미 1월 20일 100명당 일일 접종률에서 프랑스는 독일을 추월하였다[7]. 프랑스는 정부가 제시한 1월 말까지 100만 명의 접종자라는 목표를 1월 23일에 이미 달성했으며, 여전히 미국이나 영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초기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백신 접종을 진행하고 있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지연 사태의 원인이 백신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 있었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문제는 백신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신 접종 계획 자체에 있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백신 접종 계획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뚜렷한 윤리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인간 존엄성의 기반인 ‘생명을 보전할 것’, 인간 존엄성의 핵심 내용인 ‘자유를 보장할 것’, 프랑스의 백신 접종 계획이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 같은 이런 핵심적인 가치들이었다. 그렇다면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일은 사태를 지연시키고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인가? 문제는 어디에 있었을까? 우리는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을 분석하여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윤리적 가치를 드러낸 뒤, 프랑스 백신 접종 계획의 수정사항을 살펴보고,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을 평가한 후에, 마지막으로 이 문제에 답할 것이다.
II. 프랑스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계획
프랑스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계획은 프랑스 고등보건당국(Haute autorit? de sant?, 이하 HAS)이 2020년 11월 27일 발표한 백신 전략 보고서[8]에 기초하여 12월 3일 처음 발표되었다[9]. 프랑스 정부는 1) 사망률과 질병의 심각한 상태를 낮추 고, 2) 의료종사자와 의료 시스템을 보호하며, 3) 백신과 백신 접종의 안정성을 보장할 것을 세 가지 공중보건상의 목표로 제시하고 1) 비의무, 2) 무료, 3) 높은 안정성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따를 것을 공표했다.
그리고 예상되는 백신 수급 상황을 고려하여 우선접종 대상자와 예상 일정을 발표했는데 다음과 같다. 우선 1월부터 2월에는 “부양노인주거시설(établissement d’hébergement pour personnes âgées dépendantes, 이하 EHPAD)”을 포함한 의료-사회 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과 이 시설에서 근무하는 위험성이 높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접종을 실시한다. 그리고 2월부터 3월 사이에는 75세 이상의 노인들과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접종을 실시하고 50세 이상이거나 동반질환으로 인해 취약한 상태에 있는 보건 및 의료-사회 시설 종사자들에 대한 접종도 실행한다. 마지막으로 50세부터 64세까지의 노인들에 대한 접종을 봄부터 시작하고, 국가 기능 유지에 본질적인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거주나 노동 환경으로 인해 취약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 및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에 대한 접종을 실행한다. 그리고 나머지 성인들에 대한 접종을 실행한다.2)<Table 1>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접종 우선순위 세 단계는 HAS의 보고서가 제시한 다섯 단계의 우선순위를 단순화한 것으로서 다소간의 조정이 있으나, HAS의 전략 보고서가 제시한 우선순위 설정 원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나이가 우선순위 설정의 주요한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프랑스의 코로나 예방 접종 계획이 앞서 제시한 세 가지 목표 중 다른 무엇보다 ‘사망률과 질병의 심각한 상태를 낮추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말 해준다. HAS의 백신 전략 보고서와 프랑스 보건 생명과학윤리 국가자문위원회(Comité consultatif national d’étique pour les sciences de la vie et de la santé, 이하 CCNE)의 의견서[12]는 이 점을 더욱 뚜렷하게 확인시켜 줄 것이다.
2020년 11월 27일 발표된 HAS의 백신 전략 보고서는 이미 7월 23일에 발표된 HAS의 다른 백신 전략 보고서[13]에 기초하고 있다. 앞선 보고서가 감염병의 진행 상황을 예측하고 예상되는 각 각의 시나리오에 맞는 백신 전략의 틀을 제시하는 것이었다면, 11월 27일의 백신 전략 보고서는 백신 접종이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에서 주어진 과학적 자료들과 통계 등을 기초로 현재 상황을 정확히 평가하고, 예상되는 백신의 공급량에 맞게 예방 접종 전략을 구체화하는 것이었다. 5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보고서에서 HAS는 먼저 예방 접종 프로그램의 초기 목적을 제안하고(1장), 코로 나19와 관련된 프랑스와 해외의 각종 통계자료들을 검토함으로써 감염의 위험을 높이거나 질병을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개인적 요인들과 직업 및 거주 환경적 요인들을 분석한 뒤(2장), 프랑스의 백신 공급 상황과 예상되는 백신 접종 대상을 추정하고(3장과 4장), 주어진 임상 자료들을 기반으로 현재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백신들의 효과와 한계를 평가하면서(5장), 예방 접종 우선순위 설정에 대한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사항과 다른 국가들의 예방 접종 우선순위를 참조하여(6장), 최종적으로 5단계의 예방 접종 우선순위를 제시하고 있다(7장).
집단 면역을 실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백신 이 단기간에 공급될 수 없다는 전망 속에서 HAS가 제안하는 예방 접종 프로그램의 초기 목표는 1) 질병으로 인한 이환율과 사망률을 낮추는 것과 2) 국가의 본질적인 활동의 유지, 특히 보건의료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고서는 각종 통계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질병을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나이를 지목하고, 비만과 당뇨병 등 특정한 동반질환들과 질병의 악화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밝힌다. 또 거주자들이 밀집되어 있고 서로 간의 접촉이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집단 거주시설이 감염 발생의 주요 장소임을 확인하고, 불안정한 거주 환경이나 환자와의 빈번한 접촉이 이루어지는 직업적 환경 이 감염 위험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보고서는 앞으로 도입될 백신들의 임상실험 결과들이 단기간의 면역성과 안정성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백신이 바이러스 전파 차단에도 효과가 있다는 점을 확인 해주는 자료가 아직까지는 제시된 바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보고서에 따르면, 백신 접종은 접종을 한 당사자의 감염은 막을 수 있지만, 그가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까지 막을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백신의 3상 임상시험에서 바이러스 전파 차단 효과는 판단 기준조차 아니었으며, 이 효과에 대한 자료들은 추후에 제시될 것이다. 이제 이러한 분석 결과들을 바탕으로 HAS가 제시하는 5단계의 접종 우선순위는 다음 표와 같다.<Table 2>
보고서가 고려하고 있는 2020년 3월 1일부터 11월 18일까지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입원한 환자의 57%가 75세 이상의 노인들이었으며(65세 이상은 79%), 사망 자 중 73%가 75세 이상의 노인들(65세 이상은 90%)이었다[8].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령 인구에게 예방 접종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일은 납득할 만한 결정이다. 또 집단발병지의 15%가 EHPAD와 같은 노인들이 거주하는 사회-의료시설들이었으며, 사망자의 1/3가량이 이런 시설들에 집중되어 있는 한[8], 이런 시설들에 거주하는 노인들을 우선해서 배려하는 결정도 자연스럽다. 실제로 대다수의 국가가 제시하고 있는 예방 접종 계획에서 장기요양시설의 거주자들과 노인들은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2008년 수립한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 계획에서 노인들을 후 순위에 위치시켰던 미국조차도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관련해서는 보건의료인과 함께 장기요양시 설 거주자를 최우선순위의 접종 대상자로 설정하고 있고, 이후 순위에서도 노령 인구를 특별히 고려하고 있다[14].3) HAS의 우선순위 설정은 코로 나19가 야기한 특수한 상황을 적절하게 반영한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HAS의 백신 접종 계획의 우선순위 설정 방식에는 다른 국가들의 설정 방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의료-사회시설 종사자들의 우선순위 배정에 나이와 동반질환 유무라는 기준이 추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 영역이나 사회 중요 기반시설 운영에 특별히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비교적 프랑스와 유사한 접종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있는 독일이나 영국의 경우에도 이런 식의 이 중적인 기준 적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령 ‘80세 이상 노인’을 최우선 접종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고령자 요양시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응급 요양 업무 종사자들’, ‘집중치료실, 응급실, 구급대원’ 등의 의료-사회시설 종 사자들을 80세 이상 노인과 함께 최우선 접종 대 상으로 분류하고 있지만[16], 이 직업군 내 사람들 간의 추가적인 우선순위를 설정하지는 않는다. 또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노인요양시설의 거주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1분기의 최우선 접종 대상자로 설정하고 있는 영국도 시설 내 종사자들을 나이나 동반질병 여부에 따라 다시 또 분류하지는 않는다[17]. 이 나라들에서 사회-의료시설 종사자들은 그들이 담당하는 일의 성격만으로 우선순위 대상자로 분류된다. 이 차이는 극명하다. 노인요양시설에 근무하는 40대의 건강한 의사의 경우, 언급한 나라들에서는 최우선 접종 대상자로 분류되지만 프랑스의 경우에는 3분기의 접종 대상자일 뿐이다.
HAS가 제시하는 우선순위 설정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징은 보고서가 제안하고 있는 두 가지 목표, 1) 질병으로 인한 이환율과 사망률의 감소와 2) 국가의 본질적인 활동의 유지, 특히 보건 의료 시스템의 유지가 서로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만약 이 목표가 동등 한 가치를 가지는 것들이었다면, 사회-의료시설 종사자들은 추가적인 조건 없이 그들이 사회의료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선순 위 대상자로 설정되었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보고서는 심각한 상태나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큰 장기노인요양시설의 근무자들을 최우선 접종 대상자로 설정하면서 이러한 결정이 ‘백신 접종의 이 중적인 목표’와 세계보건기구가 제안하는 ‘상호성의 원칙’4)에 동시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보건의료 시스템의 유지’와 ‘상호성의 원칙’은 이환율과 특히 사망률의 감소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여기서 아무런 판단 기준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HAS가 고려하는 것은 시설의 근무자들이 노인들을 돌보거나 감염 위험성이 높은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위험한 환경 속에서 일하는 그들 자신이 감염되었을 때 심각한 상태에 이르기 쉽다는 점이 HAS가 고려하는 바이다. 즉 그들을 최우선 접종 대상자로 설정하게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직업적 역할이나 환경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가진 질병에 대한 취약성이다. 그 들의 직업적 역할이나 환경은 우선순위 설정의 독립적인 판단 기준이 아니라, 보조적인 판단 기준일 뿐이다.
물론 HAS의 이러한 우선순위 설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보고서가 참조하고 있는 2020년 11월까지의 프랑스 통계 자료에 따르면, 감염에 의해 병원에 입원한 20여만 명의 전체 환자들 가운데 45세부터 65세의 비율은 17%, 44세 이하는 5%에 불과하며, 3만여 명에 달하는 전체 사망자 들 가운데 45세부터 65세의 비율은 9%, 그 이하는 1%에 불과하다[8]. 2021년 3월 19일 현재 통계에 잡힌 확진자만 400만 명이 넘고, 이미 2020년 12월에 전 국민의 10%가량인 700만 명가량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 서[19] 입원환자 및 사망자와 관련된 이러한 수치는 HAS로 하여금 청장년층이나 특정한 동반질병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코로나19가 상대적으로 치명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이 감염된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핵심 기반시설이나 보건의료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하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더구나 백신이 바이러스의 전파 차단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 HAS는 상대적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젊고 건강한 사회-의료시설 종사자들을 위해 극히 제한된 백신 자원을 사용하는 데에 큰 이득이 있다고 판단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판단들과 관련하여, 통계에 나타난 수치들이 과연 시스템의 유지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무시할 만한 수준의 것들인지, 또 입원하거나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지 등과 관련된 다양한 반론들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점은 이러한 판단들이 모두 목표 간의 위계를 설정하고, 특정한 윤리적 관점을 전제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가령 HAS가 보건의료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목표를 백신 접종 전략의 독립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에 질병으로 인한 이환율이나 사망률의 감소라는 목표와 동등한 가치를 부여했다면, HAS는 그 이득이 아무리 미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사회-의료시설 종사자들 모두를 최우선 백신 접종 대상자로 설정했을 것이다. 이러한 설정으로 인해 존중되는 것은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한 ‘상호성의 원칙’이며, 추구되는 가치는 보건의료 시스템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도구적 가치’다.
보건의료 시스템의 도구적 가치라는 개념이 결국 질병으로 인한 이환율과 사망률을 낮추는 데서 성립하는 한, 보건의료 시스템의 유지라는 목표를 이환율과 사망률의 감소라는 목표와 독립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은 모순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기적인 관점에서라면 이 두 목표는 서로 구분될 수 있으며, 그렇게 서로 구분되어 독립적으로 추구됨으로써 보건의료 시스템의 유지라는 목표의 달성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환율과 사망률 감소라는 목표의 달성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백신 전략은 그렇게 구성되지 않았다. 그들은 목표 간에 명확한 위계를 설정했으며, 이러한 위계의 형성 기반에는 특정한 윤리적 가치판단이 있었다. HAS의 백신 전략 보고서가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당장의 이환율 무엇보다 사망률을 낮출 것, 생명을 구할 것.
백신 정책과 관련된 윤리적 쟁점들을 다루고 있는 CCNE의 의견서 『코로나19에 대한 백신 정책의 윤리적 쟁점들』은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12]. 프랑스 연대와 보건부 장관의 자문 요청에 따라 “백신 정책의 윤리적 틀”을 제시하기 위해 작성된 이 의견서는 극히 제한된 백신만이 공급되는 단기 상황과 비교적 충분한 백신이 확보된 장기 상황을 구분하고, 접종의 우선순위 설정, 백신 접종의 의무화, 백신 선택의 자유,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 국제적인 공조 등의 윤리적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코로나19와 관련되어 작성된 CCNE의 다른 의견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의견서 역시 ‘위기 상황에서 요구되는 예외적인 윤리는 없다’는 대전 제 아래 논의를 진행한다.5)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인 위기 상황 속에서도 의료윤리를 떠받치는 원칙들은 지켜져야 하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들은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의견서의 대전제는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 설정이라는 구체적인 문제에 적용될 때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 난다. 의견서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인간 개인의 가치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이해하고, “인간의 존엄성은 그가 가진 유용성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확인한다[12]. 따라서 인간 개인의 ‘도구적 가치’를 기준으로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일은 이러한 이해 속에서 원칙적으로 배제된다. 인간 개인은 그 하나하나가 절 대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하며, 절대적인 것으로서 인간 개인의 가치는 평가의 대상이 아니므로 서로 비교될 수조차 없다. “백신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백신을 접종받을 사람들을 지금이나 미래의 경제적/사회적 가치에 따라 선택하는 일은 받아들 일 수 없는 일이다[12].” 인간 개인은 절대적인 것으로서 무조건 보호되어야 한다. 이제 프랑스의 백신 접종 계획이 목표로 삼아야 할 바는 분명하다. 최대한으로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며,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에 적합한 우선순위 설정 방식은 위험에 가장 취약한 자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CCNE의 백신 접종 우선순위 설정에 기준이 되는 이론은 ‘약자우선 주의’다.6)
이러한 의견서의 입장은 CCNE가 2020년 3 월 23일 공표한 보고서의 입장과 다르며, 의견서가 주요하게 참조하고 있는 2009년 『의견서 106』 과도 차이가 있다[21,22]. 먼저 2020년의 보고서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의료자원 분배에서 공리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으며, 특히 ‘최 대한의 생명’이 아닌 ‘최대한의 생존 연수’를 목표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한된 의료자원 상황 속에서 자원을 우선 지급 받아야 하는 대상은 단순히 위급한 사람이 아니라, 예후가 좋을 것으로 판단되는 위급한 사람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준에서는 고령의 노인이나 심각한 중증환자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다. 반면 2009년 조류 인플루엔자 팬데믹을 대비하여 작성 된 CCNE의 『의견서 106』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특히 강조하면서 2020년 의견서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사회적 유용성에 따라 우선하여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선택하는 일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선언한다[22]. 그러나 이 2009년의 의견서는 2020년의 의견서와는 달리 가장 취약한 자들에게 의료자원 분배의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 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며, 취약성 외에 기대수명과 삶의 질 등의 가치도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의견서가 2020년의 보고서처럼 공리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2009년의 의견서는 의료자원 배분의 문제와 관련하여 “윤리적 지평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들을 낳는 사회적 공리주의를 조장”하게 되는 일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다[22]. 의견서가 강조하는 바는 분명하다. 사회적으로 가장 받아들여질 만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 기준은 단 하나의 가치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치가 서로 균형을 이룰 때 마련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로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2020년의 의견서와 보고서, 2009년의 의견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바는 의료자원 분배에 대한 논의에서 인간 개인이 가진 도구적 가치는 분배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안이 아니며, 적어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은 아니라는 점이다. 의료자원의 분배와 관련된 CCNE의 모든 논의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충실하다. 그리고 CCNE의 다른 보고서와 의견서들에 비해서도 더욱 이 명령을 엄격하게 따르고 있는 2020년의 백신 접종 계획에 대한 의견서는 감염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직업의 종사자들, 특히 사회-의료시설 종사자들에 대한 우선 접종 가능성을 논의할 때조차 그들이 가진 도구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다. 의료종 사자들에게 먼저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가진 도구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취약한 자들과 자주 만나고, 따라서 그들을 감염시켜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의견서는 백신 접종이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전제에서 이러한 의료종사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접종을 실시하는 일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12]. 그런데 현재 그러한 효과를 입증해줄 수 있는 자료가 없으므로, 사회-의료시설 종사자들은 그 자신이 가진 취약성이 아니라면,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에 배치될 이유가 없다.
이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무엇보다 중요한 백신 계획의 원칙으로 전제하고 있는 2020년의 의견서가 백신과 관련된 “지속적이고, 투명하며, 이해할 수 있는 정보”의 제공과 환자의 ‘사전 동의(informed consent)’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자연스럽다. 인간 존엄성의 기반인 생명을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존엄성의 핵심 내용인 자유 역시 CCNE로서는 우선 배려해야 할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료의 영역에서 자유는 환자의 자율성 문제로 연결되며, 이 환자의 자율성은 충분한 정보의 제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환자의 자유롭고 숙고한 동의를 통해 실현된다.
사실 백신 접종은 그 혜택이 백신을 맞은 사람에게 온전히 종속되지 않으며, 심지어 백신을 맞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매우 미미할 경우에도 요구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이타적이고, 이런 이타적인 성격으로 인해 다른 무엇보다도 환자의 사전 동의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의료적 행위이다. 특히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그것이 아무리 정 상적인 검증 절차를 거친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이러한 불확실성과 이와 결부된 잠재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속에 놓여있다. CCNE의 의견서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한 동의 절차가 독감 백신처럼 이미 일정한 형식이 마련되어 있는 다른 기존의 백신 접종을 위한 동의 절차와는 다른 특별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동의 절차는 EHPAD와 같은 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을 위한 백신 접종이라고 해서 생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노인들은 백신과 관련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특별한 절차를 거쳐 백신 접종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프랑스 국립의학아카데미(Acadmie Nationale de Mdecine, 이하 ANM)가 2020년 12월 24일 공식 성명을 통해 우려한 바와 같이, EHPAD와 같은 노인요양시설 거주자들의 경우 인지와 표현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동의 절차를 이행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23].7) 물론 그렇다고 ANM의 성명서가 동의 절차 없이 백신 접종을 시행할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 CCNE의 의견서가 이러한 어려움이 있는 노인들의 경우를 간과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CCNE의 보고서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데 장애가 있는 노인들의 경우 법적 대리인이나 가족 등 제삼자에 의해 동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CCNE가 강조하는 것은 환자의 자율성이다. 의견서는 ANM의 성명서와는 달리 법적 대리인이나 가족 등 시설 거주자를 대신하여 동의를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경우 의료진의 결정만으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경우를 고려하지 않는다. 또 ANM의 성명서가 시설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의료 행위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유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서면 동의까지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경우에는 고려해볼 수 있는 절차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CCNE의 의견서가 제삼자에 의한 동의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지에 반한 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과 당사자에게 혹시라도가 해질 수도 있는 제삼자의 압력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이다. CCNE의 의견서가 백신 접종과 관련하여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환자의 자율성, 인간 개인의 자유이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다.
결국 CCNE의 의견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관련하여 EHPAD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실제적이고 자유로운 사전 동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1) 백신의 이득과 위험에 대한 공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당사자의 청취가 실제로 이루어져야 하며, 당사자로부터 시작해서 대리인, 가족 등 이해 관계자 전체와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견서는 이러한 과정이 백신에 대한 불신이 퍼져있는 상황 속에서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근본적인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실제적인 정보 제공이 이루어진 이후, 2) 개인적인 숙고의 시간이 제공되어야 한다. 의견서는 이 시 간 동안 사람들이 감정과 잠재하는 여러 압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여러 가능한 선택지를 검토하면서 최종적으로 자신의 결정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고유한 선택은 이런 숙성의 과정을 대가로 구성된다.” 이제 3) 백신 접종을 받기로 선택했을 경우 백신 접종을 실행한다.
III. 프랑스 백신 접종 계획의 수정: 단순화, 확장, 가속화
프랑스 연대와 보건부는 HAS의 백신 전략 보고서와 CCNE의 의견서를 토대로 2020년 12월 22 일 EHPAD와 USLD에서 실행할 백신 접종 매뉴 얼을 작성하여 배포하였다[24]. 이 매뉴얼에서 주목할 부분은 접종자의 사전 동의 절차에 대한 규정이다. 먼저 매뉴얼은 CCNE가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던 서면 동의 절차를 도입하지 않았고, 개인적인 숙고의 시간을 의무적으로 두어야 한다는 CCNE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백신 사전 상담(consultation prvaccinale)을 주요 절차로 명시하였는데, 이 상담을 토대로 시설은 접 종할 대상자의 숫자를 산출하여 지방 보건청에 필요한 양의 백신을 요청하고 5일 후 전달받은 백신으로 접종에 동의한 대상자들을 상대로 백신 접종을 실행한다. 이 상담은 시설 내에서 이루어지며 대면 상담을 우선으로 하지만 그럴 수 없으면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도 있고, 접종 대상자가 원하면 제3자의 참여가 보장된다.
매뉴얼이 밝히고 있는 사전 상담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1) 백신 접종으로 야기될 수 있는 일시적이거나 결정적인 부작용의 여부를 확인하고 백신 접종으로 인한 혜택과 위험을 평가하여 백신 접종 가능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 접종 대상자가 백신 접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명백하며, 적절하고, 이해 가능한, 대상자의 이해 능력에 적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보의 제공은 대상자의 자율성 정도에 상관없이 대상자를 이해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개인적 숙고의 시간을 따로 설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보 제공이 이루어지고 대상자가 동의 여부를 결정하기 전까지 정보를 숙지하기 위한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대상자가 사전 상담에서 동의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특별히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을 요청할 경우 이 역시 보장해 주어야 한다. 다만 이 숙고의 시간이 백신 접종을 실행해야 하는 날(상담 후 5일 후)과 양립할 수 없으면, 대상자의 백신 접종은 연기되고 다음에 다시 제안된다.
문제는 이 백신 접종 매뉴얼이 2020년 12월 27 일 프랑스에서의 첫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기 불과 5일 전에야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예상보다 빠르게 이루어진 백신의 공급과 유럽의약청(European Medicines Agency, 이하 EMA)의 승인이 상황을 이렇게 급박하게 만든 한 원인이었다. 당초 12 월 28일로 예상되었던 EMA의 백신 사용 승인은 독일의 압력으로 인해 21일 한 주 앞서 이루어졌고, 유럽위원회는 12월 27일 유럽에서의 첫 접종을 시작할 것을 선언했다[11,25]. 당연한 결과로서 ANM이 성명서를 통해 서둘러 시행할 것을 권고했던 장기요양시설 거주자들에 대한 사전 동의 절차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고, 프랑스의 백신 접종 계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무엇보다 느려도 너무 느린 백신 접종 속도가 문제였다. 백신 접종 첫날인 12월 27일 독일에서는 23,901명이 접종을 받았으나, 프랑스에서는 단 13명만이 접종을 받았을 뿐이고, 3일째인 29일 독일에서 총 87,147명이 접종을 받는 동안 프랑스에서는 고작 총 138명만이 접종을 받았을 뿐 이다[7]. 정치권과 사회 각층에서 비판이 제기되었고, ANM은 2020년 12월 30일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며 백신 접종 계획의 수정을 요구했다[26].
ANM의 성명서는 프랑스의 상황이 잘못된 백신 접종 계획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명시한다. 프랑스와는 다른 백신 접종 계획에 따라 접종을 실행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 때 너무나 적은 수의 접종자 수를 기록한 프랑스의 결과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원인은 무엇보다 보건 당국에 의해 승인된 “극단적인 신중함”에 있다고 말한다. ANM은 이러한 극단적인 신중함이 백신 접종 절차 자체를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정서에도 잘못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망설이는 대중의 의견을 안심시키기 위해 채택한 과도한 주의조치 들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 따라서 ANM의 성명서는 노인요양시설에서의 접종 절차를 가능한 단순화하고 단축할 것을 권고한다.
프랑스 정부는 ANM을 비롯한 사회 각층에서 제기된 비판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12월 31일 연대와 보건부 장관 올리비에 베랑(Olivier V ran)은 트위터를 통해 75세 이상 노인들과 65세 노인들에 대한 백신 접종을 2월 이전에 시행할 것이라고 밝힌다. 정부가 처음 발표한 백신 계획에 따르면 2월 이후에나 실행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던 2분기의 접종 대상자를 1분기로 옮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틀 뒤인 2021년 1월 2일 여전히 상승하지 않는 접종률로 인해 비판받던 프랑스 정부는 50세 이상 모든 공공 및 민간 의료-사회시설 종 사자들에게 백신 접종을 실행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이로써 2월 이후에나 접종이 예정되어 있던 2분기의 백신 접종 대상자 모두가 기존의 계획이 1 분기로 규정한 1월에 백신 접종을 받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삼일 뒤인 1월 5일 프랑스 정부는 여기에 50세 이상의 소방관들과 노인들을 돕는 가정 도우미를 추가한다. 최초 계획에서는 3분기 접종 대상자로 분류되어 4월에야 백신 접종을 기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일부도 1월 접종 대상자로 편입된 것이다. 최종적으로 수정된 프랑스 백신 접종 계획이 제시하는 1분기 접종 대상자들은 다음의 표와 같다.<Table 3>
프랑스 정부는 단지 백신 접종 대상자만 늘린 것이 아니다. 2021년 1월 6일 프랑스 백신전략 조직위원회(Conseil d’Orientation de la Strat gie Vaccinale, 이하 COSV)는 백신 접종의 단순화, 확 장, 가속화를 위한 의견서에서 의사들의 비대면 상담 등과 같은 백신 접종 절차를 단순화하고가 속화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랑스 백신 접종 계획의 핵심적인 과정이었던 사전 백신 상담 절차를 “백신 접종을 지연시키는 문제적 요소”로 규정한다[27]. 위원회는 환자 동의 과정에서 의사들의 참여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꼭 사전 상담이라는 체계로 정식화될 필요는 없으며, 실제로 이러한 절차가 다른 나라들에서는 필수적인 것으로 고려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환자들이 자유로운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도움과 대화는 의사들의 일상적인 활동 속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의사들의 핵심적인 역할은 정보통신 수단들을 이용해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위원회는 사전 백신 상담 절차를 더 이상 백신 접종을 위한 필수적인 단계로 고려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이렇게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 불과 10일 만에 프랑스 당국은 자신들이 공들여 세운 백신 접 종 계획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거나 약화시 켜 초기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수정 과정 속에서 이 특징적 요소들과 함께 사라지거나 약화된 것은 그것들이 반영하고 있던 윤리적 가치들이다. 여전히 나이라는 변수를 집단 내 분류 기준으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최초 계획 이 명시적으로 드러내던 ‘다른 무엇보다 생명’이라는 계획의 목표는 많이 희미해졌고, 사전 백신 상담이라는 절차를 통해 실질적으로 보장하려고 노력했던 환자 자율성에 대한 강조 역시 약화되거나 사라졌다. 그렇게 프랑스의 백신 접종 계획이 명 시적으로 드러내던 인간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는 두 가지 윤리적인 특징들이 불분명해진다. 그리고 프랑스의 백신 접종률은 이렇게 백신 접종 계획이 총체적으로 수정된 이후 가파르게 상 승하기 시작한다[7].
IV.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에 대한 평가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이 반영하고 있던 윤리적 가치들이 불분명해진 이후에야 백신 접종 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은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 반영하고 있던 윤리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 내에서 이루어진 비판 중 접종 계획이 반영하고 있던 윤리적 가치 자체를 겨냥하는 경우는 드물다. 프랑스 내에서 제기된 가장 일 반적인 비판은 백신 접종 우선순위 설정에 반영된 윤리적 측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반영하지 않는 물류적인(logistique) 측면에 대한 것이다. 가령 EHPAD에 거주하는 노인들에게 우선해서 백신을 접종하기로 했다고 하더라도, 이 시설에서의 백신 접종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 예상되므로 이 지체되는 시간 동안 공급받은 백신을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다른 경로를 마련해 두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주어진 자원을 적재해 두고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류적 관점에서 명백한 손해이다. 프랑스 초기 백신 계획의 우선순위 설정은 윤리적인 측면만을 고려했을 뿐, 물류적인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는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첫째, 물류적 측면에 대한 고려 없이 윤리적 측면만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문제는 물류적 측면에 대한 고려의 부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역시 다른 많은 나라처럼 인간 생명의 보존과 상호성의 원칙에 따른 분배 정의의 실현을 고려하여 장기노인요양시설의 거주자들과 의료진에게 동시에 백신 접종의 우선권을 부여할 수 있었다. 따라서 프랑스 초기 백신 계획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는 단순히 그것이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 윤리적 측면만을 고려했다는 점이 아니라, 관련된 여러 윤리적 측면들 가운데 오직 한 측면만을 우선해서 고려했다는 점일 것이다.
둘째, 프랑스의 백신 접종 계획이 물류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윤리적 관점과 물류적 관점이 서로 양립할 수 있다고 전제하지만, 이는 백신 공급이 예정대로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가령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인해 백신 공급이 갑자기 중단되었을 경우, 물류적 측면을 고려하여 마련해 둔 경로를 통해 빠르게 소비된 백신의 양은 윤리적 측면을 고려하여 설정된 백신 우선 접종 대상자들에게 돌아갈 백신의 부족량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물류적 측면에서의 접근은 이러한 사안까지 고려하여 접종 계획을 설계할 것이므로, 이러한 사태는 좀처럼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백신 소비 경로의 다양화가 해당 대상자에 대한 백신 공급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킨다는 점만은 분명하며, 이 불확실성은 그것이 생명과 결부된 것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여겨질 수 없다.
그런데 백신 소비 경로의 다양화는 그것이 물류적 측면이 아니라 윤리적 측면만을 고려하여 설계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동일한 결과에 이른다. 즉 여러 윤리적 측면들을 고려하여 백신이 동시에 다양한 경로로 소비되도록 설계한 백신 접종 계획 하에서도 백신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한 그룹에 의해 소비된 백신의 양은 필연적으로 다른 그룹의 부족량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백신 계획을 수정한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던 프랑스의 백신 접종률은 벨기에의 백신 공장 설비 공사로 야기된 공급 부족 문제로 인해 2021 년 1월 21일부터 다시 정체되기 시작했고 이내 하락하다가 2월에 들어서야 겨우 예전 수준을 회복하였다[7]. 수정된 백신 접종 계획에 따라 1분기로 분류된 모든 접종 대상자들이 완전히 동등한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기간 EHPAD의 거주 노인들에 대한 백신 접종 역시 지체되었을 것이며, 이들이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지체는 다른 어떤 1분기 접종 대상자들보다 그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8)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이러한 위험은 감수할 만한 것인가? 생명의 보존이라는 윤리적 가치에 부여한 것과 동등한 중요성을 다른 윤리적 가치, 가령 상호성에 입각한 분배 정의의 실현과 같은 가치들에 부여한다면, 이러한 위험은 우려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고, 설사 이러한 위험이 현실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불행한 일이기는 하지만 받아 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반면, 생명의 보존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윤리적 가치로 여긴다면, 이러한 위험은 감수할 만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이러한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는 원인은 사전에 제거되어야 한다. 즉 이러한 관점에서 백신 소비 경로의 다양화는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전략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전략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백신 접종 전략을 총괄하고 있는 COSV의 위 원장 알랭 피셰(Alain Fischer)는 2020년 12월 16일 열린 의회 공청회에서 백신 소비 경로의 다양 화에 대한 질문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한 바 있다[28]. 그는 HAS의 전략 보고서가 제시하는 “우선 성을 정의하는 요소들은 존중받을 만한 것들”이라고 평했다.
결국,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것이 우선순위 설정과 관련된 여러 윤리적 가치들을 배제한 채, 오직 생명의 보존이라는 가치만을 우선하여 고려했다는 사실에 대해 평가해야만 한다. 그리고 2021년 3월 19일 현재 9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프랑스의 상황을 고려할 때, 프랑스의 이러한 윤리적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또 사망자들의 대부분이 사회의 특정 집단에 편중되어 있고, 그렇게 취약계층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상황에서 생명의 보존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약자우선주의’에 따라 백신 접종 우선순위를 설정한 것 역시 납득할 만한 결정이었다. 물론 우리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보건의료 시스템이 이 환율과 사망률을 감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바, 이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노력 역시 생명의 보존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일 수 있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라면 이러한 방식이 더욱더 효과적이고 안정적으로 목표가 되는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 기적인 관점에서 시스템의 유지를 위해 사회-의료시설 종사자들에게 백신 접종의 우선권을 부여 하는 일은 백신의 소비 경로를 다양화하는 일이며, 그렇게 생명 보존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증가 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하루 최대 1438명의 사망자(2020년 4월 15일)를 기록한 바 있는 프랑스의 상황 속에서 사회-의료시설 종사자들에게 백신 접종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일은 고려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채택했어야 하는 방안은 아니다. 단기 간에 집단 면역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백신 공급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가능한 변수를 줄이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백신을 우선 공급함으로써 최대한 사망자를 줄이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잘못된 일일 수는 없다.
그러나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의 우선순 위 설정이 전제하는 윤리적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평가는 그것이 옳았다는 평가가 아니다. 분 명 프랑스적 상황 속에서 생명의 보존이라는 가치를 무엇보다 우선하여 추구하는 일은 납득할 만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납득할 만한 선택이 오직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의료자원 분배 기준과 관련된 평가는 CCNE의 2009년 의견서가 말한 것처럼 그 기준이 사회적으로 가장 받아들여 질 만한 것인가를 따지는 일이지, 그것이 옳은 것인가 틀린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이 아니다[22]. 그리고 이 의견서는 이 기준이 단 하나의 가치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치가 서로 균형을 이룰 때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적어도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서 프랑스의 여론은 분명 생명의 보존이 무엇보다 우선하여 추구되어야 하는 윤리적 가치라는 점에 동의한 것처럼 보인다. 정부의 백신 계획에 대한 비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것이 제시한 우선순위와 그것이 추구하는 윤리적 가치가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과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준비과정이다[25]. 앞서 살펴본 ANM의 성명서와 물류적 측면에서의 비판의 경우에도 비판은 백신 접종 계획의 윤리적 판단이 타당하다고 전제한 채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의 우선순위 설정이 전제하는 윤리적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평가한다고 해서 이 계획에 대한 모든 평가가 종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실제로 생명의 보존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이 선택한 ‘약자우선주의’에 따라 백신 접종을 실행할 경우, 반드시 고려했어야만 했지만 간과한 여러 요소가 있다. 무엇보다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은 생명의 보존이라는 윤리적 가치의 실현이 환자 자율성의 존중이라는 가치의 실현과 상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 생명의 보존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위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했던 백신 접종은 환자의 자율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도입된 사전 백신 상담이라는 절차로 인해 지연되었다. 프랑스 당국은 환자 자율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생명의 보존이라는 윤리적 가치에 종속시켜 약화시키거나, 이 둘이 양립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준비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프랑스 당국이 ANM이 권고한 바대로 사전에 시설의 노인들 대부분에게 동의를 받아두었더라면,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은 무난하게 실행될 수 있었을까? 이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고 판단한다. 그럴 수 있는 충분한 물리적인 시간이 있었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 당국은 미리 준비하지 못했고, 백신 접종의 첫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으며, 그 결과, 불과 10일 만에 초기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이상은 세웠지만,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생명과 자유, 인간 존엄성을 구성하는 이 두 핵심적 가치들을 주요하게 고려하여 설계된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은 그렇게 그 가능성을 제대로 확인해 보지도 못하고 서둘러 폐기되었다.
V. 나오며
프랑스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의 문제는 그것이 생명 보존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무엇보다 우선해서 추구했다는 점에 있지 않다. 이러한 가치판단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며, 대부분의 프랑스 인에게 공감을 얻고 있던 바의 것이다. 다만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함께 추구된 인간의 자유라는 윤리적 가치와의 긴장이 문제였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두 윤리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러나 백신 접종 계획은 처음부터 실행을 위해 준비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실제로 실행될 수 없는 프랑스의 초기 백신 접종 계획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무엇보다 보존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판단하고 그것들을 추구하고자 했다는 점은 납득할 수 있고 평가할 만한 일이다. 분명 백신에 대한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보다 손쉬운 방식은 온정주의(paternalism)를 강화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CCNE의 환자 자율성 강화와 관련된 제안을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한 프랑스 정부의 결정에는 어떤 고집마저 느껴진다.9) 그러나 인간의 생명과 자유, 이 숭고한 인류의 가치들이 실현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백신 접종 계획을 통해 그것들을 추구했다는 점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제 다음의 질문에 답해보자.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일은 사태를 지연시키고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인가? 안타깝게도 프랑스의 상황은 이러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도록 인도한다. 그리고 팬데믹이라는 상황이 기존의 시스템에 크고 작은 장애가 발생한 상황을 의미하고 이렇게 장애가 발생한 상황 속에서 기존의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은 정상적인 상황일 때보다 어려울 것임에 분명하므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프랑스 외의 다른 나라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결국 ‘위기 상황에서 요구되는 예외적인 윤리는 없다’라는 CCNE가 제시하는 대전제는 사실 구호에 불과하다. 위기 상황에 요구되는 예외적인 윤리는 분명히 있으며,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 나 요구되고 있다. 우리는 마스크를 써야 하고, 타인과 거리를 둬야 하고, 이동을 제한해야 한다.
그러나 이 구호가 무의미한 것일 수는 없다. 이 구호를 기준으로 CCNE는 정부 정책에 의견서를 제시하고 때때로 비판하면서 정부가 제시한 예외적 윤리에 예외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해 왔다[20]. 즉 ‘위기 상황에서 요구되는 예외적인 윤리는 없다’는 구호는 하나의 지향점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작용할 것이다. 또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는 일이 사태를 지연시키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은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 이 보편적 가치들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킬 뿐이다.
2021년 1월 28일 정부는 “‘일상 회복’을 위한 코로나19 예방접종 계획”을 발표했다[29]. 1분기 접종 대상자로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입원 및 입소자와 종사자’,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기관 종사자’, ‘고위험 의료기관종사자(보건의료인)’, ‘1차 대응요원(역학조사, 구급대 등)’, ‘정신요양과 재활시설등의 입소자 및 종사자’를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서상의 우선순위는 다른 나라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정부의 계획안의 특징은 추진 목표에 드러나 있다. 계획서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안전한 접종으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 보호’할 것이라는 목표와 함께 ‘전 국민 70% 이상 접종으로 집단면역을 확보하여 일상을 회복’ 할 것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일상의 회복’, 언제부터인가 일상은 우리의 목표가 되었고, 간절한 꿈이 되었다. 일상이 회복되는 그날은 언제 올 것인가? 아무도 이 질문에 확실한 답을 줄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날이 기필코 오고야 말 것이라는 점이다. 특징은 없지만 섬세하게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정부의 계획안에 따라 백신 접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하루라도 빨리 그날이 오기를 앙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