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의료는 질병을 치료하고 개인의 삶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사회의 안전망을 제공한다. 디지털 의료기술은 디지털화된 의료 전반을 지칭하는 것으로, 디지털 기술과 의료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의료 산업의 한 양태라고도 할 수 있다[1]. 디지털 의료기술에 대한 신뢰도는 아직 높지 않지만[2]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개인의 일상, 사회와 문화에 스며들어 점점 더 큰 영향력을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웨어러블 기기나 스마트폰이 허브가 되어 의료 정보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디지털 의료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도와 기대치를 높이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꾸어 나간다[1].
이 논문은 디지털 의료기술에 대한 기대 및 그와 함께 제기되는 문제를 서술하고, COVID-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디지털 의료기술이 어떻게 활용되었고, 기존의 우려가 어떻게 현실화하였는지 살펴본다. 이 글을 통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된 디지털 의료기술이 다양한 상황에서 개인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Ⅱ. 본론
디지털 의료기술은 간단한 진료 예약부터 의무 기록의 전자화, 원격의료, 웨어러블 기기나 앱 등을 이용한 몸과 행동의 변화에 모니터링, 유전자를 포함한 정보의 활용, 의료 정보의 기록 및 송출, 의사소통, 몸의 기능을 조절하기 유지하기 위한 디지털 장치, 시스템 서비스 등의 다양한 영역을 포함한다[3,4]. 디지털 의료기술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활용하게 되면서 기존의 의료기술과 큰 차이를 보인다. 전문가 들은 디지털 의료기술이 개인에게 있어 맞춤의료, 즉 정밀의료를 제공하며, 공공의 차원에서 보건의료의 질과 접근성, 효율성을 확보하고, 국가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5].
디지털 의료기술의 발전은 정밀의료, 개인 맞춤형 의료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존의 의료는 환자의 임상 증상, 신체검사, 혈액학적 검사, 영상 검사 정보에 의존하여 진단하고, 근거기반의학 (evidence based medicine)을 통해 만들어진 환자의 유사 증상군 혹은 동일한 진단군의 치료 지침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에 비해 정밀의료는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는데, 기존 개인의 임상 증상 및 임상 결과 자료를 포함하여, 개인의 유전자, 노출된 환경 및 생활 방식에서의 정보들을 모두 고려하여 개인 맞춤형의 예방, 진단, 치료 계획을 세우 고자 하기 때문이다[6]. IBM의 자료에 따르면 사람이 평생 만들어 내는 임상정보의 양은 0.4Tb, 유전자 정보는 6Tb, 그 외 환경이나 행동 양식 등의 외부적 정보는 1,100Tb에 달하며, 이들은 각 각 10%, 30%, 60%의 비율로 건강 결정에 영향을 준다[7]. 기존의 의료 방식이 10%의 정보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면 디지털 의료기술로 추구하는 정밀의료는 10%에 더해 나머지 90%의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다.
많은 정보로 무장한 디지털 의료기술은 이를 활용하는 개인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더 나은 ‘충분한 정보에 의한 의사결정(informed decision-making)’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8]. 개인은 웨어러블 기기나 스마트폰을 통해 사람들은 실시 간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할 수 있으며, 인터넷 자료와 인터넷 커뮤니티, 진단 앱 등을 통해 의료진의 검사에 의존해 얻는 정보와는 다른 다양하고 풍성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물론 모든 정보가 임상적 의미를 갖지 않으며 정제되지 않아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인터넷이나 앱에서 접하는 다양한 그룹의 온라인 정보 지원을 통해 환자는 의료진의 처지가 아닌 자신의 견해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9].
지금까지 의료 정보의 소유와 활용에서 의료진 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환자-의사 관계에 불균형이 있다고 지적되었는데, 디지털 의료기술은 환자들이 여러 소스의 많은 정보를 접하며,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얻은 신체 정보를 의사와 공유할지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얻음으로써 기존의 환자-의사 관계 지형에 변화를 줄 것으로 여겨진다. 즉 정보 제공자로서 환자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건강 문제에 참여하며, 그 정보를 의사와 공유할지 선택하는 등 더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의료기술은 정밀의료를 통해 보건의료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의료 접근성과 효율성, 안 전성을 향상하며 건강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10].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기술은 원내 감염이나 안전, 만성질환의 역학 및 관리, 원격의료 등을 통해 소외 지역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스마트폰의 앱이나 미디어를 통해 개인의 건강 활동을 추적하고 평가하며 의료 필요도를 분석하는 데 활용된다[10].
많은 국가가 자국의 이러한 보건의료 향상을 위해 디지털 의료기술을 지원한다. 호주 정부는 “마이 헬스 레코드(My Health Record)”라는 의료정보통합 플랫폼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의료정보를 구축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set up and access) 하며, 전화나 비디오 전화로 언제든지 의료에 접속 하는 원격의료서비스, 전자 처방전을 제공하고 있다[11]. 핀란드 정부는 환자와 보건의료전문가를 위한 전국적인 eHealth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해 Virtual Hospital 2.0 프로젝트에 재정적 지원을 하였다[12]. 이 프로젝트는 헬싱키 대학병원을 포함한 5개의 대학병원이 함께 참여하여 Health Village Network을 형성, 모든 핀란드인은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일상생활과 자기 관리, 전문적 의료서비스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13]. 의료서비스 공급에서 민간 자본에 높은 의존도를 가진 미국조차도 중앙 집중된 국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고 시도한다. 미국 정부는 “정 밀의료계획 - 올 오브 어스 연구 프로그램(The Precision Medicine Initiative’s All of Us Research Program, PMI All of US Research Program)”을 통해 미국인 100만명의 자원봉사 코호트를 이용해 그들의 건강 정보와 생물 표본을 만들어 가고 있다[14,15].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 내의 의료정보정책과를 통해 디지털 의료와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여러 산하기관에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16].
디지털 의료기술은 국제 보건의 차원에서도 건강의 형평성을 개선할 수 있다. 디지털 의료기술 발전에 중요한 도구인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보급률은 개발도상국에서도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한다. 2018년 보고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의 83%가 모바일폰을, 45% 인구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며, 60%가 인터넷을 사용한다[17]. 물론 이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낮고, 국가나 연령별로 차이가 있지만, 기존의 지역적, 사회 경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의료기술은 의료접근도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18]. 구체적인 예로 모바일 헬스를 통한 소외 지역의 HIV 감염자 관리로 HIV 감염에 따른 산모 및 아동 사망률을 감소시키고, 모자관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더욱 양질의 산후 관리가 이루어졌다는 보고가 있다[19,20]. 이렇듯 디지털 의료기술은 기존의 의료서비스가 닿지 않는 소수자들의 건강 불평등을 줄이는 데 활용되고 있다.
디지털 의료기술은 보건의료에서 뿐만이 아니라 산업의 차원에서 중요해지고 있다. 소득 수준의 향상, 고령인구의 증가, 건강에 관한 관심과 기대치가 상승하면서 의료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 이는 디지털 의료기술의 시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혹자는 전세계 최대 산업을 의료산업으로 이야기하며 디지털 의료기술이 향후 국가의 산업 경쟁력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5,21]. 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글로벌 디지털 의료시장 규모는 미화 965억 달러로 평가되었으며 2021년부터 2028년까지 연평균 15.1%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22].
2019년 제정된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 의료기기 지원법」에서는 법의 목적을 “일자리 창출 및 국가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디지털 의료기술의 하위 분야인 의료기기의 산업적 가치를 분명히 인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의료기술과 관련한 산업 분야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실정법이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발목을 잡고 있어서 디지털 의료기술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5,23]. 그들은 디지털 의료기술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함께 네거티브 규제나 규제일 몰제, 옵트 아웃 방식 등의 규제 완화를 주장한다 [14].
디지털 의료기술은 일상생활의 의료화를 촉진한다. 의료화는 이전에 의료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 의료의 용어로 정의되고, 의료의 범주로 편입되는 사회적 현상을 표현하는 말이다[24]. 일상생활의 의료화에 크게 기여한 대표적 기술이 스마트 폰의 건강 관련 앱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건강 관련 앱을 이용하여 자신의 몸을 수치화하며, 부족한 값이 있는지 점검한다. 이 시장은 매년 성장하여, 2016년에서 2017년 78,000개의 건강 관련 앱이 새로이 등장하였고, 2017년 약 325,000개의 건강 관련 앱이 있다고 보고되었다[25]. 사람들은 개인의 생활이나 생리적 현상을 모니터링하는 앱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며 생활습관을 점검한다. 문제는 이러한 앱이 실제 건강을 개선한다는 증거는 약하다[26]. 많은 사람은 게임을 하듯 건강 관련 앱을 이용하며, 앱에서 얻은 정보를 즐기며 이용한다. 혹자는 디지털 의료기술이 건강 개선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지만 해가 되지 않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면 문젯거리가 될 것이 없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이 의료 기술이 아니라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의료기술’이라고 한다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의료기술은 건강을 개선하고 치료하며 생명을 구한다. 질병을 앓는 사람들은 치료의 희망을 품고 의료기술을 이용하며 자신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이나 의료기기는 해가 되지 않더라도 환자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면 불필요하고 무익한 것이며, 이것을 사용하는 것을 비윤리적으로 여긴다. 디지털 의료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영국의 국가보건의료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에서는 의도된 기술에 대한 효과, 경제적 영향에 대한 증거를 포함하여 디지털 의료기술 근 거 수준 틀을 제시하고 있다[27].1)
시장성을 이유로 디지털 의료기술이 확장되는 과정에는 의료기술의 ‘적어도 의학적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적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 의료 기술의 적정성은 환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가로 결정된다. 검사와 치료, 모든 의학적 돌봄은 환자에게 이익을 주어야 하며, 그 이익은 의학적 개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해(위험)보다 커야 한다. 여기에서 이익은 환자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것으로 질병 치료, 삶의 질 향상, 더 큰 질병으로의 진행을 늦추는 것, 사망을 늦추는 것 등이며, 해는 치료하지 않았을 때의 부정적 결과, 치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원치 않는 치료 결과 등을 의미한다. 만약 해가 이득보다 크다면 그 의학적 개입은 불필요하며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의료제공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주기 때문에, 혹은 의학적 이익과 무관하게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원하기 때문에 치료가 제공되는 것은 적절 하지 않다.2) 그런데 상업적 가치가 의료기술의 개발과 활용에 개입되면 이익 계산에 있어 이해상충 이 발생한다. 기존의 제약회사가 많은 사례를 보여 주었는데, 제약회사들은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약을 만들지만, 연구개발보다 마케팅과 관리에 더 큰 비용을 들이고, 이미 시판되고 있는 약의 분자 구조 일부를 바꾸어 독점권을 유지하는 등 기업의 이익을 우선으로 한다[28]. 또한 과거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몸의 상태를 질병화하여 약의 수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24]. 싼 가격에 약을 제공하여 더 많은 환자가 어려움 없이 치료하도록 할 수 있지만,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기업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의료 시 장화는 어떤 측면에서는 의료기술 발전의 동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시장 경쟁력을 강조할 때 의료의 본질적 가치 - 치료에 기여하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 -가 훼손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용자에게 해를 초래할 수 있다.
앞의 논의가 의료의 시장성에서 야기되는 문제 라면 이제부터는 의학의 특성에 비롯된 의료화의 문제점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의료화에서 제기되는 문제의 하나는 의학적 시선이 도덕적 잣대로 작용하는 의학의 특성에 기인한다[29]. 의학의 대표적 목적은 질병에 걸린 사람을 정상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치료이다. 치료를 위해 의학은 ‘정상’과 ‘비정상’, ‘건강한 상태’와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구분한다. 의사는 당연히 환자의 비정상적이고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정상적이고 건강한 상태로 되돌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의사의 역할이다. 환자 역시 치료에 협조하여 정상 내에 들어오도록 요구받는데, 만약 치료에 협조하지 않으면 환자는 순응도가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의학적 시선은 정 상이 되어야 하고, 정상 범주에 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치료자와 치료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요구하며, 그것이 옳은 것, 마땅히 해야 할 바라고 이야기한다. 즉, 건강은 규범이며 건강을 위한 노력은 도덕적 사안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질병 영역을 넘어 우리의 건강과 습관 영역이 의료의 영역으로 포섭되면서, 우리의 일상이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으로 것, 혹은 개선해야 할 것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것은 종종 선호되는 것으로 전환되는데 훤칠한 키, 옷맵시가 나는 저체중, 낮은 체지방률 등의 선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통한 디지털 의료기술이 우리 생활에 적용되면 우리 몸의 더 많은 것들이 판단거리가 될 것이다. 디지털화 된 신체 데이터, 생활 양식 등에서 질병 위험인자를 찾아내고, 더 건강하기 위한 방안들 - 식이 제한, 운동량 및 방법 추천,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 등 - 이 등장한다. 일상생활의 의료화는 질병 위험인자는 질병으로 인식되고 위험 요인이 없는 상태, 더 좋은 건강 상태로 여겨지는 수치의 몸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이 몸에 대한 도덕적 행위라고 개인에게 종용한다.
의료에서 프라이버시와 자율성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다. 이 주제는 디지털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주목받는데, 디지털 의료기술이 개인 빅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수집되는 정보에는 병원에서 실시하는 검사만이 아니라, 건강과 상관없어 보이는 앱이나 소셜 미디어에서의 활동 기록, 인터넷 검색 기록, 소비 패턴, 이동 기록 등이 포함된다[30]. 개인의 신체, 물리적 몸과 생활 방식 등 개인의 모든 영역이 정보로 취급되어 수치화되고 있다. 국가나 공공기관은 정밀의료에 대한 기대와 보건의료 전반의 질 향상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로 개인에게 정보 제공을 요청하며, 일부 연구자들은 더 나아가 개인의 빅데이터를 인류의 재산, 공공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31]. 이러한 기술 활용에 있어 프라이버시 보호는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개인이 정보로 해석되고 다른 사람이 그 정보에 접근하여 개인을 인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의료기술 발전 과정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는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프라이버시 침해는 개인의 정보를 다른 사람이 무단으로 획득하거나 원하지 않게 정보가 공개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전통적으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개인정보의 수 집 목적을 제한하고, 수집 정보를 최소화하며, 민감 정보의 경우에는 별도의 보호 조치, 공정한 처리 및 관련자의 권리 보호 등을 약속한다. 하지만 빅데이터의 경우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빅데이터는 본질에서 목적의 변화와 개방성, 정보의 무한성, 가능한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데이터 보호, 인공지능과 딥러닝에서 알고 리즘의 불투명한 처리, 관계자의 불투명성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30]. 빅데이터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기존의 개인정보 보호 원칙은 디지털 의료기술의 발전에 걸림돌로 여겨지고 있다. 빅데이터로 제공되는 개인에 대한 정보량이 많아 질수록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위협받게 된다. 또한 익명화된 정보일지라도 다양한 소스에서 모여진 정보를 통합,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더 차별화된 프로파일링이 수행되면서 정보의 재식별화와 프로파일에 따른 그룹화(group identity)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30]. 빅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을 고려하되 프라이버시가 보장될 수 있는 새로운 원칙들이 제시되고 계속해서 점검되어야 한다. 언제 든지 개인의 디지털 기록이 추적될 수 있는 상황에서 프로파일되지 않을 권리 등 기존 방식과 다른 프라이버시 보호 방안들이 제안되고 있다[30].
프라이버시의 침해는 자율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라이버시는 ‘접근을 승인하거나 거절할 권리’로 표현되며, 이를 보장하는 것이 자율성 존중의 입장이다[32]. 또한, 프라이버시는 개인의 영역에 ‘감시나 접근, 강요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데[32], 앞서 논의한 ‘도덕적 잣대로 작용하는 의학의 시선’은 종종 개인의 영역을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좋은 것을 하도록 권유를 넘어 강요하기도 한다. 이러한 외부의 압력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어렵게 하며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기도 한다.
디지털 의료기술은 COVID-19의 특수한 상황에서 개인과 공공의 안전을 위해 사용되었다. COVID-19에서 디지털 의료기술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용되었으며, 앞서 우려 사항들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팬데믹은 보통의 의료 상황과 비교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기본적 권리가 일부 유보되는 것이 용인되는 독특한 상황이다. 특히 COVID-19와 같이 신종의 잘 알지 못하는 감염 질환에 있어서 이를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감시와 통제는 쉽게 정당화된다. 병원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치료법이나 백신이 없는 시점에서 COVID-19의 감염률을 낮추기 위해 선택된 방식은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그리고 감염자를 빨리 파악하여 일반 군중과 감염자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디지털 의료기술도 주로 이를 위해 개발되고 사용되었는데, 여기에 사용된 기술은 감염자의 격리 준수, 접촉자 추적, 질병 전 파의 흐름 모델링을 분석, 원격의료와 원격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이용해 감염자나 의심자의 증 상 점검과 관리를 하는 것이다[33,34].
우리나라에서는 감염 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는데 스마트폰이나 신용카드 사용 내용 등으로 감염자를 추적하고, 확산 정도와 지역 등을 공개하면서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살피도록 도우며, 감염자와 동선이 겹치는 사람들을 찾아 잠복기에 있거나 무증상 감염자의 검사를 앞당겨 지역사회 내 감염 접촉 기간을 단축하고자 하였다. 조기검사를 이용한 초기 검역 조치는 COVID-19 확산을 막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비용 절감에도 큰 역할을 했다. 확진 환자 수가 많고 병원 이용이 어려운 나라에서는 원격의료, 원격 환자 모니터링을 이용해 환자의 증상을 점검하고 관리하여 의료의 접근성을 개선했고, 위기 상황에서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하였다 [34-36]. 트위터나 구글 트랜드 분석과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환자의 증상과 팬데믹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는 데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37].
COVID-19는 디지털 기술이 어느 정도 상용화되었을 때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감염성 질환으로 팬데믹의 상황에서 디지털 의료기술이 어떻게 활용되었고, 기존의 우려가 어떻게 현실화하였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 COVID-19 방역에 주로 활용된 검역, 감염자와 접촉자 추적 및 감시에 사용된 기술을 중심으로 문제점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디지털 의료기술은 COVID-19 상황에서 질병의 확산을 억제하고 환자를 관리하며, 질병을 모니터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감염병의 특성상 질병 확산을 억제하는 주된 방식은 감염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격리하며, 접촉자를 감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디지털 의료기술은 증상 여부를 포함해 개인의 이동 정보, 개인 연락처를 찾아내고 개인의 활동을 감시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의료화라는 용어의 사용이 무색할 만큼 의료 정보로 여겨지지 않았던 정보가 의료 목적으로 수집되어 활용된 것이다. ‘공공의 건강과 안전’이라는 중요한 목적 달성을 위해 COVID-19 상황에서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받는 것은 디지털 의료기술과 무관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디지털 의료기술이 있기에 수집이 가능한 정보가 있으며, 개인이 제공한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일상 정보와 의료 정보의 경계가 기술로 인해 더 빠르게 허물어진 것이다. 이는 COVID-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회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의료적 가치가 우선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언제든지 각 개인이 감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3) 만약 감시 목적의 정보 수 집과 활용에 대해 개인의 동의가 전제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분위기, 동의하지 않았을 때의 다른 사람의 비난 등으로 실질적 의미의 동의가 이루어 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COVID-19에서의 개인정보 수집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2조 제2항에 근거 한다. 이에 따르면 “자가 또는 시설 격리, 이동수 단 제한, 격리자의 유선·무선 통신,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감염병의 증상 유무, 위치 정보의 수 집, 감염 여부 검사”가 가능하다. 법에 근거하여 정부는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데 이용하였으며, 적극적인 조기 대응은 확진자의 수를 눈에 띄게 감소시켰다. 하지만 확산 억제를 위해 공개한 정보가 개인의 생활을 제약하고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해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특히 초기에 공개된 개인정보의 범주는 개인이나 집단을 특정할 수준이었고, 정보가 노출된 개인과 집단은 차별, 혐오에 시달렸으며, 권고사직이나 이혼의 압박을 받기도 하였다 [38,39].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방역의 걸림돌이 되어 증상을 숨기거나 자신의 동선을 밝히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국내에서 보고된 신천지 집단 감염이나 이태원 클럽에서의 집단 감염에서 역학 조사의 어려움이 보고되었고,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의 경우 신고가 미비하여지자 개인정보 수집 없이 검사 번호만 부여하는 익명검사를 시행하면서 진단 검사 참여자가 증가하였다[40-42].
디지털 의료기술이 충분한 정보에 의한 판단, 결정을 가능하게 하여 개인의 자율성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팬데믹 상황은 여기에 제약이 발생한다. 자율성의 조건이 되는 자유와 행위능력의 보장에는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다[32]. 자유는 통제하고자 하는 영향력에서 독립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팬데믹 상황은 공공의 안전을 위해 평소보다 강력한 개인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영향력을 허용한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 확진자 및 밀접 접촉자의 격리, 집합 제한, 입국자 나 확진자, 밀접 접촉자의 격리 앱 강제 사용, 일부 대상자에 대한 COVID-19 의무검사 일부 국가들의 도시 봉쇄와 이동권 제한 등이 그 예이다. 또한 COVID-19와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정보가 부족하므로 온전한 행위능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 COVID-19는 단순한 의학적 주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정치적 주제이다. COVID-19에 대한 대처가 정치 문제로 해석되면서 인터넷과 SNS 등에 가짜 뉴스, 음모 이론 등이 일부 집단의 이익을 위해 확산하였고, 근거 없는 의학 정보들이 떠돌았다[37]. 이러한 근거가 없거나 잘못 해석된 정보가 유통되면서 개인의 합 리적 판단을 방해하고, 우리의 행위능력을 약화할 수 있다.
COVID-19 확산 초기 우리나라에서 공개하는 확진자 정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범주가 넓다는 비판을 받았다[43]. 또한, 감염자 관련 정보를 담은 공문서가 유출되며,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에서는 개인식별정보가 포함된 정보가 공개되거 나 삭제 시기를 넘은 정보가 남아있기도 하는 등 정보 관리에 미흡한 모습을 보였다[44,45]. 물론 COVID-19에 대한 지식이 없고, 처음 경험하는 상황에서 생기는 실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염성 질환 관리, 빅데이터를 이용한 의료기술에서 정보공개나 프라이버시 문제는 새롭게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한 편으로 공개하고자 하는 정보가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하며, 개인을 식별할 수 있고, 사회적 차별이나 낙인을 만들어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프라이버시와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오히려 사회의 안전을 해치게 된다.
디지털 의료기술이 아니더라도 COVID-19 상황에서 개인은 통제되고 프라이버시와 자율성에 제약이 가해질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의료기술은 이를 더욱 강화한다. 다행히 COVID-19에 대한 정보가 쌓이고 개인의 프라이버시 및 자율성에 대한 민감성이 증가하면서 COVID-19 확산 초기에 발생한 문제점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수집·공개하는 개인정보를 최소화하며, 익명 검사, 수집 정보의 만료기간 설정 및 준수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공중보건학적 이유로 강력한 통제가 필요할 수 있다. 이때 통제의 근거는 명확해야 하며, 보건의학적 이점이 분명해야 한다. 또한, 보건 의료기술이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축소하고 자율성에 제약을 가하는 경우, 그 정도는 기술이 추구하는 목표에 비례해야 한다. 즉, 프라이버시권과 자율성을 제약할 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하며, 제약을 가하는 것이 제약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빨리 권리와 자유를 회복시킬 수 있을 때 통제와 감시는 정당화될 수 있다[33].
Ⅲ. 결론
디지털 의료기술은 정밀의료의 실현, 보건의료의 질과 접근성 향상이라는 의학적 이유와 함께 산업 경쟁력이 있는 분야라는 이유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빠른 기술의 발전과 성과는 기술의 목적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디지털 의료기술이 ‘의학적 목적’을 추구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의료는 다른 산업과는 달리 적어도 건강상의 이득을 주어야 하며 어느 정도의 효율성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개인적이며, 민감한 영역이기 때문에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디지털 의료기술이 과학적, 윤리적, 법적 타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해당 기술이 분명한 공공의 이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웃돌아야 하는 것이다[33].
COVID-19는 개인의 건강과 공중 보건의 안전을 위해 정부의 통제와 감시가 정당화된 특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의료기술은 감시와 통제에 활용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조기 확산을 막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은 프라이버시나 자율성의 제약을 경험하였고, 일부에서는 자신의 정보가 노출되면서 차별을 당하기도 하였다. 팬데믹과 같은 상황에서 공공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자유는 어느 정도 유보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것이 아니고 기술이 무엇을, 누구를 위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개인에 대한 제약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디지털 의료기술은 우리 생활 전반에 파고들 것이며, 여러 곳에서 모여진 우리의 정보는 언제든지 한 개인을 지목할 수 있기에 정보의 수집과 저장, 처리, 활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예견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