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ournal of Medical Ethics
The Korean Society for Medical Ethics
Article

‘의료인’의 의무윤리와 덕윤리의 상보적 이해*,**: 펠레그리노(E. Pellegrino)의 논의를 중심으로

최우석***,*https://orcid.org/0000-0001-6281-2424
Woosok Choi***,*https://orcid.org/0000-0001-6281-2424
***경희대학교 통합의료인문학 연구단 HK연구교수.
***HK Research Professor, The HK+ Institute for Integrated Medical Humanities, Kyung Hee University.
*e-mail: shwem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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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Feb 29, 2020; Revised: Mar 03, 2020; Accepted: Mar 17, 2020

Published Online: Mar 31, 2020

요약

본 논문은 전문직업인으로서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윤리가 무엇인지를 고찰한다. 이러한 고찰에서 논문은 의무윤리와 덕윤리 모두가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것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따라 논문은 보편 준칙을 기준으로 실천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칸트(I. Kant)의 ‘의무윤리’가 실천행위의 탁월성을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덕윤리’와 상충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보완하는 관계임을 내세운다. 이 같은 주장의 타당성을 본 논문은 펠레그리노(E. Pellegrino)의 논의로부터 발견한다. 펠레그리노는 의료인은 필연적으로 윤리적일 수밖에 없으며, 의료인의 윤리실천은 다음의 두 가지로부터 수행된다고 본다. 첫째, 펠레그리노에 따르면 의료인은 환자의 고통에 당위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그 이유는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존엄한 권리의 수호라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무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자율적 인격자인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며 그 존엄성을 보전하라는 칸트의 정언 명령은 취약한 환자와 관계 맺는 의료인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보편준칙이다. 둘째,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중요하다면 실상은 환자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의료인의 존엄성도 중요한데, 이러한 사정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보전하는 방법으로서 펠레그리노는 덕윤리를 전면에 내세운다. 덕윤리는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탁월한 지혜를 ‘좋음’이라는 목적 속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의료인과 환자와의 관계는 보편준칙을 수호하는 토대 위에서 실천적 지혜로 구현되어야 한다. 환자의 부름에 응답하는 게 의료인의 태도이지만, 이러한 응답은 의료인과 환자와의 상호소통과 존중 속에서 실천적 지혜로 이행되어야 한다. 결국, 펠레그리노가 내세우는 의료인의 직업윤리는 의무윤리를 끌어안은 덕윤리이다. 펠레그리노에 따르면 환자와의 관계에서 의료인의 의술은 보편적 가치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것이자,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더 나은 삶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도덕적 정언명령과 실천적 지혜이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ethics of medical professionals and argues that both duty ethics and virtue ethics are required of them. It is argued that Aristotle’s virtue ethics, which emphasizes practical excellence, does not conflict with Kant’s duty ethics, which holds that ethical conduct is justified on the basis of universal rules; instead, these two approaches to ethics are in fact complementary. The validity of this argument is found in the writings of E. Pellegrino, who believes that medical practitioners are necessarily ethical and that ethical practice is based on two things. First, according to Pellegrino, physicians must respond to the suffering of patients. The reason for this comes from our duty to uphold the dignified right of all human beings to be respected without exception and also from Kant’s categorical imperative, which demands that people be treated as ends-in-themselves rather than simply means to an end. Second, if the dignity of all human beings is important, then the dignity, not only of patients, but also that of medical practitioners, must be upheld. Pellegrino proposes virtue ethics, which requires excellence for the purpose of goodness, as a way of preserving human dignity. Thus, the relationship between physicians and patients should be embodied in the best practical wisdom on the basis of defending universal rules. It is the attitude of the practitioner to respond to the needs of the patient, and this response must be implemented with practical wisdom and respect between the practitioner and the patient. In the end, the professional ethics of Pellegrino is a virtue ethic that embraces duty ethics. According to Pellegrino, a physician’s medical practice is a defense of human dignity and a realization of a better life for individuals and communities. Thus, what is required of medical practitioners is both the categorical imperative and practical wisdom (phron?sis).

Keywords: 덕윤리; 의무윤리; 펠레그리노; 실천적 지혜; 정언명령
Keywords: virtue ethics; deontological ethics; Pellegrino; phron?sis; categorical imperative

I. 들어가며

윤리탐구는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판단할 때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바른길을 찾는 것이다. 윤리는 동물과는 다르게 인간만이 지향하는 특징 중 하나이다. 인간은 윤리적 행위를 추구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치윤리, 기업윤리, 생명윤리, 환경윤리, 지구촌윤리, 성(性)윤리, 페미니즘윤리 등 다양한 차원에서 윤리를 고찰하고 있다. 그중에서 본 논문은 전문직 종사자로서 의료인1)의 윤리를 다룰 것인데, 의료윤리는 관점과 역할에 따라 다양하게 세분될 수 있겠으나,2) 여기에서는 의료인과 환자의 관계에서 생각될 수 있는 윤리문제를 탐색한다. 의료는 사람의 생명을,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환자를 다루는 분야이다. 그런만큼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된 윤리적 태도는 ‘의술(medical practice)’ 그 자체로부터 요구된다.

의술을 수행하는 의료인은 양심적인 태도로도 움이 필요한 사람의 건강과 생명, 치료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타인의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며 건강을 증진하는 일이다. 이러한 요구는 의료인이 추구해야 할 소행으로서 큰 의심이나 비판적 검토 없이 자명한 사실로 취급되어왔다. 가령, ‘대한의사협회 의사 윤리강령’은 의심할 바 없이 마땅히 따르고 준수해야 할 윤리적 규범으로 있다. 하지만 의사윤리강령이 모든 의사에게 당위로서 설명될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의료 상황은 복잡성 아래 놓여있다. 그러한 복잡성에 따라 의술의 윤리적 실천의 당위성과 구체성이 제대로 고찰되어야 한다.

의술에서 윤리적 당위성과 구체적인 실천의 방향을 제대로 고찰해야 하는 이유는 의술이 단순한 기술로만 이해되거나, 이윤 창출에만 목적을 두는 상업적 행위로 변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듯, “터스키기 매독 실험(Tuskegee syphilis experiment)”3)이나 나치의 생체실험처럼 국가 이념의 정책도구로도 이용될 수 있는 게 의술이다. 의술의 목적이 환자의 치유와 총체적인 안녕(well-being)이라면, 환자를 대하는 의료인은 윤리적인 태도 속에서 의술의 목적을 실현해야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의료인은 왜 의술의 목적을 실현해야 하는가?”이다. 의심할 바 없이 자명해 보이는 의료인의 윤리적 태도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의료인은 왜 윤리적이어야 하며, 왜 목적을 실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다.

의료인의 윤리적 태도는 크게 두 영역에서 고찰될 수 있다. 한 가지는 의료인의 의학 연구 (medical research) 영역에서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환자4)와의 관계에서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직접적인 인간관계에 따라 분류된다. 전자는 ―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 인체에서 분리된 물체나 행정적 업무의 특성이 인격적 문제와 연관된다고 판단될 때 고려되는 사항들이다. 예를 들면, 장기, 혈액관리, 조직재, 인간 유전자 개발, 환자의 정보 보호와 활용 등과 관련된 제반 사항들이 이에 해당한다. 장기매매, 인체유래물의 기증과 처분권, 유전자 개발, 임상연구 등으로부터 고려되는 사안들은 의료인의 윤리적 태도와 연관되는 문제들이다.

후자의 영역, 즉 의료인과 환자와의 관계에서 살펴봐야 할 윤리문제는 전자의 영역보다 우리가 빈번하게 접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환자가 될 수 있는,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취약한 몸을 지닌” 인간이기에 환자로서 의료인과 마주하는 경험에 노출되어 있다[1]. 우리 모두가 상처 입을 가능성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에서 볼 때, 후자의 영역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본 논문은 우리가 흔하게 겪을 수 있는 후자의 영역에서 고찰되는 윤리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의료인과 환자와의 관계에서 의료인의 윤리적 당위성과 구체적 규범성을 탐색할 것인데, 이를 수행하기 위해 본 논문은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윤리적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한 펠레그리노(E. Pellegrino, 1920-2013)의 논의를 빌려온다. 의료인과 환자와의 관계에 대한 펠레그리노의 논의를 파악할 때 우리는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서 고려해야 할 윤리적 사안들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5)

이와 같은 연고에 따라 논문은 II장의 1절에서는 펠레그리노가 이해하는 의학과 윤리의 필연적 관계를 살펴본다. 이어서 2절에서는 의술을 실행하는 의료인의 도덕적 당위성이 펠레그리노로부터 어떻게 설명되는지를 살피며, 3절에서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요구되는 의료인의 덕윤리를 확인한다. III장에서는 펠레그리노로부터 의무윤리와 덕윤리가 상호보완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을 정리할 것이며, 이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IV장에서 개 관함으로써 논문의 함의를 밝힌다.

II. 의료인의 윤리실천: 펠레그리노의 이해

1. 윤리를 실현하는 학문으로서 의학

미국의 의철학자 펠레그리노는 내과 의사이자 생명윤리학자이며, 조지 부쉬(George W. Bush) 전 미국 대통령의 생명윤리 대통령 자문단의 의장 직을 맡았던 사람이다. 펠레그리노는 미국의 의과 대학에서 의료인문학 교육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이와 관련된 교육프로그램들 마련에 힘썼다. 그는 1978년 조지타운 대학(Georgetown University)의 임상의학 교수로 임명된 이후부터 줄곧 의료인과 환자와의 관계를 고찰하고 연구하였으며, 의학의 인문학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펠레그리노는 의료 행위자의 윤리적 태도가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실천 되어야 하는지를 평생 동안 고민한 선행연구자다.

펠레그리노에게 의학(medicine)은 필연적으로 윤리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에 따르면 의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건강과 치유라는 실천적 목적에 기여하는 한에서의 “진리탐구 그 이상”[2]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의학이 지향하는 실천적 목적이란 진리탐구를 통한 지식 형성만을 말하지 않는다. 진리탐구 그 이상을 지향하는 의학은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좋음(the Good)’을 증강하는 ‘목적성’[2]을 띤다. 이러한 이해에서 펠레그리노는 의학이란 ‘치유(healing)’ 개념과 함께 좋음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치유는 윤리적 속성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인데, 왜냐하면 의학은 근본적으로 치유를 요구하는 사람(환자)에게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좋음’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료윤리의 원칙은 총체적인 “환자의 좋음(the good of the patient)”[3]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의학은 환자를 향한 좋음을 실천함으로써 학문적 실용성을 구축한다. 그와 같은 실용성은 좋음이라는 목적에 기여할 때 더 큰 가치를 갖는다. 펠레그리노는 의술의 좋음으로의 참여가 ‘의료행위의 윤리적 기초를 수립한다’[4]고 보았으며, 그와 같은 윤리적 특성이 곧 의학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펠레그리노에 따르면 의학은 “히포크라테스 (Hippocrates, B.C. 460-370) 이후부터 지금까지 윤리를 실천하는 분야”[5]이자, 치유관계 속에서 오랜 시간 “‘인간주의(humanity)’에 봉사”[5]한 학문이다.

하지만 의학의 특성이 윤리적이라는 펠레그리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의료는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의 의료행위란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자율적인 계약관계의 이행으로 여겨진다. 제빵사가 자신의 기술로 빵을 구워 팔 듯, 혹은 정비사가 차량을 어떻게 수리할지를 진단해 주듯, 의료인 역시 자신의 지식을 자유롭게 상품으로서 내놓는 자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향이 간과하고 있는 점은 의료인이 관계 맺는 대상이란 물건이 아닌 엄격하게 존중받아야 할 사람, 즉 약자로서 환자라는 사실이다. 만일에 의료가 상품으로 간주되어 시장경 쟁의 논리에 지배되는 재화로만 여겨진다면, 자유 로운 계약행위자로서 의료인은 합리적인 이윤 추구에 따라 자신의 지식을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이윤 창출이라는 목적 속에서 환자의 취 약성을 이용하는 문제’[6]를 초래할 수 있다. 의료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취약한 환자는 존엄한 대우를 못 받을 수 있다. 근본적으로 의술을 실 행하는 사람은 윤리적으로 모든 환자의 요청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 환자의 아픔은 환자 전체 생활의 불균형을 뜻한다. 아픔이란 하나의 인격체가 지녀야 할 권리로서 안녕의 상태(well-being)가 훼손되는 사태다. 의료인은 이러한 사태를 관망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의료인은 자신의 판단이 필연적으로 인간 존엄성과 연관된다는 점을 상기하며 윤리적 태도로 좋음을 지향해야 한다.

환자와의 관계에서 인간적 삶을 결정하는 막중 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의료인은 좋음을 지향해야 할 이타적 의무를 지닌다. 펠레 그리노는 이타적 의무를 이행하는 게 의학의 특성이며, 의학은 인류의 요구에 부응하는 ‘공공재 (common good)’[6]라고 설명한다. 의학적 지식은 지난 몇백 년 시간 동안 축적되어온 것이자 이를 이용하는 여러 의료 전문가들의 협력으로 생산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의학적 지식이 생산되도록 기여한 수많은 희생과 노고들 ─ 예를 들면 해부에 사용된 시신, 인체실험의 피실험자 등 ─ 을 생각해볼 때, ‘의학적 지식은 한 개인의 생산물 또는 소유물이라고 할 수 없다.’[6] 의학이 지식 상품으로서 한 개인의 혹은 개별 기업의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만 사용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술이 사적인 상품으로 거래되는 세태에 저항하면서 펠레그리노는 “의학의 교육과정은 반드시 인문학적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7]고 호소 한다. 의학에서 인문학이 강조되는 이유는 의술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8]. 그래서 의료인은 언어와 문학, 역사학, 철학 등 인문주의적 사 고와 훈련으로 교육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펠레그리노는 의학을 “가장 인간적인 과학이자, 경험적 예술이며, 가장 과학적인 인문학”[9]으로 규정한다. 펠레그리노가 의학의 인문학적 요소를 강조한 이유는 의료인과 환자의 관계가 수단적 관계가 아닌 좋음을 지향하는 목적의 관계로 수립되기 때문이다. 환자와의 치유 관계 속에서 지식뿐만 아니라 실천과 규범을 요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상기해볼 때, 의학은 윤리적 요소를 본질적 특성으로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펠레그리노는 “의학에서 도덕의 기초가 재정립”[5]되어야 한다고 본다.

펠레그리노에 따르면 도덕의 재정립은 “내적도덕성(internal morality)”[10]의 강화로부터 실현된다. 내적 도덕성은 직업상 취약한 자를 다루는 사람이라면(가령, 의학, 법, 교육, 종교 등)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다. 도움을 줘야 하는 일을 가진 전문가라면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 성향을 궁극적 목적인 ‘좋음’ 속에서 실현해야 한다. 의학은 아픔과 치유라는 인간이 갖는 보편적 경험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좋음을 지향한다. 좋음이란 그 자체로 최상의 좋음이다. 좋음이라는 최종 목표 속에서 환자의 총체적인 건강을 구현하는 학문이 곧 의학이다. 이를 실천하는 의료인은 자신의 내적 도덕성이 최대한 “공공을 위한 헌신”[10]으로 발휘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할 때만이 의료인은 의학의 진정성을 확보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취약한 환자의 호소에 응답하고 도움을 줘야 할 의무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가를 상세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의료인은 내적 도덕성을 왜 강화해야 하며, 왜 좋음을 실현해야 하는지가 여전히 의문이다. 의료인은 ‘좋음’을 실현해야 한다는 소명의식 없이도 일상 속에서 이상 없이 의료 활동을 수행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윤리에 대한 의식 없이도 기술적으로 환자들을 치유하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의료인은 윤리적이어야 하며, 환자를 치유하는 목적을 왜 좋음으로써 실현해야 하는가?”

2. 의료인의 윤리실천의 당위성

사람들은 도덕적 양심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그에 따른 행위 속에서 저마다의 정체성을 확보한다. 도덕적 양심의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의 존엄은 침해되지 아니한다’는 명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명제는 우리 모두가 수용하는 준엄한 원칙이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말은 “인간 존재로서 자신의 탁월성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합당한 정도의 존중을 받는 것”[11]을 뜻한다.

인간이 갖는 탁월성이란 칸트(I. Kant)의 관점을 빌려 말한다면, 자율성에 따른 이성사용의 능력이자, 도덕을 수행하는 실천이성의 발휘이다. 칸트에 따르면 “자율은 인간과 모든 이성적 자연존재 자의 존엄성의 근거”[12]이며, 존엄성은 “‘도덕성’을 소유한 인격자에게 주어지는 절대적 명칭”[13]이다. 의무윤리를 창안한 칸트에 따르면 이성존재 자로서 우리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자체(end-itself)’로서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할 권리를 갖는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자율성에 따라 보편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 히만(Adolf Eichmann)과 같은 나치 독일 장교를 인간이기를 포기했다고 비난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자율성에 따라 보편윤리를 실행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도덕을 실천하는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는 것은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다.6)

앞서 우리는 발휘해야 할 특성이자, 특별히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속성으로서 ‘내적 도덕성’을 이야기한 바 있다. 내적 도덕성은 인간이 갖는 탁월성이며, ‘좋음’이라는 목적 속에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료인의 내적 도덕성의 실현은 의술 이 하나의 상품으로 거래될 수 없는 이유를 제공한다. 내적 도덕성으로부터 추구되는 좋음은 의술을 하나의 상품만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내적 도덕적 양심과 실천으로부터 발현된다. 그러므로 환자를 대하는 의료인의 도덕적 양심과 실천은 존엄성 수호라는 당위적 규범으로서 수립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의료인은 내적 도덕성의 발현으로 의술의 윤리적 실천을 수행할 때,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보전할 수 있다. 의료인의 윤리 실천은 당위적이어야 하며, 그럴 때만이 ‘환자의 권리와 의무’뿐만 아니라, ‘의료 행위자의 권리와 의무’7)가 추상적인 참고사항으로만 남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의료인에게 윤리적 실천의 당위성이 호소되지 못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심지어 윤리실천이 배제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펠레그리노는 의료인으로부터 윤리가 중요하게 부각이 안 된 이유를 다음의 ‘다섯 가지’[14]로 진단하고 있는데, 첫째, 오늘날 의료 환경은 점점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 중심의 의료판단에만 집중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의료인은 서비스 제공자로서 고객의 요구에 단순하게 순응하고 응답하는 존재로만 간주된다. 둘째, 의술은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한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윤 창출이 목적일 경우, 환자로서 취약한 인간은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문제를 갖는다. 셋째, 인간적 삶을 위협하는 낙태, 안락사, 인간복제나 배아줄기세포 연구들이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실용성에만 입각한 의학 연구와 행위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간과할 수 있다. 넷째, 역사적으로 고문, 테러리즘, 인종 학살과 같은 일들에 의료인들이 침묵했다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뿐만 아니라 2000년대 발생한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겪게 된 죄수와 전쟁포로에 대한 가혹 행위, 인체실험 등의 비윤리성은 의료인의 윤리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여전히 의료인들은 의료 환경의 비윤리적 면모에 침묵하는 경향을 띤다. 다섯째, 세속주의의 등장과 함께 의료인의 가치중립적인 태도가 만연해졌다는 사실이다. 세속주의는 의료인이 자신의 도덕적 가치나 양심에 따라 판단하거나 행하는 게 아닌 가치중립성에 따라 의술을 실천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펠레그리노가 볼 때, 가치중립적 판단과 실천은 의료인 또는 환자가 처한 환경, 관습, 규범, 문화를 무시하는 처사이다. 개개인들은 다양한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개개인의 정체성의 다양한 양상은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한국인의 전통과 가치는 이슬람인의 것과는 다르다. 가령, 낙태를 바라보는 시선도 저마다의 가치 속에서 제시될 수 있다.

펠레그리노가 볼 때 세속주의는 실현 불가능한 것인데, 왜냐하면 가치중립성은 개별 구성원들이 갖는 인격적 정체성의 다양한 양상들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임상적 결정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수혈을 거부할 수 있고, 심폐소생술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을 펠레그리노는 종교인들의 사례를 들어 거론하는데, 그는 ‘종교인으로서 한 사람이 갖는 양심에 어긋난, 도덕적으로 수용되지 않는 의술을 시행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14]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점에서 펠레그리노는 환자에 대한 의료인의 일방적인 수직적, 비대칭적 관계를 강조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환자와 의료인의 관계는 비대칭적 관계이지만 이 관계는 소통과 자율성이 상호간의 존중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세속주의처럼 의료인들이 가치중립적으로 의술을 실천하는 것은 건전한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 한 사람의 신념이나 양심을 형성하는 심리적 판단과 분리된 결정이란 “한 사람의 인격적 진실성을 파괴하는 것”[14]이다. 오히려 펠레그리노는 의료 환경에서 저마다의 양심이 서로 갈등한다면, 그와 같은 갈등은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본다. 무가치라는 획일적 판단보다 다양성을 용인하면서 우리는 도덕적 타협점을 상호존중 속에서 소통으로 발견해야 한다. 그러한 타협의 가능성은 펠레그리노에 따르면 우리 모두가 가진 탁월성, 즉 내적 도덕성에 대한 호소로부터 발견된다. 그리고 도덕적 호소는 보편적인 이념으로서 인간의 존엄성 수호라는 당위적 규범을 지향한다. 이러한 당위적 규범을 지향하며 상호소통으로 갈등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게 펠레그리노가 이해하는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관계이다.

의료인과 환자의 관계는 일방적 계약관계가 아닌 상호간의 자율적 관계이다. 펠레그리노에 따르면 이 관계의 본질은 “치유관계(healing relationship)”[5]이다. 펠레그리노가 볼 때, 의학은 치유관계 속에서 인간주의(humanitas)에 봉사 한 학문인데, 이와 같은 치유관계 속에서 의료인이 추구해야 할 인간주의는 근본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현상들과 분리되지 않는다. 첫째는 “질병의 사실(fact of illness)”이며, 둘째는 “전문직의 행위 (act of profession)”이고, 마지막으로는 “의료행위 (act of medicine)”이다[5].

첫 번째 현상인 질병의 사실은 질병 상태에 처 한 사람이 신체 또는 정신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질병에 걸린 사람은 기본적으로 질병의 치유를 중요한 관심으로 두며,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를, 즉 온전한 회복의 손길을 요구한다. 질병에 처한 환자는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으며 자신의 취약성에서 벗어나고자 도움을 요청한다. 질병의 상태(ill-being)는 기본적으로 좋은 상태(well-being)와 구별되는데, 좋은 상태로의 전환을 위해 환자는 이를 치유해줄 누군가에게 의존한다.

의료인은 환자의 아픔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래서 의료인은 문제 해결의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전문성과 함께 의료인은 의술로써 생명, 건강, 정의 등 중요한 가치들을 실현하는 사람인만큼 다른 어떤 직종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적 판단과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두 번째 현상인 전문직의 행위가 부각된다. 펠레그리노는 전문가 (profession)를 “약속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전문가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profiteri’는 “큰 소리로 선포하다”[5]는 의미를 갖고 있다. 펠레그리노에게 전문가로서 의료인이란 환자에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공표함으로써 해답을 찾아줄 것을 약속하는 사람이다. 의사의 물음은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으로 환자의 요청에 응답하는 태도이다.

약속을 공표하는 전문가의 행위에는 두 가지가 전제되는데, 첫째는 전문가로서 의료인은 필요한 지식을 소유한 자, 즉 능력을 갖춘 자라는 사실이다. 둘째는 전문가로서 의료인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두 가지 전제는 치유관계에서 의료인과 환자의 관계가 비대칭의 관계에 있음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아픈 사람과 약속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는 수평적 관계가 아닌 불평등한 관계로 수립되기 때문이다. 치유관계는 약속하는 자와 취약한 상태에서 호소하는 자로 구축된 불평등한 관계 위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의료인과 환자의 관계를 일방적인 수직적 관계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앞서 밝혔듯,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상호 신뢰 속에서 소통하는 관계이다. 이러한 비대칭의 관계에서 의료인은 환자의 부름에 윤리적으로 응답하며 소통해야 한다.

고통받는 타자의 호소에 응답하는 게 의료인의 역할이라면, 이러한 역할은 의술로 실천된다. 앞서 우리는 지속해서 의술은 당위로서 실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의료인이란 비대칭적 관계에서 환자의 호소에 응답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호소는 인간이 갖는 근본 감정인 “연민(compassion)”[5]에 대한 호소이다. 연민은 타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공감(sympathy)’의 감정인데, 이러한 공감의 출발은 타자의 부름에 의료행위를 수행하겠다는 동의로부터 시작된다. 펠레그리노는 동의(consent)라는 단어가 라틴어로 “함께(con) 느낀다(sentire)”는 말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함께 아파하는 연민의 감정은 도덕적 질료를 갖는데, 왜냐하면 단순한 심리적 감정 이입을 넘어서서 연민은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제시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공감은 아파하는 환자를 향한 책임과 포용을 가능하게 한다. 환자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감정은 공감이다. 이러한 공감의 책임과 포용성은 의료인을 단순히 ‘사유하는 인간(homo sapiens)’ 혹은 ‘기술을 수행하는 인간(homo faber)’이 아닌 ‘사랑하는 인간(homo amans)’이 되게 한다[15]. 사랑하는 인간이란 타자를 배제하지 않는 공동체적 인간을 뜻한다. 우리는 날 때부터 공동체적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공동체 속에서 존엄한 존재로서 우리는 서로의 존엄성을 함께 수호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더 나은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근본적인 규범이다. 이와 같은 보편적인 규범을 따르며 우리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살아간다.

우리가 공동체적이라고 함은 우리의 생이 비대칭적 관계에서 타인의 도움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뜻한다. 가령, 우리는 날 때부터 부모와의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부모의 사랑이라는 보살핌에 의존해왔다. 아이와 부모의 관계는 비대칭적 관계이지만 부모는 사랑으로써 약자인 아이의 호소에 당위적으로 응답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호소하고 거기에 의존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보존해왔다. 우리는 비대칭적 관계에서도 타자를 향한 사랑과 연민 속에서 우리의 존엄성을 유지해 왔다. 당연하게도 의사와 환자의 관계 역시 비대칭의 관계, 공감과 사랑이 요구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연민으로 타자에게 향하는 사랑은 공감하며 책임과 포용성으로 타자의 호소에 부응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공감하며 소통하는 것은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이다. 모든 의미가 상실된 상황에서도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향해 사랑으로 공감하며 염려와 위로를 전할 수 있는 게 인간의 능력이자 탁월성이다. 이러한 탁월성이 곧 내적 도덕성이며 인간을 자율성에 따라 윤리를 실현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의료인에게 내적 도덕성을 충분히 발휘하는 게 당위적으로 요구되는 이유는 우리가 곧 연민하는 존재이며, 사랑 하는 존재이자 공동체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료인의 윤리실천의 당위성은 사랑의 실현이자 우리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좋은 공 동체를 형성하는 조건이다. 결국, 의료인의 도덕적 당위의 실천은 우리 자신의 좋은 상태를 보전하는 일, 즉 ‘자기보존(conatus essendi)’과도 연관된다.

의료인이 당위적으로 윤리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환자의 호소는 연민에 대한 호소이며, 이 호소에 응답하는 게 의료인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때만이 공동체적 존재로서 인간은 서로의 존엄성을 지키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존엄성을 보존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이러한 존엄성을 수호하는 일은 공동체의 ‘좋음’을 목적으로서 지향하는 것이다. 펠레그리노는 특별히 취약한 환자를 마주하는 전문인으로서 의료인에게는 이와 같은 당위적 의무가 부여된다고 강조한다. 그렇기에 환자의 연민에 대한 호소에 의료인은 내적 도덕감을 발휘해야 한다. 펠레그리노는 비대칭적 관계에서 고통받는 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험에 빠트리는 결과”[16]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 그에 따르면 의료 상황에서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할 인간의 권리는 보존되어야 한다. 의료 행위자와 환자의 관계 속에서 존엄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의 수호라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무로부터 비롯된다. 한마디로 치유 관계에서 의료인은 우리를 ‘좋음’ 속에서 보존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을 뜻한다.

윤리적 의술이 ‘좋은(good)’ 선택을 지향한다면, 좋은 선택이란 환자의 상황과 열망, 기대 등 환자의 전체적인(holistic) 좋음을 지향하는 것이다. 온 전한 의미에서 환자의 좋음을 결단하는 행위만이 참된 치유를 구현한다. 펠레그리노의 관점에서 의료인의 참된 치유는 구체적으로 구현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구체적 실현을 펠레그리노는 덕윤리로 설명한다.

3. 의료인의 ‘덕’윤리

앞서 우리는 의료인과 환자의 관계는 치유관계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치유관계에서 의료인과 환자는 비대칭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의료인은 환자의 요구에 당위적으로 응답함으로써 좋은 의술로 도움을 준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좋은 의술 이 구체적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실천되어야 하는 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펠레그리노는 ‘전문성(professionalism)’을 갖춘 자로서 의료인의 구체적인 실천원리가 ‘덕(aret )’ 윤리로부터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덕윤리의 규범적 표준은 ‘좋음’을 행하는 것이다. 의무윤리가 좋음을 실현해야 할 당위성과 판단을 부여해 준다면, 덕윤리는 구체적 규범과 의지를 부여한다[17].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습관적으로 덕을 통해 좋음을 이루어야 한다. 덕윤리의 핵심은 “우리 존재의 완성, 이른바 성숙한 존재로 나가는 부단한 추구의 과정”[11]에 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탁월성을 덕으로써 실현한다.

덕윤리의 전통은 그 시원을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찾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강조된 덕은 크게 ‘다섯 가지의 양상’[18]을 띠는데, 첫째, 탁월성으로서의 덕, 둘째, 목적을 지향하는 특성으로서의 덕, 셋째, 이성의 탁월성으로서의 덕, 넷째, 실천적 판단에 중심을 두는 덕, 다섯째, 실천을 통해 학습되는 덕이다. 다섯 가지 양상에서 강조된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덕은 기능적이고, 목적론적 성격을 갖는다. 예를 들어 칼(劍)의 덕이 잘 자르는 것이고, 눈(目)의 덕이 잘 보는 것처럼, 덕은 대상 그 자체를 좋은 상태로 있게 하는 목적성을 띤다. 이러한 덕 중 인간의 덕이란 실 천적 지혜를 통해 좋음을 실현할 수 있는 “품성상태”로서 “탁월성”[19]이다. 인간의 내적 도덕성이 곧 탁월성이라고 할 수 있다. 덕윤리에 따라 우리의 탁월성으로서 내적 도덕성은 우리의 품성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품성으로서 탁월성은 “습관의 결과로 생겨난 것”[19]이어야 한다. 이는 윤리(ethic)라는 단어가 습관을 의미하는 ‘에토스 (ethos)’와 연관 맺는 이유이다. 윤리적 탁월성은 일회적인 게 아닌 지속적이고 반복적일 때만이 탁 월성으로 발휘된다.

에토스와 연관 맺는 덕이란 우리의 목적과 의도를 습성으로 성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과의 도는 실천이성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덕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목적과 의도인 좋은 상태, 좋은 인간으로 변모해야 한다. 물론, 덕윤리에서 좋은 상태, 즉 좋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논하는 것은 간단 한 작업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앞서 인간의 좋은 상태로서 존엄성이 존중받는 상태를 확인한 바 있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분명한 점은 인간의 존엄성을 이성에 따라 윤리적으로 보전하고 이를 습관화할 때, 우리는 우리의 ‘좋음’을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발현되는 좋은 상태는 자율성에 입각하여 이성을 발휘하는 상태이다. 이성에 따르는 실천으로 지혜를 발휘하는 일은 인간의 탁월성을 구현하는 행위이다. 한마디로 상황에 따라 인간의 덕은 이성에 따르는 ‘실천적 지혜 (phron sis)’를 행함으로써 드러난다. 인간의 좋음은 탁월성을 발현하는 상태이고, 탁월성은 자율성에 입각하여 이성을 발휘한 상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든 칸트에게든 윤리를 실현하는 일은 이성에 따라 의지, 의욕을 좋음으로 실천할 때 구현된다. 그러므로 성숙한 인간은 상이 한 맥락 속에서 실천적 지혜를 통해 탁월성을 발 휘하며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한다. 이러한 모색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동체적 존재인 우리가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간구하는 행위이며, 또한 유한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함께 좋음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살펴보는 일이다. 공동 체적 존재로서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은 실천적 지혜를 통해 발현되어야 한다. 덕윤리에서 습성으로서의 탁월성과 실 천적 지혜가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료인의 덕의 실현은 의료인도 인류 공동체의 일 원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의료인의 실천은 인류 공동체의 좋음을 지향하는 사실 아래 있다. 그러므로 의료인의 덕윤리는 보편적 이념 아래 작동한다.

덕의 실천은 ‘좋음’을 목적으로 두지만, 어떤 획일적인 규범에 무조건 순응함으로써 경험되는 게 아니다. 상황마다 탁월한 판단과 실천을 이성으로부터 다양하게 찾아야 한다. 물론, 덕윤리는 덕의 구현에 있어 상황에 맞는 판단을 강조하기에 덕윤리 자체가 정하고 있는 구체적인 규범의 내용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한계를 지적받기도 한다. 보편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혹 자는 덕윤리가 주관주의, 감정주의 또는 상대주의 나 회의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덕의 규범이 바뀔 수 있다고 해서 덕윤리가 보 편적인 규범의 내용이 없는 상대주의 윤리로 간주 되어서는 안 된다. 덕윤리는 원칙들을 제시하는 의무윤리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게 아니다[20]. 왜냐하면 덕의 규범은 의무윤리의 규제적 이념 아래 수행되고, 규제적 이념은 구체적인 덕의 규범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구체적 규범과 규제적 이념은 상보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펠레그리노는 덕윤리는 회의주의나 상대주의로 귀결되지 않는 오히려 의료인이 반드시 추구해야 할 윤리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치유관계에서 의료인과 환자는 비대칭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의료인은 환자의 요구에 당위적으로 응답하고 그때마다 좋은 결심으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의료인의 당위적 응답은 펠레그리노에 따르면 덕윤리에서도 수행되어야 할 보편적 이념 이자, 지침이다. 다만 의료인은 이러한 보편적 당 위 속에서도 최상의 실천적 지혜를 간구하며 덕의 내용을 채운다. 다양한 의료환경의 복잡성에 서도 가장 탁월한 해법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당위적 응답과 함께 실현되는데, 이러한 노력이 펠레그리노가 강조하는 실천적 지혜를 통한 덕의 실현이다.

덕의 실현은 그때마다 상황과 그 상황에 알맞은 자족적인 ‘좋음’을 실천적 지혜로 간구하는 행위이다. 실천적 지혜로 구현되는 판단은 원칙이 되고 이러한 원칙의 습관은 인간이 갖춰야 할 습성으로서의 탁월한 덕이 된다. 그와 같은 덕은 종국적으로 완전한 목적으로서 ‘좋음’을 지향한다. 그래서 덕은 좋음이라는 목적을 지향하는 실천 과정 속에서 언제나 “보충하는 윤리”이자 반복되는 습성으로, 훈육되고 만들어진다. 물론 상황에 따라 폐기 되기도 한다. 덕이 바뀔 수 있다고 해서 덕윤리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으로만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덕 윤리는 언제나 의무윤리의 지침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무윤리와 덕윤리가 상보할 수 있는 까닭이다. 덕의 실천은 의무윤리가 제시하는 이념의 지침과 상보적으로 실행된다. 의료인은 덕 윤리에서 구체적 규범을, 의무윤리에서 이념적 방향성을 찾는다.

펠레그리노에 따르면 의료인은 자신의 책무로서 덕을 실현할 때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내용이란 바로, “신뢰”, “자애”, “정직함”, “용기”, “연민”, “능숙함”[20]이다. 환자든 의료인이든 치유를 위해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 의료인은 해로운 것을 피하고, 선한 것을 구현하겠다는 자애로써 환자를 대해야 한다. 환자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리고 의료인은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정직하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의료인은 전염에 노출되는 위험이 있다고 해도 환자의 호소에 응답할 줄 아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8) 취약함에 노출된 환자의 고통에 공 감할 줄 아는 연민이 의료인이 갖는 근본적 감정이라면, 환자는 자신의 질병이 의료인의 능숙함으로부터 치유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는다. 환자는 자신의 건강한 삶을 의료인으로부터 바란다.

덕을 실천하는 의료인은 환자와의 관계를 상품 교환으로서, 혹은 단순한 계약관계로서 이해하지 않는다. 덕의 실현은 전문가에 요구되는 특별한 의무이자 신뢰의 관계 속에서 실천되어야 할 사항이다. 의료인과 환자는 전폭적인 신뢰 속에서 언약으로 치유관계를 맺는다. 의료인의 언약은 환자와의 관계를 윤리적으로 결속시킨다. 덕에 입각하여 실천하는 의료인은 ‘자신이 갖는 책무를 실현하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이자 결속된 공동체의 일 원으로서 윤리를 실천하는 자’[20]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의무윤리에서든 덕윤리에서든 의료인에게 부여되는 공통된 자세이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의료인은 무엇이 최선인지를 고민하며 올바른 덕을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이 곧 덕윤리의 실천적 지혜가 구체성을 갖는 이유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의료인은 전문인으로서 환자와의 비대칭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덕을 발휘해야 한다. 의료인과 환자의 관계가 치유관계라면, 둘 사이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게 치유인 만큼, 의료인은 치유의 탁월성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사정에 따라 의료인은 오랜 기간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전문가는 공표하는 사람으로서 환자와의 관계에서 치유라는 목적 달성을 약속한다. 좋은 의료인이란 가장 효과적인 치유방식으로 자신의 탁월성을 발휘하는 자이다. 환자의 상태를 좋음으로 이끄는 탁월한 기술을 발휘하는 게 의료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살펴본 것처럼, 실천적 지혜는 의사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복잡한 의료 상황에서 올바른 선택을 위해 습득해온 기질은 실천적 지혜로 완수된다. 실천적 지혜는 개인적 덕목의 차원을 넘어서 공동 체의 차원까지 확장된다. 그래서 의료인은 자기 이익이나 보호에만 관심을 두거나 아무렇게나 판단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덕이 있는 의료인은 상업적 목적이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발이라는 명목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의료인은 전문가라는 소명의식 아래 환자의 요청에 도움으로 응답함으로써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의 ‘좋음’을 실현한다. 의료인의 도움은 참된 좋음을 치유로써 이끌어내는 것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보편적으로 지향되어야 할 좋음을 목적으로 삼는다. 이러한 사실에서 의무윤리는 덕윤리의 이념적 목표가 되며, 덕윤리는 의무윤리의 구체적 실천이 된다. 펠레그리노는 덕윤리와 함께 의료인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정언명령이 요구된다”[5] 고 역설한다. 의무윤리와 덕윤리 모두가 의료인의 직업윤리에서 상보적으로 구현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III. 상보적 관계 속 의무윤리와 덕윤리

의무윤리와 덕윤리를 상보적 관계로 이해하는 일은 다원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윤리 혹은 제3의 윤리를 탐색하는 작업이다. “덕윤리가 도덕의 동기화를 중시했다면 의무윤리는 그 정당화에 진력했다”[21]는 점에서 두 윤리학의 장점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윤리의 가능성을 살피도록 만든다. 의무윤리는 보편적 규범의 정당성만을 강조하는 나머지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며, 덕윤리는 실천의 탁월성을 발휘하는 동기에만 주목하는 나머지 규범의 객관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두 윤리학의 장단점을 통해 보다 생산적인 실천방향을 건설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의무윤리에 기반을 둔” “유덕한 시민(virtuous citizen)의 윤리”[21]를 생각할 수 있다.

지금까지 펠레그리노의 논의에 입각해 의무윤리와 덕윤리가 의료 전문직업 윤리에서 상보적일 수 밖에 없음을 살펴봤다. 펠레그리노가 내세우는 덕 윤리는 단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응용윤리가 아닌 새로운 덕윤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펠레그리노는 의료인이 실천하는 직업윤리에서 두 윤리가 상보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인데, 그에 따르면 덕윤리는 다른 윤리학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이며, 또 그렇게 이해해야 하며 특히나 원칙주의 윤리와도 충분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20]. 이러한 사정에서 펠레그리노는 덕윤리란 인간을 존엄하게 대우하는 당위적 이념 위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 기초 위에 ‘의료인은 정언명령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 다만 펠레그리노는 의료인의 덕윤리가 원칙이나 의무윤리와 일치한다는 사실의 발견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의료인이 마 주하는 다양한 문제를 상황에 따라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하는가이다[22]. 이는 펠레그리노가 의무 윤리보다 덕윤리가 더 나은 윤리로 간주했다는 점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의료인의 윤리란 앎으로 끝나는 게 아닌 반드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펠레그리노는 매 순간 의료인이 마주할 현실에서 두 윤리를 모두 요구함으로써 지혜를 발견할 것을 종용한다.

의료인은 언제나 직업전선에서 도움을 요구하는 환자의 존엄한 삶과 직접적으로 관계 맺는다. 그러한 관계는 도덕적 상황을 환기하는데, 도덕적 상황은 의무윤리나 덕윤리 어느 한쪽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의료인이 환자의 치유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환자의 삶에 대한 ‘총체적 좋음(the Good)’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면, 이러한 관심은 의무윤리가 내세우는 보편적 준칙과 덕윤리가 내세우는 구체적인 덕의 발현 모두를 요구한다. 다만 의료인은 저마다의 상황 속에서 보편준칙과 실천적 지혜를 함께 발휘함으로써 의료적 입장을 판단하는데, 이러한 판단의 과정은 의료인과 환자에게 상호의 “존중의 덕 (respect)”[23]으로 이행할 것을 요청한다. 덕의 탁 월성과 함께 좋음을 실현하는 일이 보편적인 규범을 지향하는 가운데서 구현된다면, 상호존중의 덕은 필수 불가결하다. 상호존중이 보장될 때만이 서로의 존엄성과 권리를 수호할 수 있다. 다양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상호존중이라는 덕의 내용은 의료인과 환자 모두에게 요구되는 항목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볼 때, ‘의료 전문 직 윤리에서 두 윤리가 상보적으로 필요하다’[24]는 주장은 타당하다. 의료인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취급하기에 의료전문직 종사자에게는 본질적으로 높은 도덕적 의무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늘날의 의료 상황은 의사의 합리적 판단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24], 이러한 점은 의료전문직의 위치가 높은 도덕적 수준과 실천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물론, 의료인의 도덕적 당위가 필수 불가결하다는 사실이 의사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의사도 존엄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이익 추구를 온전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펠레그리노는 이를 소통과 존중 속에서 형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상호존중과 소통은 실천적 지혜와 함께 보편적 가치 아래서 간구되어야 한다[25]. 덕윤리는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서 당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탁월성으로 모색하는 윤리이다. 다만 재차 강조한다면, 덕윤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의료인은 의무윤리의 보편적 이념을 지침으로 덕의 총체적인 좋음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이와 같은 좋음을 구현하는 일은 우리에게 부여된, 우리를 위한 당위이지만, 특히나 의료전문직업을 가진 의료인에게 더 요구되는 사안이다. 한마디로 의료인에게 인간을 목적으로 대함으로써 존엄성을 수호하는 일과, 이러한 당위적 목적 이념을 토대로 구체적 의료상황 속에서 최상의 실천적 지혜를 간구하는 일 모두가 필요하다. 보편규범을 내세우는 의무윤리가 갖는 구체성의 결여는 덕윤리를 통해 보완될 수 있으며, 역으로 덕윤리의 보편적인 방향성의 결여는 의무윤리를 통해 보완된다.

IV. 나가며

전문직업인으로서 의료인은 특별히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게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이해하며 실천해야 한다. “지극히 인간다운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21세기 가장 시급한 과제”[26]라고 볼 때, 의료인은 다른 전문직과 비교해보아도 인간다움을 실천하는 최전선에 있다. 인간다움을 실천하는 일이란 우리의 존엄성을 스스로가 수호하는 일이며, 공동체적 존재인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며 더 좋음을 실천적으로 간구하는 일은 ‘우리의 생존에 있어서도 더 나은 결과를 보증한다’[26]. 한마디로 의무윤리와 덕윤리의 상보적 이해는 우리 자신의 자기보존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펠레그리노의 주장에 따라 지금까지 살펴본 논의는 의료현실을 제도적, 법적 차원에서 고찰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본 논문의 함의가 낭만적 진단이라고, 즉 개별 의료인의 윤리적 실천이 의료계를 구성하고 있는 전반적인 체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냐고 혹자는 반문할 수 있다. ‘의료문제의 윤리적 차원은 사회적, 제도적, 법적 갈등과 분리될 수 없다’[27]. 현재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COVID-19’와 같은 전염병 문제는 개인의 직업윤리만을 고찰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신종 전염병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사회정책을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의료 활동에서 국가의 개입은 중요하다’[28]. 국가는 국민건강의 향상을 위한 모든 보건의료 서비스의 기획과 시행의 주체라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본 논문에서 상론한 내용은 사회제도, 국가와의 관계에서 논의되지 못했다는 한계를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이러한 비판과 함께 의료인의 ‘내적 도덕성도 사회적 맥락에 따라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살펴야 한다’[29]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대 의학, 의료는 사회기반시설, 문화, 가치 등 종합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적어도 윌데스(Kevin Wm.Wildes)의 지적처럼 환자와 의사는 일대일로 만나는 게 아니라 법률가, 보험사, 행정관 등 다양한 관계를 이미 전제한 상태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펠레그리노의 논의는 보다 종합적 차원에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펠레그리노는 앞서 제기된 비판들을 묵인하거나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의료인의 덕윤리의 실현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펠레그리노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의료인의 윤리적 변화뿐만 아니라 의료 환경의 변화는 함께 추구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펠레그리노가 볼 때 사회적 변화나 구조가 달라져도 의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의료는 ‘치유’ 속에서 ‘좋음’을 증강하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의과대학이 ‘20년간 변화된 상황’[5]들을 예로 들면서 의학의 본질탐구가 종합적으로 실현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의 주장은 복잡한 현실 속에서도 의료인과 의료 환경이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방향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보여준다. 의료인은 의무론적 이념이라는 발판을 토대 삼아 실천적 지혜를 통해 의학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도 한 발짝씩 목적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데,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의료법, 제도, 국가시스템 등 비판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들과 함께 고찰되어야 한다. 펠레그리노는 이러한 고찰의 가장 근본적 차원인 의학의 본질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펠레그리노는 의학을 단순한 지식이나 과학으로서 학문이 아닌 “인간에 대한 종합적 탐구영역”에 있는 “종합예술”[30]로 이해한다. 펠레그리노에게 의학은 윤리나, 사회적 맥락, 전통, 역사, 규범 및 각종 제도와 함께 탐구되어야 하는 학문이다. 기계적으로 몸을 이해하는 한 가지의 관점을 넘어서 다양한 차원에서 인간을 탐구하는 게 의학이자 의료인의 자세이다. 이러한 의료인의 자세에서 ‘의료인에 대한 윤리적 고찰은 의학에 도움을 주며, 동시에 윤리학 역시 의료윤리 사례 연구를 통해서 도움을 받는다’[31]. 의학과 윤리는 상보적 관계에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윤리는 의료인으로 하여금 사랑하는 사람(homo amans)이 될 것을 요구한다. 사랑은 보편이념과 함께 ‘실천적 지혜 속에서 추구되어야 할 의료인의 근본적 가치’[32]이다.

Notes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9S1A6A3A04058286).

이 논문은 2019년 12월 19일 경희대학교 통합의료인문학 연구단이 주최한 콜로키움 “의료윤리와 그리고 질병”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특별히 당시 논평을 맡아주셨던 김준혁 선생님과 비판적 조언을 주셨던 권복규 선생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RF-2019S1A6A3A04058286).

본 논문에서 명시하고 있는 ‘의료인’은 의사를 지칭하는 단어로 이해될 수 있지만 의료법 제27조에 명시된 사람들, 가령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안마사, 응급구조사들도 환자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로 이해될 때 넓은 의미에서 의료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논문은 좁은 의미에서 취약한 환자와의 관계에서 의술을 실천하는 의료인을 ‘의사’라고 지칭하지만, 포괄적인 의미에서 의사 외 언급한 사람들도 ‘의료인’으로 이해한다.

의료윤리(medical ethics)는 포괄적 의미를 지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세분화한다면, 임상윤리(clinical ethics), 생명윤리(bioethics), 임상연구윤리(clinical research ethics), 의료조직윤리(health organizational ethics), 보건윤리(public health ethics), 생명의료윤리(biomedical ethics)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본 논의에서는 펠레그리노의 논점들을 중심으로 의료윤리를 의료인과 환자의 관계에서 고려되는 문제로 간주하여 살펴본다. 펠레그리노는 환자와 의료인의 만남이나, 의료윤리의 철학적인 근거 등 의료의 본질적 의미를 다루는 게 곧 “의철학(philosophy of medicine)”이라고 강조한다. Pellegrino E. The Philosophy of Medicine Reborn. H. Tristram Engelhardt, Jr. and Fabric Jotterand ed.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2008 : 36-42.

터스키기 매독 실험(Tuskegee syphilis experiment)은 1932년에서 1972년 사이에 미국 공중보건국이 매독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 위해서 앨라배마의 농촌 지역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악명 높은 실험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매독에 걸리고 방치된 피해자들은 정부의 무료 건강관리를 받는 것이라고 기만당했다. “‘의료는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라는 ‘대의’” 속에서 터스키기 사건과 나치의 생체실험이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료윤리학회. 의료윤리학. 정담미디어(제3판), 2018 : 3-5 참조.

여기에서 환자는 ‘인간’ 종으로 한정한다. 물론, 오늘날 수의사도 있듯, 의료인은 동물과 같이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 일반을 다루는 사람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본 논고에서는 사안의 복잡성을 피하고 논의의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료인의 개념을 인간 종을 환자로 대하는 사람으로 좁힌다. 이에 따라 논문은 인격적 존엄성을 갖는 인간을 환자로서 다루는 의료인에 한정하여 이들의 윤리적 태도를 고찰한다.

물론, 의사와 환자의 관계 또한 다양한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마컴(James A. Marcum)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크게 세 가지 - 의사 중심 모델, 환자 중심 모델, 상호 모델 -로 분류한다. 이 세 가지 분류는 다시 세부적으로 분류되는데,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James A. Marcum. Conclusion: What Is Medicine?. Humanizing Modern Medicine: An Introductory Philosophy of Medicine. Springer Science +Business Media, 2008 : 277-299 참조. 본 논문은 의사 중심 모델의 하위 분류인 약한 온정주의 모델에만 집중한다. 펠레그리노는 약한 온정주의 모델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는데, 논문은 펠레그리노의 입장에 따라 약한 온정주의 모델을 기반으로 논의를 펼친다.

주의할 점은 자율적으로 실천이성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들, 가령 무뇌아, 정신이상자, 영·유아 등 이들의 존엄성은 보장할 수 없다고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본 논문은 <세계인권선언> 제1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한다.”에서 명시된 바와 같은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가령, 환자의 권리로는 ① 최선의 진료를 받을 권리, ② 존엄성을 유지할 권리, ③ 스스로 결정할 권리, ④ 치료를 거부할 권리, ⑤ 정보를 알 권리, ⑥ 차별받지 않을 권리, ⑦ 최소 규제 환경에서 치료받을 권리, ⑧ 비밀유지의 권리, ⑨ 건강증진에 관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환자의 의무로는 ①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할 의무, ② 올바른 정보제공의 의무, ③ 진료에 협조할 의무, ④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의무, ⑤ 부당한 방법으로 진료를 받지 않을 의무가 있다. 의사의 권리로는 ① 진료권, ② 고문 등 가혹 행위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 ③ 자유로운 이동과 차별 없는 대우를 받을 권리, ④ 자신과 가족에 대한 안전보장 권리가 있으며, 의사의 의무로는 ① 진료거부 금지의 의무, ② 충분한 설명의 의무, ③ 비밀유지의 의무, ④ 환자에 대한 차별, 도구화 금지의 의무, ⑤ 사적인 관계 금지 의무, ⑥ 공공의료 협조 및 신고의 의무가 있다. 이 모든 권리와 의무가 의료인과 환자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보편적인 당위로 수립될 때, 실천의 규범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국의료윤리학회. 의료윤리학. 정담미디어(제3판), 2018 : 131-151 참조.

물론, 의료인이 이와 같은 용기를 발휘하지 않았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용기를 발휘한 상태와 그러지 못한 상태 중 어느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지를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치판단에 입각하여 더 좋은 가치실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율성에 따른 결과여야 한다. 실천의 당위성은 인간의 자율성으로부터 실현되어야 한다. 가령, 비난이 두려워 용기를 선택하는 것은 의무윤리가 강조하는 당위가 아니다. 자율성에 따른 용기의 선택이 용기를 선택하지 않음보다 더 가치 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그러한 평가가 비난의 가능성을 필연적으로 담보하지 않는다. 위급한 상황에서 용기를 발휘하는 게 좋음을 지향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와 같은 용기는 의료인의 덕목이 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의무윤리에 입각해서든 덕윤리에 입각해서든 더 ‘좋음’을 지향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더 좋은 판단을 자율적으로 실천하도록 서로가 포용과 사랑, 관용으로 연대해야 한다.

Conflict of 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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